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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1|프롤레타리아 독재는 1당 독재, 1당 독재는 곧 1인 독재요.<br>이는 20세기의 뼈아픈 경험입니다.}} | {{인용문1|프롤레타리아 독재는 1당 독재, 1당 독재는 곧 1인 독재요.<br>이는 20세기의 뼈아픈 경험입니다.}} | ||
{{인용문1|편안하게 살려거든 불의에 외면하라.<br>그러나 사람답게 살려거든 도전하라.}} | {{인용문1|편안하게 살려거든 불의에 외면하라.<br>그러나 사람답게 살려거든 도전하라.|유언으로 알려졌다.}} | ||
{{인용문1|내 인생은, 반독재. 반독재로 끝나는거야.}} | {{인용문1|내 인생은, 반독재. 반독재로 끝나는거야.}} | ||
{{인용문1|잘린 다리는 일본 감옥에 묻혀 있어. 그러니 나는 이번에 죽으면 무덤이 두 개나 되는 셈이야, 허허}} | {{인용문1|잘린 다리는 일본 감옥에 묻혀 있어. 그러니 나는 이번에 죽으면 무덤이 두 개나 되는 셈이야, 허허}} |
2024년 3월 8일 (금) 02:5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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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 민주 공화국의 제2대 대총통 | ||||
초대 니어후루 아이싱가 |
→ | 제2대 남춘봉 |
→ | 제3대 마지총 |
만주 민주 공화국의 제2대 대총통 남춘봉 Нам Чүн Буң | 南春凤 | ||||
출생 | 1923년 9월 25일 | |||
대한제국 평안북도 신의주부 | ||||
사망 | 2007년 9월 26일 (향년 84세) | |||
연변 자치주 국립 연길종합병원 | ||||
만주 민주 공화국 제2대 대총통 | ||||
후임: 마지총(제3대) | ||||
재임기간 | 만주공산당 군사위원회 제32대 위원장 | |||
1991년 9월 10일 - 1993년 1월 5일 | ||||
만주공산당 제23기 대표의원 | ||||
1983년 4월 11일 - 1993년 1월 5일 | ||||
서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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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영양(英陽) |
가족 | 1남 2녀 중 장자 |
배우자 | 리혜승 |
자녀 | 슬하 1남 남해봉 |
학력 | 동방노력자공산대학(조기졸업) 황푸군관학교(졸업) |
종교 | 무신론 |
정당 | |
의원선수 | 1(건국의회), 1(대의원) |
의원대수 | 만주 건국회의 대표의원, 제1대 대의원 |
자 | 진송(津宋) |
호 | 추산(秋山) |
임관 | 만주 인민군 편입과정 1기 |
최종계급 | 원수 |
최종보직 | 만주 인민군 군사위원회 군사위원장 |
서훈 |
공식 초상화 |
개요
남춘봉 (만주어:Нам Чүн Буң, 1923년 9월 25일 ~ 2007년 9월 26일)은 만주 민주 공화국의 독립운동가·인권운동가·정치인·교육자·문학가로, 만주 인민 공화국의 장군이자 정치인이고 만주 민주 공화국의 제2대 대총통을 역임한 인물이다. 1950년애 조선의용군 참전장을 서훈받았고, 1995년에 건국훈장 공화국장을 서훈받았고, 2003년에 국가인민영웅장을 서훈받았다.
대총통을 지낸 인물중에선 유일히 장애를 지닌 인물로, 대성제국에 항거하는 무장독립운동을 하다가 태형산(太形山) 전투에서 총상을 입어, 나가사키 수용소에서 전향서에 서명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리가 괴사될때까지 치료를 받지 못하였고 결국 절단하게 되었다. 또한 그는 독립 이후 대한제국에 몇개월 체류하다 바로 만주로 떠나 만주 인민 공화국의 건국에 참여하였다. 이후 사관학교의 장교이자 교사로서 활동하다 정계에 입문하여 니어후루 아이싱가와 같은 배를 타고서 민국개혁파의 주요인물중 하나가 되었다.
이후 민국개혁파에서 건국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인물중 하나가 되어 활동했으며, 건국회의와 제헌선언, 건국선언식까지 함께하고 공로를 세워 국부가 되었다. 이후 니어후루 아이싱가의 후임으로 대총통이 된 그는 독재의 뿌리를 뽑아버리겠다는 일념으로 개헌을 단행하였고, 현재의 제2차 국가대률을 완성시켜 지금에 이르게 하였으며 국가의 초석을 다져 현재의 만주를 설명함에 있어서 그를 빼놓을 수 없게 하였다. 현재의 사회보장제도나 국가적 제도의 기반은 대부분 남춘봉 시대때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퇴임 이후, 지병의 악화로 묵던에서 치료를 받다가 호전되자 동포들이 있는 연길로 갔으며, 연길종합병원에서 생활하다가 갑자기 지병이었던 다발성골수종으로 인해 사망선고를 받고 2007년에 별세하였다. 그 때가 향년 84세였다, 그의 장례는 국장으로 치루어졌다.
일생
1923년 9월 25일 대한제국 평안북도 신의주부에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하여 한성부 보성고등보통학교으로 진학하여 학업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17살이 되는 1940년에 공산주의 운동에 눈을 뜨고는, 학교를 중퇴하고 만주로 건너가 조선의용대에 참여하여 대성제국에 맞서는 항쟁을 시작하였다.
1941년 3월 2일 중국 공산당에 입당하여 팔로군에 소속되어 항쟁을 벌였다.
남춘봉 정부
대총통 취임식 선서 [1][2] |
보굴롯 와키란 내각
왕용정 내각
저작
창작품
- 주간잡지 「건설주보」 《지네》 (1945)
- 문예잡지 「문학」《담배국》 (1945)
- 단편 소설 《이렇게 싸웠다》 (1946)
- 단편 소설 《남광도일》 (1946)
- 작품 《달걀》 (1946)
- 작품 《밤에 잡은 포로》 (1946)
- 작품 《야맹증》 (1946)
- 문예잡지 「신문학」《균렬(龜裂)》 (1947)
- 문예잡지 「신문학」《상흔(瘢痕)》 (1947)
- 주간잡지 「서울문학」《어간유정(魚肝油錠)》 (1947)
- 아동 소설 《맞지 않은 기쁨》(195?)
- 아동 소설 《92전자리 파리》(195?)
- 단편집 《조선의용군》 (1950)
- 단편집 《엄혹한 나날에》 (1952)
- 단편집 《전우》 (1952)
- 단편집 《고향》 (1952)
- 단편집 《솔바람》 (1952)
- 단편집 《군공메달》 (한문작) (1952)
- 단편집 《새집 드는 날》 (1953)
- 장편소설 《해란강아 말하라!》 (1954)
- 단편소설 《괴상한 휴가》 (1955)
- 소설집 《고민》 (1956)
- 중편소설 《범람》 (1957)
- 중편소설 《번영》 (1957)
-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 (1965 완성, 1998 출판)
- 자서전 《항일별곡》 (1983)
- 소설집 《김학철단편소설집》 (1985)
- 장편소설 《격정시대》 (1986)
- 산문집 《무명소졸》 (1988)
- 자서전 《최후의 분대장》 (1995)
- 산문집 《나의 길》 (1996)
- 산문집 《우렁이 속 같은 세상》 (2001)
작극품
- 단말극 《서광》 (1938)
- 단말극 《승리》 (1939)
- 단말극 《등대》 (1941)
작사곡
- 《고향길》(1941, 남춘봉 작사, 류신 작곡)
- 《조선의용군 추도가》(1941, 남춘봉 작사, 류신 작곡)
- 《동해어부》(1948, 남춘봉 작사, 정률성 작곡)
- 《유격대전가》(1948, 남춘봉 작사, 정률성 작곡)
번역작
- 니콜라이 고골(Николай Гоголь) - 희곡 《검사관》 (1948)
- 루쉰(鲁迅) - 단편 소설 《풍파(风波)》 (1952)
- 딩링(丁玲) - 장편 소설 《태양은 쌍간강를 비춘다》 (1953)
- 루쉰(鲁迅) - 소설 《아Q정전》 (1953)
- 루쉰(鲁迅) - 단편 소설 《축복(祝福)》 (1955)
- 주립파() - 장편 소설 《산촌의 변혁 (상)》 (1962)
- 주립파() - 장편 소설 《산촌의 변혁 (하)》 (1964)
여담
아사 (한나라)의 광팬이었다. 가장 좋아하던 소설은 신의주 청년 이었다고. 아사 (한나라)가 죽었을 때 정말 괴로웠다고 한다.
아오시마라는 간수가 있었어. 내가 나가사끼에 있을 때, 나 글장이요 했거든. 그러니까 그 놈이 자기도 시 쓰는 구락부에서 논다는거야. 그래서 친해졌지. 그런데 어느 날에 아오시마가 나한테 급히 다가와서 말하는거야. '요꼬하마에 폭격이 일어났다. 아사가 죽었다.' 정말 그 순간 나는 눈 앞이 깜깜해졌어. 며칠 동안 다리가 잘릴 때보다 더 괴로운거야. 정말 세기의 천재가 갔고나. 하면서 괴로운거야. 자서전 추산기록 中 |
어록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1당 독재, 1당 독재는 곧 1인 독재요. 이는 20세기의 뼈아픈 경험입니다. |
편안하게 살려거든 불의에 외면하라. 그러나 사람답게 살려거든 도전하라. 유언으로 알려졌다. |
내 인생은, 반독재. 반독재로 끝나는거야. |
잘린 다리는 일본 감옥에 묻혀 있어. 그러니 나는 이번에 죽으면 무덤이 두 개나 되는 셈이야, 허허 |
"우리 조선의용군은 일본이 투항하는 날까지 끊임없이 무장 투쟁을 견지했습니다. 이 나라의 해방을 위해 숱한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또 목숨을 바쳤습니다. 우리는 누구처럼 팔짱을 끼고 앉아서 남이 해방을 시켜줄 때만을 기다리지는 않았습니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지 않았단 말입니다." |
나를 파시스트라고 부르는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에요. 내가 쓴 소설을 가지고 과대해석을 하는 모양인데, 세상 모든게 불편해서 살겠습니까? 허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