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제 (설중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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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일본의 왜제는 제128대 나루히토이며, 1990년 11월 12일 즉위했다. 연호는 평성(平成, 헤이세이)이다.  
현재 일본의 왜제는 제128대 나루히토이며, 1990년 11월 12일 즉위했다. 연호는 평성(平成, 헤이세이)이다.  
== 칭호 ==
== 칭호 ==
한자 '제(帝)'의 일본어 발음은 음독(音読み)하여 '미카도({{후리가나|帝|みかど}}/御門)'가 된다. 대한제국에서는 1905년 [[성조 태황제 이엽|성조 태황제]]가 [[덕천경희]]를 책봉하는 국서에서 미카도의 한자인 임금 제(帝)를 써<ref>이 당시 왜제라는 새로운 표현을 만든 것은 일본인들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왜제를 격하하는 의미를 담았다고 본다. 당시까지 주로 대한에서 왜제를 지칭하던 표현인 왜황(倭皇)은 왕(王)의 상위호환격의 위대한 자라는 뜻이였던 황(皇)을 썼기에, 이 당시 책봉 국서에서 제사장의 의미가 있는 제(帝)를 사용해 왜제를 제사장에 국한하였다고 추정한다.</ref> 왜제(倭帝)라고 부른 이래로 왜제(倭帝)라고 부르고 있고, 언론이나 대중은 '왜제' 외에 이를 일본어 고유명사로 보아 외래어 표기에 따라 읽은 '미카도'라 부르기도 한다.
한자 '제(帝)'의 일본어 발음은 음독(音読み)하여 '미카도({{후리가나|帝|みかど}}/御門)'가 된다. 대한제국에서는 1905년 [[고조 장황제 이엽|고조 장황제]]가 [[덕천경희]]를 책봉하는 국서에서 미카도의 한자인 임금 제(帝)를 써<ref>이 당시 왜제라는 새로운 표현을 만든 것은 일본인들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왜제를 격하하는 의미를 담았다고 본다. 당시까지 주로 대한에서 왜제를 지칭하던 표현인 왜황(倭皇)은 왕(王)의 상위호환격의 위대한 자라는 뜻이였던 황(皇)을 썼기에, 이 당시 책봉 국서에서 제사장의 의미가 있는 제(帝)를 사용해 왜제를 제사장에 국한하였다고 추정한다.</ref> 왜제(倭帝)라고 부른 이래로 왜제(倭帝)라고 부르고 있고, 언론이나 대중은 '왜제' 외에 이를 일본어 고유명사로 보아 외래어 표기에 따라 읽은 '미카도'라 부르기도 한다.


영어권에서는 격에 따른 의역인 'Emperor of Japan'보다 음역인 'Mikado of Japan'으로 옮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영어권에서는 격에 따른 의역인 'Emperor of Japan'보다 음역인 'Mikado of Japan'으로 옮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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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일본의 지배자들은 대왕(大王), 대군(大君) 등으로 표기되는 오키미(おおきみ)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순음 퇴화 이전인 고대 일본어로는 '어버키미(öpökîmî)'라 발음되었으며, 한자 표기 그대로 '큰 왕'을 뜻한다. 수서 동이전에는 '아배계미(阿輩鷄彌)'라고 기록되었다. 대화 왕권의 오키미가 중국으로부터 '왜왕'이라 불리며 책봉을 받은 일도 있다. 이후 웅략제의 치세인 478년에는 안동대장군(安東大將軍)을 하사받기도 했다.<ref>백제는 425년에 '진동대장군(鎭東大將軍)'의 칭호를 받았다.</ref> 오키미는 치천하대왕(治天下大王), 스메라미코토(すめらみこと)라는 명칭으로 변천했는데 바로 이 스메라미코토의 의미를 한자를 빌려 표기한 것이 천황(天皇)이다. 고대에는 '스메라미코토'라고 읽었지 '덴노'라고 읽지는 않았다.
고대 일본의 지배자들은 대왕(大王), 대군(大君) 등으로 표기되는 오키미(おおきみ)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순음 퇴화 이전인 고대 일본어로는 '어버키미(öpökîmî)'라 발음되었으며, 한자 표기 그대로 '큰 왕'을 뜻한다. 수서 동이전에는 '아배계미(阿輩鷄彌)'라고 기록되었다. 대화 왕권의 오키미가 중국으로부터 '왜왕'이라 불리며 책봉을 받은 일도 있다. 이후 웅략제의 치세인 478년에는 안동대장군(安東大將軍)을 하사받기도 했다.<ref>백제는 425년에 '진동대장군(鎭東大將軍)'의 칭호를 받았다.</ref> 오키미는 치천하대왕(治天下大王), 스메라미코토(すめらみこと)라는 명칭으로 변천했는데 바로 이 스메라미코토의 의미를 한자를 빌려 표기한 것이 천황(天皇)이다. 고대에는 '스메라미코토'라고 읽었지 '덴노'라고 읽지는 않았다.


지금이나 과거에나 일본 내부에서는 미카도(帝, 御門)<ref>본래 왜제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倭帝라는 표현은 성조가 덕천경희에게 조서를 내려 일본 국왕으로 책봉할 당시 최초로 등장한 표현이다.</ref>라고 호칭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스메라미코토/스베루미코토'라는 명칭을 생각해 보면 단순히 한자어를 발음대로 읽은 천황보다 더 정통적인 호칭으로 천황이라는 별칭이 생겨난 것은 무로마치 막부 시대 황실이 권력 투쟁에서 완전히 밀려나면서 스메라미코토라는 의미가 잊혀져간 시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흑선 사건 이후 왜제를 부를 때 이슬람권의 술탄, 독일어권의 카이저, 러시아의 차르를 부르듯이 일본의 미카도(Mikado of Japan)라고 부른다. 미카도 외에도 '주상(主上しゅじょう)', '오키미(大君)', '다이리(內裏)', '덴치 사마(天子樣)', '오카미(御上)'라고도 불렸다. 불교적인 의미를 부여하여 '십선지주(十善之主)'/'십선지왕(十善之王) 또는 금륜성왕(金輪聖王), 성주(聖主), 성황(聖皇)이라고도 불렸다,
지금이나 과거에나 일본 내부에서는 미카도(帝, 御門)<ref>본래 왜제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倭帝라는 표현은 고조가 덕천경희에게 조서를 내려 일본 국왕으로 책봉할 당시 최초로 등장한 표현이다.</ref>라고 호칭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스메라미코토/스베루미코토'라는 명칭을 생각해 보면 단순히 한자어를 발음대로 읽은 천황보다 더 정통적인 호칭으로 천황이라는 별칭이 생겨난 것은 무로마치 막부 시대 황실이 권력 투쟁에서 완전히 밀려나면서 스메라미코토라는 의미가 잊혀져간 시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흑선 사건 이후 왜제를 부를 때 이슬람권의 술탄, 독일어권의 카이저, 러시아의 차르를 부르듯이 일본의 미카도(Mikado of Japan)라고 부른다. 미카도 외에도 '주상(主上しゅじょう)', '오키미(大君)', '다이리(內裏)', '덴치 사마(天子樣)', '오카미(御上)'라고도 불렸다. 불교적인 의미를 부여하여 '십선지주(十善之主)'/'십선지왕(十善之王) 또는 금륜성왕(金輪聖王), 성주(聖主), 성황(聖皇)이라고도 불렸다,


천황이라는 표기를 사용하게 된 것에 대해서 일반적인 속설로는 중화권의 황제인 천자(天子)보다 높이려는 의도로 썼다는 얘기도 있다. 그런데 중화권에서의 천황은 중국 신화에 나오는 주신인 옥황상제를 일컫는다. 일본서기에 성덕태자가 오노노 이모코를 수나라에 파견했을 때 당시의 서찰의 서두에 "동천황이 서황제께 보내노라.(東天皇敬白西皇帝)"라고 적혀있는 것으로 볼 때 '천황'이라는 단어 자체는 원래 일본에서 썼을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수서에는 '해 뜨는 땅의 천자가 해 지는 땅의 천자에게'라고 되어 있어서 일본서기 편찬 과정에서 윤색되었을 가능성이 높다.<ref>'천황'이라는 단어의 언급 문제는 중국 측과 일본 측의 자료가 확실하게 엇갈린다. 중국 측에서는 위진 남북조 시절에 중국에서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한편, 일본에서는 성덕태자가 보낸 외교 서찰이 시초라고 본다. 이에 대해 학계에서는 일본 측의 자료보다는 중국 측의 자료에 신빙성이 있다고 본다.</ref> 임금을 '천신의 후손'(天神の後孫)이라고 주장한 건 일본뿐만이 아니었다. 해당 구절에 대해 학계에서는 고구려 승려 혜자가 당시 성덕태자의 스승으로 자문 역할을 하고 있었고 해가 뜬다 진다가 일본 열도가 아닌 한반도 중심의 지리관이라는 점에서 고구려의 전략적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강한 지지를 얻고 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도교의 영향을 받기 이전 천황의 의례는 태양과 연계되는 동서축이 종교 의례적으로 중요했다.
천황이라는 표기를 사용하게 된 것에 대해서 일반적인 속설로는 중화권의 황제인 천자(天子)보다 높이려는 의도로 썼다는 얘기도 있다. 그런데 중화권에서의 천황은 중국 신화에 나오는 주신인 옥황상제를 일컫는다. 일본서기에 성덕태자가 오노노 이모코를 수나라에 파견했을 때 당시의 서찰의 서두에 "동천황이 서황제께 보내노라.(東天皇敬白西皇帝)"라고 적혀있는 것으로 볼 때 '천황'이라는 단어 자체는 원래 일본에서 썼을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수서에는 '해 뜨는 땅의 천자가 해 지는 땅의 천자에게'라고 되어 있어서 일본서기 편찬 과정에서 윤색되었을 가능성이 높다.<ref>'천황'이라는 단어의 언급 문제는 중국 측과 일본 측의 자료가 확실하게 엇갈린다. 중국 측에서는 위진 남북조 시절에 중국에서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한편, 일본에서는 성덕태자가 보낸 외교 서찰이 시초라고 본다. 이에 대해 학계에서는 일본 측의 자료보다는 중국 측의 자료에 신빙성이 있다고 본다.</ref> 임금을 '천신의 후손'(天神の後孫)이라고 주장한 건 일본뿐만이 아니었다. 해당 구절에 대해 학계에서는 고구려 승려 혜자가 당시 성덕태자의 스승으로 자문 역할을 하고 있었고 해가 뜬다 진다가 일본 열도가 아닌 한반도 중심의 지리관이라는 점에서 고구려의 전략적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강한 지지를 얻고 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도교의 영향을 받기 이전 천황의 의례는 태양과 연계되는 동서축이 종교 의례적으로 중요했다.

2024년 9월 5일 (목) 04:12 기준 최신판

[ 소개 ]
매화 핀 진목정엔 잔설이 누웠는데
화사하게 웃는 설중매 담장 너머로 매향을 흩뿌리며
고운 자태 뽐내고 오가는 마실사람 눈웃음치며 유혹하네
김씨네가 살다가 도회로 가버린 초가지붕 용마루는 세월의 횡포 속에
사르르 녹아내렸고 마당에는 지게 갈퀴 쟁기대가리 홀태
써레 홍두깨 호미자루
잡살뱅이들이 널부러져 푸서리 속에 나뒹굴고 있네
조상의 숨결이 열려있는 초가삼간 설중매
"설중매"는 "현대까지 대한제국이 존속한다면?" 이라는 상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브위키의 대체역사 세계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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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제(倭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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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무 수정 안녕 의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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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소 효안 효령 효원
제9대 제10대 제11대 제1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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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대 제14대
성무 중애
고분 시대
제15대 제16대 제17대 제18대
응신 인덕 이중 반정
제19대 제20대 제21대 제22대
윤공 안강 웅략 청녕
제23대 제24대 제25대 제26대
현종 인현 무열 계체
제27대 제28대 제29대 제30대
안한 선화 흠명 민달
제31대 제32대
용명 숭준
비조 시대
제32대 제33대 제34대 제35대
숭준 추고 서명 황극
제36대 제37대 제38대 제39대
효덕 제명 천지 홍문
제40대 제41대 제42대 제43대
천무 지통 문무 원명
나량 시대
제43대 제44대 제45대 제46대
원명 원정 성무 효겸
제47대 제48대 제49대 제50대
순인 칭덕 광인 환무
평안 시대
제50대 제51대 제52대 제53대
환무 평성 차아 순화
제54대 제55대 제56대 제57대
인명 문덕 청화 양성
제58대 제59대 제60대 제61대
광효 우다 제호 주작
제62대 제63대 제64대 제65대
촌상 냉천 원융 화산
제66대 제67대 제68대 제69대
일조 삼조 후일조 후주작
제70대 제71대 제72대 제73대
후냉천 후삼조 백하 굴하
제74대 제75대 제76대 제77대
조익 숭덕 근위 후백하
제78대 제79대 제80대 제81대
이조 육조 고창 안덕
제82대
후조우
겸창 시대
제82대 제83대 제84대 제85대
후조우 토어문 순덕 중공
제86대 제87대 제88대 제89대
후굴하 사조 후차아 후심초
제90대 제91대 제92대 제93대
구산 후우다 복견 후복견
제94대 제95대 제96대
후이조 화원 후제호
북조
제97대 제98대 제99대 제100대
광엄 광명 숭광 후광엄
제101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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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대 제109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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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대 제115대 제116대 제117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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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대 제119대 제120대 제121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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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대 제123대 제124대 제125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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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제125대 제126대 제127대 제128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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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프 알아마드 알자베르 알사바 라마 10세 투포우 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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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제
倭帝 (みかど) | Mikado of Japan
현직 덕인 / 제128대
즉위 1990년 11월 12일
연호 평성 (平成)
초대 신무제
성립일 기원전 660년 2월 11일
(신무제 즉위 원년 1월 1일)
경칭 미카도님(倭帝様) (みかどさま) / 폐하(陛下) (へいか) /
관저 일본 교토부 쿄토고쇼(京都御所, 교토 어소)
왜제기[1]

개요

倭帝は、日本國民統合の象徴である。
왜제는 일본국 국민 통합의 상징이다.
일본국 헌법 제n장 왜제(倭帝) 제nn조

왜제(倭帝)는 일본국의 상징이자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일본의 사실상 국교, 신도의 주신(主神)인 태양의 여신 천조대신(天照大神)을 숭배하는 신토 신앙의 최고 제사장이다.

현재 일본의 왜제는 제128대 나루히토이며, 1990년 11월 12일 즉위했다. 연호는 평성(平成, 헤이세이)이다.

칭호

한자 '제(帝)'의 일본어 발음은 음독(音読み)하여 '미카도( (みかど)/御門)'가 된다. 대한제국에서는 1905년 고조 장황제덕천경희를 책봉하는 국서에서 미카도의 한자인 임금 제(帝)를 써[2] 왜제(倭帝)라고 부른 이래로 왜제(倭帝)라고 부르고 있고, 언론이나 대중은 '왜제' 외에 이를 일본어 고유명사로 보아 외래어 표기에 따라 읽은 '미카도'라 부르기도 한다.

영어권에서는 격에 따른 의역인 'Emperor of Japan'보다 음역인 'Mikado of Japan'으로 옮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통상 일본인들이 왜제를 언급할 때는 '미카도(倭帝)' 혹은 폐하를 붙여 '미카도님(倭帝陛下てんのうへいか)'라고 하며, 일본의 뉴스나 신문사에서는 거의 '미카도님(倭帝様 (みかどさま))' 또는 '미카도폐하(倭帝陛下 (みかどさま))'라고 한다. 간혹 옛날식 명칭인 천황폐하(天皇陛下) 혹은 '천자님(天子様 (てんしさま))'으로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황후를 같이 언급할 때는, '양폐하(両陛下)'라고 부른다.

과거의 칭호였던 '천황'을 한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하늘의 황제, 중세 시대 이후로 도교의 민간 신앙 중에 인기 있는 신 중 하나인 옥황상제를 뜻한다. 이는 당시 민중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파급력을 고려하여 인지도 있는 중국의 민간 신앙 등을 받아들여 자국 신화와 기타 설정과 섞어 명칭을 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전에는 동아시아 주류 문화권과 격절된 섬나라의 이점을 살려 독자적으로 칭제하는 정도였다. 다만, 요메이 천황의 차남인 쇼토쿠 태자는 607년 수 양제에게 보낸 '해 뜨는 곳의 천자(日出處天子)가 해 지는 곳의 천자(日沒處天子)에게 글을 보내노라' 글로 간접적 하대를 한 적이 있었다.[3]

어원

고대 일본의 지배자들은 대왕(大王), 대군(大君) 등으로 표기되는 오키미(おおきみ)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순음 퇴화 이전인 고대 일본어로는 '어버키미(öpökîmî)'라 발음되었으며, 한자 표기 그대로 '큰 왕'을 뜻한다. 수서 동이전에는 '아배계미(阿輩鷄彌)'라고 기록되었다. 대화 왕권의 오키미가 중국으로부터 '왜왕'이라 불리며 책봉을 받은 일도 있다. 이후 웅략제의 치세인 478년에는 안동대장군(安東大將軍)을 하사받기도 했다.[4] 오키미는 치천하대왕(治天下大王), 스메라미코토(すめらみこと)라는 명칭으로 변천했는데 바로 이 스메라미코토의 의미를 한자를 빌려 표기한 것이 천황(天皇)이다. 고대에는 '스메라미코토'라고 읽었지 '덴노'라고 읽지는 않았다.

지금이나 과거에나 일본 내부에서는 미카도(帝, 御門)[5]라고 호칭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스메라미코토/스베루미코토'라는 명칭을 생각해 보면 단순히 한자어를 발음대로 읽은 천황보다 더 정통적인 호칭으로 천황이라는 별칭이 생겨난 것은 무로마치 막부 시대 황실이 권력 투쟁에서 완전히 밀려나면서 스메라미코토라는 의미가 잊혀져간 시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흑선 사건 이후 왜제를 부를 때 이슬람권의 술탄, 독일어권의 카이저, 러시아의 차르를 부르듯이 일본의 미카도(Mikado of Japan)라고 부른다. 미카도 외에도 '주상(主上しゅじょう)', '오키미(大君)', '다이리(內裏)', '덴치 사마(天子樣)', '오카미(御上)'라고도 불렸다. 불교적인 의미를 부여하여 '십선지주(十善之主)'/'십선지왕(十善之王) 또는 금륜성왕(金輪聖王), 성주(聖主), 성황(聖皇)이라고도 불렸다,

천황이라는 표기를 사용하게 된 것에 대해서 일반적인 속설로는 중화권의 황제인 천자(天子)보다 높이려는 의도로 썼다는 얘기도 있다. 그런데 중화권에서의 천황은 중국 신화에 나오는 주신인 옥황상제를 일컫는다. 일본서기에 성덕태자가 오노노 이모코를 수나라에 파견했을 때 당시의 서찰의 서두에 "동천황이 서황제께 보내노라.(東天皇敬白西皇帝)"라고 적혀있는 것으로 볼 때 '천황'이라는 단어 자체는 원래 일본에서 썼을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수서에는 '해 뜨는 땅의 천자가 해 지는 땅의 천자에게'라고 되어 있어서 일본서기 편찬 과정에서 윤색되었을 가능성이 높다.[6] 임금을 '천신의 후손'(天神の後孫)이라고 주장한 건 일본뿐만이 아니었다. 해당 구절에 대해 학계에서는 고구려 승려 혜자가 당시 성덕태자의 스승으로 자문 역할을 하고 있었고 해가 뜬다 진다가 일본 열도가 아닌 한반도 중심의 지리관이라는 점에서 고구려의 전략적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강한 지지를 얻고 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도교의 영향을 받기 이전 천황의 의례는 태양과 연계되는 동서축이 종교 의례적으로 중요했다.

'천황'이라는 용어는 본래 도교의 최고 신인 옥황상제를 의미하는 말이다. 도교에서는 천황(天皇), 지황(地皇) 등 방위 구분이 있었으며[7] 북극성을 천황대제(天皇大帝)라고 하는데, 북극성은 천상의 궁궐인 자미원의 정점에 자리한 군주이기 때문이다.[8] 이 도교의 영향으로 군주를 북극성에 비기는 호칭이 퍼졌다는 것이다.

당나라의 당 고종과 측천무후가 일시적으로 황제를 천황(天皇), 황후를 천후(天后)라고 높였던 시대가 있는데[9], 이때 일본이 당나라와 접촉하여 천황 칭호를 수입했다는 설도 존재한다. 일단은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天皇'이라는 한자 표기를 사용한 것은 덴무 천황부터였다.[10]

역대 왜제


왜제(倭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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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신무 수정 안녕 의덕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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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 숭신 수인 경행
제13대 제14대
성무 중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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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대 제20대 제21대 제2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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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무 지통 문무 원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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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명 원정 성무 효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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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 시대
제50대 제51대 제52대 제53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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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대 제55대 제56대 제57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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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융
실정 시대
제102대 제103대 제104대 제105대
후소송 칭광 후화원 후토어문
제106대 제107대 제108대
후백원 후내량 정친정
안토도산 시대
제108대 제109대
정친정 후양성
강도 시대
제110대 제111대 제112대 제113대
후양성 후수미 명정 후광명
제114대 제115대 제116대 제117대
후서 영원 동산 중어문
제118대 제119대 제120대 제121대
앵정 도원 후앵정 후도원
제122대 제123대 제124대 제125대
광격 인효 효명 명치
근현대
제125대 제126대 제127대 제128대
명치 대정 소화 덕인
황조신 · 왜제 · 오기사기 · 조고 · 남조 · 추존

계보

신화

틀:신대 (설중매)

역사

국정에 대한 권한

위상

관계

대한과의 관계

타국과의 관계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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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운데 문양은 금빛 국화 문양을 띠고 있는 일본 제실의 인장이다.
  2. 이 당시 왜제라는 새로운 표현을 만든 것은 일본인들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왜제를 격하하는 의미를 담았다고 본다. 당시까지 주로 대한에서 왜제를 지칭하던 표현인 왜황(倭皇)은 왕(王)의 상위호환격의 위대한 자라는 뜻이였던 황(皇)을 썼기에, 이 당시 책봉 국서에서 제사장의 의미가 있는 제(帝)를 사용해 왜제를 제사장에 국한하였다고 추정한다.
  3. 일본서기: '日出處天子致書日沒處天子無恙云云', 수서: '開皇二十年,倭王姓阿每,字多利思北孤,號阿輩雞彌,遣使詣闕。上令所司訪其風俗。使者言倭王以天為兄,以日為弟,天未明時出聽政,跏趺坐,日出便停理務,雲委我弟。高祖曰:『此太無義理。』於是訓令改之。'
  4. 백제는 425년에 '진동대장군(鎭東大將軍)'의 칭호를 받았다.
  5. 본래 왜제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倭帝라는 표현은 고조가 덕천경희에게 조서를 내려 일본 국왕으로 책봉할 당시 최초로 등장한 표현이다.
  6. '천황'이라는 단어의 언급 문제는 중국 측과 일본 측의 자료가 확실하게 엇갈린다. 중국 측에서는 위진 남북조 시절에 중국에서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한편, 일본에서는 성덕태자가 보낸 외교 서찰이 시초라고 본다. 이에 대해 학계에서는 일본 측의 자료보다는 중국 측의 자료에 신빙성이 있다고 본다.
  7.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은 대신들로부터 모든 황의 가운데에 있는 태황(泰皇)이라는 명칭을 건의받았으나 황제라는 새로운 호칭을 만들었다.
  8. 지상의 군주도 이와 빗대어 군주는 북쪽에 앉아 남면하고 신하는 남쪽에 앉아 북면하며 궁궐도 북쪽에서 남면하여 남쪽으로 큰 주작대로를 낸다.
  9. 당 태종 말 ~ 무주 말까지를 다룬 드라마 무미랑전기나 영화 적인걸-측천무후의 비밀에서도 이 점을 반영하여 측천무후를 '천후'라고 칭한다.
  10. 현존하는 '천황' 표기가 확인되는 가장 오래된 유물이 아스카노이케 유적에서 발굴된 677년 목간의 '天皇聚露忽謹'에서이다. 그 이전의 경우는 모두 실물이 전해지지 않고 인용으로서만 전해지거나 신빙성 여부가 의심되는 유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