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계 태국인

쿠리오 긴배 도프 공산1968
벨지엄 공차 DK Dentr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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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본인 또는 가까운 조상이 일본계이며 태국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

태국과 일본은 현재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교류가 많았고, 시암 시절 일본인촌도 있었으며 야마다 나가마사처럼 시암의 고위층이 된 일본인도 존재하였다. 따라서 태국계 일본인 역시 현재도 태국 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민족으로 자리잡고 있다.

상세

일본인의 태국 이주는 무려 14~15세기부터 있었고 16세기에는 야마다 나가마사를 중심으로 한 일본계들이 일본인 정착촌을 만들기도 했는데, 이 정착촌에서 수천명 규모의 용병대가 존재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 막부의 사무라이 숙청을 피해 동남아시아로 이동한 일본인들이 증가하였고 아유타야 왕조에서도 사무라이들의 이주를 적극적으로 유치해 외인용병으로 활용했기에 17세기 중반에 이미 태국 내 일본인의 수는 몇만명에 달할 정도로 증가하였다. 이후로도 제2차 세계대전 내 태국 전선에서 탈영하거나 패잔병이 된 구일본군들 중 상당수도 현지인들과 결합되거나 태국에 정착하는 일이 많았는데, 당시 대통령이던 쁠랙 피분송크람 역시 노동력 유입을 위해 이를 용인하여 이들에게 시민권을 주었고 이렇게 탄생한 구일본군 출신 일본계 태국인 역시 수만명에 이른다. 이러한 역사속 배경으로 인해 현재 태국계 일본인은 혼혈까지 합하면 수백만명 수준에 이르고 있으며 일본계 디아스포라 가운데 제일 수가 많다.

물론 일본계 태국인들 중 상당수는 3세대, 4세대를 거치면서 이름이나 성씨 정도를 제외하면 지금은 완전히 태국 문화에 동화되었고 일본어를 모르는 일본계도 많다. 그나마 2차대전 이후 유입된 구일본군 출신 일본계 태국인들의 후손들은 아직 1세대, 2세대 정도만 거쳤기에 일본어나 일본 문화 등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것 때문에 일본이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 시기 일본 기업들이 태국에 엄청난 투자를 하였으며 한 때 태국 부동산 중 20~30% 가량이 일본계 태국인이나 일본인 투자자의 소유였던 적이 있었을 정도이며 아직도 태국 내에서, 특히 부동산 업계에서 일본계 태국인들의 입김은 매우 강하다.

일본계 태국인들은 높은 경제력과 단결력을 통해 태국 내에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였고, 중국계 태국인과 함께 태국의 주요 소수민족으로 부상하였다. 특히 1960~70년대 고도경제성장 시기에도 일본계 태국인들이 설립한 기업들이 대기업으로 성장하였고 이들은 같은 일본계 출신이라는 동질감을 이용해 일본의 대기업들과 합작을 하거나 협업을 쉽게 따냈기에 이러한 점 역시 일본계 태국인들에게 장점으로 작용했다. 또한 재계 이외로도 경제력과 단결력을 발판삼아 정계 또한 활발하게 진출했으며 대표적인 인물로는 태국 최초로 여성 총리와 외무장관직을 지낸 아이사카 타이가, 1980년대 방콕 시장을 역임한 마에바라 케이이치, 1990년대 민주당내 주요 계파 중 하나였던 세레손을 이끌었던 타키자와 아키라 등이 있다.

현재도 일본계 태국인들은 정계에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서브컬쳐 문화주의를 태동시킨 럭키당의 이즈미 코나타, 학생을 위한 선택-키보토스 활동을 하며 키보토스 4총사로서 이름을 널리 알린 시모에 코하루 등이 주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주요 인물

여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