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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5일 (목) 08:57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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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국 满洲国 | ᠮᠠᠨᠵᡠ ᡤᡠᡵᡠᠨ[1] | State of Manchuri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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万民协和 王道乐土 ᠰᠠᡵᠣᠸᠠ ᠨᡳᠶᠠᠯᠮᠠ ᡳ ᡨᠠᡳᡶᡳᠨ ᡝᡥᡝ ᡥᡡᠸᠠᠩᡩᡳ ᡳ ᠵ᠊ᡠᡵ᠊ᡥ᠊ᠠᠨ[2] 만민협화 왕도낙토 | |||||||||||
국가 | 만주국 국가 | ||||||||||
국화 | 고량화 | ||||||||||
국목 | 적송 | ||||||||||
역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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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자연환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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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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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LD | |||||||||||
.mc[7] | |||||||||||
국가 코드 | |||||||||||
409, MC, MCR | |||||||||||
전화 코드 | |||||||||||
+83 | |||||||||||
위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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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만주 위치 지도1 (개화).pn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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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만주국(满洲国, State of Manchuria)은 동아시아에 위치한 입헌군주국이다.
상징
국기
오색황기 五色黄芪 | ᠰᡠᠨᠵᠠ ᠪᠣᠴᠣ ᠰᡠᠸᠠᠶᠠᠨ ᡤᡡᠰᠠ | |||
지위 | 만주국의 국기 | ||
채택일 | 1927년 9월 20일 | ||
설계자 | 정샤오쉬 | ||
근거법령 | 만주국 헌법 | ||
비율 | 2:3 |
오색황기는 만주국의 국기로, 만주국 헌법을 통해 그 지위를 보장받는다. 만주의 초대 수상이자 건국삼걸 중 한 명인 정샤오쉬가 직접 디자인했다.
만주의 상징색이자 황제의 통치를 의미하는 노란색이 깃발의 아래쪽 절반을 채우고 있다. 윗부분의 우측 2/3는 적색, 청색, 백색의 선이 가로 방향으로 똑같은 비율로 칠해져있는데 이는 각각 용기, 고결, 정의를 의미한다. 정사각형 모양의 좌측 1/3은 의지를 상징하는 검정으로 칠해져있으며, 그 안에는 만주의 국장이 그려져있다. 국기 전반적으로는 황제의 통치를 기반으로(황색) 국가의 고귀한 가치들(적·청·흑·백)이 피어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국장
난화어문휘 兰花御纹徽 | |||
지위 | 만주국의 국장 | ||
채택일 | 1928년 3월 19일 | ||
설계자 | 차이윈성 | ||
근거법령 | 만주국 헌법 |
난화어문휘는 만주국의 국장이다. 만주의 국화인 고량화와 만주 황실 상징인 보춘화[8]를 합친 것이다. 건국 초기에는 다양한 바리에이션의 난화어문휘가 사용되었지만 1940년대에 들어 현재의 형태로 고정되었다.
국가
만주국 국가 滿洲國國歌 | ᠮᠠᠨᠵᡠ ᡤᡠᡵᡠᠨ ᡠᠴᡠᠨ[9] National Anthem of Manchuria | |||
지위 | 만주의 국가 | ||
채택일 | 1928년 3월 15일 | ||
작사자 | 정샤오쉬 | ||
작곡자 | 불명 | ||
근거법령 | 만주국 헌법 |
만주국 국가는 만주국의 국가로, 만주국 헌법에 의해 만주국 국가로 지정되어 있다. 가사는 황제에 대한 칭송을 주 내용으로 한다. 가사는 만주국 국기와 마찬가지로 정샤오쉬가 지었으나 작곡가는 불명이다.
만주국 국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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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색
노랑 御黄 | ᠰᡠᠸᠠᠶᠠᠨ | Royal Yellow | |||
선정 기관 | 만주국립문화협회 | ||
헥스 색상코드 | #FFC600 | ||
10진 색상코드 | (255,198,0) |
공식적인 것은 아니나 국기, 국장 등에서 공통적으로 노랑이 사용된다. 만주국립문화협회에서는 노랑색(#FFC600)을 국색으로 선정했다.
역사
건국 과정
1911년, 중국 본토에서는 쑨원이 주도한 신해혁명이 발생하여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을 건국하면서 수천년간 이어져 내려오던 중국의 전제군주제가 종말을 고하였다. 동시에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푸이 역시 만 2세의 나이로 폐위되었다. 하지만 새로이 건국된 중화민국은 온갖 정치세력 및 군벌의 난립과 외세의 개입 그리고 부정부패의 만연으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1915년에는 대총통 위안스카이가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라 중화제국을 선포하는 홍헌체제가 발생했고, 1917년에는 장쉰(장훈)이 푸이를 다시 황위에 앉혀 군주제를 복원하려는 장훈복벽이 있었으며, 전국에서 군벌간의 전쟁이 끊이질 않았다. 이 상황에서 신해혁명과 민국의 아버지인 쑨원이 1925년 사망하면서 중국은 더욱 심한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중국의 정국이 오리무중인 가운데, 신해혁명 이후로도 여전히 상당한 세력을 자랑하던 복벽파는 실망에 빠져 있었다. 그들이 충성을 바치던 청나라는 이미 사라졌고 군주제를 복원하려던 장쉰의 장훈복벽까지 실패하였다. 1924년에는 북경정변을 통해 베이징을 장악한 펑위샹이 핍궁사건을 일으켜 청나라 소조정의 푸이가 궁에서 내쫓기는 상황에서도 복벽파는 닭 쫓는 개 마냥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어야만 했다.
한편, 만주에서는 중국 본토의 중앙정부에 불만을 품고, 혹은 만주 지역주의 감정으로, 혹은 그저 자신의 권력 확대를 위해 만주 지역의 자치를 원하는 이들이 존재하였는데, 이들은 일종의 연방제 담론인 연성자치론(聯省自治論)을 지지하였다. 연성자치론의 지지자들은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원하던 중국국민당, 그리고 본토에 거점을 가진 다수의 군벌들과 필연적으로 대립할 수 밖에 없었다. 만주 지역의 연성자치론자들에게는 다행히도 중국 본토에서의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중화민국 중앙정부의 만주에 대한 통제력이 약해졌고, 이는 만주의 자치론자들이 더 넓은 반경에서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게 하는 토대가 되었다.
이러한 환경의 변화 덕에 만주 문제에 더 깊게 개입할 수 있게 된 해외 세력이 있었으니, 바로 한국이었다. 갑신혁명을 통해 개화에 성공한 한국은 1차 극동전으로 대련(비사)와 간도를, 제2차 극동전으로 남만주의 철도 부설권을 얻어낸 상태였으나, 더욱 적극적으로 북쪽을 향해 진출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한국 정부는 만주 지역에 대한 중국 중앙정부의 통제력을 약화시키기를 원했는데, 이는 반중앙정부 성향의 만주 자치론자들의 입장과 맞아떨어졌다. 이에 한국 정부는 만주 자치를 지지하는 만주 지역의 여러 군벌과 단체를 후원하였고, 피후원 세력들은 각자가 가진 입장에 따라 한국 정부에 협조하였다.
한국이 만주 자치론자들을 한국의 제국주의적 확장에 이용하려고 한 것과 별개로, 만주 자치론자들 사이에서는 만주의 자치 정도를 어느 정도로까지 확장해야 하는가를 두고 의견이 갈렸다. 장징후이, 차이윈성 등의 급진파는 한국의 지원을 받아 독립국을 세우자는 주장을 펼쳤고, 반대로 장쭤린과 마잔산 등은 중화민국 체제 내에서 자치권을 획득하는 것을 선호했다. 결국 두 세력은 분화하였고, 급진파는 만주에 독립국가 수립을 목표로 하는 전만연합임시정부를 수립하였다. 하지만 임시정부 내부에서도 단순히 자치권을 획득하겠다던 이들이 갑작스럽게 만주의 독립을 외치는 것은 명분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청 황실의 복원과 입헌군주국의 수립을 통해 청나라의 계승국이라는 명분을 주장하는 안이 채택되었고 한국 정부 역시 이에 호응하였다. 이에 만주임정과 한국 정부는 베이징 궁궐에서 쫓겨나 톈진 한국공사관에 기거하던 푸이에게
전간기
2차 세계대전
냉전
현대
경제
산업 구조
무역
주요 기업
만주 량
현용 은행권 4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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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용 주화 3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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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론
정치
만주국의 기본 정치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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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자유지수 | 79점 | 자유로움 |
언론자유지수 | 73.64점 | 결함 있음 |
민주주의지수 | 7.47점 | 결함 있는 민주주의 |
만주는 황제를 국가원수로 하는 입헌군주 의원내각제를 국가의 체제로 채택하고 있다. 총리는 단원제 형식의 입법원에서 선출되며 황제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아 내각을 대표한다. 지방자치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각 지방행정구역에도 지방의회가 존재한다.
2023년 기준 민주주의 지수는 7.47점으로, '결함 있는 민주주의' 등급으로 평가받는다. 세계자유지수는 총합 79점 '자유로움' 등급으로, 정치적 권리는 40점 만점 중 31점, 시민적 권리는 60점 만점 중 48점을 기록했다.
헌법
이 헌법은 만민협화와 왕도낙토의 정신으로 국가를 보위하고 국위를 선양하며 국부를 제고하고 대동에 이바지함으로써 위로는 지고하오시고 존귀하오신 황제 폐하를 받들고 아래로는 근면하고 충성스러운 신민을 보살피기 위하여 강덕 원년(1927년) 모월 모일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들어 각계각층의 대표가 모여 제정한다.[10] 만주국 헌법 전문 |
만주국 헌법(满洲国宪法)
만주국의 기본법. 만주의 모든 법률의 토대가 되는 법이다. 원래는 '만주국 조직법'이라는 이름으로 제정될 예정이었지만 중도에 변경되어 현재와 같은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입법
<<<<공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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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
행정
수상
만주국 총리대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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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각총리대신은 황제의 명을 받들어 내각을 대표한다. 만주국 헌법 제64조 (제5장 행정부 |
내각총리대신은 의안을 입법원에 제출하고, 국무 전반에 대하여 입법원에 보고하며, 행정 각부를 지휘·감독한다. 만주국 헌법 제65조 (제5장 행정부) |
국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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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성 10부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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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각
정당
- 거대양당 : 만주가 건국된 1927년부터 지금까지 만주의 정치를 좌지우지해온 두 정당이다. 현재까지 만주의 모든 내각총리대신은 이 두 정당 중 하나의 소속이었다.
- 틀:민주건국회 (개화) : 사상가이자 만주의 우국지사인 정샤오쉬가 1927년 창당한 만주에서 가장 오래된 정당. 중도적인 성향을 보이며 만주 정치에서 진보 포지션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 과반을 조금 넘는 의석으로 내각을 구성하고 있다.
- 틀:협화회 (개화) : 1927년 만주의 우국지사 장징후이를 중심으로 창당된 정당. 만주에서 민건회 다음으로 역사가 긴 정당이다. 보수주의 우익 성향이며 만주 정치에서 보수 포지션을 맡고 있다. 현재 제1야당으로, 민건회와 대립하고 있다.
- 군소정당: 만주 정치의 양념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소규모 정당들. 실제로는 더 많으나 원내에 진출해있는 군소정당들은 다음과 같다.
- : 사회민주주의, 대중주의 진보좌파 정당. 소련의 지원을 받던 만주인민혁명당의 후신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정당이다. 군소정당들 중에는 당세가 가장 세지만 거대양당과는 비교가 안 된다. 급진 성향 노조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 : 만주의 자유주의 중도 정당. 실용주의와 경제제일주의를 표방하고 있으며 같은 중도 성향인 민건회에 비해 고전적 자유주의 성향이 두드러진다. 지식인과 고소득층 사이에서 비교적 지지도가 높다.
- : 만주의 지역주의 정당.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몽골계 만주인의 권익 신장을 목표로 하며, 경제적으로는 좌파, 사회적으로는 보수 성향이다. 득표의 대부분은 몽골계가 다수 거주하는 서부에서 나온다.
황제
만주국 황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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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국은 지고하오시고 존귀하오신 황제 폐하의 다스림을 받는 입헌군주국이다.[10] 만주국 헌법 제1조 1항 (제1장 총강) |
1. 만주국 황제는 국가의 원수이자 모든 신민의 통치자이다. 2. 만주국 황제는 불가침이며 모독당하지 않는다. 3. 만주국 황제는 만주국 국군을 통수한다. 만주국 헌법 제8조 (제2장 황제) |
황실
황궁
군주제 폐지 운동
사회
민족 구성
- 여진족: 여진족은 전통적으로 만주에서 살아오던 민족으로,만주 인구의 1/3 정도를 차지한다. 18세기까지는 만주에서 다수민족의 지위에 있었으나 19세기 이후 한족의 대규모 만주 이주로 다수 민족의 지위를 상실했다. 이후 신헤혁명으로 인한 여진족 박해와 만주국 건국을 거치며 중국 본토의 여진인들이 대구모로 만주로 이주했고 그 비율이 다시 증가했다. 대부분의 여진족은 한족에 동화되어 평상시엔 중국어와 한자를 사용한다.
- 한족: 한족은 중국계 만주인으로, 만주 전체 인구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18세기까지는 요령 지방을 제외한 만주 대부분의 지역에서 한족은 극소수에 불과하였으나 19세기 들어서 한족의 만주 이주를 금지하는 봉금령이 유명무실해지면서 다수의 한족이 만주로 이주하였다. 이에 따라 한족은 토착민족인 여진족을 제치고 만주에서의 다수 민족이 되었다.
- 몽골족: 만주에서 세 번째로 많은 민족으로, 전체 인구의 약 1.4%를 차지한다. 몽골인의 대부분이 만주 서부 내몽골 지방에서 거주한다. 몽골인의 평균 소득은 만주인 전체 평균보다 상당히 낮은데, 이는 몽골인이 주로 거주하는 서부 지역이 비교적 덜 발전된 저개발지역이고 다수의 몽골인이 육체노동에 종사하기 때문이다.
- 기타: 슬라브인, 한국인, 튀루크인, 유대인 등이 소수민족으로 있으나 소수에 불과하다.
만주인과 여진인의 차이
만주 건국 전까지만 하더라도 만주인과 여진인은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있었다. 비록 만주인의 사용빈도가 훨씬 높긴 하였지만 둘이 의미하는 바는 정확히 일치하였다.
그 두 단어의 의미가 차이나기 시작한 것은 만주국 건국 이후였다. 만주인이라고 하먄 인종적 민족으로서의 만주인지 아니면 국가 만주의 일원인지를 구별할 수 없었기 때문에, 둘을 구별할 수 있는 새로운 용어의 도입이 필요했다. 이에 당시 내각총리대신이었던 정사오쉬는 만주인은 만주국의 국민이라는 의미로 두고 반쯤 사어(死語)가 된 여진을 부활시켜 인종적 민족으로서의 의미를 부여했다.
정리하자면 만주국 내에서는 만주인이 여진인보다 더 포괄적인 개념으로, 모든 만주국 국민은 만주인이지만 모두가 여진인인 것은 아니다. 다 자세한 내용은 정샤오쉬 문서 참고.
교육
치안
기념일
문화
언어
요리
음악
영화
스포츠
군사
환경
춥다. 특히 겨울엔 더럽게 춥다.
겁나 춥다!!
외교
한만관계
만오관계
만중관계
만소관계
각주
- ↑ 발음 : 만주 구룬
- ↑ 발음 : 사러파 니얄마 이 타이핀 어허 후왕디 이 주르한.
번역 : 만민의 평화와 황제의 도리 - ↑ 중국어는 일상생활에서, 만주어는 국가의식에서 주로 사용된다.
- ↑ 하르빈, 창춘, 치치하르, 지린
- ↑ 서력기원과 독자연호를 모두 사용한다. 공문서에는 둘 다 쓰인다.
- ↑ 만주를 자국령이라 보던 중화민국의 눈치를 보다가 늦게 수교했다.
- ↑ mc인 모나코는 mn을, mn인 몽골은 mg를 쓴다
- ↑ 강덕제가 좋아하여 황싱 상징으로 선정되었다.
- ↑ 발음: 만주 구룬 우쿤
- ↑ 10.0 10.1 헌법의 나머지 부분과는 달리, 헌법 전문과 1장 총강에서는 황제에 대해 극존칭을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