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위 부산제6보병사단 (당신들의 조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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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위 부산제6보병사단의 실질적 전신은 [[방호산 (당신들의 조선)|방호산]]이 사단장을 지내고 있었던 중국 인민해방군의 제166사단이다. 이들은 과거 김원봉 산하의 조선의용대 화북지대 소속으로 활동하였으나 1942년 5월 그들의 본부였던 조선의용대 사령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사 조직이었던 한국광복군 제1지대로 편입되면서 그들로부터 갈라져 나오게 되었다. 이들은 1942년 7월 10일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를 조선의용군으로 개편하였으며 당시 팔로군의 포병사령관을 지내고 있던 [[김무정 (당신들의 조선)|김무정]]을 초대 사령관으로 추대하였다.
근위 부산제6보병사단의 실질적 전신은 [[방호산 (당신들의 조선)|방호산]]이 사단장을 지내고 있었던 중국 인민해방군의 제166사단이다. 이들은 과거 김원봉 산하의 조선의용대 화북지대 소속으로 활동하였으나 1942년 5월 그들의 본부였던 조선의용대 사령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사 조직이었던 한국광복군 제1지대로 편입되면서 그들로부터 갈라져 나오게 되었다. 이들은 1942년 7월 10일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를 조선의용군으로 개편하였으며 당시 팔로군의 포병사령관을 지내고 있던 [[김무정 (당신들의 조선)|김무정]]을 초대 사령관으로 추대하였다.


조선의용군은 1945년 8월 9일 팔로군 총사령관 주더하이의 명령에 따라 일본군과의 전투를 위해 만주로 진입하였다. 일본이 패망한 이후 조선의용군은 그 기세를 몰아 조선반도로 진군할 작정도 하였으나 조선의용군으로부터 조선반도 정계의 주도권을 빼앗길 것을 우려한 소련의 반대로 이것은 무산되었으며 그들은 이후 만주에 그대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후 조선의용군은 동북민주연군, 동북인민해방군으로 개편되었다.
조선의용군은 1945년 8월 9일 팔로군 총사령관 주더의 명령에 따라 일본군과의 전투를 위해 만주로 진입하였다. 일본이 패망한 이후 조선의용군은 그 기세를 몰아 조선반도로 진군할 작정도 하였으나 조선의용군으로부터 조선반도 정계의 주도권을 빼앗길 것을 우려한 소련의 반대로 이것은 무산되었으며 그들은 이후 만주에 그대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후 조선의용군은 동북민주연군, 동북인민해방군으로 개편되었다.


이들은 장춘 포위전 등과 같이 동북에서 벌어진 각종 전투에서 위훈을 떨치게 된다. 1948년 11월 동북인민해방군이 최종적으로 중국 인민해방군 제4야전군으로 개편되면서 과거 조선의용군 산하에 있던 남만주의 제1지대도 독립제4사단을 거쳐 중국 인민해방군 제166사단이 되는데 이것이 바로 근위 부산제6보병사단의 전신이 된다.
이들은 장춘 포위전 등과 같이 동북에서 벌어진 각종 전투에서 위훈을 떨치게 된다. 1948년 11월 동북인민해방군이 최종적으로 중국 인민해방군 제4야전군으로 개편되면서 과거 조선의용군 산하에 있던 남만주의 제1지대도 독립제4사단을 거쳐 중국 인민해방군 제166사단이 되는데 이것이 바로 근위 부산제6보병사단의 전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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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위 부산제6보병사단
近衛釜山第4步兵師團
6th Guards Pusan Infantry Division
창설일 1949년 7월 25일 (75주년)
소속 조선인민군 륙군
상급부대 제5군단
규모 사단
역할 부산시, 경상남도 일대 방위
사단장 소장 박영환 (륙군군관학교 N기)
참전 조선전쟁
위치 부산시 부산진구역 양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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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광활한 격전장 누비며 진군해 혁혁한 전과 올리며 락동강 불퇴의 방어선도 깨버린 근위 6보병사단
근위부대자랑가

조선인민군 륙군의 보병사단.

역사

근위 부산제6보병사단의 실질적 전신은 방호산이 사단장을 지내고 있었던 중국 인민해방군의 제166사단이다. 이들은 과거 김원봉 산하의 조선의용대 화북지대 소속으로 활동하였으나 1942년 5월 그들의 본부였던 조선의용대 사령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사 조직이었던 한국광복군 제1지대로 편입되면서 그들로부터 갈라져 나오게 되었다. 이들은 1942년 7월 10일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를 조선의용군으로 개편하였으며 당시 팔로군의 포병사령관을 지내고 있던 김무정을 초대 사령관으로 추대하였다.

조선의용군은 1945년 8월 9일 팔로군 총사령관 주더의 명령에 따라 일본군과의 전투를 위해 만주로 진입하였다. 일본이 패망한 이후 조선의용군은 그 기세를 몰아 조선반도로 진군할 작정도 하였으나 조선의용군으로부터 조선반도 정계의 주도권을 빼앗길 것을 우려한 소련의 반대로 이것은 무산되었으며 그들은 이후 만주에 그대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후 조선의용군은 동북민주연군, 동북인민해방군으로 개편되었다.

이들은 장춘 포위전 등과 같이 동북에서 벌어진 각종 전투에서 위훈을 떨치게 된다. 1948년 11월 동북인민해방군이 최종적으로 중국 인민해방군 제4야전군으로 개편되면서 과거 조선의용군 산하에 있던 남만주의 제1지대도 독립제4사단을 거쳐 중국 인민해방군 제166사단이 되는데 이것이 바로 근위 부산제6보병사단의 전신이 된다.

그러나 이들은 그 당시 중국인들 사이에서 흐르고 있던 조선인에 대한 부정적 감정과 중국인 간부의 조선인 간부를 향한 숙청과 차별 등지로 인해 벌어진 갈등으로 인해 이러한 조선인 부대 내부에서는 점점 '조선으로 돌아가자'라는 내부적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기류는 베이징과 톈진까지 진격하고, 후일 장강을 넘어서며 더욱 거세지게 되었다. 이러한 타이밍에 딱 맞춰 1949년 7월 조선은 만주에 주둔하고 있는 조선인 부대의 조선 귀국을 중국에게 요청하게 되었으며 중국은 본인들조차도 골칫거리로 여기고 있던 조선인 부대를 귀국시키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중국 인민해방군 제166사단은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으로 개편된다.[1]

그렇게 개편된 제6보병사단 휘하의 제13, 14, 15연대는 각각 사리원, 해주, 재령에 배치되면서 소련 군사고문단의 훈련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제6보병사단은 1949년 10월 SU-76M 자주포, T-34-85 전차, 각종 중화기를 지급받으며 병력을 증강해간다. 제6보병사단은 조선전쟁 발발 직전 최종적으로 개성시 방면에 주둔하게 되었으며 여기서 제13연대는 개성 정면을 향해, 제15연대는 제13연대의 동쪽에, 제1연대[2]는 후방의 예비부대로 배치되었다.

예하부대

사단 직할대

제13보병려단

제14보병려단

제15보병려단

포병려단

출신 인물

사단장

장교·부사관

특징

근무 환경

훈련

사건·사고

기타


  1. 이와 마찬가지로 제166사단과 함께 귀국했던 제164사단은 제5보병사단으로, 1950년 4월 뒤늦게 귀국한 제156사단은 제12보병사단으로 개편된다.
  2. 제14연대는 전쟁 발발 직전 제1보병사단 산하의 제1연대와 교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