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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 학파는 [[부다페스트 학파]]와 더불어 근대적 마르크스주의 학파 중 가장 뚜렷한 反스탈린주의를 표방했다. 이들은 부다페스트 학파와 마찬가지로 인문주의적 마르크스주의를 제창했으나 보다 엄밀한 사회학적 분석을 통해 독자적인 학파를 구성했다. 현대 미학 이론과 사회분석에 큰 영향을 미쳤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부다페스트 학파]]와 더불어 근대적 마르크스주의 학파 중 가장 뚜렷한 反스탈린주의를 표방했다. 이들은 부다페스트 학파와 마찬가지로 인문주의적 마르크스주의를 제창했으나 보다 엄밀한 사회학적 분석을 통해 독자적인 학파를 구성했다. 현대 미학 이론과 사회분석에 큰 영향을 미쳤다.
크게 보자면 칸트 - 헤겔 - 마르크스로 이어지는 독일 "이성 철학"의 큰 줄기에 위치해있다고 볼 수 있다. [[안토니오 그람시]]와 [[게오르크 루카치]] 등 "상부구조의 마르크스주의자"에게서도 영향을 받았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라는 명칭은 사회학자 [[막스 호르크하이머]]가 "사회조사연구소"를 세운 도시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서 따왔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시대에 따라 1세대, 2세대, 3세대로 나뉘는 것이 특징이다. 1세대는 [[막스 호르크하이머]], [[테오도어 아도르노]], [[레오 뢰벤탈]] 등으로 대표되었으며, 2세대의 [[위르겐 하버마스]]를 거쳐 현대인 3세대에는 [[악셀 호네트]]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기수로 활동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라는 명칭은 사회학자 [[막스 호르크하이머]]가 "사회조사연구소"를 세운 도시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서 따왔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시대에 따라 1세대, 2세대, 3세대로 나뉘는 것이 특징이다. 1세대는 [[막스 호르크하이머]], [[테오도어 아도르노]], [[레오 뢰벤탈]] 등으로 대표되었으며, 2세대의 [[위르겐 하버마스]]를 거쳐 현대인 3세대에는 [[악셀 호네트]]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기수로 활동했다.

2023년 6월 4일 (일) 06:32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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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1930년대 혹은 1950년대 이후 독일에서 전개된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경향성을 일컫는다. 비판 이론이라는 이름으로 통칭되기도 한다.

상세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부다페스트 학파와 더불어 근대적 마르크스주의 학파 중 가장 뚜렷한 反스탈린주의를 표방했다. 이들은 부다페스트 학파와 마찬가지로 인문주의적 마르크스주의를 제창했으나 보다 엄밀한 사회학적 분석을 통해 독자적인 학파를 구성했다. 현대 미학 이론과 사회분석에 큰 영향을 미쳤다.

크게 보자면 칸트 - 헤겔 - 마르크스로 이어지는 독일 "이성 철학"의 큰 줄기에 위치해있다고 볼 수 있다. 안토니오 그람시게오르크 루카치 등 "상부구조의 마르크스주의자"에게서도 영향을 받았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라는 명칭은 사회학자 막스 호르크하이머가 "사회조사연구소"를 세운 도시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서 따왔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시대에 따라 1세대, 2세대, 3세대로 나뉘는 것이 특징이다. 1세대는 막스 호르크하이머, 테오도어 아도르노, 레오 뢰벤탈 등으로 대표되었으며, 2세대의 위르겐 하버마스를 거쳐 현대인 3세대에는 악셀 호네트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기수로 활동했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마르크스주의적 사회분석의 형식을 빌려왔으면서 마르크스주의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계급투쟁의 개념을 거부하였다는 점에 있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저서인 <계몽의 변증법>에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일원인 이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타파는 오로지 절망적 현실에 대한 비판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다"를 주장하며 혁명에 앞선 비판의 유효성을 주창했다. 이들의 제자인 위르겐 하버마스는 더 나아가 상부구조와 하부구조의 생산적 관계를 전복시켜 둘이 "입법"을 통해 연결된다는 체계-생활세계 이분법으로 마르크스주의 사회분석의 기초까지 거부하였다. 하버마스와 호네트 등 현대 비판이론가들에게서는 마르크스주의의 성향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반면,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등 일부 프랑크푸르트 학파 학자들은 혁명의 유효성을 주장하기도 하였으나 이는 소수이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온건한 마르크스주의적인 토대에서 사회 분석을 하는 것을 주요한 목표로 삼는 학파이지 혁명을 촉진하기 위한 서클이 아니라는 점에 그 핵심이 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가장 중시하는 개념은 "도구적 이성"에 대항하는 "비판적 이성"의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받아들여, 자본주의의 물적 토대 뿐 아닌 정신적 상부구조 역시 분석하여 자본주의가 인간의 이성에 어떠한 역할을 미쳤는지 분석하였다. 이들에 의하면 자본주의는 "도구적 이성"의 체제인데, 이는 본래 비판을 위해 사용되어야했을 합리성이 이윤 창출의 영역에 국한되었고 따라서 나치의 비인간적인 과학기술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2세대인 위르겐 하버마스는 이 경향성을 극복하기 위해 "의사소통 합리성"의 개념을 도입하여, 도구적 이성에 대항하여 비판적이고 건설적인 토론으로 자본주의의 정신적 인간소외를 극복할 수 있는 "공론장"의 개념을 제시하였으며, 악셀 호네트는 하버마스가 간과한 개인과 사회의 마찰을 중점적으로 연구해 인정투쟁 개념을 도출한 바 있다.

주요 학자

1세대

2세대

3세대

외부 서클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