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개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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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율은 최종 '''79.89%'''를 기록, 종전 제28회 중원선의 기록인 76.99%를 3%p 격차로 뛰어넘어 '''전후 헌법 시행 후 최고 투표율'''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또한 일본국 중의원 총선의 투표율이 70%대를 넘은 것은 1990년 제39회 중원선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또한, 제28회 중원선 이후 가장 적은 정당만이 원내에 입성하는데 성공했다.<ref>당시에는 기시 총리의 자민당(287석), 스즈키 모사부로 위원장의 사회당(166석), 그리고 일본공산당(1석) 만이 원내에 입성했다. 일본공산당은 제28회 중원선과 51회 중원선에서 모두 원내에 입성한 유일한 정당이 되었다.</ref> 이는 청년층과 신세대를 중심으로 한 [[개신당]]과 장년층 이상과 기성 기득권 세력을 중심으로 한 [[일본의미래당]], 그리고 제3지대를 표방한 [[일본공산당]]으로 각 진영의 지지층이 매우 결집했음을 보여준다.
투표율은 최종 '''79.89%'''를 기록, 종전 제28회 중원선의 기록인 76.99%를 3%p 격차로 뛰어넘어 '''전후 헌법 시행 후 최고 투표율'''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또한 일본국 중의원 총선의 투표율이 70%대를 넘은 것은 1990년 제39회 중원선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또한, 제28회 중원선 이후 가장 적은 정당만이 원내에 입성하는데 성공했다.<ref>당시에는 기시 총리의 자민당(287석), 스즈키 모사부로 위원장의 사회당(166석), 그리고 일본공산당(1석) 만이 원내에 입성했다. 일본공산당은 제28회 중원선과 51회 중원선에서 모두 원내에 입성한 유일한 정당이 되었다.</ref> 이는 청년층과 신세대를 중심으로 한 [[개신당]]과 장년층 이상과 기성 기득권 세력을 중심으로 한 [[일본의미래당]], 그리고 제3지대를 표방한 [[일본공산당]]으로 각 진영의 지지층이 매우 결집했음을 보여준다.


선거 결과, 개신당이 총 '''360석'''을 차지하며 종전 자신들이 세운 중의원 최대 의석 확보 기록인 313석을 50석에 가까운 격차로 뛰어넘었다. 반면, 제1야당인 [[일본의미래당]]은 불과 '''87석'''을 차지하는데 그쳤는데, 이는 양당 구도의 총선거에서는 32회 중원선의 사회당(90석)<ref>당내 좌우파의 오랜 토론을 거쳐, '''문화 대혁명과 폴포트의 킬링 필드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나리타 도모미 위원장의 사회당이 역풍을 맞아 대참패한 선거였다.</ref>, 47회 중원선의 민주당(74석)<ref>아베노믹스로 아베 총리의 지지율이 60%대를 넘나 들었을때 치러진 선거로, 당 대표였던 [[가이에다 반리]]가 석패 구제도 못받고 낙선하였다.</ref>에 필적하는 대참패이다. 한편, [[일본공산당]]은 제47회 중원선(21석) 이후 최다 의석인 17석을 확보하며 나름대로 선전했고 특히 지역구에서만 3석을 확보했다.
선거 결과, 개신당이 총 '''360석'''을 차지하며 종전 자신들이 세운 중의원 최대 의석 확보 기록인 313석을 50석에 가까운 격차로 뛰어넘었다. 반면, 제1야당인 [[일본의미래당]]은 불과 '''87석'''을 차지하는데 그쳤는데, 이는 양당 구도의 총선거에서는 32회 중원선의 사회당(90석)<ref>당내 좌우파의 오랜 토론을 거쳐, '''문화 대혁명과 폴포트의 킬링 필드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나리타 도모미 위원장의 사회당이 역풍을 맞아 대참패한 선거였다.</ref>, 47회 중원선의 민주당(74석)<ref>아베노믹스로 아베 총리의 지지율이 60%대를 넘나 들었을때 치러진 선거로, 당 대표였던 [[가이에다 반리]]가 석패 구제도 못받고 낙선하였다.</ref>에 필적하는 대참패이다. 반면 [[일본공산당]]은 제47회 중원선(21석) 이후 최다 의석인 17석을 확보하며 나름대로 선전했고 특히 지역구에서만 3석을 확보했다. 비례 득표율에서, 개신당은 '''61.01%''', 미래당은 '''28.58%''', 공산당은 '''8.76%''', 기타 정당은 '''1.65%'''를 기록하였다. 한편, 개신당은 1994년 호소카와 내각에 의한 비례대표 도입 이후, 단일 정당으로는 가장 높은 비례 득표율을 기록하며 압승에 쐐기를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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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6일 (금) 15:19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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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第50回衆議院総選挙
파일:제5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개신).svg
2022년 10월 8일
50회 중원선
(신시대 개막 총선)
2025년 7월 28일
51회 중원선
(제3차 중참동일선거)
투표율 79.89% ▲ 19.15%p
선거 결과
개신당_워드마크_흰색.svg
정당 지역구 비례 총합 비율
개신당 252석 108석 360석 77.4%
일본의미래당 33석 54석 87석 18.7%
일본공산당 3석 14석 17석 3.7%
무소속 1석 - 1석 0.2%

개요

信じられないほどの大勝
믿을 수 없는 대승

붕붕마루신문, 7월 29일 1면 헤드라인
日本民主主義の終わり。
일본 민주주의의 종말.

산케이신문, 7월 29일 1면 헤드라인

제5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2025년 7월 28일 치러진 일본의 중의원 의원 총선거이다.

제27회 참의원 통상선과 일자가 겹치차 소류 아스카 랑그레이 총리가 의회 해산을 마도카 천황에게 요구하여[1], 천황이 이를 제가하여 치러졌다. 자유민주당입헌민주당을 중심으로 하여 결정된 기성 일본 정당의 총집합인 일본의미래당개신당에 대적하여 선거에 참여했으며, 선거운동 기간에는 개신당과 일본의미래당의 지지율이 약 2배 격차로 유지되었다. 개신당은 선거 기간 내내 청년층과 일본의 경제 재건을 쟁점에 둔 핵심 정책을 내세운 반면, 모리 요시로 전 총리를 중심으로 한 일본의미래당은 경력과 연륜의 정치를 내세웠다. 한편, 일본공산당은 개신당과 미래당 양당 견제와 풀뿌리 민주주의를 중심으로 한 지방창생을 슬로건으로 하여 제3지대 정당으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그 외에도 미사카 미코토 전 의원의 결백을 주장하는 미사카의 결백을 밝히는 당 등도 선거에 참여하여, 일부 지지층에게서 환호를 얻었다.

투표율은 최종 79.89%를 기록, 종전 제28회 중원선의 기록인 76.99%를 3%p 격차로 뛰어넘어 전후 헌법 시행 후 최고 투표율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또한 일본국 중의원 총선의 투표율이 70%대를 넘은 것은 1990년 제39회 중원선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또한, 제28회 중원선 이후 가장 적은 정당만이 원내에 입성하는데 성공했다.[2] 이는 청년층과 신세대를 중심으로 한 개신당과 장년층 이상과 기성 기득권 세력을 중심으로 한 일본의미래당, 그리고 제3지대를 표방한 일본공산당으로 각 진영의 지지층이 매우 결집했음을 보여준다.

선거 결과, 개신당이 총 360석을 차지하며 종전 자신들이 세운 중의원 최대 의석 확보 기록인 313석을 50석에 가까운 격차로 뛰어넘었다. 반면, 제1야당인 일본의미래당은 불과 87석을 차지하는데 그쳤는데, 이는 양당 구도의 총선거에서는 32회 중원선의 사회당(90석)[3], 47회 중원선의 민주당(74석)[4]에 필적하는 대참패이다. 반면 일본공산당은 제47회 중원선(21석) 이후 최다 의석인 17석을 확보하며 나름대로 선전했고 특히 지역구에서만 3석을 확보했다. 비례 득표율에서, 개신당은 61.01%, 미래당은 28.58%, 공산당은 8.76%, 기타 정당은 1.65%를 기록하였다. 한편, 개신당은 1994년 호소카와 내각에 의한 비례대표 도입 이후, 단일 정당으로는 가장 높은 비례 득표율을 기록하며 압승에 쐐기를 박았다.


  1. 개헌을 통하여 2025년 1월 1일 이후 내각총리대신이 이른바 "일본국 헌법"을 통해 주어진 권리인 의회해산권과 군통수권을 각각 천황과 황후에게 반납하였다.
  2. 당시에는 기시 총리의 자민당(287석), 스즈키 모사부로 위원장의 사회당(166석), 그리고 일본공산당(1석) 만이 원내에 입성했다. 일본공산당은 제28회 중원선과 51회 중원선에서 모두 원내에 입성한 유일한 정당이 되었다.
  3. 당내 좌우파의 오랜 토론을 거쳐, 문화 대혁명과 폴포트의 킬링 필드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나리타 도모미 위원장의 사회당이 역풍을 맞아 대참패한 선거였다.
  4. 아베노믹스로 아베 총리의 지지율이 60%대를 넘나 들었을때 치러진 선거로, 당 대표였던 가이에다 반리가 석패 구제도 못받고 낙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