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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12일 (금) 18:49 판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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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
만주 총리
사민
| 파일:사회민주당 로고 (개화).png | ||
| 사회민주당 | ||
|---|---|---|
| 영문명 | Social Democratic Party of Korea, SDPK | |
| 표어 | 모두가 행복스럽게 잘 사는 복지사회 | |
| 창당일 | 1935년 6월 4일 | |
| 선행 조직 | / 당내 노선갈등으로 분열 | |
| 비변위의정 | 공석 | |
| 원무총사 | 김기현 | |
| 사무총사 | 정호진 | |
| 정책위의정 | 권성동 | |
| 이념 | 사회민주주의 | |
| 스펙트럼 | 중도좌파 (중도~좌익) | |
| 중추원의원 | 284석 / 750석 (37.9%) | |
| 당색 | 장미색 (#D52C4A)
| |
| 당원 수 | 75만 명 | |
| 국제조직 |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 |
| 진보동맹 | ||
| 청년조직 | 파일:청년사회민주당 로고 (개화).png | |
| 공식 사이트 | 파일:사회민주당 로고 (개화).png | |
| SNS | ||
| 2024년 포스터 - "먹고사니즘" |
|---|
개요
대한민국의 제1야당. 대한민국에 현존하는 정당 중 가장 역사가 긴 정당이다. 신한국당-국민의당으로 이어지는 보수정당과 함께 한국의 양대 수권정당 중 하나이며, 동아시아 지역의 대표적인 온건좌파 정당으로 일컬어진다.
1930년대 사회당 내부의 노선 투쟁의 결과로 탄생하였으며, 사회민주주의 국민정당을 표방한다. 궁극적으로는 민주적 복지국가 건설을 목표로 삼고 있다.
역사
성향
지도부
내부 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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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선거 결과
KNA
HHH
옥균's 내각
현장파
화요파
새길파
아이신기오로
금위대
은항
어떻게 된 거야 무서워
네놈들의 지도는 망했어!
감독선생
민국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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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진보 정당 | |||||
(개별 합류)
|
→ | 녹색당 | → | (현재) | |
(개별 합류)
| |||||
| 녹색당 | |
|---|---|
| 표어 | 대안의 숲, 전환의 씨앗 |
| 영어명 | Green Party Korea |
| 약칭 | 녹색, 녹 |
| 창당일 | 1976년 모월 모일 |
| 영임 | 박용진 / 3선 |
| 원무총사 | 하승수 / 3선 |
| 사무총사 | 김경준 / 3선 |
| 정책위의정 | 이정미 / 재선 |
| 대변인 | 박지현 / 초선 |
| 이념 | 녹색 정치 진보주의 |
| 스펙트럼 | 중도좌파 ~ 좌익 |
| 중의원 | 20석 / 805석 (2.5%) |
| 도부의원 | 46석 / 2720석 (1.7%) |
| 당색 | 녹색 (#599848)
|
| 당원 수 | 16만 명 |
| 국제조직 | 글로벌 그린스 |
| 청년조직 | 녹색당 청년회 |
| 공식 사이트 | |
| SNS | |
개요
대한민국의 보수정당. 현재 중추원 원내 1위의 정당이자 자유당과 연립내각을 구성하고 있는 집권여당이다.
1978년 평화민주당과 신한국당의 합당으로 탄생하였다. 이후 사민당과 정권을 주고받으며 주류 수권정당으로 활동하고 있다.
당 상징
당 로고
당가
역사
성향
보수정당답게 기본적으로 보수 성향을 띤다. 국민의당의 이념은 보수주의, 사회보수주의, 자유보수주의, 경제적 자유주의, 한국 내셔널리즘, 온건 보수주의, 국민보수주의, 사회적 자본주의 등이 꼽히지만, 가장 유력하고 공통적인 이념으로는 상단의 정당 틀에 적혀 있듯이 보수주의, 경제적 자유주의, 한국 내셔널리즘을 꼽을 수가 있다.
사회 분야에서는 보수주의 성향을 보인다. 한국의 전통적 가치 보호를 지지하며 국민적 단결과 통합을 중시한다. 내셔널리즘 성향도 상당히 강하지만 국민의당의 내서널리즘은 인종적 내셔널리즘 보다는 시민적 내셔널리즘에 더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물론 황색파처럼 문화적 자유주의를 지지하는 계파도 있다.
경제 분야에서는 전반적으로 친시장, 친기업 성향을 보인다. 경제활동에 대한 규제 철폐와 시장 개방을 옹호하며 법인세, 소득세, 부동산세 등의 세금 감면에도 긍정적이다. 다만 공기업 민영화에 대해서는 사안별로, 개파별로 입장이 상이하며, 복지의 적정선이 어디인지에 대해서도 당 내부적으로 이견이 존재하는 문제이다.
외교적으로는 내셔널리즘과 국제주의가 혼합된 모습을 보인다. 국민의당은 자유무역을 적극 옹호하고 국제적인 문제에 대한 한국의 개입도 지지하지만, 어디까지나 국민의당의 최우선적인 외교 목표는 동아시아에서 한국의 지역패권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는 안보정책과도 연결되어 극동조약기구의 군사적 통합과 한국군의 전쟁역량 증대를 지지한다. 또 군사적 역량과 서방 세계와의 연대를 통해 중국 및 소련의 세력 확장을 억제하고자 한다.
기본 정책
유승민 내각이 출범하며 발표한 정책들이다.
경제 정책
• 경제 성장의 지속
• 시장 개방
• 기업 경쟁력 강화
민생 정책
• 중산층 세금 감면
• 무주택자의 자가 보유 촉진
• 교육의 기회 확대
노동 정책
• 노동시장 유연화
• 실업자 재취업 지원
• 양질의 일자리 창출
행정 정책
• 재정 건전성 유지
• 행정 시스템 효율화
• 지방 자치권 확대
사회 정책
• 한국의 전통적 가치 수호
• 합리적 사회안전망 구축
• 합계출산율 방어
• 양성평등사회 실현
외교안보 정책
• 군사력 강화
• 한국의 세력권 유지 및 확장
• 힘에 의한 평화 확립
지지 기반
지역
국민의당의 '텃밭'이라고 불리는 지역 기반으로는 호남 지방과 관서 지방이 있으며, 그 이외에 국민의당이 강세를 보이는 지방으로는 강원, 해서, 동간도 등이 있다.
호남 지방과 관서 지방은 국민의당을 비롯한 한국 주류 보수정당의 전통적인 지지기반이다. 두 지역 모두 부유하며 기독교 신자 비율이 전국 평균보다 높다는 공통점이 있다. 관서의 경우 (경제적) 자유주의 성향이 강해 과거 대한민주당과 신한국당의 기반이었으며, 호남은 관서보다 전통주의적 성향이 강해 국민회와 평화민주당의 지지 기반이었다. 관서와 맞닿은 해서 지방 역시 보수세가 강하며, 강원과 충북 지역에서도 지지세가 상당하다. 개화 이후 한국의 첫 개척지인 동간도는 보수세가 비교적 옅은 편이지만 사민당과의 대결에서는 국민의당이 우위를 점한다.
반면 영남과 관북 지방에서는 약세를 보인다. 대구경북에서는 안동을 제외하면 지역기반이 전무하며, 함남함흥은 지역구 당선자가 없을 정도로 함지다. 동래경남과 함북에서는 어느 정도 세가 있지만 여전히 사민당에 비해 불리한 위치에 있다. 수도권, 호서와 요동, 서간도 지방에서는 사민당과 접전을 벌인다. 또 남포는 국민의당 초강세 지역인 관서 지방의 일부이지만 항만과 공업단지가 위치해 있어 접전지로 분류된다.
계층
국민의당의 주력 지지집단은 중산층, 주택보유자, 사무직, 고급기술직, 자영업자이다. 국민의당 지지층의 대부분이, 심지어는 비지지층 중 절반 이상이 국민의당을 중산층 친화정당이라고 인식했다. 또한 유주택자 지지율이 높은데, 국민의당의 전통적 정책 중 하나인 자가 소유 촉진책 역시 이를 염두에 둔 정치적 계산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대기업과 기업집단들의 지지를 받는다. 이는 당연히도 국민의당이 기업 친화적인 정당이기 때문이다. 2010년대 한국의 기업들이 국민의당에 후원한 금액은 사민당에 후원한 금액의 7배였으며, 이는 모든 기업의 전체 정치후원금의 약 60%에 해당하는 비중이다.
지도부
역대 총리
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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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색파 | 청색파 | 자색파 | 녹색파 | 홍색파 | ||
국민의당에는 크게 다섯 갈래의 계파가 존재하며, 이들을 각각 색상을 붙여 구분해 부른다. 이들 중 녹색파, 청색파, 자색파는 전통적 주류 계파이며 홍색파와 황색파는 신흥 비주류 계파이다.
당 기관
여의도연구원
청년의당
다른 정당과의 관계
사회민주당
영혼의 라이벌. 한국의 전통적인 정치구도에서 언제나 대립해왔던 정당이다.
자유당
주 연정 파트너. 두 당 모두 경제적 우파라는 공통점이 있으며, 국민의당은 안정적인 과반을 확보해 집권하기 위해 많은 선거에서 자유당과 연립했다. 현재도 국민의당과 자유당은 연립내각을 통해 공동으로 집권하고 있다.
기타
선거 결과
각주
민국정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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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당 | |
|---|---|
| 영어명 | Liberal Party, LP |
| 한자명 | 自由黨 |
| 약칭 | 자유, 자 |
| 창당일 | 1884년 모월 모일 |
| 당명 변경 | 1918년 모월 모일 |
| 영임 | 이광재 / 5선 |
| 원무총사 | 조경태 / 7선 |
| 사무총사 | 김두관 / 4선 |
| 정책위의정 | 이일환 / 3선 |
| 이념 | 자유주의 고전적 자유주의 |
| 스펙트럼 | 중도 ~ 중도우파 |
| 중의원 | 62석 / 805석 (7.7%) |
| 도부의원 | 255석 / 2720석 (9.4%) |
| 당색 | 황색 (#FFCC00)
|
남색 (#173EA9)
| |
| 당원 수 | 27만 명 |
| 국제조직 | 자유주의 인터내셔널 |
| 청년조직 | 청년자유당 |
| 공식 사이트 | |
| SNS | |
개요
대한민국의 자유주의 정당. 현재 중추원 원내 3위의 정당이자 국민의당과 연정을 통해 내각을 구성하고 있는 연립여당이다.
명칭
- 영어 : Liberal Party
- 중국어
- 정체자(번체자) : 自由黨
- 표준중국어 발음
- 한어병음 : zìyóu dǎng
- 중국어의 외래어 표기법 : 즈요당
- 한국어 한자음 : 자유당
- 우크라이나어: Ліберальна партія
- 우크라이나어의 외래어 표기법 : 리베랄나 파르티야
역사
개화당에서 자유당으로
이상설 내각
20세기 초중반
장준하 내각
20세기 후반
노무현 내각
2000년대 이후
성향
자유당의 이념으로는 자유주의, 고전적 자유주의, 경제적 자유주의, 문화적 자유주의, 신자유주의, 우익 자유지상주의, 보수자유주의 등이 언급된다.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자유주의, 그 중에서도 특히 고전적 자유주의 성향이 아주 강하다. 정치, 경제, 사회 등 대부분의 분야에 걸쳐 개인의 자유가 최우선시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자유당은 경제적으로는 친시장, 친기업 성향이다. 법인세와 개인소득세의 감면을 주창하고 모든 종류의 시장 개방을 지지한다. 정부지출 삭감과 경제적 규제의 광범위한 철폐 역시 주장한다. 이러한 주류의 입장과 달리 소수이기는 하지만 완전한 자유방임적 시장경제를 지지하는 당원들과 복지에 상당히 우호적인 당원들도 존재한다.
자유당은 문화적으로 역시 자유주의 성향이 있다. 다문화주의를 지지하며 인터넷 검열 완전철폐 등 보편적인 자유를 옹호한다. 안락사나 낙태 등 다소 민감한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서도 전반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을 보인다. 다만 사민당 새길파나 녹색당과는 달리 소수자에 대한 태도는 다소 모호하며 정치적 올바름에도 부정적이다. 일부 계파는 민족주의적인 관점에 기반해 사회적으로 다소 보수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자유당은 외교, 안보적으로 국제주의와 친서방주의를 표방한다. 타국과의 자유무역협정과 시장 개방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한국이 동아시아를 넘어서 전세계적으로 민주주의, 기아, 내전 등에 관여할 의무가 있다고 본다. 또한 미국과 유럽 등 서방 세계와의 협력을 중요시하며, 원내 정당 중에서 친미 성향이 가장 짙다.
지지 기반
자유당의 가장 큰 지지기반은 부촌의 고소득자, 고학력자다. 한성의 부촌인 강남 3구나 각 대도시의 부촌에서 지지세가 특히 강하다. 직업별로 보면 고소득 화이트칼라와 전문직에서의 지지율이 유난히 높다.
국민의당보다도 강경한 친시장, 친기업 성향이라 기업들의 지지를 받는다. 자유당은 거대양당 중 하나인 사민당을 제치고 국민의당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기업 후원금을 받고 있다.
지도부
역대 총리
계파
중앙파
자유당의 최대 계파이자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계파. 개화당이 자유당으로 당명을 변경할 때부터 존재했으며, 서재필, 이상설 등 개화당 말기, 자유당 초기의 주요 지도자들이 모두 이 계파 소속으로 분류된다.
중앙파의 이념으로는 고전적 자유주의, 경제적 자유주의, 문화적 자유주의, 신자유주의, 우파 자유지상주의 등이 언급된다. 경제적으로든 문화적으로는 자유주의 성향이며 특히 경제적으로는아주 강력한 자유주의 우익 성향을 띤다. 이 계파 소속 총리로는 서재필, 이상설, 노무현이 있다.
국민파
자유당의 1강 2중의 세력구도 중 중에 해당하는 게파로, 당내 우파로 분류된다. 경제적 자유를 강력히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중앙파와 같다. 하지만 국민파는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사회 정책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중앙파보다 보수적인 면모를 보인다.
서재필 총리가 종종 이 계파 소속으로도 분류된다.
혁신파
자유당의 3대 계파 중 가장 작은 계파. 사회자유주의, 진보적 자유주의, 중도주의 성향을 보인다. 스펙트럼 상으로는 중도 ~ 중도좌파. 문화적 자유주의 성향을 보인다는 점에서는 중앙파와 비슷하지만 혁신파는 중앙파보다 경제적으로 더 왼쪽이 위치한다.
자유당이 총리를 배출했던 장준하 내각 시절에는 자유당 최대 계파였지만 일부가 1976년 녹색당으로 탈당했고 1980년대부터 쇠퇴래 지금은 소규모 정파로 쪼그라들었다. 장준하 총리가 이 계파 소속으로 분류되었으며, 노무현 총리도 중앙파 소속이기는 하되 혁신파에도 한 발 걸친 스탠스를 보였다.
타 정당과의 관계
국민의당
주 연정 파트너. 자유당과 국민의당은 경제적 우파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일부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 자유당은 주로 국민의당과 연정을 꾸리며, 국민의당이 총리를, 자유당이 부총리를 맡은 그림이 일반적이다. 현재도 국민의당과 자유당이 연립여당으로 집권중이며, 자유당 영임인 이광재를 비롯하누여러 자유당 출신이 유승민 내각에 입각해있다.
자유당과 국민의당 모두 상대와의 연정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국민의당의 경우 안정적 과반 유지를 위해 자유당과의 협력이 필요하며, 자유당의 경우 지속적인 국정 운영 경험을 쌓기 위해 이에 동참한다. 사민당이 자유당을 누르고 보수정당과 양당제를 공고히 한 후에도 장준하 내각이나 노무현 내각 등 종종 자유당 소속 총리가 주도하는 내각이 나올 수 있던 것도 자유당이 계속해서 연정에 참여하면서 국정 운영 경험을 쌓았기 때문이었다.
사회민주당
사이가 썩 좋지는 않다. 자유당이 좌파보다는 우파에 더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 대에 반해 사민당은 명실상부한 주류 좌파정당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자유당이 주로 국민의당과 손을 잡는지라 두 당은 같은 진영에 속한 적이 별로 없다.
자유당과 사민당 좌파와의 관계는 최악이다. 문화적 경제적 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자유당과 달리 사민당 좌파는 문화적 보수, 경재적 진보를 추구하는 상극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사민당 좌파는 자유당의 노무현이 총리로 있던 노무현 내각을 무너뜨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다만 자유당과 사민당 우파는 관계가 나름 가깝다. 노무현의 자유당이 사민당 우파가 주도하는 사민당과 손을 잡고 내각을 구성했었다.
공산당-진보연합
상극 중의 상극. 모든 면에서 정반대의 성향이다. 역사상 단 한 번도 자유당과 공산당이 동시에 같은 내각에 참여한 적이 없다.
기타
선거 결과
각주
건빵
개요
한국군의 전투식량에 관해 설명하는 문서.
역사
19세기
한국군은 20세기 이전까지는 전투식량이라는 개념 자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기껏해야 장거리 작전에 나가는 병사들이 떡이나 쌀가루 등의 전근대적인 휴대용 식량을 사용했다고 추정될[23] 뿐이다.
한국 최초의 근대적 전투식량은 건뻥이었는데, 이는 중국의 의화단 반란 당시 한국군 지휘관으로 참전한 서재창[24] 당시 정령이 일본군이 건빵을 먹는 모습을 보고 상부에 건의해 도입된 것이었다. 이와 관련해 서재창과 통역무관 서기학 참위 사이의 일화가 하나 전해진다.
| 서재창: (일본군 병사들이 건빵을 먹는 모습을 보고) 이보게, 서 참위. 일본군 무관한테 저 병졸들이 먹고 있는 저 전병처럼 생긴 것이 무엇인고 하고 한 번 물어보게. 서기학: 예, 연대장 각하. (일본군 무관에게 일본어로) 저 병사들이 먹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일본군 무관: 아, 칸판(乾パン)이라는 거요. 빵을 여러 번 구워 물기를 완전이 빼낸 보존식이오. 서재창: 서 참위, 저 무관이 무어라고 하던? 서기학: 아, 그게… 마를 건 자에… 어… 건빵이라고 하덥니다. |
서재창은 ‘건빵’에 대해 조금 더 조사한 뒤 군용 식량으로써의 건빵의 가치를 다룬 보고서를 본국에 제출했다. 파병된 병력의 식량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군무성은 이 보고서를 눈여겨보았고 건빵 생산을 결정한다. 1900년 가을, 건빵공장이 평안북도 정주에 완공되었고 그곳에서 한국 최초의 전투식량인 건빵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건빵을 섭취한 일선 병사와 간부들의 평가는 최악이었다. 이전까지는 건빵은 고사하고 근대적인 전투식량을 만들어본 적이 없는 한국에서 생산한 건빵이었던 만큼 당연하게도 딱딱하기 그지없었고 맛도 없었다. 병사들은 이 딱딱하고 맛없으며 어찌어찌 먹는 데에 성공해도 퍽퍽해서 물을 들이켜야 하는 이 음식을 매우 싫어했다. 이후 일본으로부터 별사탕을 도입해 건빵과 함께 제공하면서 그나마 먹을 만해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여담으로 서기학이 즉석에서 만들어낸 ‘건빵’이라는 단어로 인해 서양의 빵(bread)이 한국어로 빵으로 번역되기 시작했다.
20세기 초반
| 시베리아 전쟁 중 1호 전식을 먹는 육군 정교 (1920.7.17) |
1차 세계대전 전까지는 한국군은 건빵 이외의 전투식량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끝없는 참호전으로 인해 참호 안에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전투식량이 필요했던 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한국군은 1차 세계대전 중에는 기껏해야 독일령 칭다오 공략전 등에만 참여했다. 이로 인해 한국군은 가급적이면 야전취사 마차를 통해 장병들에게 따뜻한 밥과 국을 제공하되 그럴 여건이 안 될 때에만 전투식량을 섭취하면 됐고, 이런 목적으로는 건빵과 별사탕으로 충분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만 1차 세계대전이 심화되면서 유럽에서의 참상이 전해지자 한국군도 본격적인 전투식량의 생산 필요성을 인식하고 개발에 착수했다.
그렇게 개발된 것이 야전전투식량 1호, YJS-1이다.[25] 통칭 1호 전식이라고 불린다. 1호 전식은 건빵과 절인 고기(콘비프), 구운 콩, 말린 생선, 고춧가루와 약간의 설탕과 소금으로 구성되었고, 한 끼에 약 1천 칼로리로 하루 세 끼 기준 약 3천 칼로리의 열량을 냈다.
한국군이 개발한 전식의 진가는 1918년 개시된 시베리아 전쟁에서 입증되었다. 동시베리아의 혹독한 날씨와 빨치산의 습격으로 한국군 장병들은 제대로 된 취사를 할 수 없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이 때 야전전투식량은 병사들의 소중한 한 끼 식사가 되어주었다. 당시 참전용사들의 회고에 따르면 1호 전식은 맛이 좋은 편은 아니었으나 먹을만 했고, 전식 덕분에 다분한 노력의 필요와 빨치산의 기습 가능성을 높여주는 취사 과정을 생략할 수 있었다고 한다.
| 점심시간이 되자, 우리 소대원들은 보초조를 제외하고는 바닥에 쪼그려 앉아 일제히 연갈색 전투식량 봉지를 꺼내어 들었다. 소대장이 취사 대신 전투식량을 섭취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었다. 밥을 하려 불을 피웠다가는 인근의 좌익 빨치산들의 이목을 끌 수 있기 때문이라고 소대장은 말했다. 처음 먹어보는 전식의 맛은, 설명할 길이 없지만 그저 그랬다. 못 먹을 맛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맛이 좋지도 아니하였다. 건빵은 씹기 전에는 딱딱하고 씹은 후에는 퍽퍽해서 먹기 힘들었지만 별사탕, 염장고기과 함께 먹으니 그나마 괜찮았다. 구운 콩과 동태에는 고춧가루를 뿌려 먹었다. 그렇게 전식으로 꼬박 다섯 끼를 떼웠다. 쌀밥과 국이 그리웠다. 박진순 중추원 의원, 당시 육군 상병 |
박진순의 증언에서도 확인되듯이 1호 전식에도 문제가 있었다. 시베리아 전쟁에 파견된 병사들이 야전취사 마차가 들어서지 못하는 지역에서도 1호 전식의 건빵과 염장고기 대신에 따뜻한 쌀밥과 김치를 먹고 싶어했던 것. 이에 한국군은 쌀밥이 포함된 2호 전식(YJS-2)을 개발해냈다.
2호 전식의 내용물로는 백미와 함께 고기, 콩, 나물 캔과 말린 다시마와 말린 생선 그리고 간장, 된장, 고추장, 녹찻잎이 있었다. 이와 함께 일선 부대에는 찬합에 밥을 하거나 차를 끓여 마실 수 있게[26] 소형 스토브와 연기가 나지 않는 고체 연료가 지급되었다. 다만 병사들이 그리도 먹고 싶은 했던 김치는 산성 때문에 기술의 한계로 포함되지 못했다. 2호 전식이 1921년 초부터 보급되면서, 국군은 1호 전식과 2호 전식을 혼용했다. 2호 전식은 스토브를 사용해 간단함 취사를 할 여유가 있는 상황에서, 1호 전식은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섭취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제3차 극동전쟁)
| 춘천 전투 직후 3호 전식을 먹는 육군 의무관[27] (194x.x.xx) |
1호 전식을 대체한 3호 전식(YJS-3)은 1933년에 대공황 속에서 개발되었다. 3호 전식은 1호 전식에 비해 조금 더 사람 먹는 것 같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염장고기가 사라졌고 그 대신 고기 스튜 캔, 비빔밥 캔, 고추장과 정수제가 추가되었다. 일선 장병과 간부들 사이에서 이빨분쇄기라고 불릴 정도로 딱딱했던 건빵이 개량을 통해 조금 더 부드러워지는 등 몇 가지의 사소한 개선도 있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훨씬 더 다양한 메뉴가 추가되어 3개 종류의 식단이 개발되었어야 했지만 대공황으로 인한 가혹한 군축때문에 대폭 깎인 예산으로 근근히 군대를 유지해야 했던 국방성은 비용 절감을 위해 여러 메뉴를 삭제했고 식단도 단일 종류로 줄였다. 결국 제3차 극동전쟁 초기 국군 장병과 무관들은 예상되었던 것보다 훨씬 부실한 전투식량을 섭취해야만 했다.
20세기 후반
현재
종류
평가
단
노베루 프라이즈
당
| 녹우크라이나의 보수주의 정당 | ||||
| 창당 | → | 진보당 | → | |
| 진보당 | |
|---|---|
| 오어명 | Партія прогресу[30] |
| 영어명 | Progress Party (of Green Ukraine) |
| 창당일 | 1917년 |
| 해산일 | 1931년 (신설합당) |
| 후신 | |
| 이념 | 보수주의 (녹오) 국민주의 (녹오) 경제적 자유주의 반공주의 |
| 스펙트럼 | 중도우파 ~ 우익 |
| 당색 | 청회색 (#475885)
|
| 당원 수 | 1만 9천 명 (해산 직전) |
| 선거연합 | |
개요
녹우크라이나 제1공화국 시기에 존재했던 혁명적 민족주의 성향의 우익 정당. 강력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와 함께 사회보수주의, 반공산주의, 기독교(특히 정교회) 가치 보호 등을 추구했다. 주요 인물로는 녹우크라이나 제헌위원회 의장과 제9대 총리를 역임한 베네딕트 야코벤코가 있다.
상세
선거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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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녹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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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대 녹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 미콜라 레온티요비치 유나키우 Микола Леонтійович Юнаків | ||||||||||||||||||
| 출생 | 1871년 12월 6일 | |||||||||||||||||
| 국적 | → → | |||||||||||||||||
| 사망 | 1931년 8월 1일 (향년 59세) | |||||||||||||||||
| 묘소 | 녹우크라이나 성 안드레아 국립묘원 | |||||||||||||||||
| 임기 | ||||||||||||||||||
| 1925년 5월 ~ 1928년 8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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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러시아 제국,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 그리고 녹우크라이나의 군인. 제3대 우크라이나 극동군 총사령관을 역임했다.
생애
평가
여담
- 프로필 사진은 우크라이나 인민군 시절 찍은 것으로, 옷깃의 계급장은 소장 계급장이다.
각주
누군가
녹우크라이나 대통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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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반 모졸레우스키 관련 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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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대 녹우크라이나 대통령 이반 빅토로비치 모졸레우스키 Іван Вікторович Мозолевський | ||||||||||||||||||||||
| 출생 | 1862년 4월 1일 | |||||||||||||||||||||
| 국적 | → | |||||||||||||||||||||
| 사망 | 1935년 1월 10일 (향년 72세) | |||||||||||||||||||||
| 묘소 | 녹우크라이나 성 안드레아 국립묘원 | |||||||||||||||||||||
| 임기 | 제2대 녹우크라이나 대통령 | |||||||||||||||||||||
| 1926년 4월 1일 ~ 1930년 3월 31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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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녹우크라이나의 의학자, 민족주의 운동가이자 정치인. 제2대 녹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역임하였으며 녹우크라이나의 국부 중 한 명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생애
| 1919년의 모졸레우스키 |
여담
소속 정당
| 소속 정당 | 기간 | 비고 |
|---|---|---|
| 1917 - 1931 | 창당 | |
| 1931 - 1935 | 합당 |
선거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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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탕
| 파일:레몬 탕후루당 로고 (개화).svg | |
| 레몬 탕후루당 | |
|---|---|
영어명
|
Lemon Tanghuru Party |
창당일
|
2023년 11월 8일 |
당영임
|
ㅇ |
이념
|
직접민주주의 자유주의 (한국) 청년정치 |
스펙트럼
|
중도 - 중도좌파 |
중추원의원
|
0석 / NNN석 (0.0%) |
부·도지사
|
0석 / 16석 (0.0%) |
당색
|
노란색 (#F8DE7E)
|
보라색 (#8A2BE2)
| |
당원 수
|
4만 2천 명 |
국제조직
|
진보동맹 |
SNS
|
|
|
과제📗에 치인 대학생👨🎓도
레몬 탕후루당 당가 |
국대
고쿠민노토
- 자유주의
- 국바세(보수자유주의): 이준석, 천하람, 허은아, 김용태
- 여시재(시장자유주의): 이광재, 김동연, 조정훈
- 보수본류
- 바른정치(공화주의): 유승민, 하태경, 유의동, 류성걸, 오신환
- 새보수(자유보수주의): 정병국, 원희룡, 남경필, 조응천
- 청류회(온건 보수주의): 나경원, 오세훈, 최재형
- 새미래(사회보수주의): 이낙연, 박광온, 이원욱
- 보수방류
- 자유한국(국민보수주의): 홍준표, 조경태, 김용판
- 비상(자유지상 보수주의): 용혜인, 오준호
인구 최라
- 볼로 312 31
- 프리 326 32
- 모바 257 25
- 티흐 272 27
- 우수 211 21
- 하바 255 25
- 하카 225 22
- 스보 283 28
- 아무 189 19
- 이미 27 3
- 사할 85 9
- 비라 146 14
- 제이 123 12
- 우다 172 17
- 부레 106 11
- 추미 15 2
- 3,004 301
녹오 대학
- 볼로 성 일라리온, 볼로
- 프리 프리, 육군, 국방, 슬로
- 모바 모바, 항공, 공군, 모바 의과, 모바 농과, 유리, 프코
- 티흐 티흐, 해군, 해양, 즈나 공과, 아드, 야폰
- 우수 우수, 이만 의과
- 하바 하바, 과기
- 하카 하카, 트하 공과
- 스보 스보, 자유, 스보 공과
- 아무 아무, 코노
- 사할 사할
- 이미 이미 민족
- 비라 비라, 문화예술
- 제이 제이
피카레스크 단편선
| 그는 한국의 거대 기업들이 증오스러웠다. 자국의 재벌들 또한 마찬가지였지만, 한국에서 온 기업들은 그 정도가 심했다. 적어도, 자국의 재벌들이 버는 돈은 어디까지나 '우리 나라'의 돈이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온 기업들은 오로지 우리 나라의 자원과 노동력을 한국 본토로 방출할 뿐이었고, 현지의 경제개발에는 하등 관심이 없었다. 뼈빠지게 일해봤자, 가족들의 생계는 나아질 구석이 보이지 않았고 한국인들의 배만 채워줄 뿐이었다. 이반 탈리스넨코의 일기 (가제) by 에러 |
| 캄캄한 어둠 속, 차가운 돌과 흙 사이. 장스쥔은 깊이 들이마신 공기가 검은 먼지로 가득 차 있음을 느꼈다. 막장 작업을 끝마친 뒤에도, 탄광의 무겁고 답답한 느낌은 그를 계속해서 짓눌렀다.
거울 앞에서 분진이 까맣게 앉은 얼굴을 문지르며, 그는 어린 시절 그의 소학교 선생이 알려준 이야기를 떠올렸다. 짐 크로. 그것은 거울 속 남자를 말하는 것 같았다. 일이 끝나면, 곧바로 노동자들은 일곱 평 남짓하는 방에 몸을 뉘었다. 숨이 막히는 기분은 잠시도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씻어내지 못한 분진이 그를 불태울 듯한 불안감이 들었다. 많은 것이 바뀌었다. 더이상 마적떼도, 군량을 요구하던 군인의 무리도 없었으나, 그와 그 동네에 살던 사람들은 어떤 것들을 잃어버렸다. 어느새부터, 그들은 중국인이지만 중국인이 아니게 되었다. 그가 누운 일곱 평 방에는 이부자리를 깔고 같이 누울 아내도, 이야기를 들려줄 아이들도 없었다. 그의 아내는 럭키의 공장이 폐기물을 간수하지 못해서 보상금 몇 푼만을 남기고 떠나갔다.(모순적이게도, 그는 결국 그 돈의 일부로 럭키 치약을 샀다.) 그 거대한 괴물의 아가리는 먹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속에서 스쥔은 생각하는 방법을 잊었다. 신문도 더이상 펼치지 않았다. 고향의 풀꽃 향기는 갱도의 흙내음에 덮여 더이상 생각나지 않았다. by 키네 |
| 김 정위, 그는 장래를 촉망받는 젊은 공군 무관이다. 또한 한국의 우방인 자유 월남을 보호하고 공산 비적떼를 소탕하는 정의의 전쟁에 참전한 자랑스러운 국군의 용사이기도 하다.
오늘은 베트남에서의 그의 첫 실제 작전이 있는 날이다. 그의 팬텀기로 향하는 길, 월남의 뜨거운 햇살을 맞으며 파일럿 헬멧을 옆구리에 끼고 늠름하게 걸어가는 그의 시선을 잡은 것이 있었다. 활주로 한켠에 광고판처럼 생긴 커다란 판때기에 하얀 바탕에 검은색 글씨로 쓰인 표어였다. <한국군은 백 명의 베트콩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양민을 보호한다.> 주월한국군도정인 채명신 정령의 글귀였다. 잠시 후 김 정위는 그의 애마, 아니 팬텀기에 올라탔다. 그는 조석의 정면부를 가득 채운 복잡한 계기판을 조작하며 이륙 준비를 마쳤다. 계기판 한켠에 걸린 사진. 한 젊고 아름다운 여자가 갓난이기를 안고 있었다. 그것은 한국에 있는 김 정위의 아내와 아이였다. 마지막으로 김 정위는 사진 옆에 붙어있는 작전명령서를 다시 한 번 흝었다. <공습 목표, 위도 ○○○, 경도 ○○○의 큰 촌락. 김 정위의 육중한 전쟁기계는 중력을 무시하듯 하늘 높이 두둥실 떠올랐다. by 쿠리오 |
by [[]] |
- ↑ 비변위의정 대행
- ↑ 발음 : 아이실란 타이핀 사타아
- ↑ 원내대표
- ↑ 사무총장
- ↑ 회파 형성
- ↑ 중추원 의원연구단체 등록
- ↑ 국무총리를 역임한 당산 김철이 이끌던 계파
- ↑ 사회민주당 부영임을 역임한 영암 박용만이 이끌던 계파
- ↑ 김영삼 내각 초기 당시 부총리 겸 국토건설성장관를 역임한 세명 제정구가 이끌던 계파
- ↑ 김철은 총리 재임 당시에는 양산파 소속이었다.
- ↑ 경제적으로는 중도좌파와 좌익에 걸쳐져있다는 평가를 받으나 사회적으로는 상당히 보수적이면서도 민족주의적인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 ↑ 현장파가 정식 중추원 의원연구단체로 등록되기 전
- ↑ 회파 형성
- ↑ 중추원 의원연구단체 등록
- ↑ 국무총리를 역임한 거산 김영삼이 이끌던 계파
- ↑ 김철은 총리 재임 당시에는 양산파 소속이었다.
- ↑ 17.0 17.1 회파 내 구성원들의 의견에 편차가 있어 사회적 이념이 명확하지 않다.
- ↑ 현장파가 정식 중추원 의원연구단체로 등록되기 전
- ↑ 아이신기오로 성씨 사용 시작
- ↑ 발음 : 만주 투림파 방크
- ↑ 국무원 소속이 아니며 따라서 내각이나 수상의 지시를 받지 않는다.
- ↑ [1]
- ↑ 개화 이전의 전투식량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기 때문에 추정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 ↑ 서재필 총리의 동생이다.
- ↑ 야전의 첫글자 Y, 전투의 첫글자 J, 식량의 첫글자 S를 따와 만든 단어로, 대부분의 국군 장비의 제식번호가 이런 식으로 붙여진다.
- ↑ 전선에서 끓여 마시는 차는 일종의 기호식품으로서 병사들의 사기 증진의 효과와 동시에 더러운 물을 끓여 마셔 질병을 예방하는 기능도 있었다.
- ↑ 부위 계급장을 달고 있다.
- ↑ 최화학, 장세용과 공동 수상
- ↑ 박남규 등 3명과 공동 수상
- ↑ 발음 : 파르티야 프로흐레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