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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제경군의 부인 강씨는 경신순황후와 같은 진주 강씨로 순황후와 제경군은 이미 친분이 있어, 자신의 전횡을 묵과할 것이라는 약조를 받은 순황후와 황족 대다수는 제경군을 지지하였다. 그러나 한경군은 고등문관시험 출신 커리어답게 경찰과 관료조직의 지지를 받았고, 제경군의 횡포로 망신을 산 군부 또한 한경군의 편에 섰다. 결국 황속 문제는 황실의 지지를 받는 제경군과 관료와 군부의 지지를 받는 한경군의 대립 구도로 돌아가기 시작했으며, 병석에 누운 6세의 어린 황제는 이제 안중에도 없었다. | 그러나 제경군의 부인 강씨는 경신순황후와 같은 진주 강씨로 순황후와 제경군은 이미 친분이 있어, 자신의 전횡을 묵과할 것이라는 약조를 받은 순황후와 황족 대다수는 제경군을 지지하였다. 그러나 한경군은 고등문관시험 출신 커리어답게 경찰과 관료조직의 지지를 받았고, 제경군의 횡포로 망신을 산 군부 또한 한경군의 편에 섰다. 결국 황속 문제는 황실의 지지를 받는 제경군과 관료와 군부의 지지를 받는 한경군의 대립 구도로 돌아가기 시작했으며, 병석에 누운 6세의 어린 황제는 이제 안중에도 없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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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13일 (화) 04:23 판
대한제국 대황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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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제4대 대황제 소황제 | 少皇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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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이철(李哲) |
출생 | 1965년 1월 19일 |
황성 한성부 황실병원 | |
붕어 | 1974년 8월 3일 |
황성 한성부 황실병원 (향년 8세) | |
즉위 | 1967년 11월 27일 |
황성 한성부 경복궁 근정전 | |
재위기간 | 대한제국 황태자 |
1966년 4월 21일 ~ 1967년 11월 27일 | |
대한제국 제5대 대황제 | |
1967년 11월 27일 ~ 1972년 11월 27일 | |
대한제국 상황 | |
1972년 11월 27일 ~ 1974년 8월 3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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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소황제 이철(少皇帝 李哲)은 대한제국의 제4대 황제이며 혜종 순황제의 장남이자 유일한 후손이다.
1965년 혜종의 나이 48세에 혜종 순황제와 경신순황후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혜종은 어렵게 얻은 늦둥이 아들의 탄생을 매우 기뻐했다. 소황제가 태어난 즉시 '원자(元子)'로 정했고 이듬해인 1966년 4월 21일에는 이제 막 돌이 지난 원자를 황태자로 정식 책봉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67년 11월 27일 부황 혜종이 폐암으로 붕어하자 2살의 어린 나이로 보위에 올랐다.
보위를 이은 소황제는 나이가 너무 어린데 다가 몸까지 병약한 탓에 모후인 경신순황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된다. 하지만 경신순황후는 야심만 많았지 국정에 관해서는 무지했고, 인척인 강씨 가문은 권력을 이용해 부정축재에만 몰두했다. 게다가 소황제의 병세는 좋아지기는커녕 날로 악화되어만 갔고 명색이 한 나라의 군주라는 사람 몸 상태가 이 지경이니 나라가 조용할리 없었다.
결국 1972년 4월 19일 소황제가 독감으로 쓰러지고,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되자 개성에서 강씨 척족과 경신순황후를 규탄하는 데모가 발생했다. 이에 순황후는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황실예전에 따라 황속(皇續)을 택현(擇賢)할것을 공포한다.
당시 종법상 최근친은 상경군이었으나, 상경군이 정신병을 앓고 있어 이는 수포로 돌아갔고, 제경군과 한경군(훗날의 숙조)가 유력한 후보로 검토되었다. 이중 제경군은 행동이 방탕하고 부패하였으며 군인 신분임에도 걸핏하면 술을 마시고 민간인을 폭행해 황실의 골칫덩이 신세였다. 반면 한경군은 젊고 황족 중 유일한 고등문관시험자일 정도로 총명하고 유능했고, 품행이 단정하여 어릴 때부터 왕재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제경군의 부인 강씨는 경신순황후와 같은 진주 강씨로 순황후와 제경군은 이미 친분이 있어, 자신의 전횡을 묵과할 것이라는 약조를 받은 순황후와 황족 대다수는 제경군을 지지하였다. 그러나 한경군은 고등문관시험 출신 커리어답게 경찰과 관료조직의 지지를 받았고, 제경군의 횡포로 망신을 산 군부 또한 한경군의 편에 섰다. 결국 황속 문제는 황실의 지지를 받는 제경군과 관료와 군부의 지지를 받는 한경군의 대립 구도로 돌아가기 시작했으며, 병석에 누운 6세의 어린 황제는 이제 안중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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