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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노동당의 전통적 강경파로, 당내 좌파 세력이다. [[녹우크라이나 극동공산당 (개화)|극동공산당]] 탈당파에 뿌리를 두지만 스스로는 [[코스트 안드루셴코 (개화)|안드루셴코]]의 [[노동주의 (개화)#고전적 노동주의|후계자임을 자처]]한다. 역사적으로 새로운 길과 함께 국민노동당의 양대 계파였으며 현재는 당에서 두 번째로 세력이 큰 계파이다. | 국민노동당의 전통적 강경파로, 당내 좌파 세력이다. [[녹우크라이나 극동공산당 (개화)|극동공산당]] 탈당파에 뿌리를 두지만 스스로는 [[코스트 안드루셴코 (개화)|안드루셴코]]의 [[노동주의 (개화)#고전적 노동주의| 후계자임을 자처]]한다. 역사적으로 새로운 길과 함께 국민노동당의 양대 계파였으며 현재는 당에서 두 번째로 세력이 큰 계파이다. | ||
사회민주주의의 우경화와 제3의 길 노선에 반대하며 따라서 신자유주의에도 부정적이다. [[노동주의 (개화)|노동주의]]를 표방하며 고전적 노동주의와 신노동주의가 혼재된 모습을 보인다. 부분적으로 다만 반자본주의 성향은 아니다. 노동운동에 매우 우호적이며 노동자 권리 신장에 적극적이다. 또한 경기 부양과 복지 확대를 위한 확장재정 정책을 옹호하며 국영기업, 공영기업의 민영화에 격렬하게 반대한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라면 외국 자본의 유입도 용인한다. | 사회민주주의의 우경화와 제3의 길 노선에 반대하며 따라서 신자유주의에도 부정적이다. [[노동주의 (개화)|노동주의]]를 표방하며 고전적 노동주의와 신노동주의가 혼재된 모습을 보인다. 부분적으로 다만 반자본주의 성향은 아니다. 노동운동에 매우 우호적이며 노동자 권리 신장에 적극적이다. 또한 경기 부양과 복지 확대를 위한 확장재정 정책을 옹호하며 국영기업, 공영기업의 민영화에 격렬하게 반대한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라면 외국 자본의 유입도 용인한다. | ||
외교적으로는 온건한 [[태평양주의 (개화)|태평양주의]] 성향을 띤다. [[대한민국 (개화)|한국]]과 [[만주 (개화)|만주]] 및 태평양 연안의 자유 세계 국가들과의 연합을 지지하지만 그 협력이 녹우크라이나 내정에 간섭할 가능성은 우려하며 경계한다. 서방 국가들에 우호적이기는 하지만 | 외교적으로는 온건한 [[태평양주의 (개화)|태평양주의]] 성향을 띤다. [[대한민국 (개화)|한국]]과 [[만주 (개화)|만주]] 및 태평양 연안의 자유 세계 국가들과의 연합을 지지하지만 그 협력이 녹우크라이나 내정에 간섭할 가능성은 우려하며 경계한다. 서방 국가들에 우호적이기는 하지만 적극적이지는 않다. 또한 반[[소비에트 주권공화국 연방 (개화)|소]] 성향이 없는 것은 아니나 국민노동당 내의 계파들 중에서는 그 성향이 가장 옅다. 기본적으로 소련을 자극하지 말고 충돌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 ||
정치적 스펙트럼 상으로는 중도좌파 내지 좌익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진보 성향의 더 네이션 등은 중도좌파로, 보수 성향의 이브닝 스탠다드 등은 좌익으로 분류했다. | 정치적 스펙트럼 상으로는 중도좌파 내지 좌익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진보 성향의 더 네이션 등은 중도좌파로, 보수 성향의 이브닝 스탠다드 등은 좌익으로 분류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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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노동당의 강경 [[우크라이나 내셔널리즘 (개화)|민족주의]] 계파. 급진적이고 강경한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사회민주주의 좌파 계열을 자처하면서도 반공주의적 색채가 짙다. 원래는 당내 군소 계파였지만 2022년 총선을 기점으로 세력이 크게 확장되어 상기한 두 계파와 함께 노동당의 3대 계파로 불릴 정도로 세력이 확장되었다. | 국민노동당의 강경 [[우크라이나 내셔널리즘 (개화)|민족주의]] 계파. 급진적이고 강경한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사회민주주의 좌파 계열을 자처하면서도 반공주의적 색채가 짙다. 원래는 당내 군소 계파였지만 2022년 총선을 기점으로 세력이 크게 확장되어 상기한 두 계파와 함께 노동당의 3대 계파로 불릴 정도로 세력이 확장되었다. | ||
외교적으로는 반공, 반소, 반미, [[태평양주의 (개화)|태평양주의]]의 입장을 가지고 있다. 민족주의적 관점에 따라, 녹우크라이나와 관계가 험악한 [[소비에트 | 외교적으로는 반공, 반소, 반미, [[태평양주의 (개화)|태평양주의]]의 입장을 가지고 있다. 민족주의적 관점에 따라, 녹우크라이나와 관계가 험악한 [[소비에트 주권 국가 연방 (개화)|소련]]에 극도로 적대적이다. 또 미국에도 비우호적인데, 이는 미국이 앵커리지 조약에서 구소련의 녹우크라이나 병합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 ||
경제적으로 내셔널리즘 성향이 강해서 외국 자본의 녹우크라이나 유입을 곱게 보지 않는다. 또한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주요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특한 점은 자국 기업에게 한해 친기업 성향을 띤다는 것이다. 물론 동시에 노동운동에도 우호적이라 자국 기업과 자국 노동자 간의 갈등이 발생하면 적극적으로 중재하려고 한다. 반면 자국 노동자와 해외 기업 사이의 갈등에서는 거의 항상 자국 노동자 편을 지지한다. 정리하자면 친시장은 아니며 친노동이면서도 친기업인, 굉장히 특이한 입장을 내세운다. | 경제적으로 내셔널리즘 성향이 강해서 외국 자본의 녹우크라이나 유입을 곱게 보지 않는다. 또한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주요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특한 점은 자국 기업에게 한해 친기업 성향을 띤다는 것이다. 물론 동시에 노동운동에도 우호적이라 자국 기업과 자국 노동자 간의 갈등이 발생하면 적극적으로 중재하려고 한다. 반면 자국 노동자와 해외 기업 사이의 갈등에서는 거의 항상 자국 노동자 편을 지지한다. 정리하자면 친시장은 아니며 친노동이면서도 친기업인, 굉장히 특이한 입장을 내세운다. | ||
워낙 독특하고 애매한 포지션 탓에 진보적 언론으로부터는 우익 혹은 극우로, 보수적 언론한테는 좌익이나 | 워낙 독특하고 애매한 포지션 탓에 진보적 언론으로부터는 우익 혹은 극우로, 보수적 언론한테는 좌익이나 보수좌파로 불린다. <s>떠넘기기</s> | ||
===우수리 그룹=== | ===우수리 그룹=== |
2024년 4월 9일 (화) 09:36 판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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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
만주 총리
사민
파일:사회민주당 로고 (개화).png | ||
사회민주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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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 | Social Democratic Party of Korea, SDPK | |
표어 | 모두가 행복스럽게 잘 사는 복지사회 | |
창당일 | 1935년 6월 4일 | |
선행 조직 | / 당내 노선갈등으로 분열 | |
비변위의정 | 공석 | |
원무영임 | 김기현 | |
사무총관 | 정호진 | |
정책위의정 | 권성동 | |
이념 | 사회민주주의 태평양주의 • 좌익민족주의, 사회보수주의 (현장파) • 제3의 길, 중도개혁주의 (화요파·새길파) • 진보주의 (정의파), 민주사회주의 (민사파) | |
스펙트럼 | 중도좌파 (중도~좌익) | |
중추원의원 | 284석 / 750석 (37.9%) | |
당색 | 라즈베리색 (#D52C4A)
| |
당원 수 | 75만 명 | |
국제조직 |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 |
진보동맹 | ||
청년조직 | 파일:청년사회민주당 로고 (개화).png | |
공식 사이트 | 파일:사회민주당 로고 (개화).png | |
SNS | | | |
2024년 포스터 - "먹고사니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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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대한민국의 제1야당. 대한민국에 현존하는 정당 중 가장 역사가 긴 정당이다. 신한국당-국민의당으로 이어지는 보수정당과 함께 한국의 양대 수권정당 중 하나이며, 동아시아 지역의 대표적인 온건좌파 정당으로 일컬어진다.
1930년대 사회당 내부의 노선 투쟁의 결과로 탄생하였으며, 사회민주주의 국민정당을 표방한다. 궁극적으로는 민주적 복지국가 건설을 목표로 삼고 있다.
역사
성향
지도부
내부 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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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선거 결과
KNA
HHH
옥균's 내각
현장파
화요파
새길파
아이신기오로
금위대
?
만주중앙은행 | |
---|---|
한문명 | 滿洲中央銀行, 滿銀 |
만문명 | ᠮᠠᠨᠵᡠ ᡩᡠᠯᡳᠮᠪᠠ ᠪ᠊᠊ᠠ᠊᠊ᠩ᠊᠊ᡴ᠋[24] |
영문명 | Central Bank of Manchuria, CBM |
설립일 | 1927년 모월 모일 |
업종 | 중앙은행 |
상위 조직 | 만주국 정부 (독립기관)[25] |
주석 | 자오환 |
직원 수 | 3,800여 명 |
SNS | | | |
어떻게 된 거야 무서워
녹우크라이나의 행정구역 등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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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놈들의 지도는 망했어!
국민노동당
+
| |||
---|---|---|---|
[ 펼치기 · 접기 ] |
국민노동당 | |
---|---|
영어명 | National Labor Party |
오어명 | [26] |
창당일 | |
전신 | 틀:녹우크라이나 극동공산당 (개화) |
당대표 | ㅇㅇ |
이념 | 사회민주주의 노동주의 내셔널리즘 (오극란) 태평양주의 |
스펙트럼 | 중도좌파 |
최고의회의원 | 64석 / 301석 (21.3%) |
시·주지사 | 0석 / 16석 (0.0%) |
당색 | 적색 (#E50027)
|
당원 수 | 8만 6천 명 |
국제조직 | 진보동맹 |
선거연합 | |
SNS | | | | | |
개요
2016년 국민노동당 전당대회 |
녹우크라이나의 정당. 녹우크라이나 최고의회 원내 3당이자 제1야당으로 사회민주주의와 노동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역사
성향
전반적으로 사회민주주의, 친노동, 태평양주의 성격을 띈다. 다만 중도부터 좌익까지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어 계파마다 지지하는 정책이 다른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자세한 내용은 계파 항목을 참고하라.
계파
새로운 길
국민노동당의 전통적 온건파로, 당내 우파로 분류된다. 우크라이나 국민당 출신의 사민주의 성향 탈당파에 뿌리를 둔다.[27] 창당 초기에서부터 당내 좌파인 노동과 민주주의와 함께 당을 주도하였으며 현재는 국민노동당 내에서 가장 큰 계파다.
기본적으로 사회민주주의와 노동주의를 표방하지만 그와 동시에 신자유주의를 부분적으로 받아들인 제3의 길 성향이다. 실제로도 실용주의적 신노동주의를 표방한다. 노동자의 권리를 옹호하면서도 시장 친화적이며 기업에도 나름 우호적이다. 새로운 길 소속 대통령인 볼로디미르 댜첸코가 이끌던 댜첸코 정부 시절에는 일부 공기업을 민영화하기도 했다.
외교적으로는 태평양주의를 넘어 강한 매파적 친서방주의 노선을 고수한다. 태평양 민주 국가들의 경제적, 정치적 통합을 지지하며 특히 극동조약기구 소속 국가들과의 관계를 매우 중요시한다. 미국과 유럽 등 서구 세계에 우호적이며, 외교정책에서 서방세계와 발을 맞추려 한다. 또 서구의 영향으로 당내 주요 계파 중에서는 문화적 자유주의에 그나마 동의하는 편으로, 사회적으로 아주 약간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정치적 스펙트럼 상으로는 중도 ~ 중도좌파라는 평가를 받는다.
노동과 민주주의
국민노동당의 전통적 강경파로, 당내 좌파 세력이다. 극동공산당 탈당파에 뿌리를 두지만 스스로는 안드루셴코의 후계자임을 자처한다. 역사적으로 새로운 길과 함께 국민노동당의 양대 계파였으며 현재는 당에서 두 번째로 세력이 큰 계파이다.
사회민주주의의 우경화와 제3의 길 노선에 반대하며 따라서 신자유주의에도 부정적이다. 노동주의를 표방하며 고전적 노동주의와 신노동주의가 혼재된 모습을 보인다. 부분적으로 다만 반자본주의 성향은 아니다. 노동운동에 매우 우호적이며 노동자 권리 신장에 적극적이다. 또한 경기 부양과 복지 확대를 위한 확장재정 정책을 옹호하며 국영기업, 공영기업의 민영화에 격렬하게 반대한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라면 외국 자본의 유입도 용인한다.
외교적으로는 온건한 태평양주의 성향을 띤다. 한국과 만주 및 태평양 연안의 자유 세계 국가들과의 연합을 지지하지만 그 협력이 녹우크라이나 내정에 간섭할 가능성은 우려하며 경계한다. 서방 국가들에 우호적이기는 하지만 적극적이지는 않다. 또한 반소 성향이 없는 것은 아니나 국민노동당 내의 계파들 중에서는 그 성향이 가장 옅다. 기본적으로 소련을 자극하지 말고 충돌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치적 스펙트럼 상으로는 중도좌파 내지 좌익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진보 성향의 더 네이션 등은 중도좌파로, 보수 성향의 이브닝 스탠다드 등은 좌익으로 분류했다.
모든 문제가 경제 문제에 기인한다고 주장하는 이른바 계급 환원주의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실제로 노동과 민주주의는 경제 문제를 제외한 다른 녹우크라이나 국내 이슈에는 관심이 거의 없으며, 되려 사회적으로는 보수주의 성향을 띠는 면모도 가지고 있다.
소속 대통령으로는 세르히 다르킨이 있다.
애국좌파
국민노동당의 강경 민족주의 계파. 급진적이고 강경한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사회민주주의 좌파 계열을 자처하면서도 반공주의적 색채가 짙다. 원래는 당내 군소 계파였지만 2022년 총선을 기점으로 세력이 크게 확장되어 상기한 두 계파와 함께 노동당의 3대 계파로 불릴 정도로 세력이 확장되었다.
외교적으로는 반공, 반소, 반미, 태평양주의의 입장을 가지고 있다. 민족주의적 관점에 따라, 녹우크라이나와 관계가 험악한 소련에 극도로 적대적이다. 또 미국에도 비우호적인데, 이는 미국이 앵커리지 조약에서 구소련의 녹우크라이나 병합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내셔널리즘 성향이 강해서 외국 자본의 녹우크라이나 유입을 곱게 보지 않는다. 또한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주요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특한 점은 자국 기업에게 한해 친기업 성향을 띤다는 것이다. 물론 동시에 노동운동에도 우호적이라 자국 기업과 자국 노동자 간의 갈등이 발생하면 적극적으로 중재하려고 한다. 반면 자국 노동자와 해외 기업 사이의 갈등에서는 거의 항상 자국 노동자 편을 지지한다. 정리하자면 친시장은 아니며 친노동이면서도 친기업인, 굉장히 특이한 입장을 내세운다.
워낙 독특하고 애매한 포지션 탓에 진보적 언론으로부터는 우익 혹은 극우로, 보수적 언론한테는 좌익이나 보수좌파로 불린다. 떠넘기기
우수리 그룹
진보사회
꼰스띠뚜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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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녹우크라이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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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 Конституція Української Далекосхідної Республіки 1991 р | |||
제정 | 1918년 1월 12일 | |||
현행 | 1991년 2월 2일 (제5차 헌법) | |||
국체 | 단원제 - 이원집정부제 공화국 |
개요
1918년 헌법 원본 |
녹우크라이나 헌법은 우크라이나 극동공화국의 국가구조와 국민의 권리 및 의무를 담은 녹우크라이나 최고법이다. 헌법에 위배되는 모든 녹우크라이나 법률은 위헌으로 무효화된다. 1918년에 녹우크라이나의 초대 최고의회에 의해 제정되었으며 현재까지 총 네 차례의 개정을 거쳐 현재는 제5차 헌법인 1991년 헌법이 시행되고 있다.
헌법과 관련된 권력작용을 하는 곳으로는 헌법재판을 전담하는 녹우크라이나 헌법재판소와 헌법에 반하는 모든 녹우크라이나 국내 상황을 감시하는 녹우크라이나 헌법수호위원회가 있다.
역사
내용
1918년 헌법
녹우크라이나 제헌위원회 |
하자만 헌법 혹은 우크라이나 민족문화자치헌법이라고도 불리는 1918년 헌법은 녹우크라이나의 첫 헌법으로, 본토 우크라이나의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과의 통일을 전제하였다. 헌법 제정에는 전문과 초안을 작성한 이반 하자만과 유리 흘루슈코-모바, 베네딕트 야코벤코, 페트로 트베르도우스키 등이 제헌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했다. 재헌위원회에서 작성한 헌법안을 최고의회가 승인하면서 1918년 헌법이 제정되었다.
헌법은 우크라이나 극동 공화국이 민주공화국임과 장차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의 일부로 편입될 것을 천명했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극동 공화국은 통일이 될 때 까지만 유지될 임시적인 국가조직이었고 여타 타국의 헌법에 비해 간략한 편이었다. 헌법은 국민주권을 명시하였으며, 정치 체제로는 삼권분립, 단원제, 대통령 우위 이원집정부제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1923년 헌법
1922년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이 모든 영토를 완전히 잃고 망명정부 신세로 전락하고 오히려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의 일부가 되여고 했던 녹우크라이나가 존속함에 따라 양측의 상황이 변화했다. 이에 녹우크라이나 최고의회는 새로운 상황에 맞춰 헌법 개정에 착수하였고 이듬해인 1923년 신헌법을 공포했다.
헌법 전문에서 녹우크라이나가 본토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적극 지원한다는 내용이 추가되었으며, 부실했던 1918 헌법 조항들을 비교적 상세하게 추가 기술하였다. 이것 외에는 특별한 변경점은 없었다. 개헌 실무는 법무부장관이었던 하자만이 주도했다.
1942년 헌법
제3차 극동전쟁과 앵커리지 조약으로 인해 녹우크라이나 제1공화국 정부가 한성에 망명정부를 꾸리면서 신헌법의 도입이 필요해졌다. 이에 망명정부는 망명정부의 조직과 구성 등을 담은 1942년 헌법을 제정하였다.
흐레샤티츠키 대통령은 새 헌법이 국가위기를 이유로 대통령에게 막대한 권력을 집중시키도록 하였다. 총리 임명 절차에서 최고의회의 동의를 삭제해 대통령의 지명만으로 총리 임명이 가능하게 만들었으며 대통령 선거는 전국민 직선에서 임시최고의회의 간선으로 변경되었다. 또한 대통령의 비상대권으로 헌법 일부를 정지시킬 수 있게 하였다.
1942년 헌법의 제정으로 녹우크라이나 제1공화국은 공식적으로 종언을 고했다.
1952년 헌법
1공화국 시절에 선출된 흐레샤티츠키 대통령이 사망하자 총리였던 페디르 스테슈코가 간선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망명정부 내의 몇몇 세력이 권력이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집중되어있다고 주장하였고, 이들의 이의를 받아들인 스테슈코는 헌법 개정 절차에 착수했다. 1952년, 개헌 착수 7개월만에 임시최고의회에서 헌법개정안이 통과되었다.
1952년 헌법은 권력의 분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우선 1942년 헌법 개정으로 대통령이 임시최고의회의 동의 없이도 임명할 수 있게 되었었던 총리직이 폐지되었다. 또 국정운영의 최고의결기관으로 대통령위원회를 구성하여 집단지도체제를 구축했다. 총 8인인 대통령위원회 위원은 대통령선거와는 별개의 투표로 선출되었다. 대통령은 위원회의 의장을 맡았으며, 위원회에서 특정 안건에 대하여 찬반이 동수일 경우 대통령이 지지한 쪽의 의견이 통과되도록 하였다.
1991년 헌법
레몬탕
레몬 탕후루 | |
---|---|
영어명 | Lemon Tanghuru |
창당일 | 2023년 11월 8일 |
당대표 | 래몽탄 |
이념 | 직접민주주의 자유주의 (한국) 청년정치 |
스펙트럼 | 중도 - 중도좌파 |
최고의회의원 | 33석 / 301석 (10.1%) |
시·주지사 | 0석 / 16석 (0.0%) |
당색 | 녹색 (#34B549)
|
황색 (#FFD700) / 민주진보당
| |
당원 수 | 2만 6천 명 |
국제조직 | 진보동맹 |
선거연합 | |
SNS | | | | | |
옥란
고쿠민노토
- 자유주의
- 국바세(보수자유주의): 이준석, 천하람, 허은아, 김용태
- 여시재(시장자유주의): 이광재, 김동연, 조정훈
- 보수본류
- 바른정치(공화주의): 유승민, 하태경, 유의동, 류성걸, 오신환
- 새보수(자유보수주의): 정병국, 원희룡, 남경필, 조응천
- 청류회(온건 보수주의): 나경원, 오세훈, 최재형
- 새미래(사회보수주의): 이낙연, 박광온, 이원욱
- 보수방류
- 자유한국(국민보수주의): 홍준표, 조경태, 김용판
- 처럼회(우익대중주의): 이재명, 정청래, 조정식
인구 최라
- 볼로 312 31
- 프리 326 32
- 모바 257 25
- 티흐 272 27
- 우수 211 21
- 하바 255 25
- 하카 225 22
- 스보 283 28
- 아무 189 19
- 이미 27 3
- 사할 85 9
- 비라 146 14
- 제이 123 12
- 우다 172 17
- 부레 106 11
- 추미 15 2
- 3,004 301
- ↑ 비변위의정 대행
- ↑ 민족주의+사회자본주의
- ↑ 해산 당시 기준
- ↑ 오른쪽 열 한 번째가 이승만.
- ↑ 5.0 5.1 5.2 5.3 5.4 5.5 대한민주당과 선거연대
- ↑ 발음 : 아이실란 타이핀 사타아
- ↑ 원내대표
- ↑ 사무총장
- ↑ 회파 형성
- ↑ 중추원 의원연구단체 등록
- ↑ 국무총리를 역임한 당산 김철이 이끌던 계파
- ↑ 사회민주당 부영임을 역임한 영암 박용만이 이끌던 계파
- ↑ 김영삼 내각 초기 당시 부총리 겸 국토건설성장관를 역임한 세명 제정구가 이끌던 계파
- ↑ 김철은 총리 재임 당시에는 양산파 소속이었다.
- ↑ 경제적으로는 중도좌파와 좌익에 걸쳐져있다는 평가를 받으나 사회적으로는 상당히 보수적이면서도 민족주의적인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 ↑ 현장파가 정식 중추원 의원연구단체로 등록되기 전
- ↑ 회파 형성
- ↑ 중추원 의원연구단체 등록
- ↑ 국무총리를 역임한 거산 김영삼이 이끌던 계파
- ↑ 김철은 총리 재임 당시에는 양산파 소속이었다.
- ↑ 21.0 21.1 회파 내 구성원들의 의견에 편차가 있어 사회적 이념이 명확하지 않다.
- ↑ 현장파가 정식 중추원 의원연구단체로 등록되기 전
- ↑ 아이신기오로 성씨 사용 시작
- ↑ 발음 : 만주 투림파 방크
- ↑ 국무원 소속이 아니며 따라서 내각이나 수상의 지시를 받지 않는다.
- ↑ 발음 :
- ↑ 지금에야 국민당이 보수우익 정당이지만 망명정부 시절의 국민당은 중도좌파부터 우익을 아우르는 포괄정당이었다.
- ↑ 물론 독립이 압도적으로 가결된 게 우크라이나 내셔널리즘 덕분만은 아니었다. 당시 구소련 경제는 극심한 침체를 겪고 있었기 때문에, 녹우크라이나가 독립하면 독립을 지지하는 한국의 경제적 지원을 받을 거란 기대감도 깔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