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대한 망명정부 (리좀)

공산1968 리조니 Arrondissments 레스 어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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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식민 지배 없이 근대화에 성공해 이원집정부 체제를 받아들인 "동방의 불란서", 대한공화국의 여정을 다루는 대체역사·정치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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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韓國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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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민족: 예맥, 삼한, 여진족, 한민족

*: 한국사에 포함되는지 아닌지에 대해 학술적인 논쟁이 있음.
E: 외세 침략 등의 이유로 인해 한민족에 의한 정권수립이 되지 않은 경우

대한공화국
大韓共和國 | Republic of Korea
망명 정부
자유대한 망명정부_(리좀) 자유대한 망명정부_(리좀)
국기 국장
1940년 7월 10일 ~ 1945년 10월 31일
성립 이전 신헌법 제정 이후
제1공화국 제2공화국
국가 애국가
독립군가
수도 경성 (京城) (헌법상)
수뇌부 위치 합이빈 (1940~1941)
낙양 (1941~1944)
연길 (1944~1945)
정치 체제 공화제, 중앙집권제, 대통령 중심제, 망명정부
역대 대통령 김창암 (1940~1945)
역대 수상 조소앙 (1940~1945)

개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결사 항전을 주장하던 김창암, 조만식, 조소앙, 여운형 등의 정치인들과, 김원봉, 지청천, 이범석, 최용덕, 김홍일 등의 군부 인사들이 중국으로 망명하여 세운 망명정부이다.

일본과 협력한 천안의 대한국 정부, 박헌영김일성이 주축이 된 대한 소비에트 정부와는 대립하였으며, 중화민국, 미국과 같은 연합군과 협력하였다. 통념과 달리 김원봉 등과 같은 소수를 제외하면 항일 빨치산과는 거의 관계가 없으며 빨치산은 망명정부와는 거리가 있는 독립된 조직이었다.[1]

전후 대한공화국에서 이들이 주축이 되어 제2공화국, 3공화국이 건국되었고 지금의 대한공화국 정부도 여기서 이어진다.

역사

1940년, 독일과 동맹을 맺은 일본이 중립국 대한공화국을 침공함에 따라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였다. 대한공화국은 내부의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일본의 침공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고, 총사령관 신성모가 겁에 질려 금강 유역에 중요한 무기들을 전부 버리고 도망치며 상황이 악화되었다. 급기야 1940년 6월 22일 총리였던 이승만도 국민들에게 안심하라는 연설을 한 후 한강철교와 대교를 폭파시키고 자기 혼자 신의주로 도망치며 대한 공화국은 개전 불과 6주만에 사실상의 멸망을 고한다. 격노한 김창암 대통령은 당일 이승만을 총리직에서 해임하고 조소앙을 총리로 임명, 비상 대권을 선포하고 만주로 망명하여 결사항전을 할 것을 정부 요인들에게 주문했다.

한강인도교, 한강철교가 폭파되면서 주요 병력이 한강 북쪽으로 이동할 수 없었고 한강 남역에서 항전하던 병사 10만명 중 2만명은 전사하고 6만명은 포로로 붙잡혀 2만명만이 목숨만 건져 한강 이북으로 도피하는 심각한 인력 손실을 겪었다. 망명정부의 총사령관을 맡은 지청천 장군은 아쉬운대로 북녘에 남은 7만의 병력과 도피한 2만의 병력을 합쳐 만주에서 9만 3천여명 규모의 대한 광복군을 설립, 중화민국군과 동맹을 맺어 해방을 도모하게 된다. 한편 7월 10일 한반도 전역을 점령한 일본은 천안을 수도로 삼아 자국의 괴뢰 국가인 대한국, 이른바 천안 괴뢰정부를 설립하였다. 망명정부는 이에 반발하며 자신들이 제1공화국의 법통을 이어받은 "자유 대한"임을 주장했는데 이에 착안하여 중국에서 활동한 망명정부를 오늘날까지 "자유 대한"이라고 부른다.

평가

소련식 민주주의가 좋다고 해도, 공산 독재정권을 세우는 것은 그르다. 미국식 민주주의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독점 자본주의로 인해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상품을 팔기 위한 시장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우리는 진실로 국제적으로 평등한 입장에서 남북의 친선을 촉진하면서, 우리 이천 오백만의 이익을 위하여 우리 스스로가 잘 살 수 있게 하는 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을 기초로 한 자주독립의 조국을 원할 뿐이다.
김창암
주린 자는 먹을 것을 찾고 목마른 자는 마실 것을 찾는 것은 자기의 생존권을 위한 인간 자연의 원리이다. 이것을 막을 자가 있겠는가! 불란서의 신민들이 생존권이 있는데 우리 한민족만이 홀로 생존권이 없을 수 있는가? 파란인들이 생존권이 있다는 것을 세계인들이 긍정하는 바이요, 같은 이치로 한국 신민들의 생존권도 보장되어야 할지외다. 한국인들이 민족적 자각으로 자유와 평등을 요구하는 것은 불란서나, 파란이나, 혹은 그 옛날의 애란이나 희랍과 마찬가지로 신이 허락하는 바이다. 일본 정부가 이것을 방해할 무슨 권리가 있으며 연합군이 이를 무시할 무슨 권리가 있는가! 세계는 약소민족해방, 부인해방, 노동자해방 등 세계 개조를 부르짖고 있다. 이것은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세계적 운동이다. 한국의 자주 독립은 세계의 대세요, 신의 뜻이요, 한민족의 각성이다.
여운형, 1943년 8월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전보 中
우선 천안의 정부에 대해 논하자면 국민의 안녕과 행복을 지켜주지 않는 정부에 충성할 이유가 하등 없다. 하지만 일제의 시다바리만을 우리 땅에서 몰아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인민들의 고혈을 짜내는 우익 반동배와 부르주아 독점자본까지도 완전히 구축일소함으로써만이 조선의 독립은 완성될 것이다. 그런데도 덮어놓고 뭉치자고 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그것이야말로 연길의 자칭 자유정부라고 하는 자들의 오류이다.
박헌영

  1. 1944년 기준으로 한반도 전역 빨치산 조직의 70%가 조선공산당의 휘하 조직이었으며 나머지 30% 중 20%는 한인사회당과 관련이 있는 중도좌파 성향 노조 조직이었다. 오직 10%만이 망명정부의 성향과 비슷한 온건 보수 혹은 중도 계열의 조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