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F. 케네디 주니어 (아메리칸 프린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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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연소의 나이에 취임한 [[미국 대통령 (아메리칸 프린스)|미국 대통령]]이며, [[미국]]의 제35대 [[대통령]]인 [[존 F. 케네디]]의 장남이자, 2남 2녀 중 셋째이다. 당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연예인인 [[마돈나]]와 [[대릴 해나]] 등 여러 미인이 꼬였으며, 역대 [[미국 대통령 (아메리칸 프린스)|미국 대통령]] 중 가장 잘생기고 섹시하다는 평을 받는다.
역대 최연소의 나이에 취임한 [[미국 대통령 (아메리칸 프린스)|미국 대통령]]이며, [[미국]]의 제35대 [[대통령]]인 [[존 F. 케네디]]의 장남이자, 2남 2녀 중 셋째이다. 당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연예인인 [[마돈나]]와 [[대릴 해나]] 등 여러 미인이 꼬였으며, 역대 [[미국 대통령 (아메리칸 프린스)|미국 대통령]] 중 가장 잘생기고 섹시하다는 평을 받는다.
==생애==
===정계 입문 이전===
[[1960년]] [[11월 25일]] 태어난 그는, 세 번째 생일을 코앞에 두고 있던 [[존 F. 케네디 암살 사건|1963년 11월 22일 아버지가 암살 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생일을 불과 사흘 앞둔 시점이었다. 장례식 당일, [[아메리칸 프린스|관]] 옆에 선 채 작은 손을 들어 [[아메리칸 프린스|경례]]를 하는 세 살배기의 모습이 카메라에 담겨 전국에 송출되었는데, 정작 본인은 그 관 안에 누가 있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한 나이였기에 많은 국민들의 가슴을 찢어지게 만들었다. 그저 주변 어른들의 지시에 따라 순진하게 손을 올렸을 뿐이지만, 이 한 장면은 이후 수십 년간 [[아메리칸 프린스|미국인]]들의 뇌리에 20세기를 대표하는 이미지 중 하나로 남았다.
아버지를 잃은 뒤 어머니 [[재클린 케네디 오아시스 (아메리칸 프린스)|재클린]]은 한동안 [[뉴욕]]에서 아이들을 키웠으나, 같은 해, 그리스 선박 재벌 아리스토틀 오나시스와 재혼을 택했고, 이후 오나시스가 세상을 떠난 1975년까지 케네디 주니어는 오나시스 소유의 사유섬 스콜피오스와 뉴욕 맨해튼을 오가며 유년기를 보낸다.
학창 시절에는 [[아메리칸 프린스|콜리지에이트 스쿨]]과 [[아메리칸 프린스|필립스 아카데미 앤도버]]를 거쳐 [[1982년]] [[아메리칸 프린스|브라운 대학교]] 미국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부터 연기에 흥미를 느꼈던 그는 졸업 후에도 이 관심을 이어가 연극 무대에 직접 올라 관객들 앞에 서기도 했다. 하지만 어머니 [[재클린 케네디 오아시스 (아메리칸 프린스)|재클린]]은 아들이 배우의 길을 걷는 것을 탐탁지 않아 했고, 결국 그는 연극에 대한 미련을 접고 이듬해인 [[1986년]] [[아메리칸 프린스|뉴욕 대학교 로스쿨]]에 진학한다.
[[아메리칸 프린스|로스쿨]]은 [[1989년]] 무난히 졸업했지만, 정작 변호사 자격시험이 발목을 잡았다. 뉴욕주 변호사 시험에서 두 차례나 낙방한 것인데, 명문 로스쿨을 나온 [[아메리칸 프린스|케네디가]]의 일원이 시험에서 미끄러졌다는 사실은 언론과 대중에게 좋은 가십거리가 되었다. "합격할 때까지 계속 시험을 보겠다"고 공언했던 그는 [[1990년]] [[7월]], 세 번째 도전 끝에 마침내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다. 만약 이때도 실패했다면 그는 애초에 맨해튼 지방검찰청에서 일할 자격조차 얻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이 세 번째 시험은 그의 이후 경력 전체를 갈랐던 순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변호사가 된 케네디는 로버트 모겐소 지방검사가 이끌던 맨해튼 지방검찰청에 부지방검사로 들어가 1993년까지 근무한다. 이 기간 동안 주로 소비자 사기 사건과 임대인-임차인 분쟁을 다뤘으며, 1991년 8월 29일에는 검사로서 첫 승소 판결을 받아내기도 했다. 참고로 [[아메리칸 프린스|케네디 가문]]에서는 숙부 [[아메리칸 프린스|에드워드 케네디]], 누나 [[아메리칸 프린스|캐롤라인 케네디]]를 비롯해 [[아메리칸 프린스|하버드 대학교]] 졸업이 일종의 가풍처럼 이어져 왔는데, [[아메리칸 프린스|브라운]]과 [[아메리칸 프린스|뉴욕대]]를 나온 케네디 주니어는 이 점에서 다소 이례적인 사례로 꼽힌다.
한편 검사가 되기 전인 1988년, 그는 [[민주당]] 대선 경선에 출마했던 숙부 [[아메리칸 프린스|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을 위해 전당대회 찬조연설자로 나선 적이 있다. 당시 그는 '''"저의 아버지께서는 20여 년 전 바로 이 자리에서 우리 당의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셨습니다"'''라는 발언으로 장내를 뭉클하게 만들며 큰 화제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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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20일 (월) 23:18 판

"Sometimes the weight of expectations, of doing anything, can be a little bit heavy."
때로는 사람들의 기대라는 무게가 꽤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미합중국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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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연합국 대통령 (아메리칸 프린스) · 미합중국 부통령 (아메리칸 프린스)
미합중국 제43대 대통령
존 F. 케네디 주니어
John F. Kennedy Jr.
출생 1960년 11월 25일
미국 워싱턴 D.C.
사망 2001년 9월 11일 (향년 40세)
미국 플로리다 주 새러소타 카운티 새러소타
재임기간 제43대 대통령
2001년 1월 20일 ~ 2001년 9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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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아버지 존 F. 케네디
어머니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형제자매 누나 아라벨라 케네디
누나 캐롤라인 케네디
남동생 패트릭 케네디
배우자 캐롤린 베셋 케네디
학력 브라운 대학교 (미국학 / 학사)
뉴욕 대학교 로스쿨 (법학 / J.D.)
종교 가톨릭
신장 185cm
정당 민주당
의원 선수 1 (상원)
의원 대수 181 (상원)

개요


케네디 주니어의 인터뷰 영상
"People often tell me I could be a great man. I'd rather be a good man."
"사람들은 내가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위대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John F. Kennedy Jr.

미국의 제43대 대통령.

역대 최연소의 나이에 취임한 미국 대통령이며, 미국의 제35대 대통령존 F. 케네디의 장남이자, 2남 2녀 중 셋째이다. 당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연예인인 마돈나대릴 해나 등 여러 미인이 꼬였으며, 역대 미국 대통령 중 가장 잘생기고 섹시하다는 평을 받는다.

생애

정계 입문 이전

1960년 11월 25일 태어난 그는, 세 번째 생일을 코앞에 두고 있던 1963년 11월 22일 아버지가 암살 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생일을 불과 사흘 앞둔 시점이었다. 장례식 당일, 옆에 선 채 작은 손을 들어 경례를 하는 세 살배기의 모습이 카메라에 담겨 전국에 송출되었는데, 정작 본인은 그 관 안에 누가 있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한 나이였기에 많은 국민들의 가슴을 찢어지게 만들었다. 그저 주변 어른들의 지시에 따라 순진하게 손을 올렸을 뿐이지만, 이 한 장면은 이후 수십 년간 미국인들의 뇌리에 20세기를 대표하는 이미지 중 하나로 남았다.

아버지를 잃은 뒤 어머니 재클린은 한동안 뉴욕에서 아이들을 키웠으나, 같은 해, 그리스 선박 재벌 아리스토틀 오나시스와 재혼을 택했고, 이후 오나시스가 세상을 떠난 1975년까지 케네디 주니어는 오나시스 소유의 사유섬 스콜피오스와 뉴욕 맨해튼을 오가며 유년기를 보낸다.

학창 시절에는 콜리지에이트 스쿨필립스 아카데미 앤도버를 거쳐 1982년 브라운 대학교 미국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부터 연기에 흥미를 느꼈던 그는 졸업 후에도 이 관심을 이어가 연극 무대에 직접 올라 관객들 앞에 서기도 했다. 하지만 어머니 재클린은 아들이 배우의 길을 걷는 것을 탐탁지 않아 했고, 결국 그는 연극에 대한 미련을 접고 이듬해인 1986년 뉴욕 대학교 로스쿨에 진학한다.

로스쿨1989년 무난히 졸업했지만, 정작 변호사 자격시험이 발목을 잡았다. 뉴욕주 변호사 시험에서 두 차례나 낙방한 것인데, 명문 로스쿨을 나온 케네디가의 일원이 시험에서 미끄러졌다는 사실은 언론과 대중에게 좋은 가십거리가 되었다. "합격할 때까지 계속 시험을 보겠다"고 공언했던 그는 1990년 7월, 세 번째 도전 끝에 마침내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다. 만약 이때도 실패했다면 그는 애초에 맨해튼 지방검찰청에서 일할 자격조차 얻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이 세 번째 시험은 그의 이후 경력 전체를 갈랐던 순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변호사가 된 케네디는 로버트 모겐소 지방검사가 이끌던 맨해튼 지방검찰청에 부지방검사로 들어가 1993년까지 근무한다. 이 기간 동안 주로 소비자 사기 사건과 임대인-임차인 분쟁을 다뤘으며, 1991년 8월 29일에는 검사로서 첫 승소 판결을 받아내기도 했다. 참고로 케네디 가문에서는 숙부 에드워드 케네디, 누나 캐롤라인 케네디를 비롯해 하버드 대학교 졸업이 일종의 가풍처럼 이어져 왔는데, 브라운뉴욕대를 나온 케네디 주니어는 이 점에서 다소 이례적인 사례로 꼽힌다.

한편 검사가 되기 전인 1988년, 그는 민주당 대선 경선에 출마했던 숙부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을 위해 전당대회 찬조연설자로 나선 적이 있다. 당시 그는 "저의 아버지께서는 20여 년 전 바로 이 자리에서 우리 당의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셨습니다"라는 발언으로 장내를 뭉클하게 만들며 큰 화제를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