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itts-Zolo Labor Party | |
함께 나아가자 | |
1889년 5월 1일 (사회주의 동맹) 1914년 5월 3일 (노동당) | |
스비츠-졸로공화국 영민로 27 | |
사회민주주의 민주사회주의 진보주의 | |
중도좌파 | |
심상정 | |
류효준 | |
0석 / 3석 (0%) | |
1석 / 30석 (3.3%) | |
4석 / 50석 (8%) | |
0석 / 30석 (0%) | |
빨간색 (#D2001A) | |
적기가 | |
사회주의 인터내셔널[1] | |
민주진보당 | |
940 (2021) | |
전국학생행진 | |
성소수자 노동당 | |
주간 노동자 | |
흑적금 국기단(1914 ~ 1945) |
개요
노동당은 스비츠-졸로공화국의 사회민주주의, 민주사회주의 정당이다.
역사
창당과 분열
노동당의 창당은, 제2인터내셔널이 창립되었던 1889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2] 전세계적인 사회주의 운동의 성행과 더불어 스비츠-졸로전쟁의 여파로 거세진 반전여론에 힘입어 정봉영등 10인의 주도로, 사회주의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창당되었다. 연합당 정부하에서 불법정당으로 남던 사회주의 동맹은 시민당 치하였던 1893년 합법화되어 선거에 참여하게 된다.그러나 합법화 이후 당내갈등이 지속되었고, 결국 러시아에서 사회민주노동당이 분열되었던 것처럼, 개량주의 파벌과 혁명주의 파벌로 나뉘게 된다. 이후 혁명주의 파벌은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한 인터내셔널의 태도를 비판하면서 사회주의 동맹을 탈당, 공산당을 창당한다. 이후 사회주의 동맹은 정당의 이름을 노동당으로 바꾼다.
전간기와 일본의 지배시기
그러나 노동당의 역사가 마냥 순탄하던 것은 아니다. 공산당의 분당 이후, 노동당은 지속적으로 원외정당에 남았으며, 때때로 스비츠 의회에 의석을 내던 수준이었다. 거기에다가 공산당의 준군사조직인 적위대와의 분쟁으로 인력난도 심각하였다. 그러다가 1938년 공화국이 일본제국의 침략 아래 무너지자 노동당은 다시한번 지하정당으로 전락하였다.
지하에서 독립을 하던 노동당은 시민당, 졸로 연합, 공산당과 함께 스비츠-졸로 해방전선을 창설하여 항일운동에 뛰어들게 된다.
해방 이후 ~ 냉전시기
해방 이후 노동당은 45년 총선에서 해방전선 거국내각의 일원으로 참여한다. 이후 49년 총선을 통해 집권하기도 하나 집권중 실책으로[3] 의석을 크게 잃은 후에는 좀처럼 집권과는 멀어진 모습이었다.
냉전시기 공산당은 다른당보다도 노동당을 집중견제해 노동당과의 무력투쟁이 잦았고, 이에따라 중앙정계에서의 성장이 어려웠다는게 중론이다.
1990년대 ~ 2010년대
그러다가 노동당에게도 기회가 찾아오는데, 냉전의 끝으로 공산당이 드디어 무력투쟁노선을 포기하면서 노동당과 길고긴 싸움이 끝났다는 점이다. 이후 노동당은 스비츠-졸로 독립동맹의 부패문제를 꼬집으며 2006년 집권하게 된다.
그러나 2008년 경제위기로 긴축을 택한 노동당에게 유권자들은 큰 실망을 느끼면서, 기어이 2013년에는 원외정당으로 추락한다.
최근
2017년 총선에서는 다시 원내로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2021년에도 똑같이 1석을 유지하였다.
최근에는 녹색당, 졸로개혁연합과 연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성향
경제
노동당은 대체로 사회민주주의 정당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집권시기 긴축행보로 제3의길 성향 또한 존재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과거 긴축에 대해 심상정 대표[4]는 "후회한다"고 발언했다.
사회
노동당은 동성혼 법제화, 낙태 권리를 지지하는 진보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이다.
외교
노동당은 외교적으로 친서방으로 평가받는다. 그래서 미군이 주둔하는 졸로 해군기지를 인가하는 결정을 하자, 졸로연합의 대표로 부터 "왜 스비츠의 정당이 졸로의 일을 결정하냐"는 비판을 받은바 있다. 최근에 타이완 분쟁이 고조되자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내부 분파
- 온건파 (사회민주주의, 제3의길) :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지만 약간의 민영화는 불가피하다는 제3의길을 신봉하기도 하는 분파이다. 2010년대 이전까지 급진파에 비해 압도적인 수를 자랑했지만 원외정당을 거치며 세가 많이 약화되었다.
- 급진파 (민주사회주의,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 : 원래 급진파라 함은, 개량주의 노선대신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따라 혁명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위에서 설명한) 분파였다. 하지만 대다수의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공산당으로 이동한 후 작은 수로 남아있다가, 2010년대 많은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불어나기 시작했다. 온건파중 일부는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에 배후가 있는 '입당전술'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