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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10월 9일]], 동남아시아 순방을 떠난 [[전두환 (한나라)|전두환]] 내각총리대신이 아웅 산 묘소에서 만주의 북괴 망명정부 인사에 의해 [[아웅 산 묘소 테러 사건 (한나라)|폭탄 테러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소식에 전 국민이 충격을 금하지 못했고, 하나회의 강경론자는 북괴 망명정부가 있는 만주로 군사작전을 펼칠 것을 [[주영복 (한나라)|주영복]] 내각총리대신 권한대행에게 주장하기도 했다. | |||
군부의 만주 침공계획을 접한 여당 [[민주정의당 (한나라)|민주정의당]]은 긴급히 임시국회를 열어 전두환 정권의 2인자인 [[노태우 (한나라)|노태우]]를 내각총리대신으로 선출했고 노태우는 하나회를 진정시키는 한편, 전두환의 사망으로 인해 전국 곳곳의 민주화 열기를 막기 위해 야당 정치인의 정치 활동 금지를 해제했다. | |||
상당수의 정치인들이 대법원 판결에 의해 규제가 풀리자 [[상도동계 (한나라)|김영삼계]]와 [[동교동계 (한나라)|김대중계]], [[삼선동계 (한나라)|김일성계]] 등 [[신민당(1967년) (한나라)|신민당]] 출신 인사들은 [[신한민주당 (한나라)|신한민주당]]을 창당했다. 그러나 노태우 정부는 어떻게든 신한민주당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꼼수를 부렸는데 당초 신민당이라는 이름으로 창당하려던 것을 거부한 것도 모자라, 약칭조차 신민당을 쓰지 못하게 딴지를 걸었고 무엇보다도 임기가 만료된 경우 다음해 4월에 치뤄지는 국회의원 선거를 국회를 해산시켜 3월 21일로 앞당겼다. | |||
이로 인해 신한민주당은 창당한지 두 달 만에 선거를 맞이하는 어려움에 직면했으며, 관제 야당인 [[민주한국당 (한나라)|민주한국당]]의 [[신상우 (한나라)|신상우]] 사무총장을 비롯한 몇몇 주요 인사들은 정권의 협박으로 인해 신한민주당 합류를 못하는 등의 정치 공작도 있었다. 게다가 당시의 선거 제도는 지역구당 2명을 뽑는 중선거구제인데다, 지역구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획득한 정당이 전국구 의석의 2/3을 독식하는 것이라서 여당인 민주정의당의 과반 획득은 기정사실이었다. 특히 당시는 아직 [[5.18 민주화운동 (한나라)|5.18 민주화운동]]의 진상이 밝혀지기 전이었기 때문에 광주를 제외한 호남 지역에서도 민주정의당이 의석을 확보하는데 별 문제가 없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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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역대 민의원 (한나라) 틀:제25대 민의원 의원 총선거 (한나라)
| 제25대 민의원 의원 총선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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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표율 | 87.2% ▲ 8.9%p | ||||||||
| 선거 결과 | |||||||||
▼
| |||||||||
민정 250석 (54.35%) 115석 (25.00%) 신민
| |||||||||
| 정당 | 지역구 | 전국구 | 총합 | 비율 | |||||
| 132석 | 118석 | 250석 | 54.35% | ||||||
| 82석 | 33석 | 115석 | 25.00% | ||||||
| 35석 | 18석 | 53석 | 11.52% | ||||||
| 25석 | 8석 | 33석 | 7.17% | ||||||
| 1석 | 1석 | 2석 | 0.44% | ||||||
| 7석 | - | 7석 | 1.52% | ||||||
개요
1984년 3월 7일에 시행한 제25대 민의원 의원 선거로 투표율은 87.2%를 기록했다.
배경
1983년 10월 9일, 동남아시아 순방을 떠난 전두환 내각총리대신이 아웅 산 묘소에서 만주의 북괴 망명정부 인사에 의해 폭탄 테러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소식에 전 국민이 충격을 금하지 못했고, 하나회의 강경론자는 북괴 망명정부가 있는 만주로 군사작전을 펼칠 것을 주영복 내각총리대신 권한대행에게 주장하기도 했다.
군부의 만주 침공계획을 접한 여당 민주정의당은 긴급히 임시국회를 열어 전두환 정권의 2인자인 노태우를 내각총리대신으로 선출했고 노태우는 하나회를 진정시키는 한편, 전두환의 사망으로 인해 전국 곳곳의 민주화 열기를 막기 위해 야당 정치인의 정치 활동 금지를 해제했다.
상당수의 정치인들이 대법원 판결에 의해 규제가 풀리자 김영삼계와 김대중계, 김일성계 등 신민당 출신 인사들은 신한민주당을 창당했다. 그러나 노태우 정부는 어떻게든 신한민주당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꼼수를 부렸는데 당초 신민당이라는 이름으로 창당하려던 것을 거부한 것도 모자라, 약칭조차 신민당을 쓰지 못하게 딴지를 걸었고 무엇보다도 임기가 만료된 경우 다음해 4월에 치뤄지는 국회의원 선거를 국회를 해산시켜 3월 21일로 앞당겼다.
이로 인해 신한민주당은 창당한지 두 달 만에 선거를 맞이하는 어려움에 직면했으며, 관제 야당인 민주한국당의 신상우 사무총장을 비롯한 몇몇 주요 인사들은 정권의 협박으로 인해 신한민주당 합류를 못하는 등의 정치 공작도 있었다. 게다가 당시의 선거 제도는 지역구당 2명을 뽑는 중선거구제인데다, 지역구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획득한 정당이 전국구 의석의 2/3을 독식하는 것이라서 여당인 민주정의당의 과반 획득은 기정사실이었다. 특히 당시는 아직 5.18 민주화운동의 진상이 밝혀지기 전이었기 때문에 광주를 제외한 호남 지역에서도 민주정의당이 의석을 확보하는데 별 문제가 없었다.
과정
결과
지역별 결과
| 제25대 민의원 의원 총선거 | ||||||||
|---|---|---|---|---|---|---|---|---|
| 지역 | 민주정의당 | 민주국민당 | 한국국민당 | 신한민주당 | 신정사회당 | 무소속 | 합계 | |
| 한성 | 13 | 0 | 0 | 13 | 0 | 0 | 26 | |
| 평양 | 7 | 1 | 0 | 10 | 0 | 0 | 18 | |
| 부산 | 3 | 2 | 1 | 6 | 0 | 0 | 12 | |
| 인천 | 2 | 0 | 0 | 2 | 0 | 0 | 4 | |
| 남포 | 1 | 1 | 0 | 2 | 0 | 0 | 4 | |
| 대구 | 2 | 1 | 1 | 2 | 0 | 0 | 6 | |
| 의주 | 1 | 0 | 0 | 1 | 0 | 0 | 2 | |
| 경기 | 10 | 3 | 3 | 4 | 0 | 0 | 20 | |
| 강원 | 6 | 1 | 4 | 0 | 0 | 1 | 12 | |
| 충남 | 8 | 4 | 0 | 4 | 0 | 0 | 16 | |
| 충북 | 4 | 1 | 1 | 2 | 0 | 0 | 8 | |
| 전남 | 11 | 5 | 0 | 5 | 1 | 0 | 22 | |
| 전북 | 7 | 1 | 3 | 2 | 0 | 1 | 14 | |
| 경남 | 10 | 4 | 1 | 5 | 0 | 0 | 20 | |
| 경북 | 10 | 3 | 1 | 4 | 0 | 2 | 20 | |
| 황남 | 6 | 2 | 1 | 3 | 0 | 0 | 12 | |
| 황북 | 5 | 1 | 1 | 2 | 0 | 1 | 10 | |
| 평남 | 7 | 3 | 3 | 6 | 0 | 1 | 20 | |
| 평북 | 6 | 1 | 2 | 5 | 0 | 0 | 14 | |
| 함남 | 7 | 0 | 2 | 3 | 0 | 0 | 12 | |
| 함북 | 5 | 1 | 1 | 1 | 0 | 0 | 8 | |
| 제주 | 1 | 0 | 0 | 0 | 0 | 1 | 2 | |
| 지역구 | 132 | 35 | 25 | 82 | 1 | 7 | 282 | |
| 전국구 | 118(35.6%) | 18(19.2%) | 8(8.4%) | 33(35.5%) | 1(1.3%) | 0 | 178 | |
| 합계 | 250 | 53 | 33 | 115 | 2 | 7 | 46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