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unist 1968 (토론 | 기여) (→선거 결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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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3" | <div style="margin: -0px -9px;">[[파일:1987년 브라질 대선.png|500px]]<br><div style="margin: -5px -9px">{{글씨 크기|8.5|'''결선 투표'''의 지역별 결과}}</div> | | colspan="3" | <div style="margin: -0px -9px;">[[파일:1987년 브라질 대선.png|500px]]<br><div style="margin: -5px -9px">{{글씨 크기|8.5|'''결선 투표'''의 지역별 결과}}</div> |
2022년 11월 2일 (수) 01:45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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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관의 모든 인물, 사건, 단체, 국가는 가상이며 현실의 어떠한 인물이나 단체도 찬양하거나 비하할 의도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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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브라질 대통령 선거 Eleição presidencial no Brasil em 198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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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율 | 82.40% (1차) 80.62% (2차) | ||||||
선거 결과 | |||||||
후보자 | 국가재건당 페르난두 콜로르 |
사회노동자당 룰라 다 시우바 | |||||
1차 투표 | |||||||
37.9% 25,632,153 |
25.4% 17,178,277 | ||||||
결선 투표 | |||||||
60.3% 39,898,317 |
39.7% 26,268,045 | ||||||
대통령 당선인 | |||||||
국가재건당 페르난두 콜로르 |
개요
선거 결과 국가재건당의 페르난두 콜로르 후보가 60.7%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배경
1985년, 브라질의 군사독재 정권은 체육관 선거로 20여년에 걸친 독재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대내외적으로 브라질의 장기 경제 불황과 독재에 대한 피로감이 터져나오고 있었고 결국 1985년 연말부터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군사독재정 반대 시위가 산발적으로 이어졌다. 그러던 중, 대학생 에르네스토 쿠리우(Ernesto Curio)가 의문의 사망을 당한채 발견된다. 처음에 경찰은 쿠리우 학생이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밝혔으나, 후일 고문에 의한 치사로 드러나며 전국민적 분노가 집중되었고 시위는 겉잡을 수 없이 확산되었다. 미국 정부까지 브라질에 개입하자, 결국 브라질 군부는 6.28 선언을 발표해 민정 이양을 약속하게 된다.
브라질의 좌파 진영은 브라질 사회노동자당을 설립, 노조 지도자인 룰라 다 시우바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였다. 초기에는 룰라가 당선될 것이라는 예상이 줄지었으나, 급진 좌파의 당선에 거부감을 가지는 중산층들이 결집하며 점차 룰라의 지지율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때 군사 정권 시기 재무부 차관을 지냈던 40대의 젊은 정치인 페르난두 콜로르가 대권 후보로 급부상하며 우파의 표를 결집시켰다. 그는 기존 우파 후보의 지지도 1위를 달리던 마리우 쿠바스를 제치고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군사 독재 연장을 거부하는 청년층과 좌파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룰라의 지지자들이 결집하며 선거는 백중세로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