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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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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2" style="width:450px; background:#FF3333; color:#fff;" | {{large|프랑크푸르트 학파}}<br>Frankfurter Schu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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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dth=30% style="background:#FF3333; color:#fff;" | 영어
| Frankfurt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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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background:#FF3333; color:#fff;" | 주요 국가
| [[파일:독일 국기.png|23px|link=독일]] [[독일]], [[파일:미국 국기.png|23px|link=미국]]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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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background:#FF3333; color:#fff;" | 창시자
| 1933년 독일에서 추방되어 미국에서 활동한 후 1950년대 귀국해 프랑크푸르트에서 사회과학연구소를 설립한 철학자들
|-
! style="background:#FF3333; color:#fff;" | 창시 시점
| [[1929년]], 혹은 [[1950년대]]
|-
! style="background:#FF3333; color:#fff;" | 이념
| [[마르크스주의]]<br>[[프로이트주의]]<br>[[신마르크스주의]]
|-
! style="background:#FF3333; color:#fff;" | 성향
| [[중도좌파]] ~ [[좌익]]
|-
! style="background:#FF3333; color:#fff;" | 주요 사상가
| [[테오도어 아도르노]]<br>[[막스 호르크하이머]]<br>[[위르겐 하버마스]]<br>[[악셀 호네트]]<br>[[헤르베르트 마르쿠제]]<br>[[발터 벤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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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목차}}
== 개요 ==
== 개요 ==
'''프랑크푸르트 학파'''({{llang|de|Frankfurter Schule|프랑크푸르터 슐레}})는 1930년대 혹은 1950년대 이후 [[독일]]의 철학자들을 중심으로 전개된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방향성을 일컫는 [[대륙철학]]의 한 조류(潮流)이다.
1930년대 혹은 1950년대 이후 독일에서 전개된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경향성을 일컫는다. '''비판 이론'''이라는 이름으로 통칭되기도 한다.


[[비판이론]], 혹은 [[호르크하이머 서클]]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 상세 ==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부다페스트 학파]]와 더불어 근대적 마르크스주의 학파 중 가장 뚜렷한 反스탈린주의를 표방했다. 이들은 부다페스트 학파와 마찬가지로 인문주의적 마르크스주의를 제창했으나 보다 엄밀한 사회학적 분석을 통해 독자적인 학파를 구성했다. 현대 미학 이론과 사회분석에 큰 영향을 미쳤다.
 
크게 보자면 칸트 - 헤겔 - 마르크스로 이어지는 독일 "이성 철학"의 큰 줄기에 위치해있다고 볼 수 있다. [[안토니오 그람시]]와 [[게오르크 루카치]] 등 "상부구조의 마르크스주의자"에게서도 영향을 받았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라는 명칭은 사회학자 [[막스 호르크하이머]]가 "사회조사연구소"를 세운 도시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서 따왔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시대에 따라 1세대, 2세대, 3세대로 나뉘는 것이 특징이다. 1세대는 [[막스 호르크하이머]], [[테오도어 아도르노]], [[레오 뢰벤탈]] 등으로 대표되었으며, 2세대의 [[위르겐 하버마스]]를 거쳐 현대인 3세대에는 [[악셀 호네트]]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기수로 활동했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마르크스주의적 사회분석의 형식을 빌려왔으면서 마르크스주의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계급투쟁'''의 개념을 거부하였다는 점에 있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저서인 <계몽의 변증법>에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일원인 이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타파는 오로지 절망적 현실에 대한 '''비판'''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다"를 주장하며 혁명에 앞선 비판의 유효성을 주창했다. 이들의 제자인 [[위르겐 하버마스]]는 더 나아가 상부구조와 하부구조의 생산적 관계를 전복시켜 둘이 "입법"을 통해 연결된다는 체계-생활세계 이분법으로 마르크스주의 사회분석의 기초까지 거부하였다. 하버마스와 호네트 등 현대 비판이론가들에게서는 마르크스주의의 성향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반면,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등 일부 프랑크푸르트 학파 학자들은 혁명의 유효성을 주장하기도 하였으나 이는 소수이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온건한 마르크스주의적인 토대에서 '''사회 분석'''을 하는 것을 주요한 목표로 삼는 학파이지 혁명을 촉진하기 위한 서클이 아니라는 점에 그 핵심이 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가장 중시하는 개념은 "도구적 이성"에 대항하는 "비판적 이성"의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받아들여, 자본주의의 물적 토대 뿐 아닌 정신적 상부구조 역시 분석하여 자본주의가 인간의 이성에 어떠한 역할을 미쳤는지 분석하였다. 이들에 의하면 자본주의는 "도구적 이성"의 체제인데, 이는 본래 비판을 위해 사용되어야했을 합리성이 이윤 창출의 영역에 국한되었고 따라서 나치의 비인간적인 과학기술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2세대인 위르겐 하버마스는 이 경향성을 극복하기 위해 "의사소통 합리성"의 개념을 도입하여, 도구적 이성에 대항하여 비판적이고 건설적인 토론으로 자본주의의 정신적 인간소외를 극복할 수 있는 "공론장"의 개념을 제시하였으며, [[악셀 호네트]]는 하버마스가 간과한 개인과 사회의 마찰을 중점적으로 연구해 인정투쟁 개념을 도출한 바 있다.


== 상세 ==
{{인용문|'''홀로코스트 이후 서정시는 야만이다.'''|[[테오도어 아도르노]]}}
== 특징 ==
== 주요 학자 ==
== 주요 학자 ==
'''1세대'''
=== 1세대 ===
* [[막스 호르크하이머]]
* [[막스 호르크하이머]]
* [[테오도어 아도르노]]
* [[테오도어 아도르노]]
*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 이후 결별([[68 혁명]])
* [[레오 뢰벤탈]]
* [[프리드리히 폴로크]]
* [[에리히 프롬]]
* [[에리히 프롬]]
* [[프리드리히 폴로크]]
* <del>[[헤르베르트 마르쿠제]]</del>
* [[레오 뢰벤탈]]
=== 2세대 ===
* [[프란츠 노이만]]
* [[발터 벤야민]] (외부 서클)
{{구분선}}
'''2세대'''
* [[위르겐 하버마스]]
* [[위르겐 하버마스]]
{{구분선}}
* [[카를 오토 아펠]]
'''3세대'''
* [[오스카어 네크트]]
=== 3세대 ===
* [[악셀 호네트]]
* [[악셀 호네트]]
== 주요 개념 ==
=== 외부 서클 ===
* [[부정의 변증법]]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 [[발터 벤야민]]
* [[문화산업론]] (아도르노)
*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
* [[담론 윤리]] (하버마스)
* [[에른스트 블로흐]]
* [[공론장]] (하버마스)
* [[숙의민주주의]] (하버마스)
* [[인정 이론]] (호네트)
* [[일차원적 인간]] (마르쿠제)
* [[에로스]] (마르쿠제)
* [[아우라]] (벤야민)
* [[판타스마고리아]] (벤야민)
 
== 비판 ==
{{인용문|철학이란 진실의 역사, 착오의 역사, 이데올로기의 역사를 연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진실이 어떻게 묘사되어왔는지'''(진실진술)에 대한 역사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한데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방향성은) 진실진술의 역사를 연구하는 것을 포기하는건 물론이고, 유럽 철학의 전통을 이루고 있는 "합리성"에 대한 비판, 그리고 그런 "합리"라는 것을 과신한다는 것의 비판 같은 연구까지 포기하는 것입니다.<br>아시다시피 19세기 초반부터 이런 비판은 모두 각기 다른 형태로 부단히 행해져 왔습니다. 낭만주의에서부터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고유한 권력의 무게를 가진 합리성에 대한 이의제기가 문제화되어왔던 것이긴 합니다.<br>그런데 제가 제안하려는 지식에 대한 비판은 이성 아래의 변함없이 억압적인, 아니 이렇게 말하려고 했는데 그러면 안 되겠고, 이성 아래에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억압적인 것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br>그런데 제가 제안하려는 지식에 대한 비판은, 이성의 억압성 그 자체를 고발하려는건 아닙니다. 왜냐하면 간단히 말해 '''비 이성 역시 억압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br>다른 방식으로 말한다면, 이 분석이 정치적 범위를 갖기 위해서는 진실을 만들어내거나, 과거에 일어났던 과오들을 기억하는 것에서 시작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br>제가 생각하기에, 지금 정치적으로 중요한 것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진실에 대한 정의가 어떤 것인가'''를 규명하는 것입니다.|[[미셸 푸코]],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Naissance de la biopolitique)}}
 
== 관련 문서 ==
== 관련 문서 ==
* [[마르크스주의]]
* [[서구 마르크스주의]]
** [[신마르크스주의]]
----
** [[서구 마르크스주의]]
* [[포스트마르크스주의]]
* [[그람시주의]]

2023년 6월 4일 (일) 06:32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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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1930년대 혹은 1950년대 이후 독일에서 전개된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경향성을 일컫는다. 비판 이론이라는 이름으로 통칭되기도 한다.

상세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부다페스트 학파와 더불어 근대적 마르크스주의 학파 중 가장 뚜렷한 反스탈린주의를 표방했다. 이들은 부다페스트 학파와 마찬가지로 인문주의적 마르크스주의를 제창했으나 보다 엄밀한 사회학적 분석을 통해 독자적인 학파를 구성했다. 현대 미학 이론과 사회분석에 큰 영향을 미쳤다.

크게 보자면 칸트 - 헤겔 - 마르크스로 이어지는 독일 "이성 철학"의 큰 줄기에 위치해있다고 볼 수 있다. 안토니오 그람시게오르크 루카치 등 "상부구조의 마르크스주의자"에게서도 영향을 받았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라는 명칭은 사회학자 막스 호르크하이머가 "사회조사연구소"를 세운 도시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서 따왔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시대에 따라 1세대, 2세대, 3세대로 나뉘는 것이 특징이다. 1세대는 막스 호르크하이머, 테오도어 아도르노, 레오 뢰벤탈 등으로 대표되었으며, 2세대의 위르겐 하버마스를 거쳐 현대인 3세대에는 악셀 호네트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기수로 활동했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마르크스주의적 사회분석의 형식을 빌려왔으면서 마르크스주의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계급투쟁의 개념을 거부하였다는 점에 있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저서인 <계몽의 변증법>에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일원인 이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타파는 오로지 절망적 현실에 대한 비판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다"를 주장하며 혁명에 앞선 비판의 유효성을 주창했다. 이들의 제자인 위르겐 하버마스는 더 나아가 상부구조와 하부구조의 생산적 관계를 전복시켜 둘이 "입법"을 통해 연결된다는 체계-생활세계 이분법으로 마르크스주의 사회분석의 기초까지 거부하였다. 하버마스와 호네트 등 현대 비판이론가들에게서는 마르크스주의의 성향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반면,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등 일부 프랑크푸르트 학파 학자들은 혁명의 유효성을 주장하기도 하였으나 이는 소수이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온건한 마르크스주의적인 토대에서 사회 분석을 하는 것을 주요한 목표로 삼는 학파이지 혁명을 촉진하기 위한 서클이 아니라는 점에 그 핵심이 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가장 중시하는 개념은 "도구적 이성"에 대항하는 "비판적 이성"의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받아들여, 자본주의의 물적 토대 뿐 아닌 정신적 상부구조 역시 분석하여 자본주의가 인간의 이성에 어떠한 역할을 미쳤는지 분석하였다. 이들에 의하면 자본주의는 "도구적 이성"의 체제인데, 이는 본래 비판을 위해 사용되어야했을 합리성이 이윤 창출의 영역에 국한되었고 따라서 나치의 비인간적인 과학기술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2세대인 위르겐 하버마스는 이 경향성을 극복하기 위해 "의사소통 합리성"의 개념을 도입하여, 도구적 이성에 대항하여 비판적이고 건설적인 토론으로 자본주의의 정신적 인간소외를 극복할 수 있는 "공론장"의 개념을 제시하였으며, 악셀 호네트는 하버마스가 간과한 개인과 사회의 마찰을 중점적으로 연구해 인정투쟁 개념을 도출한 바 있다.

주요 학자

1세대

2세대

3세대

외부 서클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