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문서: {{대성제국}} {{목차}} == 개요 == 대성사 중 대성제국의 역사이다. == 메이지 유신과 근대 국가의 성립 == === 천황 중심의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다. === 19세기 중반 개항 이후 에도 막부는 정치적 위기에 직면하였다. 외국과 체결한 불평등조약과 사회·경제적 혼란으로 막부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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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mb-[15px] border-solid border-[1px] border-black dark:border-white rounded-[5px] p-[12px]">'''사료2. 5개조의 서약문'''{{구분선}}하나, 널리 회의를 열어 공통된 의견에 따라 정할 것.<br>하나, 위아래 마음을 하나로 하여 세상을 활발히 다스릴 것.<br>하나, 문무관이 하나가 되고 서민에 이르기까지 각각 그 뜻을 이루게 하여 인심으로 하여금 지치지 않도록 해야 할 것.<br>하나, 지금까지의 나쁜 관습을 깨고 천지의 공도에 기초할 것.<br>하나, 지식을 세계에서 구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기초를 크게 분발시키고 일으킬 것.</div> | <div class="mb-[15px] border-solid border-[1px] border-black dark:border-white rounded-[5px] p-[12px]">'''사료2. 5개조의 서약문'''{{구분선}}하나, 널리 회의를 열어 공통된 의견에 따라 정할 것.<br>하나, 위아래 마음을 하나로 하여 세상을 활발히 다스릴 것.<br>하나, 문무관이 하나가 되고 서민에 이르기까지 각각 그 뜻을 이루게 하여 인심으로 하여금 지치지 않도록 해야 할 것.<br>하나, 지금까지의 나쁜 관습을 깨고 천지의 공도에 기초할 것.<br>하나, 지식을 세계에서 구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기초를 크게 분발시키고 일으킬 것.</div> | ||
=== 번을 폐지하고 중앙의 통치권을 강화하다 === | |||
신정부가 수립된 뒤에도 각 번은 토지와 주민을 지배하고 독자적인 재정과 군사력을 유지하였다. 정부는 전국에 통일된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 지방의 통치권을 중앙으로 모으고자 하였다. 먼저 [[1869년]] 번주들이 토지와 인민에 대한 지배권을 조정에 반환하도록 하는 '''판적봉환'''을 시행했다. 그러나 기존 번주들이 지번사에 임명되어 지방을 계속 다스렸기 때문에, 번의 영향력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 |||
이에 정부는 1871년 번을 폐지하고 부와 현을 설치하는 [[폐번치현 (본능)|'''폐번치현''']]을 단행한다. 중앙에서 임명한 지방관이 행정을 담당하게 되면서, 각 번에 나뉘어 있던 통치권이 중앙정부에 집중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 행정구역을 통합하여 지방 통치 체계를 정비하였다. 중앙정부는 이러한 변화를 바탕으로 전국적인 조세 제도와 군사 제도를 마련하였다. | |||
2026년 9월 13일 (일) 00:04 기준 최신판
개요
메이지 유신과 근대 국가의 성립
천황 중심의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다
19세기 중반 개항 이후 에도 막부는 정치적 위기에 직면하였다. 외국과 체결한 불평등조약과 사회·경제적 혼란으로 막부에 대한 불만이 커졌으며, 사쓰마번과 조슈번을 중심으로 막부타도운동이 전개되었다.
1867년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계속되는 막부타도운동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조정에 통치권을 반환 한 대정봉환이 일어났다. 그러나 통치권을 돌려받은 메이지 천황의 신정부는 도쿠가와 가문의 지위를 둘러싼 갈등은 계속되었다. 반막부 세력이 왕정복고를 추진하여 정권을 장악하자 구막부 세력과 신정부 사이에서 보신전쟁이 일어났다.
신정부는 천황의 권위를 바탕으로 세력을 결집하여 전쟁에서 우위를 차지하였다. 에도성을 넘겨받은 뒤 각지의 저항을 진압하였으며, 1869년 하코다테에 남아 있던 구막부 세력을 제압하였다. 이를 통해 신정부는 전국을 통치할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와 함께 신정부는 5개조의 서약문을 발표하여 공론에 따른 정치와 외국 지식의 수용을 개혁의 방향으로 제시하였다. 에도를 도쿄로 개칭하고 교토에서 도쿄로 정치적 중심지를 욺기며, 태정관을 중심으로 중앙 통치 기구를 정비하였다.
하나, 위아래 마음을 하나로 하여 세상을 활발히 다스릴 것.
하나, 문무관이 하나가 되고 서민에 이르기까지 각각 그 뜻을 이루게 하여 인심으로 하여금 지치지 않도록 해야 할 것.
하나, 지금까지의 나쁜 관습을 깨고 천지의 공도에 기초할 것.
하나, 지식을 세계에서 구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기초를 크게 분발시키고 일으킬 것.
번을 폐지하고 중앙의 통치권을 강화하다
신정부가 수립된 뒤에도 각 번은 토지와 주민을 지배하고 독자적인 재정과 군사력을 유지하였다. 정부는 전국에 통일된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 지방의 통치권을 중앙으로 모으고자 하였다. 먼저 1869년 번주들이 토지와 인민에 대한 지배권을 조정에 반환하도록 하는 판적봉환을 시행했다. 그러나 기존 번주들이 지번사에 임명되어 지방을 계속 다스렸기 때문에, 번의 영향력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에 정부는 1871년 번을 폐지하고 부와 현을 설치하는 폐번치현을 단행한다. 중앙에서 임명한 지방관이 행정을 담당하게 되면서, 각 번에 나뉘어 있던 통치권이 중앙정부에 집중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 행정구역을 통합하여 지방 통치 체계를 정비하였다. 중앙정부는 이러한 변화를 바탕으로 전국적인 조세 제도와 군사 제도를 마련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