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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12일 (일) 00:41 기준 최신판
본 세계관은 특정 단체 및 국가에 대한 감정 없이 작성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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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파 30분전 충주댐의 모습 |
개요
충주 전투는 대침공 초반 7월 22일 부터 8월 14일까지 한국군과 침공군이 치룬 전투다. 한국군이 충주를 사수함으로써 전선의 총체적인 붕괴를 막을 수 있었으며, 이는 침공 초반 한국군의 주요 승리 중 하나로 평가 받는다. |
배경
기습적인 침공이 시작된 이후 충청도 전역은 순식간에 붕괴되었습니다. 대전과 세종 그리고 기타 주요 시설들이 침공의 시작과 동시에 적의 공습으로 파괴되었으며, 적은 넓은 대형으로 공수, 상륙하여 순식간에 충청도 전역을 점령하기 시작했습니다. 충청도에는 제2 작전 사령부 산하 32, 37 보병사단이 배치되어있었으나, 이들은 충청도 전역을 사수하기엔 너무 빈약한 전력을 가지고 있었음은 물론이거니와 지역방위사단이었기에 예비군의 소집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적의 강력하고 빠른 공격에 32, 37 보병사단은 빠르게 붕괴. 침공 5일만에 대전과 세종을 내어주며 32, 37 보병사단은 예비군 소집을 진행하기도 전에 사실상 전멸하며 패퇴했습니다. 사단의 패잔병들은 충청도의 피난민들과 함께 북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그들은 충주에서 남쪽으로 피난오던 수도권과 강원도의 피난민들과 맞딱뜨렸습니다. 경기도와 강원도 마저 붕괴하고 있는 지금. 그들에게 도망갈 곳은 더 이상 없습니다. 충주마저 붕괴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떻게되겠습니까? 32, 37 보병사단은 충주의 시민들과 피난민들을 규합해 도시에서의 결전을 준비합니다. 남성과 여성, 노약자와 어린이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적은 그것을 가리지 않고 모두를 살해하고 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선 군에 합류하십시오! 총 한자루라면 충분합니다. 만약 당신이 아직 살고 싶은 의지가 있다면, 침략자들과 맞서 싸우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