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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관의 모든 인물, 사건, 단체, 국가는 가상이며 현실의 어떠한 인물이나 단체도 찬양하거나 비하할 의도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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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국 국회 원내 구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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བོད་ལྗོངས་ཀྱི་རང་མོས་ཏང་། | |
Liberal Party of Tibet | |
LPT, རང་དབང་། | |
ཐར་གྲོལ བོད་ཡུལ། བཟོ 자유의 티베트를 만들자! | |
1971년 | |
티베트 라싸직할시 | |
고전적 자유주의 • 사회자유주의 • 경제적 자유주의 친아태주의 온건파: 중도주의 | |
중도 | |
타시 왕디[1] | |
텐진 랍걀 / 7선 | |
아태개혁당[2] | |
59석 / 108석 (54.6%) | |
8석 / 11석 (72.7%) | |
청색(#0159c7) | |
자유주의 인터내셔널 |
개요
티베트국 정치에서 진보 포지션을 맡고 있는 정당. 보수 국민민주당과 함께 양당제를 이루고있다. 독특한 점이라면 경제적으로도 자유주의를 표방한다는 것이다.
역사
티베트 자유당은 티베트가 뉴어크 평화조약에 따라 1971년 독립한 직후 티베트 자유주의자들에 의해 창당되었다. 1986년의 첫 총선에서 전체 108석 중 22석을 획득, 제1야당에 올라서면서 정계에 모습을 드러냈다. 1991년 총선에서 제1당으로 올라선 자유당은 걀로 똔둡을 수상으로 하여 첫 집권에 성공하였으나 1993년에 치러진 조기 총선에서 패하면서 2년만에 실각했다.
2000년 총선에서 단독 과반을 달성한 자유당은 단독 내각을 꾸렸고 자유당 내각은 롭상 텐진과 텐진 테똥을 차례로 수상으로 하여 2012년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해 자유당은 큰 타격을 입었고 2012년 총선에서 참패하면서 자유당은 다시 실각했다. 2020년 들어 코로나 사태로 인해 티베트 경제가 박살나자 국민민주당 내각의 지지율은 폭락, 뒤이은 선거에서 자유당이 압승을 거두며 자유당 타시 왕디가 총리로 취임하여 여당의 자리로 복귀했다. 하지만 자유당이라고 해서 경제 회복을 위한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라서 고심하고있다.
2022년, 타시 왕디 내각의 공기업 민영화로 정국이 혼란에 빠지자 타시 왕디는 난국 돌파를 위해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실시했다. 총선에서 지난 선거때보다 의석은 줄었으나 여전히 원내 과반을 유지하여 재집권에 성공했다.
성향
사회적으로는 확실한 자유주의 성향이다. 보수자유주의 계파도 있지만 주류는 사회자유주의로, 개인의 사회적, 문화적 자유를 중시한다.
경제적으로도 역시 자유주의 성향을 띈다. 자유당 소속 타시 왕디 수상이 공기업 민영화를 감행한 것도 비슷한 이유. 다만 과거에 비해서는 사회적 시장경제를 주장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외교적으로는 친아태, 친서방 성향이지만 국민민주당에 비해서는 덜 뚜렸하다. 오히려 비서방권 국가들과, 심지어는 서중국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계파
티베트 자유당은 온건파와 급진파로 나눌 수 있다.
급진파는 개인의 자유를 강하게 옹호하는 자유의지주의적 모습을 보인다. 동성혼 합법화를 지지하며 성소수자 권리 신장에 관심을 보이며, 동시에 복지 축소와 국영기업 민영화, 감세 등을 주장한다. 온갖 곳에서 다 얻어맞는 호구(...) 역할도 하고 있는데, 성향 자체는 '자유의지주의자'를 자처하는 단체 치고는 상당히 온건하지만 보수적인 티베트 사회 기준으로는 아주 급진적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사소한 논란만 생겨도 언론과 시민단체로부터 십자포화를 당하고 자유당 당권을 잡은 적도 별로 없다.
온건파는 사회적, 경제적 영면으로 중도주의적인 정책을 펼친다. 이름대로 급진파에 비해 훨씬 더 온건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 경쟁자인 급진파가 상당한 약체이다보니 대부분의 기간 동안 당권을 잡아 왔다. 현재 당대표인 타시 왕디도 온건파 소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