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루이 알튀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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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마르크스주의 철학

루이 알튀세르
Louis Althusser
본명 Louis Pierre Althusser
루이 피에르 알튀세르
출생 1918년 10월 16일
프랑스령 알제리 비르망드레이스
사망 1990년 10월 23일
프랑스 파리
국적 프랑스 (피에누아르)
직업 철학자, 대학 교수
배우자 엘렌 르고시엥 (1980년 사별)
소속 정당 프랑스 공산당
학력 파리고등사범학교
소르본 대학교
피가르디 쥘베른 대학교
학파 구조주의, 서구 마르크스주의, 스피노자주의
주요 저서 마르크스를 위하여 (1965)
자본론을 읽자 (1965)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 (1970)

개요

철학은 결국 학문적 계급 투쟁이다.

프랑스의 구조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프랑스 과학철학의 권위자인 가스통 바슐라르의 수제자로 1980년까지 강단에서 활동하며 여러 철학적 문헌을 남겼다.

철학자로서의 업적도 대단하지만, 더 대단한 것은 보이지 않는 그의 영향력이다. 알튀세르는 30년간 고등사범학교의 철학과 교수를 지내며 고전 철학을 강의하고, 철학자 임용 시험을 도와주며 에세이를 첨삭하는 역할을 맡았고 당연히 수많은 철학자들이 알튀세르 밑에서 철학을 지도받았다.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에티엔 발리바르, 자크 랑시에르, 알랭 바디우, 샹탈 무페, 자크 비데, 도미니크 르쿠르 등 엄청나게 많은 철학자들이 그의 밑에서 철학을 배웠는데, 좀 과장하자면 현대 프랑스 철학자의 80%가 알튀세르한테 철학을 배웠다고 해도 될 정도다.

생애

주요 개념

마르크스 재해석: 인식론적 단절

알튀세르는 스승 가스통 바슐라르의 인식론적 단절을 토대로 마르크스를 재해석하고자 하였다. 바슐라르에 의하면, 과학적인 발전은 때때로 이전의 것을 토대로 하여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상관 없이 발전하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천동설은 지동설로 이어졌지만, 지동설이 천동설과의 연속성을 가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알튀세르는 그러한 관점을 마르크스에 도입하여, 1848년(공산당 선언)을 기점으로 마르크스의 철학이 인식론적인 단절을 가지게 된다고 보았다. 그 이전의 마르크스(독일 이데올로기로 대표되는)는 헤겔포이어바흐의 영향을 받은 철학적 성격을 띄었다면 그 이후의 마르크스(자본론으로 대표되는)는 과학적이고 정치경제적인 성격을 띈다는 것이다. 이를 따라 알튀세르는 (현대에서의 마르틴 하이데거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과 마찬가지로)전기 마르크스와 후기 마르크스를 나누고자 했다.

쉽게 말하자면 이러한 새로운 마르크스 해석의 의의는 마르크스로부터 헤겔을 지우고자 했다는 점에 있다. 테오도어 아도르노 같은 독일의 비판 이론가들이 마르크스주의의 인본주의적인 성격을 고찰하였다면 알튀세르는 헤겔과 포이어바흐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운 후기의 과학적 마르크스를 조명하며 과잉결정이나 모순들의 불균형성, 지배관계를 가지고자 하는 복잡한 구조 등을 내세운 것이다. 이것은 또한 블라디미르 레닌이 기존에 제시하였던 변증법적 유물론 해석과의 단절로서, 레닌주의에 대한 대안으로서 1960~1970년대 프랑스 마르크스주의 학계에서 각광을 받은 바 있다.

과잉결정론

생산의 궁극적인 조건은 생산의 재생산이다.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

이데올로기의 밖에서 (정확히 말하자면 이데올로기 밖의 거리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실제로는 이데올로기 안에서 일어난다. 그러므로 이데올로기 안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것은 그 밖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이데올로기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데올로기 외부의 정의에 따라 자신을 믿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의 효과중 하나는, 이데올로기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이데올로기에 의해 실재적으로 부정하는 것에 있다. 이데올로기는 '나는 이데올로기적이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데올로기는 의식과는 관련이 없다. 그것은 무의식적이다.
자명한 사실을 자명한 사실로서 강요하는 것이 이데올로기의 특징이다.
이데올로기는 개인의 실제 존재 조건에 대한 가상의 관계를 나타낸다.

루이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를 제시하였다. 기존의 마르크스주의는 억압적 국가 장치를 조명함으로서, 군대와 학교가 국민들을 통제하고 억압하여 혁명을 잠재운다고 보았다. 반면 알튀세르는 현대 민주국가에서 통제가 확연히 줄어들었음에도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를 군대와 학교, 사회 전체가 국민들에게 이데올로기를 주입시키기 때문이라고 본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나 자유주의와 같은 현대 자본주의 국가의 이데올로기들은 정신병원, 군대, 학교, 대학교 등의 미시적인 장치들을 통하여 국민들에게 체화되며, 그것을 선으로, 그것에 반대되는 공산주의나 전체주의 등을 악으로 여기게 만든다. 그러한 방식으로 현대 자본주의 국가는 개인들의 혁명을 잠재우려 한다.

한편, 기존의 마르크스 철학이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를 일종의 이데올로기라고 보았다면 알튀세르는 마르크스 역시 이데올로기에 빠진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특정 집단의 생각대로 행동할 수 밖에 없다. "나는 한국인이니까, 한국인처럼 행동해야한다"와 같은 스스로의 족쇄에 빠진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이다. 낙인찍기 효과와도 연관이 있다. 가령, 우리 사회에서는 학생이라면 모범적이고, 공부를 잘해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학생들도 거기에 자발적으로 따르게 된다. 또한 모범적인 시민이라면 법을 준수해야한다는 것이 일종의 이데올로기로서 작용하기에 시민들은 또 그것에 유순히 따르게 된다. 이처럼 인간은 태어날때부터 어떠한 집단에 속하기에, 그 집단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종속될 수 밖에 없고 그렇기에 "이데올로기의 바깥은 없다"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모순들의 불균형성

우발성의 유물론

비판

여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