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종 헌황제 (빌레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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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국 제4대 황제
혜종 | 惠宗
출생 1909년 10월 28일
대한국 한경 한성부 중부 관인방 사동궁
(現 한경 한성부 사대문구 사동궁)
즉위 1955년 8월 21일 (45세)
한경 한성부 사대문구 창덕궁 인정문
사망 1990년 12월 21일 (향년 81세)
비전감록부 복강시 수강궁 낙안전[1]
(現 비전감록부 복강시 복강이궁 낙안전)
능묘
수릉(修陵)
재위기간 대한국 의왕세자
1916년 11월 1일 ~ 1926년 5월 21일
(광무 23년 11월 1일 ~ 융희 7년 5월 21일)
대한국 황태자
1926년 5월 21일[2] ~ 1955년 8월 21일
(융희 7년 5월 21일 ~ 평장 29년 8월 21일)
대한국 제4대 황제
1955년 8월 21일 ~ 1956년 7월 12일
(평장 29년 8월 21일 ~ 윤의 원년 7월 12일)
대한국 태상황
1956년 7월 12일 ~ 1990년 12월 21일
(윤의 원년 7월 12일 ~ 건녕 34년 1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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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전주 이씨
건(鍵)
부모 부황 성조 인황제
모후 현덕인황후
생모 혜비 정씨
형제자매 12남 9녀 중 장남
황후 소절헌황후[3]
후궁 순안태상황귀비 전씨[4]
자녀 화온공주[5]
학력 수학원 소학과 (졸업)
수학원 중학과 (중퇴)[6]
태자시강원 (수료)[7]
종교 유교 (성리학)
아명 용길(勇吉)
건일(虔壹)
도산(桃山)[8]
작호 의왕세자(義王世子)
전호 휘녕전(輝寧殿)
묘호 혜종(惠宗)
존호 덕정안민자인유원정화
(德正安民慈仁柔遠停和)
시호 성순안승현흠신정헌황제
(成順安勝玄欽神定獻皇帝)[9]
연호 윤의(允矣, 1956년 ~ 1956년)
절일 천장절(天長節)

개요

대한국의 제4대 황제이다. 묘호는 혜종(惠宗), 시호는 헌황제(獻皇帝). 휘는 건(鍵), 자는 건일(虔壹)이다. 정식 시호는 혜종덕정안민자인유원정화성순안승현흠신정헌황제(惠宗德正安民慈仁柔遠停和成順安勝玄欽神定獻皇帝)로, 줄여서 헌황제(獻皇帝)로 불린다. 절일은 천장절(天長節). 재위기간동안 사용한 연호는 윤의(允矣)이다.

하지만 혜종이 윤의종사으로 인해 1년이 채 되지 않아 강종 무황제에게 양위한 후 퇴위하였으므로, 시호인 윤의나 묘호인 혜종으로는 그닥 기억되지 않는다. 이보다는 대화천자(大和天子)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기억된다. 대화천자와 마찬가지로 비전감록부민들은 혜종의 일본식 이름인 모모야마 켄이치[10]로도 많이 기억한다.

혜종은 제2차 벨트크리그 당시 수도 한성이 함락 당하는 초유의 상황 속 황태자로서 분조를 이끌며 민심을 안정 시키고,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혜종은 아버지 성조와 극심한 갈등을 겪었고, 후사가 없었으므로 분조를 이끌 때 얻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황태자로서의 혜종은 온 나라의 걱정거리였다. 1955년 성조가 승하하자 대한국의 제4대 황제로서 즉위하였으나, 얼마 되지 않아 황실 역사상 초유의 사건인 윤의종사를 일으켰다.

순안태상황귀비 전씨와의 사랑을 위해 동생 강종 무황제에게 양위한 이후 태상황으로서 군림하였으며, 당시까지는 군정이 이어지던 비전에 수강궁을 건설한 뒤 그곳으로 이어하면서 다시 한번 황실을 발칵 뒤집었다. 혜종은 남은 여생을 이 수강궁에서 보냈으며, 이곳에서 딸 화온공주 또한 낳았다. 전귀비를 향한 혜종의 사랑은 이곳에서도 식지 않아서, 혜종은 본래 일본인이던 전귀비를 위해 비전의 발전과 처우개선에 태상황으로서의 힘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윤의종사는 사상 유례가 없던 초유의 사건이었지만, 전귀비와 혜종의 낭만적인 이야기 그리고 비전에서의 미담은 현재까지 수 많은 미디어에서 등장한다.

생애

평가

가족 관계

여담

대중매체

관련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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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본래 혜종이 강종에게 선위한 후 강종은 궁내성에 명하여 태상황으로 물러난 혜종을 위해 창경궁을 태상황궁으로 하여 혜종에게 제공하고자 하였으나 혜종 본인이 거부하였다. 대신 혜종은 일본인 출신이었던 아내 순안태상황귀비가 고향을 그리워할것을 걱정하여 일본열도 내의 비전지역에 태상황궁을 마련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처음에는 당시까지만 해도 비전은 군정지역이었고 일본전쟁이 끝난지도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기 때문에 궁내성에서 반발하였으나 결국 강종의 협조를 얻는데 성공했고, 지금의 복강이궁인 수강궁이 지어져 이후 혜종은 승하할때까지 이곳에 거주하였다.
  2. 아버지 성조와의 불화로 인해 동생 강종이 성조의 즉위식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친왕작을 받은것과 대조적으로 성조가 제위에 오른지 거의 한달이 지나서야 정식으로 황태자에 책봉되었으며, 그 이전까지의 공식 작위는 황손 시절 사용했던 의왕세자(義王世子)였다. 다만 어찌되었건 황제의 장남으로서 제위계승권은 가장 높았기 때문에 성조의 즉위식 후 혜종의 황태자 책봉까지의 기간동안은 보통 황저(皇儲)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경우가 잦았다. 이외에 아버지 성조의 눈치를 본 사람들에 의해서 1황자(一皇子), 의왕세자(義王世子), 의왕(義王) 등의 황저 이외의 다양한 호칭으로도 불렸다.
  3. 황태자 시절 결혼한 혜종의 첫번째 아내로, 혜종이 제위에 오르기 이전에 죽었기에 생전에 황후는 아니었다. 혜종은 평생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아버지 성조의 결정에 따라 강제로 맞이한 소절헌황후를 좋아하지 않았으며, 때문에 둘 사이에 자식도 없었다. 성조가 승하한 후 혜종이 제위에 오르자 궁내성에선 순명효황후의 선례에 따라 황태자비 시절 죽은 소절헌황후를 황후로 추존하고자 하였으나 혜종이 추존하기를 거부하여 실현되지 않았으며, 황태자비로서 소절태자비(素節太子妃)라는 시호만이 내려졌다. 이후 혜종이 순안태상황귀비를 맞이하며 동생 강종에게 황위를 양위하게되자 궁내성에서 다시금 소절헌황후의 황후 추존 논의가 꺼내졌으나 혜종의 강력한 반대하에 또다시 무산되었다. 때문에 소절헌황후는 오랫동안 황태자비로서의 시호만을 가지고 있다 결국 최종적으로 혜종이 승하한 후에서야 황후 추존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4. 혜종이 동생 강종에게 양위하는 수단을 쓰면서까지 얻어낸 일본인 아내로, 일본인으로서의 본명은 마에다 요시코(前田美子)이다. 본래 혜종은 마에다를 자신의 계후(繼后)로 삼고자 하였고, 때문에 양위를 하겠다 선언하면서도 마에다를 황태후로 삼겠다는 조건을 내걸었으나 궁내성의 격렬한 반발과 당시 황태후였던 현덕인황후의 저지로 결국 성사되지 못하였다. 대신 협상 끝에 혜종 본인이 즉위 초 승은후궁/상궁을 폐지할때 남겨두었던 간택후궁 제도에 따라 마에다를 혜종의 후궁으로 들이고 최고 품계인 황귀비로 봉하는 것으로 논란이 일단락되었다.
  5. 태상황으로 물러난 후 순안태상황귀비와의 사이에서 낳은 유일한 자식이다.
  6. 1926년 아버지 성조가 제위에 오르자 황태자에 책봉되며 태자시강원의 교육을 받게 되어 중퇴하였다.
  7. 본래 태자시강원은 근대화 과정에서 국내의 학제가 전면 개편되는 와중에도 제위 후계자의 제왕학 교육을 위해서 태자가 제위에 오르는 순간까지 평생 태자의 교육을 책임져야 했으나, 장남을 탐탁치 않게 여긴 성조는 교육개혁을 명목으로 태자시강원에서 혜종이 졸업하지 못한 중학과 교육과정부터 대학교육과정까지의 교육만을 가르치게 하며 수료제로 바뀌었다. 이때 태자시강원이 황태자 전용 교육기관으로 개편되며 제왕학 교육기능을 상실하게 되어 황태자의 보좌기구인 황태자궁에서 태자의 비서 역할을 하며 사실상 그 역할을 계승하였다. 이때문에 당시부터도 태자시강원의 제왕학 교육기능을 복구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궁내성을 중심으로 있었으나, 성조 이후부터 입헌군주제가 정착해 황제가 사실상 국정운영을 할 필요가 없었기에 현재까지 이 제도가 유지되고 있다.
  8. 젊은시절에 혜종 본인이 직접 정한 호로, 혜종이 태상황으로 물러난 이후 비전의 수강궁(현 복강이궁)으로 이어하며 현지인들 사이에서 이 이름 또한 유명해졌다. 당시 군정하에 사실상 식민지 취급을 받던 비전지역에 태상황인 혜종이 머물며 지속적으로 현지인들의 권리에 신경쓰며 최종적으로 비전이 감록부로 승격되는데 혜종이 기여한 바가 크기 때문에 현재도 비전감록부 곳곳에서 이 이름을 딴 거리와 가게들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9. 정식 시호는 '혜종덕정안민자인유원정화성순안승현흠신정헌황제(惠宗德正安民慈仁柔遠停和成順安勝玄欽神定獻皇帝)'가 된다.
  10. 혜종의 호인 도산과 자인 건일을 조합하여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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