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국 38/국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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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에 위치한 중국의 자치구, 현재 [[할트마깅 바트톨가 (민국 38)|할트마깅 바트톨가]]가 정부주석<ref name="총리격">몽골과 티베트 자치구의 자치의회에서 선출되는 총리 격 직책, 다른 성(省)들의 성장이나 한국의 도지사에 대응한다.</ref>으로 집권중이다. 집권 여당은 [[몽골 민주동맹 (민국 38)|몽골 민주동맹]]<ref>위에서 언급된 과거 중국의 민주당파 정당인 중국민주동맹과는 관계 없는 정당이다.</ref>.
동아시아에 위치한 중국의 자치구, 현재 [[할트마깅 바트톨가 (민국 38)|할트마깅 바트톨가]]가 정부주석<ref name="총리격">몽골과 티베트 자치구의 자치의회에서 선출되는 총리 격 직책, 다른 성(省)들의 성장이나 한국의 도지사에 대응한다.</ref>으로 집권중이다. 집권 여당은 [[몽골 민주동맹 (민국 38)|몽골 민주동맹]]<ref>위에서 언급된 과거 중국의 민주당파 정당인 중국민주동맹과는 관계 없는 정당이다.</ref>.


[[신해혁명 (민국 38)|신해혁명]] 이후 외몽골의 왕공족들은 종교 지도자인 젭춘담바 후툭투를 몽골의 대칸으로 추대하여 복드 칸국 이라는 군주국의 형태로 몽골을 독립 국가의 궤도로 올려놓고자 하였다. 복드 칸국은 몽골을 다시 중국으로 복속시키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북양정부를 견재하기 위하여 러시아 제국과 유착하였고 이는 성과를 거두어 캬흐타 협정을 통해 몽골은 완전 독립까지는 아니더라도 중국의 종주권을 인정하는 선에서 자치권을 유지하는데 성공하였다.
[[신해혁명 (민국 38)|신해혁명]] 이후 외몽골의 왕공족들은 종교 지도자인 젭춘담바 후툭투를 몽골의 대칸으로 추대하여 복드 칸국 이라는 군주국의 형태로 몽골을 독립 국가의 궤도로 올려놓고자 하였다. 복드 칸국은 몽골을 다시 중국으로 복속시키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북양정부를 견재하기 위하여 러시아 제국과 유착하였고 이는 성과를 거두어 [[캬흐타 협정 (민국 38)|캬흐타 협정]]을 통해 몽골은 완전 독립까지는 아니더라도 중국의 종주권을 인정하는 선에서 자치권을 유지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 (민국 38)|러시아 혁명]]<ref>정확히는 "볼셰비키 혁명"이라 불리는 10월 혁명.</ref> 이후 러시아가 혼란에 빠지고 캬흐타 협정이 무효화 되자 북양정부는 외몽골 출병을 통해 몽골의 자치권을 무효화하고 몽골에 진주한 군벌 장군 쉬수정은 폭정을 일삼아 현지인들에게 있어 비토의 대상이 되었다. 이에 일명 "미친 남작"이라는 별명으로 더욱 잘 알려진 로만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의 백군 군대가 중국군을 몰아내고 잠시 몽골의 지배권을 거머쥐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그의 통치는 러시아를 평정한 소비에트 적군과 그들의 지원을 받은 [[담딘 수흐바타르 (민국 38)|담딘 수흐바타르]]와 [[허를러깅 처이발상 (민국 38)|허를러깅 처이발상]]의 몽골 인민혁명당에 의해 종언을 고하게 된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 (민국 38)|러시아 혁명]]<ref>정확히는 "볼셰비키 혁명"이라 불리는 10월 혁명.</ref> 이후 러시아가 혼란에 빠지고 캬흐타 협정이 무효화 되자 북양정부는 외몽골 출병을 통해 몽골의 자치를 취소시켰고 몽골에 진주한 군벌 장군 쉬수정은 폭정을 일삼아 현지인들에게 있어 비토의 대상이 되었다. 이에 일명 "미친 남작"이라는 별명으로 더욱 잘 알려진 로만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의 백군 군대가 중국군을 몰아내고 잠시 몽골의 지배권을 거머쥐는데 성공하였으나 그의 짧은 통치는 러시아를 평정한 소비에트 적군과 그들의 지원을 받은 [[담딘 수흐바타르 (민국 38)|담딘 수흐바타르]]와 [[허를러깅 처이발상 (민국 38)|허를러깅 처이발상]]의 몽골 인민혁명당에 의해 끝을 맞이하게 되었다.


운게른의 통치가 몽골에서 끝을 맞이한 이후 아이러니하게도 혁명의 영웅이던 수흐바타르의 삶 역시 그 운을 다하였고 그 뒤를 처이발상이 이었다. 처이발상은 "몽골의 스탈린"이라는 별명답게 몹시 폭압적인 통치를 자행하였으며<ref>실제 역사에서 그가 처형한 인구는 최소 3만여명에서 최대 10만여명까지 추산되기도 하는데 당시 몽골의 인구가 8-90만여 명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전 인구의 4%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다.</ref> 몽골 전역에서 전통문화와 티베트 불교 말살, 대숙청 등이 벌어졌다. 그러나 그의 집권기는 변발등의 구습이 자취를 감춤과 동시에 근대화가 진행되기도 했던, 명과 암을 동시에 지닌 시기로 평가받는다.
1923년 혁명의 주도자였던 수흐바타르의 사망 이후 그의 동료였던 처이발상이 몽골의 최고 권력자로 등극하였다. 그는 가혹한 [[스탈린주의 (민국 38)|스탈린주의]]식 탄압을 몽골에 도입하여 수많은 불교도들과 귀족, 정적들을 학살하였고 강력한 근대화 정책을 펼침과 동시에 전통 문화를 탄압하였다. 이러한 무자비한 탄압을 통하여 몽골의 경제는 성장하였고 유목국이었던 몽골은 근대 국가의 길로 진입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이는 공산 정권에 대한 인민의 회의를 낳는 계기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민정부는 소련과의 중소우호동맹조약의 체결을 통해 몽골의 독립을 보장하였다. 그러나 중화사상의 철저한 신봉자였던 장제스는 내심 외몽골의 수복을 바라고 있었고 스탈린의 사망 이후 몽골 인민공화국의 뒷배였던 소련이 권력 투쟁으로 인해 혼란에 빠지자 몽골 내의 반소성향 군벌들을 지원하여 몽골 내전을 일으켰다. 내전은 처이발상의 폭정과 처이발상의 후계자였던 욤자깅 체뎅발의 노골적인 친소 행보에<ref>당시 스탈린은 유럽과 아시아에서의 미국에 세력 확대에 대한 일종에 편집증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때문에 당시 몽골의 소련 병합에 반대한 처이발상이 모스크바 방문 당시 스탈린의 사주에 의해 암살당했고 후임자인 체뎅발이 소련에 의해 세워진, 몽소병합을 추진하려하는 꼭두각시라는 인식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다만 그의 사망이 스탈린의 주치의 숙청의 원인이 되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는 지나친 비약으로 추정된다.</ref> 불만을 가진 많은 몽골인들의 동조에 의해 친중 반군의 승리로 싱겁게 끝났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 이후 국민정부는 소련과 [[중소우호동맹조약 (민국 38)|중소우호동맹조약]]을 체결하여 몽골의 독립을 승인하였으나 내심 외몽골의 재복속을 바라고 있었고 국공내전 이후 이러한 기조는 더욱 강화되었다. 1953년 이오시프 스탈린의 사망 이후 소련이 권력투쟁 국면에 접어들자 중국 정부는 몽골 내의 반공 세력들을 결집시켜 내전을 일으켰고 소련의 방관 아래 내전은 매우 빠르게 몽골 구국군(반군)의 승리로 종결되었다.


중국 정부는 몽골 주민들의 환심을 삼과 동시에 소련의 경계심을 줄이기 위해 명목상 몽골을 중국의 본토로 직접 병합하는 것이 아닌 이전의 캬흐타 협정을 복구시켜 몽골의 자치권을 인정할 것이라 발표했고 당시 내부 권력투쟁에 여념이 없던 소련은 중국이 중소우호동맹조약에서 언급된 동청철도의 이용권과 1946년 국경의 준수를 조건으로 중국의 몽골 합병을 인정하였다.
중국 정부는 몽골 구국군 내의 반중파를 대대적으로 숙청하는 한편 몽골 내의 민심을 얻고자 중국으로의 완전 병합이 아닌 캬흐타 협정의 부활을 선전하였고 이는 몽골인들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또한 당시 권력투쟁으로 정신이 없던 소련 당국이 1946년 기준 국경선의 준수를 조건으로 중국의 몽골 병합을 승인하면서 외몽골은 40여년 만에 다시금 중국으로 재복속되었다.
 
재복속 이후 몽골 구국군 출신 장성들과 인민혁명당 전향파 인사들이 창당한 정당인 [[몽골 민족당 (민국 38)|몽골 민족당]]이
==== 티베트 ====
==== 티베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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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13일 (수) 21:58 판

[ 문서 보기 ]
[ 세계관 설명 ]
[ 세계관 설명 ]
중국이 제국주의에 의해서 망한다면
중국인은 망국의 인간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공산주의에 의해서 망한다면
중국인은 노예로도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민국 38(民國三十八)은 가장 대표적인 대체역사 소재 중 하나인 중화민국국공내전 승리를 가정한 세계관 입니다.
민국 38년(1949년) 중화민국의 국공내전 승리 이후 중국과 동아시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변화한 여러 정치, 사회, 문화, 역사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개요

2030년 기준 지도

민국 38 세계관 속의 국가들을 정리한 문서입니다.

세계관 내 국가

민국 38 내에서 주(主)가 되는 국가들로 세계관 내의 문서로 만들어진 국가들이다.

중국

天下爲公(천하위공)
천하는 만민의 것이다. 천하는 만민을 위한 것이다.
쑨원

동아시아에 위치한 이원집정부제 민주공화국[1], 현재 후춘화가 총통으로 집권중이다. 집권 여당은 중국공산당중국민주당, 녹색당, 중국공당. GDP 순위 제2위의 경제 강국이자 인구 1위, 영토 2위에 달하는, 미국을 잇는 세계 2위의 강대국이다.

시안 사건장쉐량의 체포로 인해 불발된 이후 옌안의 공산당을 향한 제6차 초공작전은 예정대로 실시되어 마오쩌둥은 국민혁명군의 폭격에 의해 사망하였고 공산당은 괴멸적인 피해를 입게 되었다. 6차 초공 이후 존망의 기로에 선 중국공산당은 유일하게 남은 동앗줄인 소련을 붙잡고 크렘린의 꼭두각시인 왕밍의 영도 하에 친소 성향의 군벌인 성스차이의 영지이던 신강성으로 고난의 행군을 감행하였고 이는 중공의 상당한 세력 축소를 유발하게 되었다.

1937년 중일전쟁의 발발 이후 중국은 장제스의 영도 하에 중앙의 국민정부와 지방의 군벌들, 신장의 공산당 간의 통일전선이 결성되어 항전을 이어나갔으며, 1945년 카보네이드 작전과 몰락 작전의 결행은 국민정부로 하여금 중국 대부분에 대한 확고한 통제권과 더불어 전후 아시아 패권에 대한 발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1946년 일제의 패망이후 국민정부는 신강 소비에트[2]에 대한 전면적인 초공을 선포하며 국공내전이 재개되었고 결과적으로 민국 38(1949)년 장제스 총통의 초공 성공 선언과 함께 국공내전은 중화민국 중앙정부의 승리로 귀결되게 되었다.

내전의 종식 이후 장제스 총통은 토지·화폐 개혁과 물가 인하 등의 개혁 조치를 통해 인민 다수의 지지를 얻어내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하였다. 또한 신생활운동을 재개하여 성공적으로 중국의 경제 발전을 이루어냈으며 핵개발과 아시아 협력기구의 출범으로 중국을 미국에 이은 세계 2위의 패권국으로서 발돋움시켰다. 한편 국공내전 이전 공산당의 일파 중 왕밍과 가오강을 중심으로 한 이념파(당내 좌파)에 반대했던 류사오치 중심의 실용파(당내우파)는 중국국민당 주도의 정치협상회의, 제헌 국민대회 잔류를 결정하였고 이들은 국공내전의 종전 이후에도 무거운 제약을 받을 짊어 짐에도 불구하고 중국민주동맹 등의 민주당파 야당들과 함께 중국 야권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된다.

1968년 유럽의 68혁명의 영향을 받은 반권위주의 운동인 제1차 전민항쟁 이후 공산당과 민주동맹 등의 민주 야권에 대한 규제와 사회 통제 등이 완화되기 시작하였으며 1975년 장제스 총통과 왕징웨이 전 행정원장의 서거 이후 왕징웨이의 장례식을 촉매제 삼아 일어난 제2차 전민항쟁은 중국의 최종적인 민주화를 야기하였고 이후 1978년 최초의 공산당 출신 총통인 류사오치가 선출되며 비로소 중국은 민주 국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류사오치 이후 덩샤오핑[3], 장쩌민[4], 후진타오[3], 마잉주[4], 리커창[3], 후춘화가 순서대로 집권하였다. 비록 1980년대의 거품경제붕괴되고 여러 차례 경제 위기와 불황이 닥치며 예전 같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세계관 기준 연도인 2030년 기준으로 중국은 여전히 세계를 주름잡는 강대국 중 하나이자 아시아의 패권 국가로서 그 위용을 떨치는 중이다.

몽골

나의 황금빛 생명은 사라지겠지만 선의를 가진 벗들이 나를 계승하여 인민의 나라가 힘차게 일어서게 하소서!
담딘 수흐바타르

동아시아에 위치한 중국의 자치구, 현재 할트마깅 바트톨가가 정부주석[5]으로 집권중이다. 집권 여당은 몽골 민주동맹[6].

신해혁명 이후 외몽골의 왕공족들은 종교 지도자인 젭춘담바 후툭투를 몽골의 대칸으로 추대하여 복드 칸국 이라는 군주국의 형태로 몽골을 독립 국가의 궤도로 올려놓고자 하였다. 복드 칸국은 몽골을 다시 중국으로 복속시키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북양정부를 견재하기 위하여 러시아 제국과 유착하였고 이는 성과를 거두어 캬흐타 협정을 통해 몽골은 완전 독립까지는 아니더라도 중국의 종주권을 인정하는 선에서 자치권을 유지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7] 이후 러시아가 혼란에 빠지고 캬흐타 협정이 무효화 되자 북양정부는 외몽골 출병을 통해 몽골의 자치를 취소시켰고 몽골에 진주한 군벌 장군 쉬수정은 폭정을 일삼아 현지인들에게 있어 비토의 대상이 되었다. 이에 일명 "미친 남작"이라는 별명으로 더욱 잘 알려진 로만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의 백군 군대가 중국군을 몰아내고 잠시 몽골의 지배권을 거머쥐는데 성공하였으나 그의 짧은 통치는 러시아를 평정한 소비에트 적군과 그들의 지원을 받은 담딘 수흐바타르허를러깅 처이발상의 몽골 인민혁명당에 의해 끝을 맞이하게 되었다.

1923년 혁명의 주도자였던 수흐바타르의 사망 이후 그의 동료였던 처이발상이 몽골의 최고 권력자로 등극하였다. 그는 가혹한 스탈린주의식 탄압을 몽골에 도입하여 수많은 불교도들과 귀족, 정적들을 학살하였고 강력한 근대화 정책을 펼침과 동시에 전통 문화를 탄압하였다. 이러한 무자비한 탄압을 통하여 몽골의 경제는 성장하였고 유목국이었던 몽골은 근대 국가의 길로 진입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이는 공산 정권에 대한 인민의 회의를 낳는 계기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 이후 국민정부는 소련과 중소우호동맹조약을 체결하여 몽골의 독립을 승인하였으나 내심 외몽골의 재복속을 바라고 있었고 국공내전 이후 이러한 기조는 더욱 강화되었다. 1953년 이오시프 스탈린의 사망 이후 소련이 권력투쟁 국면에 접어들자 중국 정부는 몽골 내의 반공 세력들을 결집시켜 내전을 일으켰고 소련의 방관 아래 내전은 매우 빠르게 몽골 구국군(반군)의 승리로 종결되었다.

중국 정부는 몽골 구국군 내의 반중파를 대대적으로 숙청하는 한편 몽골 내의 민심을 얻고자 중국으로의 완전 병합이 아닌 캬흐타 협정의 부활을 선전하였고 이는 몽골인들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또한 당시 권력투쟁으로 정신이 없던 소련 당국이 1946년 기준 국경선의 준수를 조건으로 중국의 몽골 병합을 승인하면서 외몽골은 40여년 만에 다시금 중국으로 재복속되었다.

재복속 이후 몽골 구국군 출신 장성들과 인민혁명당 전향파 인사들이 창당한 정당인 몽골 민족당

티베트

내 종교는 매우 단순합니다. 내 종교는 친절입니다.
달라이 라마 14세

홍콩

나는 모든 사업에는 순환이 있으며 어떤 사업도 처음부터 끝까지 좋을 수는 없다고 믿는다.
리카싱

마카오

마카오 주민의 인신의 자유는 침범받지 아니한다.
마카오특별행정구 기본법

대한민국

우리가 건설하려는 나라는 인민이 주인이 되어 인민이 다스리는 민주공화국이다.
여운형

일본국

곧 다시 일어설 것이다. 반드시 일본은 다시 일어설 것이다.
요시다 시게루

일본인민공화국

사회주의의 누리에서는 사형으로 아니 도태되고, 완력으로, 경제상의 경쟁으로 아니 도태되고, 국가간·인종간의 전쟁으로 아니 도태된다.
기타 잇키

류큐

옥구슬이라 하여도 갈지 않으면 녹스니, 밤낮으로 마음 닦아 세상을 살아라.
틴사구누하나

베트남

나는 단지 인민의 충실한 종복일 뿐이다.
호찌민

버마

우리는 성공 뿐 아니라 패배를 피하기 위해서도 우리 자신, 우리의 능력과 노력, 힘과 준비를 믿어야 합니다.
아웅 산

태국

국가는 특정 한 두 사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것이다.
라마 9세

캄보디아

나는 애국자이자 국가의 지도자로서 나의 신념을 지켜야 한다.
노로돔 시아누크

라오스

일어서서 말하는 것 뿐만 아니라 앉아서 듣는 것 또한 용기이다.
쑤파누웡

소련

인민은 낙엽과 같다. 하나씩 밟을 때는 바스락거리지만 한데 긁어모아 불을 붙이면 매우 잘 탄다.
이오시프 스탈린

아랍 연합 왕국

우리는 당신만을 경배하오며 당신에게만 구원을 비노니 저희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코란 제1장, 알 파티하

청나라 소조정

나는 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내 범죄를 은폐했습니다.
선통제 푸이

자유 러시아 임시정부

볼셰비즘에 맞서 무자비하게 투쟁하려는 의지를 가진 정부만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
안톤 데니킨

세계관 외 국가

민국 38 내에서 해당 국가와 관련 된 문서가 만들어지거나 현실과 다른 역사적 변동이 있는 국가들로 세계관 내의 문서로 만들어질 예정이 없는 국가들이다.

미국


미합중국 대통령
[ 펼치기 · 접기 ]
제33대 제34대 제35대 제36대
해리 S. 트루먼
민주당

(1945 ~ 1949)
토머스 E. 듀이
공화당

(1949 ~ 1953)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민주당

(1953 ~ 1961)
리처드 닉슨
공화당

(1961 ~ 1966)
제37대 제38대 제39대 제40대
제럴드 포드
공화당

(1966 ~ 1969)
린든 B. 존슨
민주당

(1969 ~ 1973)
휴버트 험프리
민주당

(1973 ~ 1981)
로널드 레이건
공화당

(1981 ~ 1989)
제41대 제42대 제43대 제44대
조지 H. W. 부시
공화당

(1989 ~ 1993)
앨 고어
민주당

(1993 ~ 2001)
조지 W. 부시
공화당

(2001 ~ 2009)
조 바이든
민주당

(2009 ~ 2017)
제45대 제46대 제47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2017 ~ 2021)
버락 오바마
민주당

(2021 ~ 2029)
글렌 영킨
공화당

(2029 ~ )
미연합국 대통령

미합중국 부통령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통치는 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에이브러햄 링컨

영국


영국 총리
[ 펼치기 · 접기 ]
조지 6세
제59대 제60대 제61대 제62대
스탠리 볼드윈
보수당

(1935 ~ 1937)
네빌 체임벌린
보수당

(1937 ~ 1940)
윈스턴 처칠
보수당

(1940 ~ 1945)
클레멘트 애틀리
노동당

(1945 ~ 1949)
제63대 제64대
허버트 모리슨
노동당

(1949)
윈스턴 처칠
보수당

(1949 ~ 1955)
엘리자베스 2세
제64대 제65대 제66대 제67대
윈스턴 처칠
보수당

(1949 ~ 1954)
휴 게이츠컬
노동당

(1954 ~ 1963)
해럴드 윌슨
노동당

(1963 ~ 1970)
에드워드 히스
보수당

(1970 ~ 1974)
제68대 제69대 제70대 제71대
해럴드 윌슨
노동당

(1974 ~ 1976)
제임스 캘러헌
노동당

(1976 ~ 1979)
마거릿 대처
보수당

(1979 ~ 1990)
존 메이저
보수당

(1990 ~ 1997)
제72대 제73대 제74대 제75대
토니 블레어
노동당

(1997 ~ 2007)
고든 브라운
노동당

(2007 ~ 2010)
데이비드 캐머런
보수당

(2010 ~ 2016)
테레사 메이
보수당

(2016 ~ 2019)
제76대 제77대
보리스 존슨
보수당

(2019 ~ 2022)
리즈 트러스
보수당

(2022)
찰스 3세
제77대 제78대 제79대
리즈 트러스
보수당

(2022)
리시 수낙
보수당

(2022 ~ 2024)
키어 스타머
노동당

(2024 ~ 2029)
윌리엄 5세
제70대 제80대
키어 스타머
노동당

(2024 ~ 2029)
레베카 롱베일리
영국 사회당

(2029 ~ )
내 삶이 길건 짧건 내 평생을 그대들을 섬기는 데 바칠 것을 여러분 앞에서 선언합니다.
엘리자베스 2세

프랑스


프랑스 공화국 국가수반
[ 펼치기 · 접기 ]
제4공화국 장관회의 의장
제83대
폴 라마디에
중도좌파

(1947)
제84대
로베르 슈만
중도우파

(1947 ~ 1948)
제85대
앙드레 마리
중도

(1948)
(제84대)
로베르 슈만
중도우파

(1948)
제86대
앙리 쾨이유
중도

(1948 ~ 1949)
제87대
조르주 비도
중도우파

(1949 ~ 1950)
(제86대)
앙리 쾨이유
중도

(1950)
제88대
르네 플레뱅
중도좌파

(1950 ~ 1951)
제89대
자크 뒤클로
극좌

(1951 ~ 1953)
제90대
모리스 토레즈
극좌

(1953)
제91대
라울 살란
군부

(1953 ~ 1958)
(제80대)
샤를 드골
우파

(1958 ~ 1959)
제5공화국 대통령
제18대
샤를 드골
우파

(1959 ~ 1969)
제19대
조르주 퐁피두
우파

(1969 ~ 1974)
제20대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
중도우파

(1974 ~ 1981)
제21대
프랑수아 미테랑
중도좌파

(1981 ~ 1995)
제22대
자크 시라크
우파

(1995 ~ 2007)
제23대
니콜라 사르코지
우파

(2007 ~ 2012)
제24대
프랑수아 올랑드
중도좌파

(2012 ~ 2017)
제25대
에마뉘엘 마크롱
중도

(2017 ~ 2027)
제26대
마린 르펜
극우

(2027 ~ )
민주주의는 두 가지 과도함으로 망한다. 통치자들의 귀족주의로 망하거나, 인민이 스스로 확립한 권위를 경멸함으로써 망한다.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

독일


독일연방공화국 연방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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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콘라트 아데나워
기민련

(1949 ~ 1963)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무소속

(1963 ~ 1966)
쿠르트 게오르크 키징어
기민련

(1966 ~ 1969)
빌리 브란트
사민당

(1969 ~ 1974)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헬무트 슈미트
사민당

(1974 ~ 1982)
헬무트 콜
기민련

(1982 ~ 1989)
로타르 슈패트
기민련

(1989 ~ 1998)
게르하르트 슈뢰더
사민당

(1998 ~ 2005)
제9대 제10대 제11대 제12대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민련

(2005 ~ 2009)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사민당

(2009 ~ 2021)
아르민 라셰트
기민련

(2021 ~ 2025)
자스키아 에스켄
사민당

(2025 ~ 2029)
제13대
노르베르트 뢰트겐
기민련

(2029 ~ )
북독일 연방 수상 · 독일 제국 수상 · 바이마르 총리 · 나치 독일 총리 · 독일민주공화국 의장

독일 대통령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올바름이 아니라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이다.
콘라트 아데나워

인도

눈에는 눈은 세계를 장님으로 만들 뿐이다.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

  1. 프랑스와 비슷한 형태의 이원집정부제, 즉 대통령제에 가까운 이원집정부제로 현실의 중화민국(대만)과는 달리 총리 격인 행정원장이 입법원(의회)에 의해 선출되고 입법위원(국회의원)들의 각료 겸직이 허용되는 등의 차이점이 있다.
  2. 성스차이는 현실과 마찬가지로 1942년 독소전쟁 당시 소련의 패색이 짙어지자 대소관계 단절과 탈 공산화를 시도하려 하였으나 오히려 신강을 본진으로 삼던 친소 성향의 팔로군에 의해 철저히 진압되어 축출당했다.
  3. 3.0 3.1 3.2 공산당 출신.
  4. 4.0 4.1 국민당 출신.
  5. 몽골과 티베트 자치구의 자치의회에서 선출되는 총리 격 직책, 다른 성(省)들의 성장이나 한국의 도지사에 대응한다.
  6. 위에서 언급된 과거 중국의 민주당파 정당인 중국민주동맹과는 관계 없는 정당이다.
  7. 정확히는 "볼셰비키 혁명"이라 불리는 10월 혁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