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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합중국 대통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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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합중국 제42대 부통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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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합중국 제40대 대통령 제임스 얼 카터 주니어 James Earl Carter Jr. | |
2002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 |
출생 | 1924년 10월 18일 (98세) |
미국 조지아 플레인스 와이즈 요양원 | |
재임기간 | 제40대 부통령 |
1981년 1월 20일 ~ 1981년 3월 30일 | |
제40대 대통령 | |
1981년 3월 30일 ~ 1989년 1월 20일 | |
서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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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미국의 제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의 러닝메이트로 1980년 부통령 선거에 당선되었다. 1980년 3월 30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암살 사건으로 2개월 10일만에 대통령 자리가 공석이 되며 대통령 임기를 계승받았다. 그는 "미국과의 약속"(Promise with America)이라는 명목 하에 경제적으로는 자유주의를, 사회적으로는 남침례교 신앙에 기반한 보수적 정책으로 민주당의 전성기를 열었으며, 198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미국 대선 역사상 가장 높은 득표율로 재선되었다. 퇴임 후 그는 사랑의 집 짓기 행사 등 여러 자선 사업에 참여하면서 존경을 받았으며 그 공로로 2002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는 미국인들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 한명으로 평가받는다.
경력
- 1946. 미국 해군 입대
- 1947. 미국해군사관학교 B.S. 학위 졸업
- 1961. 미국 해군 전역
- 1963.01.14. 조지아주 상원 의원 (상원 제14구)
- 1971.01.12. 제76대 조지아 주지사[1]
- 1981.01.20. 제42대 미국 부통령
- 1981.03.30. 제40대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임기 승계, 1984년 재선)[2]
- 2002. 노벨평화상 수상
생애
청년기
조지아 주지사와 1980년 대선 출마
갑작스런 대통령 취임
1984년 대선
Why Not the Best? 최고를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있나요? 1984년 미국 대통령 선거 카터-애스큐 조 슬로건 |
1984년 대선을 앞두고 카터 대통령의 재선 지지율은 60%에 육박했으며, 유세와 토론회에서 공화당을 압도하며 재선이 거의 확실시되었다. 공화당에서 후보로 나선 것은 휴버트 험프리 상원의원의 정치적 제자였던 월터 먼데일 미네소타주 연방 상원의원이었다. 먼데일은 "미국은 변화가 필요합니다"(America Needs Change)라는 슬로건을 내세웠지만, 카터노믹스의 결과로 오일쇼크의 불경기에서 벗어나고 수천만명의 중산층 계급이 형성되고 있었던 시기 이러한 슬로건은 매우 공허하였다. 더구나 정치 신인이었던 카터에 대비해 먼데일은 진부한 인사로 여겨졌으며, 설상가상으로 먼데일의 러닝메이트였던 제럴딘 페라로 남편의 공금유용 스캔들이 터지며 본선에서 카터가 압도적 우위를 유지했다. 1984년 대선 결과, 카터는 총 56,643,282표 (61.7%)를 득표한 반면, 먼데일은 34,769,938표 (37.9%)를 득표하는데 그쳤다. 양 후보의 격차는 21,873,344표, 23.8%p에 달했는데, 이는 미국 역사상 유례가 없는 표차였다. 카터는 미네소타와 워싱턴 D.C.를 제외한 모든 주에서 승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