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를 위하여}} == 개요 == {{인용문|각각의 특별한 사건들의 결과물인 이 작품들은, 모두 같은 시대와 같은 역사의 산물이다. 그것들은 나름대로 마르크스주의적 방식으로 사유하려 노력했던 우리 세대 모든 철학자들이 목도해야했던 독특한 경험들: 즉 역사가 우리에게 가하고 있는 이론적 곤경을 벗어나기 위해 좋든 싫든 마주해야했던 마르크스의 철학적 사상의 소개에 대한 증인들이다.<br><br>역사. 그것은 인민전선과 스페인 내전을 통해 우리의 청춘을 빼앗았고, 제2차 세계 대전은 우리에게 끔찍한 파시즘적 행위를 각인시키는 교육 효과를 불어왔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에 "진입" 했을 때 우리를 놀라게 했다. 소부르주아지 출신의 학생들을, 계급적인 존재, 계급 투쟁과 목표를 탐색하는 투쟁가로 바꾸어놓았다. 그것이 우리 철학자들에게 부여한 각종 증거들에서, 우리들은 유일하게 가능한 결론을 도출해냈고, 그 결론에 따라 노동계급의 정치 조직인 공산당에 가입하였다.<br><br>제2차 세계대전은 이제 막 끝났을 뿐이다. 우리는 잔인하게도, 당의 거대한 정치-이데올로기적 진지전에 투입되었다.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마르크스주의 철학 탐색에 부응하고, 그것에 대한 결과마저도 감수해야했다.|[[루이 알튀세르]], ≪마르크스를 위하여≫ (Pour Marx, 1965), 서문 "오늘" 中}} {{인용문|마르크스를 독해하고, 재독해하지 않은 상태로 마르크스에 토론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그러한 행동은 점점 더 많은 이론적, 철학적, 정치적 잘못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교리 기계와 "마르크스주의" 이데올로기 장치(국가, 정당, 노동조합 및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가 사라지는 과정에 있을 때, 우리는 변명할 수 없으며 책임을 외면할 수 있는 알리바이만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마르크스주의가 없는 미래는 없을 것이다. 마르크스 없이는 미래도 없고, 마르크스에 대한 기억과 유산이 없다면 미래도 없다. 마르크스가 없는 것은 가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편견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자크 데리다]], ≪마르크스의 유령들≫ (Spectres de Marx, 1993), 제1장 中}} {{인용문|지금 시점에서 나는 완전한 마르크스주의자이다. 마르크스의 주장에는 언제나 비판이, 그리고 급진적인 비판이 존재한다. 나는 니체를 독해할 때 마르크스를 함께 독해하며, 이 둘은 언제나 좋은 페어링이다. 물론 내 저작에서 다루어진 철학들은 마르크스가 말한 것은 아니겠지만, 마르크스주의적이다. 나는 사람들이 마르크스가 "틀렸다"라고 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며, 마르크스가 이제는 "죽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더욱 이해할 수 없다.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에는 해결해야할 시급할 과제들이 산적해있으며, 따라서 우리는 세계 시장이 무엇이며, 어떻게 작동하는지 끊임 없이 탐구해야만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라면, 결국에는 마르크스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질 들뢰즈]], ≪나는 기억한다≫ (Je me souviens, 1993) 中}}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 (원본 보기) 틀:YouTube (원본 보기) 틀:글씨 색 (원본 보기) 틀:글씨 크기 (원본 보기) 틀:나이 (원본 보기) 틀:디데이 (원본 보기) 틀:마르크스를 위하여 (원본 보기) 틀:목차 (원본 보기) 틀:본문 (원본 보기) 틀:이브위키 명작선 24 (원본 보기) 틀:인용문 (원본 보기) 틀:테두리2 (원본 보기) 마르크스를 위하여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