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비고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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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왕은 원래 시호가 고왕이었으나 장왕으로 변경되고 고영장이 고왕으로 추존되었다. 이는 장왕이 고왕을 시해하고 왕위에 올랐고 고왕을 비정통 국왕(또는 건국 군주가 아님)으로 취급했으므로 특정기간 동안 시호가 없었던 것을 보아 정통성이 없음을 나타낸다.
* 장왕은 원래 시호가 고왕이었으나 장왕으로 변경되고 고영장이 고왕으로 추존되었다. 이는 장왕이 고왕을 시해하고 왕위에 올랐고 고왕을 비정통 국왕(또는 건국 군주가 아님)으로 취급했으므로 특정기간 동안 시호가 없었던 것을 보아 정통성이 없음을 나타낸다.
* 경왕이 장왕을 폐하고 즉위했다가 폐위되었는데 경왕이 애왕을 폐하고 진왕을 추대하였다. 이로보아 장왕에게 빼앗긴 왕위를 되찾았음으로 경왕과 진왕은 고왕의 자손들로 볼 수 있다. 단, 경왕과 진왕의 관계가 부자인지 형제인지는 알 수 없다.
* 경왕이 장왕을 폐하고 즉위했다가 폐위되었는데 경왕이 애왕을 폐하고 진왕을 추대하였다. 이로보아 장왕에게 빼앗긴 왕위를 되찾았음으로 경왕과 진왕은 고왕의 자손들로 볼 수 있다. 단, 경왕과 진왕의 관계가 부자인지 형제인지는 알 수 없다.
* 문왕이 승하하고 (기록 상) 동생인 무왕이 문왕을 지지하는 세력들을 제거하였다. 이로보아 무왕이 문왕을 시해했거나 승하한 뒤 문왕을 지지하는 세력들을 제거한 뒤 즉위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사실이라면 문왕이 장왕의 자손이고 무왕이 진왕의 자손이라고 볼 수 있다.
* 시호가 무왕인 것으로 볼 때 문왕이 승하하고 (기록 상) 동생인 무왕이 문왕을 시해했거나 승하한 뒤 문왕을 지지하는 세력들을 제거한 뒤 즉위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이 가설이 사실이라면 문왕이 장왕의 자손이고 무왕이 진왕의 자손이라고 볼 수 있다.
* 진왕이 장왕에게만 묘호를 올린 것은 아직까지는 건재한 장왕 지지세력들이 진왕을 장왕의 왕자로 만들어 정통성을 부여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 진왕이 장왕에게만 묘호를 올린 것은 아직까지는 건재한 장왕 지지세력들이 진왕을 장왕의 왕자로 만들어 정통성을 부여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 무왕이 고왕, 경왕, 진왕에게 묘호를 올린 것은 정통성이 고왕의 자손들에게 있음을 천명하는 것이다.
* 무왕이 고왕, 경왕, 진왕에게 묘호를 올린 것은 정통성이 고왕의 자손들에게 있음을 천명하는 것이다.

2025년 4월 3일 (목) 01:01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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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강희비고설(剛姬非高說)은 고강열(장왕)과 고희열(애왕)이 고왕의 아들이 아니라는 설이다. 장왕의 정통성을 위해 조작되었다는 가설도 있다. 여기에 고경열(경왕)을 추가한 삼열비고설(三烈非高說)[1], 위도국의 국왕 중 문왕만을 장왕의 아들로 보고 문왕을 추가한 삼군비고설(三君非高說)이 있다. 강희비고설과 삼군비고설의 공통점은 장왕의 세 자식들 중 경왕만이 친자식이라는 설이다.

찬성 측 주장

  • 장왕은 원래 시호가 고왕이었으나 장왕으로 변경되고 고영장이 고왕으로 추존되었다. 이는 장왕이 고왕을 시해하고 왕위에 올랐고 고왕을 비정통 국왕(또는 건국 군주가 아님)으로 취급했으므로 특정기간 동안 시호가 없었던 것을 보아 정통성이 없음을 나타낸다.
  • 경왕이 장왕을 폐하고 즉위했다가 폐위되었는데 경왕이 애왕을 폐하고 진왕을 추대하였다. 이로보아 장왕에게 빼앗긴 왕위를 되찾았음으로 경왕과 진왕은 고왕의 자손들로 볼 수 있다. 단, 경왕과 진왕의 관계가 부자인지 형제인지는 알 수 없다.
  • 시호가 무왕인 것으로 볼 때 문왕이 승하하고 (기록 상) 동생인 무왕이 문왕을 시해했거나 승하한 뒤 문왕을 지지하는 세력들을 제거한 뒤 즉위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이 가설이 사실이라면 문왕이 장왕의 자손이고 무왕이 진왕의 자손이라고 볼 수 있다.
  • 진왕이 장왕에게만 묘호를 올린 것은 아직까지는 건재한 장왕 지지세력들이 진왕을 장왕의 왕자로 만들어 정통성을 부여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 무왕이 고왕, 경왕, 진왕에게 묘호를 올린 것은 정통성이 고왕의 자손들에게 있음을 천명하는 것이다.
  • 무왕이 장왕의 묘호를 삭탈하지 않은 이유는 진왕이 장왕의 양자로 입적하여[2] 즉위하였고 더군다나 장왕 지지세력에 의해 건국 군주로 취급되었기에 삭탈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

각주

  1. 애초에 고왕의 세 왕자들이 고왕의 친자식들이 아니라면 위도국 왕실 자체가 고왕의 혈통이 아니란 얘기가 된다.
  2. 기록 상으로는 친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