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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현궁주 · 한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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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현궁 초대 궁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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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국 황부섭정왕 한인헌태왕 | 韓仁獻太王 | ||||||||||||||||||||||||||||
출생 | 1821년 1월 24일 | |||||||||||||||||||||||||||
조선 한성부 북부 안국방 안동궁 (現 한경 한성부 종로구 안국동·운니동 일대) | ||||||||||||||||||||||||||||
사망 | 1898년 2월 22일 (향년 77세) | |||||||||||||||||||||||||||
대한국 한성부 서서 용산방 공덕리계 염동 아소당 (現 한경 한성부 마포구 염리동 139-55 일대) | ||||||||||||||||||||||||||||
능묘 | ||||||||||||||||||||||||||||
흥원(興園) | ||||||||||||||||||||||||||||
재위기간 | 조선 대원군 | 조선 국왕 섭정 | |||||||||||||||||||||||||||
1864년 1월 21일 ~ 1894년 2월 6일 (음력 경진년 기축월 계묘일 ~ 광무 원년 2월 6일) | ||||||||||||||||||||||||||||
대한국 태왕 | 대한국 황제 섭정 | ||||||||||||||||||||||||||||
1894년 2월 6일 ~ 1898년 2월 22일 (광무 원년 2월 6일 ~ 광무 5년 2월 22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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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전략>⋯ 조정에서는 어떤 변이라도 있을까 하여 대원군에게 간언하기를, "선현의 제사를 받드는 것은 선비의 기풍을 기르는 것이므로 이 명령만은 거두기를 청합니다"라고 하니 대원군이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진실로 백성에게 해 되는 것이 있으면 비록 공자가 다시 살아난다 하더라도 나는 용서하지 않겠다. 하물며 서원은 우리나라 선현을 제사하는 곳인데 지금에는 도둑의 소굴로 됨에 있어서랴." 했다. ⋯<후략>⋯ |
대한국 장조의 양증손이자, 정조의 이복동생 신소민왕의 양손자로서 신충정왕의 막내아들이며[3], 고종의 친아버지. 조선시대에 4명 있었던 대원군 중 마지막 대원군이며[4], 대한국 선포 이후 봉작된 유일한 태왕이다.[5] 섭정으로 오랜기간 실권을 가졌고, 조선의 마지막 왕이자 대한국의 초대 황제인 고종의 친아버지로서 개화기의 핵심 인물이다.
현대 한국에선 사실상 국부취급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조선 후기 삼정의 문란과 온갖 폐단으로 엉망이 된 조선을 개혁하고, 성공적인 근대화를 통해 한국을 근대 국가로 끌어올린게 바로 섭정으로서 실권을 쥐고 있던 한태왕이었기 때문. 그만큼 개화기 역사를 배울 때 한태왕은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고, 현대 한국에서 무한한 존경을 받는 인물 중 하나다.[6]
한국 근현대사에서 독보적으로 강렬한 인지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원군이나 태왕이라고 하면 흔히 한인헌태왕을 고유명사처럼 지칭해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다만 이보다도 오랜기간동안 '흥선'이라는 작위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 작위인 한인헌태왕 보다는 흥선, 흥선 대원군으로 많이들 지칭된다.
- ↑ 고종이 왕위를 계승하기 위해 효명세자의 양자로 출계하며 한인헌태왕의 족보에서 이탈하기에 법적으로는 한인헌태왕의 자식이 아니다.
- ↑ 정식 시호는 '한봉천반국성역위명유헌현덕숙요희순의열성익인헌태왕(韓奉天磐國成易威明裕憲玄德肅堯熙舜義烈聖翼仁獻太王)'이 된다.
- ↑ 칭제건원 이후 장조로 추존된 사도세자의 서자들이자 정조의 이복형제들인 은언군, 은신군, 은전군은 모두 고종 재위기에 새로 정립된 황제국으로서의 예법에 따라 친왕으로 추봉되어 언충정왕, 신소민왕, 전효민왕의 시호를 받았다.
- ↑ 유일하게 생전에 대원군이었다.
- ↑ 철종의 친아버지인 전계대원군 또한 칭제건원 이후 아들 철종이 황제로 추존되며 본인도 작위가 격상되어 진태왕(震太王)이 되었기 때문에 엄밀하게 유일한 태왕은 아니다.
- ↑ 한인헌태왕의 평가에는 아들인 고종 황제가 실권을 잡은 이후와 극명하게 비교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세한 내용은 고종 태황제/평가 (빌레펠트)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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