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당

아련의 집산회 계열 정당
대동아집산회
(당명 변경)
신사당 자유민주당
(보수파)
민주사회당
(개혁파)
재건당
(수구파)
新社党│신사당
영문 명칭 New Socialist Party (NSP)
창당 1955년 12월 31일 (대동아집산회)
당명 변경 1989년 10월 1일 (신사당)
해산 1995년 7월 1일
이념 사회민주주의
사회보수주의
좌익 포퓰리즘
동아시아 내셔널리즘
스펙트럼 경제적: 중도좌파 ~ 좌익
사회적: 우익 ~ 극우
총재 도이 다카코 (해산 당시)
간사장 하시모토 류타로 (해산 당시)
참의원 31석[1] / 121석 (25.6%) (해산 당시)
중의원 157석[2] / 400석 (39.2%) (해산 당시)
당색 빨간색 (#CC0000)
노동조합 대동아노동조합총평의회 (총평) → 해체[3]
청년조직 사회주의청년동맹 (사청동)
국제조직 무소속사회주의 인터내셔널
정당원 수 1,220,000명 (1995년 1월 기준)[4]

개요

신사당(新社党)은 1989년부터 1995년까지 6년간 존속했던 아련의 사회주의 정당이다. 도이 다카코헤이세이 개신을 단행하면서 다당제를 도입함에 따라, 유일당 지위를 잃게 된 대동아집산회가 당명과 강령을 개정하여 탄생한 당이다. 이 당은 1990년 치러진 아련 최초의 자유선거에서 승리하여 1993년까지 정권을 연장하였다. 그러나 1993년 총선거 패배 이후 야당으로 밀려남에 따라 당내 분열이 가속화되었고, 길지 않은 역사를 뒤로 하고 1995년 당이 삼중분해되며 해산되었다.

역사

1989년 도이 다카코 국무경이 역사의 흐름을 인정하며 유일당 체제를 해체하고, 다당제를 도입하는 헤이세이 개신을 일으키면서 대동아집산회는 유일당으로서의 독점적인 지위를 잃게 되었다. 다당제가 허용되자마자 공산당 등 법외 정당이 활동하기 시작했고 아시아 사회민주당 등 민주진영 정당의 지지세가 올라갔다. 1990년으로 예정된 초대 자유선거를 앞두고, 집산회의 주요 관료들은 정권 연장의 필요성을 느꼈고, 총선거를 직전에 앞두고 당을 사회민주주의 성향으로 재편하였으니 이것이 신사당이다.

신사당이라는 명칭은 도이 다카코가 지은 것으로, 조선말로 직역하자면 "새로운 사회주의 당"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외에 아시아 민주당, 유신당, 신집산회(...) 등의 명칭이 제안되었다고 한다.

1990년 치러진 선거에서 야권의 분열과 조선독립당의 선전[5]으로 인해 야권이 예상 외로 부진하면서, 중의원 의석 단독과반 확보에 성공, 정권을 연정하게 되었다. 1990년 있었던 최초의 내각총리대신 표결에서 도이 다카코 총재가 승리해 초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집산회 시절의 여러 부정한 정황이 수사를 통해 드러났고, 경제 위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며 지지율이 하락했다. 또 1992년 조선, 만주, 몽골의 독립을 저지하지 못하며 일본 내 지지율이 크게 하락했다. 그 결과 1993년 치러진 2번째 자유선거에서는 200석 중 74석을 얻는데 그치며 참패했고, 동아신당 소속의 호소카와 모리히로가 총리로 취임하며 의석을 내어줬다.

1995년의 첫번째 참의원 통상선거에서도 대참패하며, 동력을 잃었다. 결국 사회보수주의를 내세우던 보수파는 자유민주당을, 사회민주주의를 강조하던 개혁파는 민주사회당을, 수구보수파는 재건당을 창당하며 당이 3분할되었고, 7월 1일 마지막 당대회에서 해산을 결의하였다.

역대 선거 결과

중의원 의원 총선거

연도 선거 당수 지역구 비례대표 총 의석수 비례 득표율 증감 비고
1990 39회 총선거 도이 다카코 167석 / 275석 80석 / 200석 247석 / 475석 38.66% 보합 여당
1993 40회 총선거 98석 / 107석 67석 / 93석 165석 / 400석 29.87% 감소 82 제1야당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연도 선거 당수 지역구 비례대표 개선 의석수 총 의석수 비례 득표율 증감 비고
1995 1회 통상선거 도이 다카코 24석 / 73석 11석 / 48석 35석 / 121석 20.75% 보합 제1야당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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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련 정당의 계보 (1989~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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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역구 20석, 비례대표 11석
  2. 지역구 93석, 비례대표 64석
  3. 1992년 시장화와 함께 아시아노동조합총연합회(이른바 렌고)로 재편되었고, 이후 렌고 측에서 신사당과의 동맹 관계를 갱신하지 않으면서 연계 노조 지위를 상실했다.
  4. 민주화 이후 당원으로서 얻는 메리트가 없어졌기에 당원 수가 1/7로 격감했을 뿐 아니라 잔류 당원 120만명 중 절반 이상이 서류상으로만 존재하였다.
  5. 조선에 배정된 중의원 의석 117석 중 54석을 단독으로 휩쓸었고 같은 날 치러진 자치정부 수반 선거에서도 독립당 소속의 민주화 운동가 도요타 다이추 (김대중) 후보가 57% 득표로 압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