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개계급 대표사상 (동방홍): 두 판 사이의 차이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같은 사용자의 중간 판 하나는 보이지 않습니다)
33번째 줄: 33번째 줄:
* 1998년 6월 4일, [[6.4 홍풍 (동방홍)|천안문 광장에서 일어난 좌경 시위대]]와 협상하는 과정에서 [[왕훙원 (동방홍)|왕훙원]]이 마오쩌둥의 [[오십자건당방침 (동방홍)|오십자건당방침(五十字建党方针)]]을 언급하며 양개계급대표사상을 제시했다.  
* 1998년 6월 4일, [[6.4 홍풍 (동방홍)|천안문 광장에서 일어난 좌경 시위대]]와 협상하는 과정에서 [[왕훙원 (동방홍)|왕훙원]]이 마오쩌둥의 [[오십자건당방침 (동방홍)|오십자건당방침(五十字建党方针)]]을 언급하며 양개계급대표사상을 제시했다.  


* 2001년 7월 1일, 건당 80주년을 맞아 [[왕훙원 (동방홍)|왕훙원]]이 [[왕훙원7‧1강화 (동방홍)|연설]]에서 '공산당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계급정당으로의 역사적 발전'이라고 표현하였고, 양대계급 대표사상을 중국공산당의 지도사상으로 채택할 것을 약속하였다.  
* 2001년 7월 1일, 건당 80주년을 맞아 [[왕훙원 (동방홍)|왕훙원]]이 [[7.1 강화 (동방홍)|연설]]에서 '공산당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계급정당으로의 역사적 발전'이라고 표현하였고, 양대계급 대표사상을 중국공산당의 지도사상으로 채택할 것을 약속하였다.  


* 2002년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 (동방홍)|중국공산당 제OO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양개계급 대표사상 형성의 역사적 배경, 역사적 지위, 정신적 본질과 지도의의를 종합적으로 정립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주의 (동방홍)|마오쩌둥 사상]], [[삼건부정이론 (동방홍)|삼건부정이론]]과 함께 당이 오랫동안 견지해야 할 지도사상으로 확립되었다.
* 2002년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 (동방홍)|중국공산당 제OO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양개계급 대표사상 형성의 역사적 배경, 역사적 지위, 정신적 본질과 지도의의를 종합적으로 정립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주의 (동방홍)|마오쩌둥 사상]], [[삼건부정이론 (동방홍)|삼건부정이론]]과 함께 당이 오랫동안 견지해야 할 지도사상으로 확립되었다.

2024년 10월 16일 (수) 16:47 기준 최신판

벨지엄 핫산
이 문서는 동방홍의 공식 설정입니다. 관계자 외 이용을 금지합니다.
문서의 모든 내용은 허구입니다.

마오주의
[ 펼치기 · 접기 ]

개요

양개계급대표사상(兩个阶级代表思想)왕훙원의 정치사상의 총합이다.

내용

중국 공산당은

1. 항상 중국의 선진 사회 생산력의 발전 요구를 대표한다. (始终代表中国先进社会生产力的发展要求;)
2. 항상 중국의 선진 문화의 전진 방향을 대표한다. (始终代表中国先进文化的前进方向;)
3. 항상 중국 노동자 농민 계급의 근본 이익을 대표한다. (始终代表中国最劳农人民的根本利益.)

해설

마오쩌둥 말기와 화궈펑 치세를 거치며 중국공산당은 문혁으로 인한 사회변동의 후폭풍으로 약간의 후퇴를 경험했으며, 소자산계급과 민족자산계급을 옹호하고 광대한 인민의 근본이익을 옹호하는 입장을 확고히 하고 있었다.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제한된 도입이 이루어지며 당내의 개방파와 보수파가 첨예하게 갈등하는 상황을 겪으며 남방과 북방의 지역갈등으로 번져나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1997년 동남아 외환위기로 발생한 6.4 홍풍이 이러한 논쟁을 군중의 손으로 끌어내렸다. 5월부터 베이징을 비롯해 주요 도시에서 발생하던 시위는 점차 격화되어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완전한 개방과 정당정치의 활성화를 요구하던 학생 시위대와 노동조합과 문혁위와의 적극적 연대를 주장하던 노동자 시위대가 천안문 광장에서 충돌하는데 이르렀다. 이러한 충돌로 수십 명의 사상자를 발생하자, 5월 21일 전인대 상무위 비상회의를 통해 당의 전면적 개조와 사회주의 발전단계 국면의 전환 필요성을 결의했다.

회의 결과에 따라 왕훙원은 6월 4일 시위대와 직접 협상을 개시했고, 오십자건당방침(五十字建党方针)을 언급하며 '당이 국정을 운영하는 집정정당으로서 가져야 할 사회 생산력과 선진 문화의 대표성을 견지하면서 사회주의적 기치를 달성하기 위해 당정 간의 엄격한 분리를 집행하고 마오쩌둥 사상에 의거해 노동자와 농민의 정당'이 될 것임을 약조했다.

약 4년 간의 이론적 정비, 개방파와 혁명파의 토론 끝에 2002년,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양개계급 대표사상을 당의 지도사상으로 확립하며 중국공산당은 노동자와 농민만을 포함하는 계급정당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형성 과정

  • 1995년 11월 8일, 베이징을 시찰하던 왕훙원삼강교육(三讲教育)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학습, 정치, 정기≫의 일상적 토론을 권장하였는데, 이 때 공산주의 이론의 학습을 강조하며 이론적 토대가 제공되었다.
  • 1997년 9월 12일, 재전국당교공작회의(在全國黨校工作會議)에서 왕훙원이 양개계급의 대표성이 '어떤 당을 건설하고 어떻게 당을 건설할 것인가'라는 중대한 문제에 답하고 해결한다고 지적했다.
  • 1998년 5월 12일, 베이징대 건국 100주년을 맞아 제시된 985 공정에서 왕훙원이 '농민과 노동자에게 더 많은 교육의 기회가 주어질 수 있도록 실천하는 것이 당의 역할이자 의무'라고 표현하였다.
  • 2001년 7월 1일, 건당 80주년을 맞아 왕훙원연설에서 '공산당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계급정당으로의 역사적 발전'이라고 표현하였고, 양대계급 대표사상을 중국공산당의 지도사상으로 채택할 것을 약속하였다.

영향

왕훙원은 중국공산당을 계급정당으로 변화시키며, 우당과의 협력과 그들의 지위를 향상시켰다. 화궈펑의 임기 중 발생한 문혁위의 설치와 함께 신민주주의 사상을 발전 및 강화한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평가

당은 '양개계급 대표' 사상이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 삼건부정이론 의 계승과 발전이라고 믿고 있으며 이는 현대 세계와 중국의 발전과 변화의 새로운 요구를 반영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중국공산당과 국무를 강화하고 개선하는 중요한 단계이며 중국공산당의 건설과 중국특색 사회주의의 자기계발과 발전을 촉진하는 중요한 이론적 무기는 집단적 지혜의 결정체라고 평가한다.

긍정적 평가

  • 차오스위안(曹思源)은 양개계급 대표사상이 역사적 발전이며, 중국공산당이 유물론적이고 과학적인 도식에 따라 한 걸음 진일보한 것이라며 극찬했다.
  • 수샤오지(蘇紹智)는 "항상 대표한다"는 문구로 말미암아 중국공산당의 계급적 정체성을 회복하고 당의 의의가 지난 시대의 정체에서 비로소 증진되었다고 평가했다.

부정적 평가

  • 언론인 리샤오밍(李小鳴)은 이 사상이 중국공산당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만을 설명할 뿐, '어떻게 갈 것인지', '얼마나 오래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지속할 것'인지에 대한 성찰이 없었으며 선진 사회 생산력, 선진 문화와 근본 이익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