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친왕 (풍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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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오일 오늘인가 집집마다 창포주라
뱃노래 두어 가락에
멱라에서 빠져 죽은 굴원이 슬프구나
아마도 일년 중 좋은 계절에 생각나는 굴원인가.


풍아는 "조선 왕조가 현대까지 살아남았다면?" 이라는 상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브위키의 대체역사 세계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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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의정부총리대신_(풍아)
대한제국 의정부총리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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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제2대
장충친왕 장친왕

장충친왕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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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무종의 황손
대한제국 초대 의정부총리대신
장충친왕 | 長忠親王
이름
출생 1931년 5월 11일
황성 한성부 장친왕부
사망 2015년 5월 14일 (향년 83세)
황성 한성부 황군수도병원
재임기간 초대 의정부총리대신
1972년 3월 15일 ~ 2015년 5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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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전주 이씨
부모 부황 장평친왕
적모 장평친왕비 서씨
생모 장씨
형제자매 2남 1녀 중 장남
배우자 정실 장충친왕비
첩실 2명
자녀
슬하 3남 2녀 [ 펼치기 · 접기 ]
장남 장광친왕
차남 원산군
삼남 경산군
장녀 효원군주
차녀 효성군주
학력 강학원 유치원 (수료)
강학원 초등과 (졸업)
강학원 중등과 (졸업)
종교 유교 (성리학)
신체 약 171cm
소속 파벌
아명
작호 장친왕(長親王)[1]
시호 충(忠)
군사 경력
복무 대한제국 육군
1948년 ~ 2015년[2]
임관 육군무관학교 23기
최종 계급 부원수 (대한제국 육군)
최종 보직 계엄사령관
주요 보직 주월대한제국군사령관
상무대장
공수특전사령관
계엄사령관

1.개요

대한제국의 황족이자 군인 출신 정치인. 초대 의정부총리대신을 지냈다.

1931년 장평친왕의 서장자로 태어났으며 황족들 사이에서 은연중에 기피되던 무관의 길을 걸었다.

1950년 남경도당과의 전쟁이 발생하자 열종에게 혈서를 바쳐 22사단 척후대로 배속되어 전쟁에 참전하였고, 전선에서 척후대를 이끌며 종횡무진하여 장친왕이라는 이름이 남비[3]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장충친왕의 명성은 황성의 열종에게도 알려졌고, 평소에도 장충친왕을 좋게 여기던 열종은 이러한 공훈으로 장충친왕을 적극 신임하게 되어 장충친왕에게 군의 청요직을 두루 맡기게 되었고, 장충친왕은 고속승진의 가도를 달려 월남파병군 사령관을 역임하게 된다.

월남파병 당시 참모장이었던 채명신 정장과 의기투합하여 월남이서 대전과를 이룩하고 내지로 복귀하여 상무대장을 거쳐 공수특전사령관으로 영전한다. 특전사령관 재임 당시 열종이 후계구도를 확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중정부장의 총에 맞아 붕어하자 자신이 회장으로 있던 군 내의 사조직 혁명일심회의 군맥을 동원하여 한성을 장악하여 계엄령을 선포하고 원친왕을 차기 황제로 추대하며 스스로 계엄사령관에 취임하여 정국을 장악한다.

2.생애

2.1.출생과 유년기

2.2.무관의 길

2.3.충용무쌍한 친왕전하

2.4.칼을 돌리다

2.5.일인지하 만인지상

2.6.이상을 펼치고

2.7.현실에 맞서다

2.8.사망

3.사건사고 및 논란

4.소속 파벌

소속 기간 비고
1958 - 현재 창설

5.기타

6.둘러보기


  1. 작호는 전라도 장흥(長興)에서 유래했다.
  2. 대한제국군의 부원수는 타국의 원수처럼 종신토록 복무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3. 중화민국군을 지칭하는 멸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