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글 →치올코우스키 전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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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스탈린의 신뢰를 잃어가던 소련 극동군 총사령관 바실리 블류헤르는 이왕 양측간의 충돌이 발생한 김에 소련의 숙원이었던 녹우크라이나 병합을 실현해 스탈린의 신뢰를 회복하고자 하였다. 블루헤르는 휘하의 병력을 준비시켜 녹우크라이나를 팀공하였고 이에 녹우크라이나군과 주오한국군이 응전하면서 양측의 본격적인 교전이 시작됐다. | 당시 스탈린의 신뢰를 잃어가던 소련 극동군 총사령관 바실리 블류헤르는 이왕 양측간의 충돌이 발생한 김에 소련의 숙원이었던 녹우크라이나 병합을 실현해 스탈린의 신뢰를 회복하고자 하였다. 블루헤르는 휘하의 병력을 준비시켜 녹우크라이나를 팀공하였고 이에 녹우크라이나군과 주오한국군이 응전하면서 양측의 본격적인 교전이 시작됐다. | ||
== | ==결과와 영향== | ||
소련군은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결국 한오 동맹군을 격파하지 못했고 녹우크러이너 병합 계획도 무위로 돌아갔다. 소련 극동군 총사령관 블류레흐는 스탈린의 신뢰를 완전히 잃었고 곧 숙청당한다. 하지만 스탈린이 부동항을 확보하려는 야욕을 버린 것은 아니라서 [[제2차 극동전쟁 (개화)|4년 후 일본과 함께 전쟁을 일으킨다.]] | |||
==영향== | ==영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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