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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군은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결국 한오 동맹군을 격파하지 못했고 녹우크러이너 병합 계획도 무위로 돌아갔다. 소련 극동군 총사령관 블류레흐는 스탈린의 신뢰를 완전히 잃었고 곧 숙청당한다. 하지만 스탈린이 부동항을 확보하려는 야욕을 버린 것은 아니라서 [[제2차 극동전쟁 (개화)|4년 후 일본과 함께 전쟁을 일으킨다.]] | 소련군은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결국 한오 동맹군을 격파하지 못했고 녹우크러이너 병합 계획도 무위로 돌아갔다. 소련 극동군 총사령관 블류레흐는 스탈린의 신뢰를 완전히 잃었고 곧 숙청당한다. 하지만 스탈린이 부동항을 확보하려는 야욕을 버린 것은 아니라서 [[제2차 극동전쟁 (개화)|4년 후 일본과 함께 전쟁을 일으킨다.]] | ||
이전부터 공산화의 공포에 한국은 말만 무성하던 소련의 침공이 현실화되자 충격에 빠졌다. 다행히도 소련의 침공을 격퇴했으나 총리였던 안창호가 "끔찍한 붉은 역병이 맹렬히 넘실거리며 우리집 담장을 넘으려 하고 있다"라고 말할 정도로 엄청난 소련 공포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 이전부터 공산화의 공포에 한국은 말만 무성하던 소련의 침공이 현실화되자 충격에 빠졌다. 다행히도 소련의 침공을 격퇴했으나 총리였던 안창호가 "끔찍한 붉은 역병이 맹렬히 넘실거리며 우리집 담장을 넘으려 하고 있다", "[[제1차 극동전쟁 (개화)|극동전쟁]] 이후 최대의 위기"라고 말할 정도로 엄청난 소련 공포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 ||
한국 국군은 치올코우스키에서의 기갑부대 운용 경험을 바탕으로 기존에는 필요성에 의문이 제기되었던 다용도 중형전차를 본격적으로 양산하기 시작했다.<ref>원래 중형전차가 사용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치올코우스키 전투 이전까지는 경전차로도 충분하다는 의견도 많았다.</ref> 또 소련 기갑부대에게 큰 피해를 입힌 급강하폭격기를 적극 활용한 새 전술교리를 도입하였다. | 한국 국군은 치올코우스키에서의 기갑부대 운용 경험을 바탕으로 기존에는 필요성에 의문이 제기되었던 다용도 중형전차를 본격적으로 양산하기 시작했다.<ref>원래 중형전차가 사용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치올코우스키 전투 이전까지는 경전차로도 충분하다는 의견도 많았다.</ref> 또 소련 기갑부대에게 큰 피해를 입힌 급강하폭격기를 적극 활용한 새 전술교리를 도입하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