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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include>{{충신불사이군}}</noinclude>
=총사령부=
{{역대 대한국 대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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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background-image:linear-gradient(to right, #c19c22, #e3ba62 20%, #e3ba62 80%, #c19c22); color:#896B19" | 이황가 관련 틀
! colspan="2" style="width:420px; background:#de1829; color:#FFF;" | {{large|총사령부}}<br>總司令部 <nowiki>|</nowiki> General Headquar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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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 class="mw-customtoggle-TONGZHI_1" style="text-align:center; font-size:10.5pt"><div style="margin-left:2.5px; margin-top:-2.0px">'''[ 펼치기  ·  접기 ]'''</div></div>
! colspan="2" style="height:180px; text-align:center" | <div style="margin: -4.5px -9.0px">[[파일:총사령부 마크 (플레이백).png|x150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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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mw-collapsible-content" style="margin:0px -10.0px 0px; background:n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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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주 일람 (충신불사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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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1년 6월 1일
{{대한국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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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군령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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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2" style="text-align: center; height:180px" | [[파일:대한국 이화문 (충신불사이군).png|x150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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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2" style="background:#fff; color:#333154" | <small>[[이화문 (충신불사이군)|{{color|#000|이황가의 문장}}]]</small><ref>이화문(李花紋) 또는 오얏꽃 문장이라고 불리는 이 황실 문장은 [[관습법]]상 [[한국 국장 (충신불사이군)|한국 국장]]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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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width: 25%; text-align: center; color: #896B19; background: #e3ba62;" | '''국성'''
! rowspan="1" width=25% style="background:#de1829; color:#FFF;" | 역할
| [[전주 이씨 (충신불사이군)|전주 이씨]]  
| [[대한제국군 (플레이백)|대한제국군]]에 대한 통수권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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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color: #896B19; background: #e3ba62;" | '''창립일'''
! rowspan="1" width=25% style="background:#de1829; color:#FFF;" | 총사령관
| [[1392년]] [[8월]] [[13일]] <br><small>([[태조 고황제 (충신불사이군)|태조 고황제]] 즉위 원년 1월 1일)</small>
| [[대한제국군 (플레이백)|대원수]] [[영강황제 (플레이백)|영강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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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color: #896B19; background: #e3ba62;" | '''창립자'''
! rowspan="1" width=25% style="background:#de1829; color:#FFF;" | 총참모장
| [[태조 고황제 (충신불사이군)|태조 고황제]]
| [[대한제국 해군 (플레이백)|해군 부원수]] [[양용모 (플레이백)|양용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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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width: 25%; text-align: center; color: #896B19; background: #e3ba62;" | '''現 종주'''
! width=25% rowspan="2" style="background:#de1829; color:#FFF;" | '''주소'''
| [[함화황제 (충신불사이군)|함화황제]]
| <div style="margin: -5px -9px">{{#multimaps: 37.572525,126.975643 | zoom = 15 | height = 15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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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color: #896B19; background: #e3ba62;" | '''종주 칭호'''
| [[황성 한성부 (플레이백)|황성 한성부]] 주작대로 175
| [[대한국 대황제 (충신불사이군)|대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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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color: #896B19; background: #e3ba62;" | '''종주 경칭'''
|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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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color: #896B19; background: #e3ba62;" | '''국가'''
| [[대한국 (충신불사이군)|대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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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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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치봉공회=
{{글 숨김}}
일본 제국의 군사 국가화와 익찬 의회 체제로의 국가 개조를 목표로 1930년(쇼와 5년)에 결성된 초국가주의적인 비밀 결사 조직.


{{목차}}
1930년 9월, 참모본부의 하시모토 긴고로 중령, 육군성의 사카타 요시로 중령, 도쿄 경비사령부의 히구치 기이치로 중령이 발기인이 되어 설립했다.
== 개요 ==
'''이황가'''(李皇家)은 한국의 [[대한국 대황제 (충신불사이군)|대황제]] 그 일족을 이르며, 한국의 [[대한국 (충신불사이군)/황실|황실]]을 맡고있는 가문이다.


국성은 [[전주 이씨 (충신불사이군)|전주 이씨]] 선원본계이다.
참모본부나 육군성의 육군사관학교 출신의 엘리트 장교가 모여, 카게사 요시아사, 와치 타카지, 쵸우 이사무, 이마이 다케오, 나가이 야쓰지 등의 '노령통'라고 불리는 상관, 위관이 많았고 20여 명이 참가했다.
 
== 상세 ==
[[대한국 (충신불사이군)|대한국]]의 대황제들과 왕들은 대대로 '천명'(天命)을 받았음을'임을 자처했고,<ref>대황제가 현신의 위치까지 신격화된 것은 주권 예속 이후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전의 일로 대황제의 권위를 빌려 한국을 통치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주권 예속 이전이나 종전 이후의 대한은 대황제를 국민의 어버이로만 공인하지 살아있는 신 그 자체로까지 바라보진 않는다. 대황제의 현신 관념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주권 예속기에 일본에 의해 생긴 것이다.</ref> 이것은 근대 이전 한국인의 정신 세계를 구성하던 성리학의 핵심 교리였다. 따라서 황실 외에 다른 사람들은 실권도 없으며, '대역'으로 비쳐질 수 있는 역성혁명을 시도하지 않았고 세도가문이 실권자였고 대황제의 권한이 거의 없던 시절에도 계속 황위가 유지되어 세습되었다.
 
== 용어 ==
대한의 황실은 대황제(大皇帝)와 황족(皇族)으로 구성된다. 황족은 내정황족(內廷皇族)과 궁가(宮家)로 구성된다.
 
전후 1947년에는 [[연합군 점령하 대한 (충신불사이군)|GHQ]]]가 전쟁 범죄 의혹이 있는 황족들만 신적강하시키려고 했으나, 건흥제가 [[황실범궤]] 제정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한 결과, [[건흥황제]]의 정실 자손인 [[태시황제]]의 자손들과 [[세습친왕가 (충신불사이군)|세습친왕가]]를 제외한 나머지 황족은 모조리 공족으로 강하되었다.
 
남자 황손은 평민 여자와 결혼해도 황족 신분이 그대로 유지되며 아내가 남편을 따라 황족이 되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황족이 되지만, 여자 황손은 평민 남자와 결혼하면 부마는 황족의 신분을 받지 못한다.
 
친왕(親王)은 대황제 남성 자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친왕의 아내는 친왕비(親王妃)<ref>언론 메스컴에서는 妃殿下(비 전하)로 불린다.</ref>라고 한다. 공주(公主)는 여성 자손을 가리키는 말이며, 대황제의 증손자/증손녀부터는 군/현주(君/縣主)이라고 부른다.<ref>비슷한 사례로 러시아 제국에서는 황제의 손자와 그 비, 손녀까지 대공(Великий Князь, 남자)/여대공(Великая Княжна, 여자), 그 이외에는 공(Князь)이라고 했다.</ref> 현재는 [[건흥황제]]의 정실 자손와 [[세습친왕가 (충신불사이군)|세습친왕가]]외의 황족은 다 신적강하를 당했기 때문에 황실의 인적 풀이 줄어든 상태라 군과 공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친왕과 공주는 각각 대황제의 아들과 딸, 손자와 손녀이며, 군과 현주는 증손/증손녀 이하의 후손으로 생각하면 된다.
 
== 생활 ==
==== 주거 ====
{{틀:대한국의 황궁 (충신불사이군)}}
{{다른 뜻 설명|자세한 내용은 [[대한국의 황궁 (충신불사이군)|대한국의 황궁]]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 재산 ====
이황가는 상당한 양의 황실 재산을 가지고 있다. 태평양전쟁 전까지 천황가 다음은 이황가라는 말이 유행하였을 정도로, 이황가의 재산은 상당했다. 일본 황실이 종전 후 일본국 헌법을 제정하면서 기존의 황실 자산은 모두 국유 재산이 된 반면, 이황가는 재산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수십년간의 투자 성공으로 인 막강한 부를 가지고 있다. 또한 한국 정부가 황가재정법(皇家財政法)에 따라 대황제와 황가에 대한 생활비 등을 지급하는 예산을 편성하고 이를 국회에서 승인하는 형태로 황실에 기타 비용을 헌납한다. 아울러 황가의 생활을 돕고 관리하는 궁내부 직원들은 궁내부 소속 특수 별정직 공무원이기 때문에 정부에서 월급을 준다.
 
그러나 대황제는 정치적인 권한은 없더라도 정치권으로부터 간섭받지 않는 엄청난 양의 사유재산을 가지고 있는데, 예를 들면 전국의 알짜배기 부동산들을 가지고 있어서 그 임대수익을 내탕금으로 삼고, 대량의 주식이나 채권등을 보유하고 있다.
 
== 황족 구성 ==
 
==== 대황제 ====
{| class="wikitable" style="max-width:400px; font-size:10pt; float:right; border:2px solid #; color:#000"
! colspan="2" style="color: #896B19;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c19c22, #e3ba62 20%, #e3ba62 80%, #c19c22)" | [[파일:대한국 이화문 (충신불사이군).png|30px]]<br>{{large|대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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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2" | <div style="margin: -4.5px -9.0px">[[파일:함화황제 어진영 을 (충신불사이군).jpg|42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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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2" style="background:#fff; color:#333154" | '''[[이창]](李昌) (2018.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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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른 뜻 설명|자세한 내용은 [[대한국 대황제 (충신불사이군)|대황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 황실직계 ====
설립 취지서에는 정당 정치의 부패와 군축에 대한 저주가 언급돼 군부 독재 정권 수립에 의한 국가 개조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회원은 1931년 5월경에는 100여명까지 증가했지만 내부에는 파괴파·건설파·중간파의 3파가 있어 끊임없이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황실직계는 대황제의 가족 가운데서 대황제의 아내(황후)와 대황제의 아버지(태상황), 대황제의 어머니(황태후)와 대황제의 아들(황태자)와 그의 가족, 대황제의 미혼인 아들과 딸을 가리킨다. 한마디로 현 대황제의 직계 혈족이다.


황태자를 제외한 천황의 아들은 혼인하면 궁가를 새로 창설한다.
하시모토 · 쵸우 등을 중심으로 한 급진적인 그룹은 오카와 슈메이 등과 협력하여 1931년(쇼와 6년) 3월의 3월 사건, 같은 해 10월의 10월 사건을 계획하여 군부의 독주를 도왔다. 사쿠라회는 매월 회의 때 가이코샤를 이용하고 있었지만 이윽고 자금이 풍부해지자 급진파는 신바시 마스다야에서 기생들을 끼고 유희를 즐겼기 때문에 훗날 청년 장교들에게 "연회파"라고 불리게 되었다.


기타 여러 사유로 황족에서 벗어나는 경우를 신적강하(臣籍降下)라고 한다.
사쿠라회는 10월 사건 후에 해산되었지만 그 잔당들은 통제파 성향의 "청군파"라는 약소파벌을 형성했다.


{{-}}
황도파가 중앙에서의 신임을 잃자 5.15 사건과 아이자와 사건[6], 2.26 사건 등의 쿠데타 시도로 자멸하면서 자연스레 일본 제국 육군을 완전히 장악하고, 쇼와 천황의 묵인 속에 총력전 체제라는 명분으로 군국주의 체제를 수립한다. 통제파는 일본군의 지배적인 세력이 되었고, 견제 세력이 없어지자 1940년 정도에 파벌로서는 사라졌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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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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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25일 (월) 23:11 기준 최신판

총사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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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사령부
總司令部 | General Headquarters
창설일 1931년 6월 1일
종류 최고군령기관
역할 대한제국군에 대한 통수권 행사
총사령관 대원수 영강황제
총참모장 해군 부원수 양용모
주소

지도를 불러오는 중...

황성 한성부 주작대로 175

일치봉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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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의 군사 국가화와 익찬 의회 체제로의 국가 개조를 목표로 1930년(쇼와 5년)에 결성된 초국가주의적인 비밀 결사 조직.

1930년 9월, 참모본부의 하시모토 긴고로 중령, 육군성의 사카타 요시로 중령, 도쿄 경비사령부의 히구치 기이치로 중령이 발기인이 되어 설립했다.

참모본부나 육군성의 육군사관학교 출신의 엘리트 장교가 모여, 카게사 요시아사, 와치 타카지, 쵸우 이사무, 이마이 다케오, 나가이 야쓰지 등의 '노령통'라고 불리는 상관, 위관이 많았고 20여 명이 참가했다.

설립 취지서에는 정당 정치의 부패와 군축에 대한 저주가 언급돼 군부 독재 정권 수립에 의한 국가 개조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회원은 1931년 5월경에는 100여명까지 증가했지만 내부에는 파괴파·건설파·중간파의 3파가 있어 끊임없이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하시모토 · 쵸우 등을 중심으로 한 급진적인 그룹은 오카와 슈메이 등과 협력하여 1931년(쇼와 6년) 3월의 3월 사건, 같은 해 10월의 10월 사건을 계획하여 군부의 독주를 도왔다. 사쿠라회는 매월 회의 때 가이코샤를 이용하고 있었지만 이윽고 자금이 풍부해지자 급진파는 신바시 마스다야에서 기생들을 끼고 유희를 즐겼기 때문에 훗날 청년 장교들에게 "연회파"라고 불리게 되었다.

사쿠라회는 10월 사건 후에 해산되었지만 그 잔당들은 통제파 성향의 "청군파"라는 약소파벌을 형성했다.

황도파가 중앙에서의 신임을 잃자 5.15 사건과 아이자와 사건[6], 2.26 사건 등의 쿠데타 시도로 자멸하면서 자연스레 일본 제국 육군을 완전히 장악하고, 쇼와 천황의 묵인 속에 총력전 체제라는 명분으로 군국주의 체제를 수립한다. 통제파는 일본군의 지배적인 세력이 되었고, 견제 세력이 없어지자 1940년 정도에 파벌로서는 사라졌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공존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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