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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개요== | ||
[[만주 (개화)|만주]]의 | [[만주 (개화)|만주]]의 우파 자유주의 정당. 1932년 창당된 만주의 최고(最古) 정당이다. 현지에서는 주로 민건회(民建会)라 줄여부른다. | ||
==역사== | ==역사== | ||
1927년, 만주국이 건국되면서 만주의 첫 수상이 된 정샤오쉬는 총선을 치르고 의회민주주의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정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 1927년, 만주국이 건국되면서 만주의 첫 수상이 된 정샤오쉬는 총선을 치르고 의회민주주의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정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당시 만주는 의회민주주의는커녕 선거를 치를 요건 자체가 안 된 상태였다. 이에 주만한국대사관은 선거를 무기한 연기할 것을 요구했고 푸이가 이를 수용하면서 정샤오쉬가 기획하던 선거는 1937년이 되어서야 실시되었다. 정샤오쉬는 선거를 치르기 몇 달 전 선거에 참여하기 위해 자신을 지지하는 이들을 모아 민주건국회를 창당했다. | ||
민건회는 초대 총선에서 과반의 득표를 올리며 승리하였고 정샤오쉬를 내각총리대신으로 하여 내각을 구성했다. 정샤오쉬가 1939년 노환으로 사망하자 같은 민건회 소속인 아이신기오로 시치아가 총리에 취임했다. 1940년, [[제2차 극동전쟁 (개화)|제2차 극동전쟁]]이 발발하자 전시거국내각이 구성되었다. 이와 동시에 대소 유화론을 펼치던 민건회 소속 수상인 [[아이신기오로 시치아 (개화)|시치아]]는 강덕제에 의해 해임되었고 군인 출신의 [[협화회 (개화)|협화회]] 소속 [[장징후이 (개화)|장징후이]]가 수상에 취임하면서 민건련은 13년만에 수상직을 상실했다. | |||
==성향== | |||
민주건국회는 보수자유주의 정당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외에도 민건회의 이념으로 언급되는 것에는 자유보수주의, 고전적 자유주의, 경제적 자유주의, 사회보수주의, 사회자유주의, 만주 내셔널리즘 등이 있다. 만주 정치의 보혁구도에서 개혁 포지션을 맡고 있다. | |||
민건회는 협화회에 비해 경제적으로는 오른쪽에, 사회적으로는 왼쪽에 위치하여 있다. 복지를 중시하는 협화회와는 달리 민건회는 경제적 자유를 중시하는 친시장, 친기업 성향을 보인다. 자유무역과 작은 정부를 주장하는 것이 그 사례다. 문화적으로는 협화회에 비해 왼쪽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사회적 자유주의 성향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국제적인 기준에서는 진보보다 보수에 더 가깝다. 다만 내부에 사회자유주의 성향의 소수계파가 존재하기는 한다. | |||
황정에 대해서는 현상 유지를 원하는 흐름이 주류이다. 비록 만주가 헌법에 군주주권을 명시해놓았지만 실질적으로는 국민주권 의회민주주의로 작동하는 경향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법률안 개정을 통해 황제의 정치 개입을 지금보다 더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으나<ref>만주는 황제의 권한이 입헌군주국 치고는 상당히 강력해서 종종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ref> 이러한 움직임은 당 내에서도 비주류다. | |||
외교적으로는 여느 만주 정당이 그렇듯이 친한 성향을 보인다. 중국과 소련에는 부정적인 편이지만 그 두 나라와의 갈등이 심화되는 것 역시 우려하며 양국과의 무역을 통해 경제적인 실익을 챙기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로 인해 협화회 정치인들은 민건회가 친중, 친소라고 목소리를 높이고는 한다. 또 협화회와는 달리 미국 등의 서방 세력에 우호적이다. | |||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정사오쉬를 따르던 인물들이 뭉친 일종의 이상주의 빅텐트 정당이었으나 2차 세계대전으로 장징후이의 협화회가 떠오르자 보수주의자들이 대거 협화회로 이탈하면서 점차 자유주의 성향이 강화되었다. | |||
==역대 선거 결과== | ==역대 선거 결과== |
2024년 9월 6일 (금) 16:01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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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건국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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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명 | 民主建国会, 民建会 |
만문명 | ᡳᡵᡤᡝᠨ ᠰ᠌ᠠᠶᡠᡯ ᡤᡠᡵᡠᠨ ᡝᡵᡝᡵᡝᠩᡤᡝ ᠰ᠌ᠠᢡᠠᢇ[1] |
영문명 | Democratic Association for National Construction, DANC |
창당일 | 1932년 모월 모일 |
역대 총리 | 정샤오쉬 / 초대 • 1927~1939 |
주석 | 류궈중 |
부주석 | 한창푸[2] |
이념 | 자유주의 (만주) 자유보수주의 경제적 자유주의 진보적 보수주의 신유교주의 |
스펙트럼 | 중도 ~ 중도우파 |
입법의원 | 258석 / 500석 (51.6%) |
성급의회의원 | 281석 / 862석 (32.6%) |
현급의회의원 | 852석 / 2484석 (34.3%) |
당색 | 녹색 (#009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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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색 (#D9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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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원 수 | 13만 6천 명 |
국제조직 | 무소속 |
청년조직 | 민주청년회 |
공식 사이트 | |
SNS | | | |
개요
만주의 우파 자유주의 정당. 1932년 창당된 만주의 최고(最古) 정당이다. 현지에서는 주로 민건회(民建会)라 줄여부른다.
역사
1927년, 만주국이 건국되면서 만주의 첫 수상이 된 정샤오쉬는 총선을 치르고 의회민주주의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정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당시 만주는 의회민주주의는커녕 선거를 치를 요건 자체가 안 된 상태였다. 이에 주만한국대사관은 선거를 무기한 연기할 것을 요구했고 푸이가 이를 수용하면서 정샤오쉬가 기획하던 선거는 1937년이 되어서야 실시되었다. 정샤오쉬는 선거를 치르기 몇 달 전 선거에 참여하기 위해 자신을 지지하는 이들을 모아 민주건국회를 창당했다.
민건회는 초대 총선에서 과반의 득표를 올리며 승리하였고 정샤오쉬를 내각총리대신으로 하여 내각을 구성했다. 정샤오쉬가 1939년 노환으로 사망하자 같은 민건회 소속인 아이신기오로 시치아가 총리에 취임했다. 1940년, 제2차 극동전쟁이 발발하자 전시거국내각이 구성되었다. 이와 동시에 대소 유화론을 펼치던 민건회 소속 수상인 시치아는 강덕제에 의해 해임되었고 군인 출신의 협화회 소속 장징후이가 수상에 취임하면서 민건련은 13년만에 수상직을 상실했다.
성향
민주건국회는 보수자유주의 정당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외에도 민건회의 이념으로 언급되는 것에는 자유보수주의, 고전적 자유주의, 경제적 자유주의, 사회보수주의, 사회자유주의, 만주 내셔널리즘 등이 있다. 만주 정치의 보혁구도에서 개혁 포지션을 맡고 있다.
민건회는 협화회에 비해 경제적으로는 오른쪽에, 사회적으로는 왼쪽에 위치하여 있다. 복지를 중시하는 협화회와는 달리 민건회는 경제적 자유를 중시하는 친시장, 친기업 성향을 보인다. 자유무역과 작은 정부를 주장하는 것이 그 사례다. 문화적으로는 협화회에 비해 왼쪽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사회적 자유주의 성향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국제적인 기준에서는 진보보다 보수에 더 가깝다. 다만 내부에 사회자유주의 성향의 소수계파가 존재하기는 한다.
황정에 대해서는 현상 유지를 원하는 흐름이 주류이다. 비록 만주가 헌법에 군주주권을 명시해놓았지만 실질적으로는 국민주권 의회민주주의로 작동하는 경향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법률안 개정을 통해 황제의 정치 개입을 지금보다 더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으나[3] 이러한 움직임은 당 내에서도 비주류다.
외교적으로는 여느 만주 정당이 그렇듯이 친한 성향을 보인다. 중국과 소련에는 부정적인 편이지만 그 두 나라와의 갈등이 심화되는 것 역시 우려하며 양국과의 무역을 통해 경제적인 실익을 챙기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로 인해 협화회 정치인들은 민건회가 친중, 친소라고 목소리를 높이고는 한다. 또 협화회와는 달리 미국 등의 서방 세력에 우호적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정사오쉬를 따르던 인물들이 뭉친 일종의 이상주의 빅텐트 정당이었으나 2차 세계대전으로 장징후이의 협화회가 떠오르자 보수주의자들이 대거 협화회로 이탈하면서 점차 자유주의 성향이 강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