거대한 흡입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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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f the Reform Party had been more successful?

거대한 흡입음
Giant Sucking Sound
장르 대체역사, 정치
현황 연재중
변곡점 1992년 2월 20일
로스 페로는 래리 킹 라이브에서 공식적으로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한다.
주연 로스 페로, 도널드 트럼프
연재기간 2023년 9월 4일 ~ 현재
(출범일로부터 +428일, 1주년)
연재자 Nebraska Admiral
저작권

개요

우리는 일자리를 외국에 유출하는걸 멈춰야합니다. 이건 아주 간단합니다. ⋯ 그리고 당신이 돈을 버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신경쓰지 않는다면, 남쪽으로 향하는 거대한 흡입음이 있게될겁니다.[1]

로스 페로, 1992년 대통령 선거 후보토론 中.

거대한 흡입음(Giant Sucking Sound; GSS)개혁당이 성공한 대체역사를 다루는 세계관이다.

시놉시스

"Leadership for a Change"
"변화를 위한 지도력"


1992년은 정치혁명의 해였습니다.

빌 클린턴이 최초의 부머 세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팻 뷰캐넌이 현직 대통령 조지 H. W. 부시를 꺾을 뻔했으며, 로스 페로가 무소속 후보로 최고의 득표율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클린턴의 인기는 금새 시들어졌고, 뷰캐넌은 극우 정치와 담합해 몰락했으며, 페로의 개혁당은 실패한 개혁 운동으로 끝나버렸습니다.

1992년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바뀔 수 있었던 마지막 순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로스 페로의 출마가 좀 더 성공적이었다면?

만약, 개혁당이 성공적으로 제도권에 안착했다면?

만약, 1992년의 정치혁명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면?

상세

대통령 계보

소개

이 세계관의 변곡점은 바로 1992년 대통령 선거이다. OTL[2]에서 로스 페로가 '지지자들이 50개 주 전역에 등록해준다면 출마할 용의가 있다'며 얼버무린 것과 달리, 이 세계관에서는 즉각 대통령 출마를 선언했다. 페로 돌풍은 OTL보다 더욱 크게 일어났고, 3년 더 빠른 개혁당 설립을 불러왔다.

한편, 양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은 혼란에 빠졌다. 민주당에서는 아웃사이더 후보인 제리 브라운폴 송거스가 생각외로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선두주자였던 빌 클린턴의 뒤를 바짝 추격했다. 클린턴은 근소한 차이로 대의원 과반수를 확보했지만, 얼마안가 민주당 전국위원회가 클린턴을 의도적으로 밀어줬다는 문건이 폭로되면서 지지층의 대규모 이탈을 불러왔다. 공화당에서는 팻 뷰캐넌이 현직 대통령이었던 조지 H. W. 부시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했지만, '부정선거'를 부르짖으며 대대적으로 반발했다.

페로는 이러한 혼란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는 양당에게 소외된 중도층, 反 부시 공화당원, 보호무역주의자들, 농민과 노동자 계층을 모두 규합했다. 포퓰리즘을 기초로 한 로스 페로의 정책 공약은 보수와 진보 양쪽에서 선호받았다. 그의 여론조사 지지율은 클린턴, 부시와 함께 2위와 3위를 오갔고, 비판적이었던 제도권 언론들도 그의 출마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2번의 대통령 후보 토론은 각각 클린턴과 페로의 승리로 끝났고, 로드니 킹 폭동, 클린턴의 병역기피 의혹, 역차별론 따위의 이슈들이 난발한 끝에 본선이 치뤄졌다. 페로는 예상된만큼의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1968년의 조지 월리스를 이래로 최초로 선거인단을 획득한 제3당 후보가 되었다. 개혁당은 하원과 상원에서 몇몇 협력자들을 구할 수 있었고, 당의 후원금은 수백만 달러를 돌파했다. 신기루와 같았던 여태까지의 제3당들과는 달리, 개혁당은 이제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클린턴은 압도적으로 승리했지만, 그는 이제 보수주의자들의 반발과 당내 불화를 맞닥뜨려야했다. 클린턴의 참모진들은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명백히 그에게 불리한 싸움을 이길 수 있게하지는 못했다. 클린턴의 재선 전망에는 벌써부터 먹구름이 드리웠다. 공화당, 민주당, 개혁당 3당은 강력한 어조로 클린턴을 공격했다. 1994년 중간선거는 당내 클린턴주의자들은 물론 민주당 전체의 패배로 끝났다.

그리고 1996년, 페로는 민주당의 클린턴과 공화당의 밥 돌을 꺾고 가장많은 선거인단을 획득했으며, 대선 정국을 교착상태로 이끌었다. 하원의회는 타협 끝에 그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포로 구호 운동의 선구자이자 66세의 기업가, 포퓰리스트 정치가 로스 페로는 미국의 제43대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

개혁당은 민주당, 공화당과 함께 미국의 주요 정당 반열에 올랐다. 개혁당의 성공과 함께 헌법당, 녹색당, 자유당과같은 군소정당들도 더불어 성장했다. 미국의 전통적인 양당제는 붕괴했고, 건국의 아버지들이 말했던 '다양한 파벌들이 서로 견제하는 민주주의의 이상향'을 이룩했다. 북미자유무역협정은 폐기되었고, 글래스-스티걸법은 지켜졌으며, 조지 W. 부시도, 9.11도, 이라크전도, 대침체도 없는 세상이 도래했다.

그리하여 새로운 천년이 시작되었다.

연표

역사가 바뀐 주요 인물

  • 로스 페로 : 이 세계관에서 가장 성공한 인물. OTL과 달리 성공적으로 개혁당을 제도권에 안착시켰으며, 미국의 제43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단임 대통령을 선언하며 재선에 나서지않았다. 지지율 60%를 기록하며 퇴임했고, 고향 텍사스 주에서 유유자적 살아가다가 사망했다.
  • 도널드 트럼프 : 1993년, 현직 시장 데이비드 딩킨스와 공화당 후보 루디 줄리아니를 꺾고 뉴욕 시장에 당선되었다. 2000년, 페로의 뒤를 이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제44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클린턴 가문, 케네디 가문과 밀접하게 지내며 민주당과 관계를 맺었고, 이 때문에 개혁당내 보수주의자들에게 비난받았다. 2004년 재선에서 패배했으며 2006년 뉴욕 주지사에 당선되었다.
  • 버락 오바마 : 2000년 현직 하원의원인 바비 러시를 상대로 경선에 도전하면서 민주당 지도부에게 미움을 샀다. 이후 2004년 개혁당으로 당적을 변경해 일리노이 연방상원의원에 출마했고 무난하게 당선되었다. 대체적으로 친민주당 성향의 진보적 개혁당원으로 활동했고 2016년 페로 前 대통령, 트럼프 前 대통령의 지지를 받아 제46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 빌 클린턴 : 1996년 재선에서 패배한뒤 뉴욕에서 사업에 전념했다. 2000년 민주당에서 탈당한뒤 트럼프 행정부에서 백악관 보좌관으로 일했으며, 2008년에도 민주당 후보 존 F. 케네디 주니어 대신 개혁당 후보였던 제시 벤투라를 지지했다.
  • 앤드루 쿠오모 : 트럼프 행정부에서 주택도시개발부 장관으로 재임했으며, 2006년 스피처가 지냈던 뉴욕 주법무장관 직에 당선되었다. 2014년 뉴욕 주지사에 출마했으나 스피처에게 패배했다. 2021년 뉴욕 시장에 당선되어 현재까지 재임중이다. 성추행 의혹으로 수사받았으나 무혐의로 풀려났다.
  • 엘리엇 스피처 : 주 법무장관으로 활약하며 경력을 쌓은뒤 2006년 트럼프 前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뉴욕 부지사에 출마했다. OTL과 달리 매춘 사업에 손을 대지 않았고, 2014년 뉴욕 주지사에 당선되면서 현재까지 재임중이다.
  • 제시 벤투라 : 전직 레슬러. OTL과 마찬가지로 미네소타 주지사에 당선되었으며, 2002년 공화당의 놈 콜먼과 민주당의 월터 먼데일을 꺾고 상원의원 직에 당선되었다. 2008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케네디 주니어에게 패배했으며 2020년 상원의원 직에서 은퇴했다.
  • 지미 카터 : 미국의 제39대 대통령. 트럼프 행정부에서 UN 대사로 임명되었다. 북한, 중동, 러시아등 대외 문제에 있어서 중재 역할을 맡아왔으며 재임기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았다.
  • 존 F. 케네디 주니어 : OTL과 달리 1999년 비행기 사고에서 사망하지 않았다. 2000년 뉴욕 연방상원의원에 당선되었고, 민주당보다 개혁당에 가까운 행보를 보이며 당 지도부에게 비판받았다. 2008년, 가까스로 민주당 후보 공천을 따내 제45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 힐러리 로덤 : 1997년 남편 빌 클린턴의 불륜 스캔들로 이혼했고, 고향 일리노이 주로 복귀했다. 버락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 이후 공석이 된 일리노이 연방상원의원 직에 도전해 당선되었다.

영향을 준 매체

  • 이브위키 내부


  1. 번역기를 다듬은 의역이므로 양해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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