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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22일 (수) 12:50 판
총리
고증 無
han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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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무총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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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제18대 국무총리 조봉암 曺奉岩 | Cho Bong-am | |
| 출생 | 1898년 9월 25일 |
| 경기도 강화군 | |
| 사망 | 1975년 3월 18일 (향년 76세) |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 |
| 임기 | 제18대 대한민국 국무총리 |
| 1951년 8월 11일 ~ 1957년 2월 10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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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대한민국의 제18대 국무총리.
생애
국무총리
1951년, 여운형이 본인의 개인비서가 소련의 스파이로 체포된 것에 대해 책임을 지고 사퇴하자 사민당에서는 차기 대표, 즉 국무총리가 누가 될 것인지를 결정할 임시 전당대회가 치루어졌다.
전당대회에 참가한 조봉암에게 도전장을 내민 이는 현직 수석부총리인 조용은이었다. 64세의 조용은은 민족주의적 사회민주주의를 추구한 반면 53세의 조봉암은 비교적 자유주의적 사회민주주의를 추구하였다. 두 사람 다 조씨였기에 언론에서는 그 전당대회를 '양조대전'이라고 불렀다. 당시 전당대회는 여운형의 개인비서가 소련의 스파이로 체포된 것의 여파로 치러진 전당대회였기 때문에 당원들은 조용은보다 반공주의 성향이 짙은 조봉암을 더 선호했고 결선투표에서 57%를 득표한 조봉암이 사민당 대표에 선출되어 국무총리에 취임했다.
어록
| …또 박헌영을 중심으로 하는 대한공산당은 조국을 완전히 쏘련의 괴뢰화하여 민족의 이익을 무시하고 자칭 인민공화국을 선포하며 쏘련의 신탁통치를 주장하는 등 맹동을 하고 있습니다.[12] 1941년, 태평양전쟁 중 라디오 연설 |
| '국가에 의한 자유'란 무엇인가. 각 개인이 자신의 정당한 꿈을 펼치는 데에 있어 국가가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이 되어주는 것이 진정한 '국가에 의한 자유'입니다. 1950년, 국민원 원내총무 기조 연설 |
| 우리들 자신이 더욱 민주주의 이념에 철저하고 민주주의 체제를 더욱 공고하게 함으로써 공산주의가 스며들 여지를 주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1953년, 전승절 8주년 기념 연설 |
|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일을 없애고 모든 사람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되고 모든 사람이 착취당하는 것 없이 응분의 노력과 사회적 보장에 의해서 다 같이 평화롭고 행복스럽게 잘살 수 있는 세상, 이것을 가리켜서 한국의 사민주의라 해도 좋을 것입니다. 1957년, 퇴임 연설 |
김구 피살
| 김창암 피살 사건 金昌巖被殺事件 Assassination of Kim Chang-am | |
|---|---|
| ▲ 당시 조선일보 기사[13] | |
| 발생일시 | 1944년 11월 20일 시 분 경 |
| 유형 | 살인, 적색테러 |
| 발생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
| 피의자 | 김천호 (金天浩, 26세) |
| 동기 | 대한공산당 잔여세력의 대한민국 체제전복 기도 |
| 피해자 | 김창암 (제15대 대한민국 국무총리) |
개요
1944년 11웡 20일, 태평양전쟁 도중 대한민국의 제18대 국무총리인 김창암이 대한청년적위대 단원 김천호에게 살해된 사건.
전개
배후
영향
각주
- ↑ 전시 (제1차 세계대전)
- ↑ 전임 국무총리 이동휘의 임기 중 사망으로 인한 국무총리 대행
- ↑ 전시 (제2차 세계대전 - 태평양전쟁)
- ↑ 국무총리대행: 1944년 11월 20일 ~ 1945 1월 21일
- ↑ 해산 당시 기준
- ↑ 아시아 최초의 사회주의 집권정당은 1924년 집권한 몽골 인민혁명당. 다만 민주적인 방법으로 집권하지 않았다.
- ↑ 한인사회당의 주 지지기반이 도시 노동자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한인사회당 인사들은 농촌문제에는 무지했다.
- ↑ 러시아 이름은 김알렉산드라.
- ↑ 검은바지 콧수염이 이동휘. 앞줄 맨 오른쪽이 부의장 김립
- ↑ 실제로는 가사가 뭐 어때서 그러냐고 했다고 한다.
- ↑ 해산 당시 기준
- ↑ 출처
- ↑ 기사 제목은 '김총리 급서에 각계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