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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관의 모든 인물, 사건, 단체, 국가는 가상이며 현실의 어떠한 인물이나 단체도 찬양하거나 비하할 의도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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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티베트 수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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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국 제16대 수상 롭상 상가이 Lobsang Sangay | བློ་བཟང་སེང་གེ་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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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8년 9월 5일 | ||||||||||||||||||||||||||
티베트 라싸 | |||||||||||||||||||||||||||
국적 | 티베트 | ||||||||||||||||||||||||||
현직 | 티베트 국회의원 세계 티베트인 회의 의장 티베트 국민민주당 고문 | ||||||||||||||||||||||||||
임기 | 티베트국 제16대 수상 | ||||||||||||||||||||||||||
2012년 6월 2일 ~ 2020년 9월 18일 | |||||||||||||||||||||||||||
링크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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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수상 시절 롭상 상가이[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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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의 제16대 수상. 2012년부터 2020년까지 약 8년간 티베트 수상을 역임했다.
생애
1968년 9월 5일,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몰아치던 중화인공 티베트 자치구 라싸에서 태어났다. 공부에 좋은 소질을 보인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해 국비유학생의 자격으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을 떠나기 얼마 전 그는 지인의 권유로 자유당에 입당했으나 미국에 유학생으로 가있었기 때문에 자유당에서 특별한 활동을 하지는 않았다.
하버드대에서 법학 학사와 석사 학위까지 취득한 롭상은 티베트로 귀국해 자유당을 탈당하고 티베트 국회 법무처 사무관으로 근무하였다. 1997년, 법무처 사무관을 그만두고 티베트 국민민주당에 입당, 국회의원 공천심사에 합격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경합지에 공천된 롭상은 연이어 당선되며 경합지를 국민민주당 우세지로 만들었고 당 대변인, 청년최고위원, 원내부대표 등 여러 당직을 두루 거쳤다.
2007년, 국민민주당의 라싸 시장 후보로 선출되었고 본선에서 47%를 득표해 41%를 득표한 자유당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롭상은 라싸 시장 시절 시정에 대해 좋은 평을 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국민민주당 대표에 도전하였다. 2011년 당 경선에서 국민민주당 대표로 선출된 그는 이듬해 총선에서 국민민주당을 이끌었고 국민민주당이 국회 과반을 확보하면서 44세의 나이로 수상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티베트 수상
롭상 상가이 내각은 코로나 사태 이전까지 대체적으로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다. 2012년 총선에 이어 2015년, 2018년 총선까지 내리 세 번의 총선에서 승리하며 국민민주당의 장기집권을 견인했다. 하지만 코로나 정국에서 티베트에서의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불확실성 속에서 대규모 봉쇄를 밀어붙였으나 지지율이 폭락했고 야당의 강한 반발에 직면했다. 이에 롭상은 국면돌파를 위해 국회를 해산하고 조기총선을 단행했지만 여러 논란 끝에 여당이 참패하면서 8년만에 사퇴했다.
내정
롭상 상가이 내각은 코로나 사태 이전까지 티베트 경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였다. 매년 기복이 상당했으나, 2012년부터 2018년까지 티베트의 경제성장률은 평균적으로 상승세였고, 연평균 순경제성장률은 5.3%로 준수한 편이었다. 물가 상승률은 상가이의 취임 이후 7년간 3~5% 수준으로 유지되었다.
하지만 2019년 서중국 우한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이 시작되면서 상가이 내각이 키우던 관광업에 먹구름이 끼었고, 2020년에 접어들면서 티베트 경제는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상가이 내각은 의료시설이 그닥 선진적이지 않은 티베트에서 코로나가 확산되면 그 결과가 치명적일 것이라 판단했고, 전면적인 봉쇄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봉쇄는 안 그래도 관광객 감소로 취약해진 티베트 경제에 큰 타격을 입혔다.
막판의 코로나 사태 대처 미숙을 제외하면 상가이는 티베트의 사회문제를 잘 통제했고 교육,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진전을 이루어냈다. 하지만 당 내 보수파의 눈치를 보느라 현상유지에 몰두하고 개혁에 소극적이었던 것은 비판받기도 한다.
외교·국방
아베 일본 수상과 회담하는 롭상 상가이[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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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민주당 정치인 답게 전반적으로 친아태, 친서방 외교를 펼쳤다. 아태연합과 여러 협력조약을 맺으며 연합 가입을 시도했으나 다른 아태 회원국과 국경을 접하지 못해 성과는 제한적이었다. 다만 미국과 한국으로부터 군사원조를 이끌어내[5] 티베트 국방력 강화에 공헌하였다. 이외에도 세계은행, 일본, 러시아 등으로부터 경제개발을 위한 장기차관을 얻어냈다.
서중국에 적대적인 국민민주당의 스탠스와는 조금 달리, 롭상 상가이는 서중국에 유화적인 제스처를 여러 차례 취했다. 초기에는 서중국과의 경제 협력 등을 이끌어 냈지만 서중국이 점점 더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말기에는 티베트의 양쯔 강 상류 댐 건설을 놓고 거친 말을 주고받는 상황이 되었다.
여담
- 2004년에 부친상을 당했다.
- 문서명으로 나온 이름은 '롭상 상가이'이지만 실제 발음은 '롭상 셍게'에 가깝다.
소속 정당
소속 | 기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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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 1995 | 입당 | |
무소속 | 1995 - 1997 | 탈당 |
1997 - 현재 | 입당, 정계 입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