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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바디우 Alain Badiou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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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37년 1월 17일 (87세) |
프랑스령 모로코 라바트 | |
국적 | 프랑스 (피에누아르) |
직업 | 철학자, 수리학자, 대학 교수 |
현직 | 파리 뱅센-생드니 제8대학 교수 |
소속 정당 | 연합사회당 → 마르크스-레닌주의자 공산연맹 |
학력 | 고등사범학교 |
학파 | 현대 플라톤주의, 합리주의, 마오주의 |
주요 저서 |
개요
프랑스의 철학자, 대학 교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항하는 합리와 이성의 수호자라는 수식어가 붙어다니는 것으로 유명하다. 현대 정치 철학자 중에서 플라톤을 계승하는 것으로 일가견이 있다.
생애
프랑스령 모로코에서 태어난 바디우는 파리의 고등사범학교(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에 진학해 철학을 수학했다. 바디우는 대학교 시절 루이 알튀세르 밑에서 철학을 배웠으며, 알튀세르가 주도한 마르크스주의 철학 그룹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1968년 68혁명 당시 바디우는 더욱 급진적인 레닌주의와 마오쩌둥주의를 추구하기 시작했으며, 따라서 보다 고전적인 공산주의의 입장을 취했던 루이 알튀세르와는 결별하게 된다.
68혁명 이후 그는 질 들뢰즈, 미셸 푸코 등과 함께 프랑스의 대표적인 좌파 성향 대학인 파리 뱅센-생드니 제8대학의 설립을 주도해 철학 교수로 임용된다. 1970년대 내내 마오쩌둥주의와 레닌주의 운동에 참여한 바디우는 1980년대 마오주의 운동이 쇠퇴하자 자신만의 이데올로기를 만드는 과정에 집중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바디우는 자크 라캉, 루이 알튀세르에 대한 새로운 견해를 내놓으며 주목을 받았으며, 자크 데리다 등 동료 철학자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며 공산주의의 수호자 역할을 자처한다.
2002년, ENS 산하의 프랑스현대철학연구소의 설립을 주도했으며, 2013년에는 슬라보예 지젝과 함께 방한하기도 하였다.
주요 개념
바디우는 플라톤, 마르크스, 알튀세르, 마오쩌둥, 레닌을 창조적으로 계승하였다. 플라톤과 마르크스를 주축으로 하여, 알튀세르를 비롯한 선대 프랑스 마르크스주의 철학자들의 철학적 개념을 수용하고 마오쩌둥과 레닌의 정치 분석을 활용했다.
그 외에도 스토아 학파나 칸토어 등에게서도 영향을 받았다.
바디우 스스로는 그를 "포스트 레닌-마오쩌둥주의자"로 부르기를 선호한다.
진리와 철학에 대하여
알랭 바디우는 철학을 이데아와 같은 것으로 바라본다. 그는 진리라는 것이 존재하지만, 실재하는 대상은 아니라고 여긴다. 진리는 예술, 사랑, 과학 등 철학의 "외적인" 분야에서 생성되는 것이다. 철학은 진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고, 풀이하는 등 사유를 하는 행위의 총합을 일컫는다.
따라서 바디우는 진리가 고정불변의 실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바디우는 진리가 여러가지 일 수 있으며, 그것을 해석하는 방법에 따라서도 달라지고 또 진리 자체가 여러개라 하나를 콕 찝는게 불가능하다고 여긴다. 이를 진리의 복수(復數)성이라고도 한다.
봉합
봉합이란 진리를 한정하려는 태도를 뜻한다. 바디우에 따르면 진리는 과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생성되는 것인데, 몇몇 철학은 그 분야를 한정지음에 따라 중대한 오류를 범한다. 가령 분석 철학은 과학에만 진리를 한정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알랭 바디우는 기독교, 스탈린주의, 기호철학, 분석철학 등 "봉합"을 추구하는 존재들에 대해 반대한다.
바디우에 따르면, 진정한 철학이 추구해야하는 것은 모든 진리들을 평등히 검토하여 그것을 사유하는 태도로, 이를 "탈봉합"이라고도 한다. 그것에 반대하는 것은 반(反)철학이다. 바디우가 규정하는 반철학에는 비트겐슈타인 등의 분석철학,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 등을 포함한다.
민주주의 비판
바디우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탈철학의 정치이다. 그것은 철학이라고 볼 수 없으며 봉합이라는 중대한 우를 범하고 있는 파멸의 체제이다. 바디우는 민주주의라는 체제 자체를 극복해야한다고 말하였다. 이런 점에서 민주주의를 비판하면서도 그것을 창조적으로 계승하려 한 위르겐 하버마스나 자크 랑시에르와는 대비된다.
하지만 바디우를 반민주주의자라고 할 수는 없다. 도리어 그는 직접민주주의자에 가깝다. 그가 민주주의에 대한 반대를 표명하는 이유는, 바디우 자신이 그런 워딩을 씀으로 인하여 우리 사회가 더 임팩트를 받기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바디우가 비판하는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그 자체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현대 민주주의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서구식 자유민주주의라 할 수 있다.
바디우가 민주주의를 비판하는 이유는, 민주주의가 그것의 다원성으로 인하여 진리를 오히려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1] 철학은 진리를 전달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고 사유해야하는데 민주주의는 그런 모든것을 오직 개인에게만 맡겨버리는 무책임함을 범한다. 그러면서도 민주주의는 오직 자기 자신만을 진리로 삼게 함으로서 다른 모든 가능한 진리들을 가려버린다. 이러한 것의 결과로서, 개개인은 어떤 진리가 참인지 알지 못하게 되며 종국에는 민주주의와 그것을 지탱하는 금권적 황금주의에 매몰된 "디오니소스적" 향락 인간으로 타락한다.
그러한 점에서, 진리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현대의 의회민주정은 철저히 기만이며,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에 휘둘릴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바디우는 의회민주주의가 실질적으로 민중의 의견을 반영하지 못하는 기만의 체제라고 비판한다.
공산주의와 철학의 정치
바디우는 탈철학의 정치인 민주주의에 대항하는 철학의 정치로서 공산주의를 조명한다. 여기서 말하는 공산주의는 통상적 공산주의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가령 바디우는 혁명의 중요성에 대해 인정하지 않으며 오히려 혁명이라는 워딩을 완곡하게 반대한다. 또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경제적으로 경쟁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자본주의의 생산적 효율성을 인정하여야한다는 책을 남긴 바 있다.
그럼에도 바디우가 공산주의의 중요성을 짚고 넘어가는 것은, 공산주의가 만인을 인간소외로부터 벗어나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낙관적인 인식에서 비롯된다. 바디우는 플라톤의 "귀족적인 철학 정치"를 만인에게 부여하고자 한다. 플라톤이 말한, 지배 계급의 철학적인 정치를 모든 사람들이 누릴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이를 통하여 만인은 그저 종속적인 의회민주 체제가 아닌, 자유로운 철학 토론을 통해 이상적인 사회를 구현시켜나간다. 즉 플라톤과 마르크스를 적절하게 배합한 것이 바디우가 말한 공산주의라고 할 수 있다. 위르겐 하버마스의 공론장, 소통 윤리와 연결시켜서 읽으면 더 좋다.
바디우는 공산주의를 고수할 뿐만 아니라 <부활>을 주장한다. 그러한 점에서 바디우에게서 기독교의 색체를 완전히 지울 수는 없으며, 일정 부분 메시아주의적인 색체를 띄기도 한다.
여담
- 2013년 슬라보예 지젝과 함께 방한한 바 있다.
- 2012년 한겨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문재인의 지지를 천명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비록 잘못된 체제이고 현실을 바꾸기는 어렵지만, 후보자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어젠다는 다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나은 후보를 뽑는 것이 더 진보한 사회 담론을 담게 하는데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극우가 아니라 중도우파더라도 조금이라도 더 진보적이라면 그 사람을 지지할 수 있음에 대해 시사하였다.
- 극우 유튜버 성제준은 바디우가 자본주의를 지지했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한 바 있다. 바디우는 오히려 좌파 성향이 강한 프랑스 철학계에서도 극좌로 여겨지는 극단적 공산주의자인데 말이다.
각주
- ↑ 이 부분은 확연하게 랑시에르와 대비되는데, 랑시에르는 반플라톤주의의 관점에서 민주주의의 다원성이야말로 그것의 장점이자 무한한 잠재성을 가진 씨앗이라고 본다. 반면 바디우는 플라톤주의의 관점에서 그런 민주주의의 무차별적 다원성을 "무책임함"으로 여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