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세계관은 특정 단체 및 국가에 대한 감정 없이 작성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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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센 전쟁 Preußischer Krieg gdańska wojna Karaliaučius Kara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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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2043년 7월 9일 ~ 2045년 3월 12일 | |||
장소 | 구 포메른, 서프로이센, 동프로이센 전역 및 구 포젠과 슐레지엔 지역 일부 | |||
원인 | 대침공 이후 구 독일 영토에서 늘어난 독일 인구 독일의 극우화 폴란드 정부의 대응 실패 | |||
결과 | 반군과 나치당의 부분적인 승리 | |||
영향 | 나치당의 기반 강화 독일 위협론이 현실화 됨 프로이센국의 수립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재결성 | |||
교전국 | ||||
폴란드 리투아니아 그단스크 방위대 바르미아마주리 민병대 서포모제 의용군단 폴란드 국토 수비대 |
독일연방공화국 프로이센국 독일 자유군단 포메른 독일인 연대 | |||
지휘관 | [ 펼치기 · 접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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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2043년 7월 9일부터 45년 3월 12일까지 프로이센 지역 전역과 옛 독일 동방영토에서 일어난 전쟁. 독일계 반군과 이를 지원하는 독일군. 그리고 폴란드와 리투아니아군을 비롯해서 양측 민병대까지 얽힌 난잡한 전쟁이었다. 최종적으로 독일이 부분적인 승리를 이루며 동프로이센의 수복을 이루어냈고, 나치당의 힘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더 이상 독일 정부가 제어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되었다.
배경
독일 4월 폭동은 독일을 넘어서 인접국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가장 큰 골칫거리는 구 독일 영토에서 거주하는 독일계 주민들이었는데, 해당국가들에게는 매우 안타깝게도 대침공 이후 늘어난 독일계 인구들은 대다수가 자신들이 사는 땅이 독일로 돌아가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때문에 이들은 독일 본토. 특히나 나치당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었는데,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일어난 독일 4월 폭동은 그들에게 있어서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걸은 투쟁의 일부였던 것이다.
특히 폴란드의 상황은 그 어느 곳보다 매우 심각하였다. 독일이 잃은 영토 중 대부분은 현 폴란드의 영역이었고, 그만큼 해외 독일계 인구가 가장 많이 거주하는 곳도 폴란드였다. 그들은 독일에서 대규모 폭동이 일어났다는 말을 듣기 무섭게 거리로 나와 그 운동에 동참하기 시작하였고, 순식간에 해당하는 지역들은 혼란에 잠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