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텔 오이로파

라트 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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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라트 연방이 1946년부터 1955년까지 중부유럽에서 진행한 지정학적 계획. 동유럽과 서유럽의 각종 군소국을 자국의 괴뢰국으로 삼거나 혹은 편입시킨다는 계획을 담고 있었다. 파울 요제프 괴벨스 의장에 의해 추진되었으며, 실무 담당자는 하인리히 힘러아돌프 아이히만, 에른스트 칼텐브루너였다.

내용

1945년 러시아의 항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자, 라트 연방 정부는 러시아 본토와 독일 사이에 완충지대를 마련할 필요를 느꼈다. 따라서 벨라루스, 발트 3국, 카렐리아, 우크라이나 등의 국가에 인민위원회를 설립하고 장기적으로 이들을 독립시키거나 자국으로 복속시킬 계획을 세웠다. 또한, 이러한 정책은 독일 및 라트 연방의 오랜 지정학적 프로젝트인 레벤스라움과도 연관되어 정치적 당위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정책은 서유럽에서도 마찬가지로 진행되었으며, 베네룩스 3국과 부르고뉴 지방이 완충지대로 설정되었다. 이에 따라 1946년 2월, 그레고어 슈트라서 서기장은 법무장관 하인리히 힘러를 중부유럽 해방 특임장관으로 임명하여 그곳의 프롤레타리아트 정권 수립을 추동하고, "반러시아 및 반프랑스 감정"을 고조시켜 라트 연방의 영구적인 패권으로 편입시킬 것을 지시했다. 힘러는 이를 "중부유럽"의 의미를 가진 미텔 오이로파(Mittel Europa) 정책으로 칭했고, 얼마 안가 이는 공식적인 정책 이름으로 설정되었다.

1946년부터 1949년까지 계획은 라트 연방 내부의 재건 사업과 각 지역별 인민위원회 준비로 인하여 착실히 진행되지 못하였다. 더구나 개인적으로 인종평등의 원칙을 믿었고 반유대주의에 반대했던 하인리히 힘러유대인 강제이주 정책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1947년 12월 직책에서 해임된 후 부르고뉴 지방의 목장으로 유배되었다.[1] 1949년 슈트라서가 사망하자 집권한 파울 요제프 괴벨스는 힘러를 중앙으로 다시 불러들여 미텔 오이로파 담당 장관으로 재임명했고, 그의 밑에 실무담당자로서 아돌프 아이히만 상급지도자와 에른스트 칼텐브루너 국가안전부장을 임명하였다.

진행

라트 연방 지도.png
1949년 기준 라트 연방 지도

평가

여담


  1. 그런데 힘러는 부르고뉴 지방의 날씨를 좋아했던 탓인지 은퇴 이후 당의 배려로 부르군트 지방에 개인 목장을 짓고 그곳을 영지 삼아 여생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