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unist 1968 (토론 | 기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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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집권한 [[헬렌 질레]] 대통령은 해당 구역을 모두 철거하고 새로운 아빠트를 공급하겠다 하였으나 2006년 경 [[카이저하펜]] 2구역에서 있었던 철거민과 건설사의 충돌 사건으로 인해 크게 동력을 잃었다. | |||
2026년 기준으로 [[줴르하르드 뷔어르쯔]] 정부는 낡은 살림집과 판자촌을 정비하여 도시를 재생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다음은 그 명단이다. | 2026년 기준으로 [[줴르하르드 뷔어르쯔]] 정부는 낡은 살림집과 판자촌을 정비하여 도시를 재생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다음은 그 명단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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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쁘슈타드 쥐베슈타드]]: 이미 9만 1천호 규모 전면 철거 완료, 2022년 립주 | * [[카쁘슈타드 쥐베슈타드]]: 이미 9만 1천호 규모 전면 철거 완료, 2022년 립주 | ||
* [[빈뜨훅 쥐베슈타드]]: 2026년 1월 3만 2천호(전체 약 98.3%) 철거 완료 | * [[빈뜨훅 쥐베슈타드]]: 2026년 1월 3만 2천호(전체 약 98.3%) 철거 완료 | ||
* [[카이저하펜 쥐베슈타드]]: 2025년 전체 약 35%에 해당하는 2만 5천호 규모 재개발 조합 설립. 2030년 립주 목표 | |||
그러나 대부분 민간개발이 다수였으므로 해당 구역에 사는 인민들은 적절한 보상 없이 쫓겨나기 일쑤였다. 가령 역대 최대규모 재개발이었던 까프슈타드 남부 쥐베슈타드 개발의 경우 9만 1천호에 살던 22만 3,200명 중 약 10%에 불과한 2만여명만이 새로 지은 아빠트에 입주했다. 따라서 학자들은 이것이 쥐베슈타드위치만 외곽으로 옮길 뿐 빈민에 대한 진정한 대책이 아니라 지적한다. | 그러나 대부분 민간개발이 다수였으므로 해당 구역에 사는 인민들은 적절한 보상 없이 쫓겨나기 일쑤였다. 가령 역대 최대규모 재개발이었던 까프슈타드 남부 쥐베슈타드 개발의 경우 9만 1천호에 살던 22만 3,200명 중 약 10%에 불과한 2만여명만이 새로 지은 아빠트에 입주했다. 따라서 학자들은 이것이 쥐베슈타드위치만 외곽으로 옮길 뿐 빈민에 대한 진정한 대책이 아니라 지적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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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6일 (화) 13:23 기준 최신판
| 쥐베슈타드 Süwestadt (도이췰란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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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성 | 1946년 (요하네스부르그) 1970년 ~ 1980년 (전국) |
|---|---|
| 위치 | 요하네스부르그 등 남아프리카 전역 도시 외곽[1] |
| 거주민 수 | 4,355,493명 (2026년 인구조사 기준) |
개요
남아프리카련맹의 도시외곽에서 볼 수 있는 흑인 빈민지구이다. 2023년 인구조사 기준으로 남아프리카련맹 흑인 인구 7,000만 명 중 약 7%인 470만 명이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력사
쥐베슈타드라는 이름은 남 - 서쪽(Süd-West)에 있는 도시(Stadt)라는 의미이다. 가장 처음 세워졌으며 현재 최대 규모인 쥐베슈타드는 요하네스부르그 외곽에 있다. 이 마을은 1946년 마티아스 샤이닝 총독의 도시정비 정책에 따라 도심에서 쫓겨난 흑인들이 요하네스부르그 경계에서 약 5km 떨어진 구릉지에 미허가 판자촌을 지으면서 생겨났다. 1965년 기준으로 약 7,400명이 이곳에서 살고 있었다.
이후 점차 규모가 커지다가 1970년 7.17인민봉기 당시 군사파쇼정권이 반정부 인사와 도시 빈민을 이곳으로 강제이주시키면서 유명해졌다. 요하네스부르그 시민 1만 3천명이 제대로 된 거주시설조차 변변치 않았던 이곳으로 이주당했다. 흑인 뿐 아니라 좌익 성향의 백인정치가나 혼혈 로동자들도 이곳으로 이주되었다. 이들은 불건전인민으로 취급받아 사회복지에서 렬외되였다.
군사파쇼정권은 1972년 이곳에 도시빈민과 반정부인사를 수용하기 위한 살림집 1만 3천호를 건설했는데 대체로 부실공사의 산물이었고 교화시설이나 다름이 없었다. 탈출이 금지되였고 통행증 없이 이곳을 벗어나면 총격이 가해졌다.
이후 1980년까지 힐베르뜨 엥그홀름 대통령의 지시 하에 요하네스부르그, 카쁘슈타드, 릴롱그웨, 카프리비, 빈뜨훅 등 주요 대도시에 이런 종류의 교화 살림집이 여럿 건설되였으니 그 수만 해도 30만 호가 넘었고 동 수는 수 천 동에 달하였다. 그러나 말이 살림집이지 실상을 렬악하여 6평 정도의 방 크기에 온가족이 살아야했고 수도나 난방조차 되지 않았다. 특히 정치범의 경우 가보로네에 있는 가보로네자유아빠트(1,500호)에 수용되여 막사 집단 생활을 하였다.
1980년 7월 릴롱그웨의 한 아빠트에서 부실공사로 13층짜리 고층아빠트가 무너져 557명이 깔려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정부가 이 사건을 덮기에 급급했기 때문에 실제 사망자 수는 1,500명이 넘을 수 있다는 것이 현지 력사학자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릴롱그웨 고층살림집 붕괴 사고로 대대적인 시위가 일어나고 때마침 엥그홀름 대통령이 폭사하면서 이후로는 이런 교화시설이 더이상 지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 수백만의 도시 빈민과 인종차별정책으로 내쫓긴 흑인들이 이곳 근처에서 판자집을 지어 살거나 혹은 빈집에 들어가 살면서 이곳은 도시빈민지구의 대명사가 되였다. 1980년대에는 남아프리카인민해방전선의 주요 도시 연락 시설로도 활용되였다. 1987년 국제단체의 비공식 조사에서 쥐베슈타드라 불린 아빠트지구에 거주하는 인구 수는 251만 3,500명이였고 그 근방 판자촌에 사는 인구까지 합치면 인구의 1할에 달하는 871만 8,000명이였다.
민주화된 이후로도 이 지구에 대한 해결책이 미비했으며 사실상 방치되다시피하여 민영화가 극에 달한 1992년 경에는 1,000만에 달하는 인구가 이러한 빈민가에 살았다.
현황
살림집이 노후화되어 철거되거나 혹은 도시개발로 사라지는 등 하여 전성기 시기에 비해서는 인구가 1/2 정도 줄었지만 여전히 450만여명 정도가 이러한 노후살림시설 혹은 판자집에 살고 있다.
2008년 집권한 헤르베르트 음브즈와지는 250만호의 림대 고층살림집(이른바 "볼크스호프 Volkshof") 건설 계획을 하였고 이에 따라 노후살림집에 살던 흑인과 빈민 약 60%가 선립주권을 받고 볼크스호프로 집을 옮기였다. 그렇게 남겨진 쥐베슈타드 아빠트는 대부분 철거되였으나 일부 시설은 재활용되여 동네 사무실이나 경찰서 등으로도 쓰이고 있다.
그러나 2020년대 이후로는 불경기의 영향으로 살림집을 새로 짓는 수가 크게 줄어들면서 여전히 50만여명 정도는 낡은 살림집에 살고 있다.
또한 420만 명 가까이 되는 인구가 여전히 시설이 렬악한 근방의 무허가 판자촌에 거주하고 있다. 이들 대다수가 로동계급이다.
재개발 계획
2004년 집권한 헬렌 질레 대통령은 해당 구역을 모두 철거하고 새로운 아빠트를 공급하겠다 하였으나 2006년 경 카이저하펜 2구역에서 있었던 철거민과 건설사의 충돌 사건으로 인해 크게 동력을 잃었다.
2026년 기준으로 줴르하르드 뷔어르쯔 정부는 낡은 살림집과 판자촌을 정비하여 도시를 재생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다음은 그 명단이다.
- 요하네스부르그 쥐베슈타드: 전체 약 40%에 해당하는 7만호 규모 재개발 조합 설립 완료(2023년), 2027년 이주 및 철거, 2029년 재립주 계획
- 릴롱그웨 쥐베슈타드: 전면철거 계획, 재개발 조합 설립 완료(2026년)
- 카쁘리비 쥐베슈타드: 전체 약 15%에 해당하는 1만 3천호 소규모 재개발 조합 설립 완료(2021년), 2023년 이주 및 철거, 2026년 2만 호 규모로 립주 시작
- 블룸뽄떼인 쥐베슈타드: 전면 철거(약 15만호) 철거 계획, 2026년 현재 철거중
- 가보로네 쥐베슈타드: 전체 약 80%에 해당하는 4만 1천호 규모 재개발 조합 설립 완료(2024년), 2029년 이주 및 철거, 2033년 재립주 계획
- 카쁘슈타드 쥐베슈타드: 이미 9만 1천호 규모 전면 철거 완료, 2022년 립주
- 빈뜨훅 쥐베슈타드: 2026년 1월 3만 2천호(전체 약 98.3%) 철거 완료
- 카이저하펜 쥐베슈타드: 2025년 전체 약 35%에 해당하는 2만 5천호 규모 재개발 조합 설립. 2030년 립주 목표
그러나 대부분 민간개발이 다수였으므로 해당 구역에 사는 인민들은 적절한 보상 없이 쫓겨나기 일쑤였다. 가령 역대 최대규모 재개발이었던 까프슈타드 남부 쥐베슈타드 개발의 경우 9만 1천호에 살던 22만 3,200명 중 약 10%에 불과한 2만여명만이 새로 지은 아빠트에 입주했다. 따라서 학자들은 이것이 쥐베슈타드위치만 외곽으로 옮길 뿐 빈민에 대한 진정한 대책이 아니라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