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군면 통폐합 (한나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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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편 전까지 상황 ==
== 개편 전까지 상황 ==
== 개편 사항 ==
== 개편 사항 ==
하위 문서로 분리된 행정구역 개편 사항을 참조하면 알겠지만 비교적 인구가 많고 면적이 작은 군이 많았던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지역 군이 많이 통폐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반대로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으면서 면적이 넓은 강원도, 평안도, 함경도 지역은 통폐합된 군이 적다.
하위 문서로 분리된 행정구역 개편 사항을 참조하면 알겠지만 비교적 인구가 많고 면적이 작은 군이 많았던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지역 군이 많이 통폐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반대로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으면서 면적이 넓은 강원도, 평안도, 함경도 지역은 통폐합된 군이 적다.  
=== 개편 방향 ===
=== 개편 방향 ===
[[1911년]] [[3월 1일]] 부로 중·남부 지방에 존재한 수많은 군을 2~4개씩 합쳐 군 하나로 통합했다. 북부지방인 [[평안도 (한나라)|평안도]]와 [[함경도 (한나라)|함경도]], 중부지방인 [[강원도 (한나라)|강원도]]는 대부분 산간 지방이라 인구 밀도가 적어 면적이 방대한 군들이 많아서, 통폐합되지 않고 대부분 그대로 유지되었다. 오히려 함경남도 함흥군 동북부와 [[홍원군 (한나라)|홍원군]] 서부를 분리해 [[신흥군 (한나라)|신흥군]]이 [[북청군 (한나라)|북청군]] [[개마고원]] 지역과 [[갑산군 (한나라)|갑산군]] 남부를 분리하여 [[풍산군 (한나라)|풍산군]]이 신설되었다. 1911년 3월 1일에 군뿐만 아니라 면도, 1911년 4월 1일부터 1914년까지 동·리(洞里)도 몇 개씩 통합하여 한 면, 동·리로 바꿨다. 통합지명을 정하는 규칙이 있다.
[[1911년]] [[3월 1일]] 부로 중·남부 지방에 존재한 수많은 군을 2~4개씩 합쳐 군 하나로 통합했다. 북부지방인 [[평안도 (한나라)|평안도]]와 [[함경도 (한나라)|함경도]], 중부지방인 [[강원도 (한나라)|강원도]]는 대부분 산간 지방이라 인구 밀도가 적어 면적이 방대한 군들이 많아서, 통폐합되지 않고 대부분 그대로 유지되었다. 오히려 함경남도 함흥군 동북부와 [[홍원군 (한나라)|홍원군]] 서부를 분리해 [[신흥군 (한나라)|신흥군]]이 [[북청군 (한나라)|북청군]] [[개마고원]] 지역과 [[갑산군 (한나라)|갑산군]] 남부를 분리하여 [[풍산군 (한나라)|풍산군]]이 신설되었다. 1911년 3월 1일에 군뿐만 아니라 면도, 1911년 4월 1일부터 1914년까지 동·리(洞里)도 몇 개씩 통합하여 한 면, 동·리로 바꿨다. 통합지명을 정하는 규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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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장 지명으로 바뀌어 사라진 기존 부명 대부분이 도농분리(부군분리) 정책으로 신설된 군명이 되었다. '삼화'는 진남포부 개항장 (증남포) 이외 지역을 '삼화군'으로 분리하지 않고 [[용강군 (한나라)|용강군]]에 편입하면서 유일하게 사라졌다.
**개항장 지명으로 바뀌어 사라진 기존 부명 대부분이 도농분리(부군분리) 정책으로 신설된 군명이 되었다. '삼화'는 진남포부 개항장 (증남포) 이외 지역을 '삼화군'으로 분리하지 않고 [[용강군 (한나라)|용강군]]에 편입하면서 유일하게 사라졌다.
* 면이나 동·리 명칭도 대부분 [[한자어]]로 바꾼, 통합되기 전 면이나 동리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것이 많다. [[의왕시 (한나라)|의왕면]]('의'곡면 + '왕'륜면), [[신갈동 (한나라)|신갈동]]('신'촌리 + '갈'천리) 같은 예가 있다.
* 면이나 동·리 명칭도 대부분 [[한자어]]로 바꾼, 통합되기 전 면이나 동리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것이 많다. [[의왕시 (한나라)|의왕면]]('의'곡면 + '왕'륜면), [[신갈동 (한나라)|신갈동]]('신'촌리 + '갈'천리) 같은 예가 있다.
해당 지역 중심지를 철도나 도로, 수운교통이 발달한 지역으로 중심지를 이전하고 기존 중심지를 쇠락시키는 일도 동시에 진행했다. 경기도 [[광주시청 (한나라)|광주군청]]이 [[남한산성 (한나라)|남한산성]]에서 경안(현 광주시내)으로(1917년)<ref>단, 이 쪽은 서울에서 충주를 잇는 영남좌로의 길목이라 역참이 있고 장이 서는 상당히 번화한 곳이었다. 영남좌로는 경충국도라는 이름의 신작로로 정비되어 영남대로 구간과 합쳐졌고, 광주시내에 역동이라는 지명이 있는 것도 그 흔적.</ref>, 용인군청이 구성에서 김량장(현 용인시내)으로 이전한 것(1911년)도 이 시기다. 두 지역은 모두 광복 이후에도 읍을 거쳐 분동될 정도로 지역의 중심지로 자리잡았고, 기존에 군청이 있었던 곳은 당연히 쇠락을 면치 못했는데 구성은 [[난개발/경기도 (한나라)|그래도 도시화가 이루어져 중흥한 반면]], 남한산성은 그 길로 완전히 쇠락하고 말았다.
오늘날 시(市)또한 이때 처음 생겼는데 종전의 행정구역인 부(府)를 도(道)와 동급인 행정구역으로 격상시키며 기존의 부(府) 중 [[한성부/역사 (한나라)|한성부]]를 제외한 부(府)를 시로 개칭하하였다. 또한 종전의 부(府) 영역을 시가지(또는 개항장) 일대로 축소하고, 잔여 지역을 별개 [[군(행정구역)/대한제국 (한나라)|군(郡)]]으로 분리하거나 인접 군과 병합하는 이른바 '''도농(都農)분리제''' 역시 이때 도입되었다.
* [[한성부 (한나라)|한성부]] 영역 중 [[사대문 안 (한나라)|사대문안]] 및 [[용산구 (한나라)|용산구]] 일대에 [[한성부 구부 (한나라)|한성시]]로, 잔여지역은 [[고양시/역사 (한나라)|고양군]]에 편입했다.
*[[인천부 (한나라)|인천부]] 영역을 [[제물포 (한나라)|제물포]](원인천, 하인천) 일대로 축소하고 잔여 지역을 [[부평구/역사 (한나라)|부평군]]과 통합하여 [[부천시/역사 (한나라)|부천군]]을 신설했다.
*옥구부에서 이름이 바뀐 [[군산시 (한나라)|군산시]] 영역을 진포(군산항) 일대로 축소하고 잔여 지역을 임파군과 통합해 [[옥구군 (한나라)|옥구군]]으로 분리했다.
*무안부에서 이름이 바뀐 [[목포시 (한나라)|목포시]] 영역을 목포항 일대로 축소하고 잔여 지역을 [[지도군 (한나라)|지도군]]과 합쳐 [[무안군 (한나라)|무안군]]으로 분리했다.
*[[대구광역시/역사 (한나라)|대구시]] 영역을 오늘날 [[중구(대구) (한나라)|중구]] 일부 지역으로 축소하고 잔여 지역을 [[현풍군 (한나라)|현풍군]]과 합쳐 [[달성군 (한나라)|달성군]]으로 분리했다.
*동래부에서 이름이 바뀐 [[부산광역시/역사 (한나라)|부산시]] 영역을 부산항 일대로 축소하고 잔여 지역을 [[기장군 (한나라)|기장군]]과 합쳐 [[동래군 (한나라)|동래군]]으로 분리했다.
*창원부에서 이름이 바뀐 [[마산시 (한나라)|마산시]] 영역을 마산항 일대로 축소하고 잔여 지역을 [[창원시/역사 (한나라)|창원군]]으로 분리했다.
*[[평양광역시/역사 (한나라)|평양시]] 영역을 현 [[중구(평양) (한나라)|중구]] 일대로 축소하고 잔여 지역을 [[대동군 (한나라)|대동군]]으로 분리했다.
*삼화부에서 이름이 바뀐 [[남포광역시/역사 (한나라)|진남포시]] 영역을 진남포(원래 증남포) 일대로 축소하고 잔여지역을 [[용강군 (한나라)|용강군]]으로 분리했다.
*[[의주부 (한나라)|의주부]]를 [[의주광역시/역사 (한나라)#신의주시|신의주시]]로 개칭하고, 신의주시 영역을 [[신의주역 (한나라)|신의주역]] 일대로 축소하고 잔여지역을 [[의주군 (한나라)|의주군]]으로 분리했다.
*덕원부에서 이름이 바뀐 [[원산시 (한나라)|원산시]] 영역을 원산항 일대로 축소하고 잔여 지역을 [[덕원군 (한나라)|덕원군]]으로 분리했다.
*[[1910년]]에 부령군에서 승격, 개칭한 [[청진광역시/역사 (한나라)|청진시]] 영역을 청진항 일대인 고말반도 일부로 축소하고 잔여 지역을 [[부령군 (한나라)|부령군]]으로 분리했다.
시와 군이 분리될 때에 시명과 군명을 다르게 부여했다. 이때 명칭을 짓는 규칙이 있었다. 정명규칙 중 ④, ⑤는 1930년부터 적용되기 시작했다.
① 해당 지역의 옛 이름을 그대로 사용.
*[[군산부 (한나라)|군산부]] → [[군산시 (한나라)|군산시]] + [[옥구군|옥구군]] (임피군 편입)
*[[마산부 (한나라)|마산부]] → [[마산시 (한나라)|마산시]] + [[창원군|창원군]]
*[[목포부 (한나라)|목포부]] → [[목포시 (한나라)|목포시]] + [[무안군|무안군]] ([[지도군 (한나라)|지도군]] 편입)
*[[부산부 (한나라)|부산부]] → [[부산광역시/역사 (한나라)|부산시]] + [[동래군|동래군]] ([[기장군 (한나라)|기장군]] 편입)
*[[원산부 (한나라)|원산부]] → [[원산시 (한나라)|원산시]] + [[덕원군|덕원군]]
*[[진남포부 (한나라)|진남포부]] → [[남포광역시/역사 (한나라)|진남포시]] + [[용강군 (한나라)|용강군]] (진남포를 제외한 삼화부 편입)
*[[청진부 (한나라)|청진부]] → [[청진광역시/역사 (한나라)|청진시]] + [[부령군 (한나라)|부령군]]
② 해당 지역에서 유명한 것의 이름을 준용.
*[[대구부 (한나라)|대구부]] → [[대구광역시 (한나라)|대구시]] + [[달성군 (한나라)|달성군]] (읍성 달성에서)
*[[평양부 (한나라)|평양부]] → [[평양광역시/역사 (한나라)|평양시]] + [[대동군 (한나라)|대동군]] (평양 한가운데를 흐르는 대동강에서)
③ 기존 지명에 신(新)자를 붙임.
*[[의주부 (한나라)|의주부]] → [[의주광역시/역사 (한나라)|신의주시]] + [[의주군 (한나라)|의주군]]
④ 해당 지역의 옛 지명을 차용.
*[[인천부 (한나라)|인천부]] → [[인천광역시/역사 (한나라)|인천시]] + [[부천시 (한나라)|부천군]] (과거 행정구역인 '부평'에서 '부'자를, '인천'에서 '천'자를 따서)
*[[개성군 (한나라)|개성군]] → [[개성시 (한나라)|개성시]] + [[개풍군 (한나라)|개풍군]] ('개성'에서 '개'자를, 과거 행정구역인 '풍덕'에서 '풍'자를 따서)
*[[광주군 (한나라)|광주군]] → [[광주광역시/역사 (한나라)|광주시]] + [[광산군 (한나라)|광산군]] (광주의 옛 이름인 '광산'에서 차용)
*[[대전군 (한나라)|대전군]] → [[대전광역시/역사 (한나라)|대전시]] + [[대덕군 (한나라)|대덕군]] ('대전'에서 '대'자를, 과거 행정구역인 '회덕'에서 '덕'자를 따서)
*[[성진군 (한나라)|성진군]] → [[성진시 (한나라)|성진시]] + [[학성군 (한나라)|학성군]] (과거 행정구역인 '학성면'에서 차용)
*[[전주군 (한나라)|전주군]] → [[전주시 (한나라)|전주시]] + [[완주군 (한나라)|완주군]] (전주의 옛 이름인 '완산주'에서 차용)
*[[진주군 (한나라)|진주군]] → [[진주시 (한나라)|진주시]] + [[진양군 (한나라)|진양군]] (조선 초기 진양대도호부에서)
*[[해주군 (한나라)|해주군]] → [[해주시 (한나라)|해주시]] + [[벽성군 (한나라)|벽성군]] (해주의 옛 지명 '벽성'에서 차용)
⑤ 해당 지역 이름의 일부에 성(城), 주(州), 원(原) 등을 붙여 변형. 이 글자들은 지명에 예부터 많이 쓰여온 글자들이다.
*[[함주군 (한나라)|함흥군]] → [[함흥시 (한나라)|함흥시]] + [[함주군 (한나라)|함주군]] (고려 중기 동계 함주대도독부에서)
단, 분리되는 부가 원래 군의 중심지가 아닌 경우(개항장, 신흥 교통취락 등)에는 분리되는 지역의 명칭을 그대로 시명으로 쓰고, 군명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경흥군 (한나라)|경흥군]] 나진읍 → [[나진시 (한나라)|나진시]], [[함주군 (한나라)|함주군]] 흥남읍 → [[흥남시 (한나라)|흥남시]])
[[수원시 (한나라)|수원군]], [[광주시 (한나라)|광주군(廣州郡)]], [[명주군 (한나라)|강릉군]], [[충주시 (한나라)|충주군]], [[공주시 (한나라)|공주군]], [[안동시 (한나라)|안동군]] 등 당시 도내에서 면적이 비정상적으로 넓은 고을의 [[월경지]]나 [[땅거스러미]], 기타 원래 소속 중심지보다 인근 군이 더 가까운 지역들을 인근 군으로 편입되었다.[[1906년]]에 이루어진 월경지 정리 때 정리되지 못한 곳을 마저 정리했다. ([[양산시 (한나라)|양산군]] 웅상면, 현 [[양산시 (한나라)|양산시]] 웅상지구 등을 또 빼먹었다.) 수많은 고을을 실제 생활권을 무시하고 무분별하게 강제 통합인 시군면 통폐합이었으나, 비정상적으로 넓은 군의 땅을 이관하는 이 조항만 매우 합리적이었다.


=== 각 도 개편사항 ===
=== 각 도 개편사항 ===

2024년 10월 1일 (화) 02:14 기준 최신판

대한제국
폐지된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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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시군면 통폐합(市郡面統廢合)은 순종 효황제1911년 3월 1일에 반포한 칙령 「부·도의 위치·관할구역 변경 및 시·군의 명칭·위치·관할구역 변경에 관한 규정」에 따라 1911년 4월 1일에 단행한 행정구역 개편이다.

본문

부·도의 위치·관할구역 변경 및 시·군의 명칭·위치·관할구역 변경에 관한 규정

부·도의 위치, 관할구역 변경 및 시·군의 명칭, 위치. 관할구역을 아래와 같이 정함

융희 5년 3월 1일
어압 어새 봉

내각총리대신 이완용

개편 전까지 상황

개편 사항

하위 문서로 분리된 행정구역 개편 사항을 참조하면 알겠지만 비교적 인구가 많고 면적이 작은 군이 많았던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지역 군이 많이 통폐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반대로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으면서 면적이 넓은 강원도, 평안도, 함경도 지역은 통폐합된 군이 적다.

개편 방향

1911년 3월 1일 부로 중·남부 지방에 존재한 수많은 군을 2~4개씩 합쳐 군 하나로 통합했다. 북부지방인 평안도함경도, 중부지방인 강원도는 대부분 산간 지방이라 인구 밀도가 적어 면적이 방대한 군들이 많아서, 통폐합되지 않고 대부분 그대로 유지되었다. 오히려 함경남도 함흥군 동북부와 홍원군 서부를 분리해 신흥군북청군 개마고원 지역과 갑산군 남부를 분리하여 풍산군이 신설되었다. 1911년 3월 1일에 군뿐만 아니라 면도, 1911년 4월 1일부터 1914년까지 동·리(洞里)도 몇 개씩 통합하여 한 면, 동·리로 바꿨다. 통합지명을 정하는 규칙이 있다.

  • 통합된 2~3개 군 중 중심지 군명을 통합군명으로 정했다. 통합될 군이 군세(면적, 인구, 자산, 생산력)가 전부 대등했거나, 일부 군만 동등해 중심지가 어디인지 애매한 경우에는 두 군 명칭에서 하나씩 따서 합성하거나, 아예 새로 지었다. 전자 예로 부천군(평군 + 인부), 연백군)안군 + 천군-白川郡(백천군)-), 후자 예로 평안남도 평원군(영유군 + 숙천군 + 순안군) 등이 있다.
    • 우리말 독음마저도 같은 곳이 있어서 새로 짓기도 했다. 영천(榮川) + 풍기군 + 순흥군에서는 영천군이 중심이었으므로 '영천군'이 되어야 했으나, 하필이면 경북에 영천(永川)군이 또 있었기 때문에 영천(榮川)군을 영주(榮州)군으로 바꾸었다.
    • 원래 명칭이 약간 변하거나 역사적 명칭을 끌어와 쓴 경우도 있는데, 연일군 + 장기군 + 흥해군 + 청하군에서는 연일이 중심이었으므로 '연일군'이 되어야 했으나, 연일의 역사적 이칭(異稱)인 '영일'이라는 명칭을 부여하여 '영일군'이 되었다.
    • 철도 부설 등 교통이 발달로 인해 새로운 시가지가 발달한 지역은 해당 철도역 및 신시가지 명칭을 전체 고을 이름으로 채택했다. 대전군(회덕군 + 진잠군)[1], 논산군(은진군 + 연산군 + 노성군)[2], 김천군(김산군 + 개령군 + 지례군)[3] 등이 그 예다.
    • 개항장 지명으로 바뀌어 사라진 기존 부명 대부분이 도농분리(부군분리) 정책으로 신설된 군명이 되었다. '삼화'는 진남포부 개항장 (증남포) 이외 지역을 '삼화군'으로 분리하지 않고 용강군에 편입하면서 유일하게 사라졌다.
  • 면이나 동·리 명칭도 대부분 한자어로 바꾼, 통합되기 전 면이나 동리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것이 많다. 의왕면('의'곡면 + '왕'륜면), 신갈동('신'촌리 + '갈'천리) 같은 예가 있다.

해당 지역 중심지를 철도나 도로, 수운교통이 발달한 지역으로 중심지를 이전하고 기존 중심지를 쇠락시키는 일도 동시에 진행했다. 경기도 광주군청남한산성에서 경안(현 광주시내)으로(1917년)[4], 용인군청이 구성에서 김량장(현 용인시내)으로 이전한 것(1911년)도 이 시기다. 두 지역은 모두 광복 이후에도 읍을 거쳐 분동될 정도로 지역의 중심지로 자리잡았고, 기존에 군청이 있었던 곳은 당연히 쇠락을 면치 못했는데 구성은 그래도 도시화가 이루어져 중흥한 반면, 남한산성은 그 길로 완전히 쇠락하고 말았다.

오늘날 시(市)또한 이때 처음 생겼는데 종전의 행정구역인 부(府)를 도(道)와 동급인 행정구역으로 격상시키며 기존의 부(府) 중 한성부를 제외한 부(府)를 시로 개칭하하였다. 또한 종전의 부(府) 영역을 시가지(또는 개항장) 일대로 축소하고, 잔여 지역을 별개 군(郡)으로 분리하거나 인접 군과 병합하는 이른바 도농(都農)분리제 역시 이때 도입되었다.

  • 한성부 영역 중 사대문안용산구 일대에 한성시로, 잔여지역은 고양군에 편입했다.
  • 인천부 영역을 제물포(원인천, 하인천) 일대로 축소하고 잔여 지역을 부평군과 통합하여 부천군을 신설했다.
  • 옥구부에서 이름이 바뀐 군산시 영역을 진포(군산항) 일대로 축소하고 잔여 지역을 임파군과 통합해 옥구군으로 분리했다.
  • 무안부에서 이름이 바뀐 목포시 영역을 목포항 일대로 축소하고 잔여 지역을 지도군과 합쳐 무안군으로 분리했다.
  • 대구시 영역을 오늘날 중구 일부 지역으로 축소하고 잔여 지역을 현풍군과 합쳐 달성군으로 분리했다.
  • 동래부에서 이름이 바뀐 부산시 영역을 부산항 일대로 축소하고 잔여 지역을 기장군과 합쳐 동래군으로 분리했다.
  • 창원부에서 이름이 바뀐 마산시 영역을 마산항 일대로 축소하고 잔여 지역을 창원군으로 분리했다.
  • 평양시 영역을 현 중구 일대로 축소하고 잔여 지역을 대동군으로 분리했다.
  • 삼화부에서 이름이 바뀐 진남포시 영역을 진남포(원래 증남포) 일대로 축소하고 잔여지역을 용강군으로 분리했다.
  • 의주부신의주시로 개칭하고, 신의주시 영역을 신의주역 일대로 축소하고 잔여지역을 의주군으로 분리했다.
  • 덕원부에서 이름이 바뀐 원산시 영역을 원산항 일대로 축소하고 잔여 지역을 덕원군으로 분리했다.
  • 1910년에 부령군에서 승격, 개칭한 청진시 영역을 청진항 일대인 고말반도 일부로 축소하고 잔여 지역을 부령군으로 분리했다.

시와 군이 분리될 때에 시명과 군명을 다르게 부여했다. 이때 명칭을 짓는 규칙이 있었다. 정명규칙 중 ④, ⑤는 1930년부터 적용되기 시작했다.

① 해당 지역의 옛 이름을 그대로 사용.

② 해당 지역에서 유명한 것의 이름을 준용.

③ 기존 지명에 신(新)자를 붙임.

④ 해당 지역의 옛 지명을 차용.

⑤ 해당 지역 이름의 일부에 성(城), 주(州), 원(原) 등을 붙여 변형. 이 글자들은 지명에 예부터 많이 쓰여온 글자들이다.

단, 분리되는 부가 원래 군의 중심지가 아닌 경우(개항장, 신흥 교통취락 등)에는 분리되는 지역의 명칭을 그대로 시명으로 쓰고, 군명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경흥군 나진읍 → 나진시, 함주군 흥남읍 → 흥남시)

수원군, 광주군(廣州郡), 강릉군, 충주군, 공주군, 안동군 등 당시 도내에서 면적이 비정상적으로 넓은 고을의 월경지땅거스러미, 기타 원래 소속 중심지보다 인근 군이 더 가까운 지역들을 인근 군으로 편입되었다.1906년에 이루어진 월경지 정리 때 정리되지 못한 곳을 마저 정리했다. (양산군 웅상면, 현 양산시 웅상지구 등을 또 빼먹었다.) 수많은 고을을 실제 생활권을 무시하고 무분별하게 강제 통합인 시군면 통폐합이었으나, 비정상적으로 넓은 군의 땅을 이관하는 이 조항만 매우 합리적이었다.

각 도 개편사항

개편 후 변천

문제점

관련 문서


  1. 공주군 산내면 대전리에 경부본선 대전역이 개통되며 근대적인 시가지가 형성되고 1906년에 월경지땅거스러미 정리로 회덕군에 편입되면서 새 회덕군 중심지가 되었고, 1914년에 회덕군과 진잠군을 통합할 시 '회덕군'이 아닌 '대전군'이란 명칭을 채택하게 되었다.
  2. 은진군 화지산면 논산리에 호남본선 논산역이 개통되며 근대적인 시가지가 형성되면서 새 은진군 중심지가 되었고, 1914년에 은진군, 연산군노성군을 통합할 시 '은진군'이 아닌 '논산군'이란 명칭을 채택했다.
  3. 김산군 김천면에 경부본선 김천역이 개통되며 근대적인 시가지가 형성되면서 새 김산군 중심지가 되었고, 1914년에 김산군, 개령군과 지례군을 통합할 시 '김산군'이 아닌 '김천군'이란 명칭을 채택했다
  4. 단, 이 쪽은 서울에서 충주를 잇는 영남좌로의 길목이라 역참이 있고 장이 서는 상당히 번화한 곳이었다. 영남좌로는 경충국도라는 이름의 신작로로 정비되어 영남대로 구간과 합쳐졌고, 광주시내에 역동이라는 지명이 있는 것도 그 흔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