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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lass="wikitable" style="float:right; max-width:450px; border:2px solid #e0e0e0; color:#;" | | {| class="wikitable" style="float:right; max-width:450px; border:2px solid #e0e0e0; col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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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span="4" style="width:450px; background:#fff;" | [[파일:대한민국 국장 (개화).png|30px|link=]]<br>{{글씨 색|#CD2E3A|{{large|대한민국}}}}<br>{{글씨 색|#0047A0|大韓民國 <nowiki>|</nowiki> Republic of Korea}} | | ! colspan="4" style="width:45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8ㅔdeg, #008000 7%, #0057b8 7%);;" | [[파일:대한민국 국장 (개화).png|30px|link=]]<br>{{글씨 색|#CD2E3A|{{large|대한민국}}}}<br>{{글씨 색|#0047A0|大韓民國 <nowiki>|</nowiki> Republic of Kore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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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span="2" width=50% | {{테두리|[[파일:태극기.png|150px]]}} | | ! colspan="2" width=50% | {{테두리|[[파일:태극기.png|150p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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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개요== | | ==개요== |
| '''대한민국'''(大韓民國 / Republic of Korea)은 동북아시아에 위치한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은 1392년에 건국된 [[조선 (개화)|조선]]을 전신으로 하며, 개화와 함께 1889년 [[대한제국 (개화)|대한제국]]으로 국명을 개칭했다가 1895년 [[아관파천 (개화)|아관파천]]의 여파로 공화정으로 전환되어 현재와 같은 모습인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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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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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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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 center; margin-left: auto; margin-right: auto; max-width:450px; border:2px solid #e0e0e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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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span="4" style="font-size: 10pt; background:#fff; color:#fff;" | '''<big>{{글씨 색|#0047A0|태극기}}</big><br>{{글씨 색|#CD2E3A|太極旗 <nowiki>|</nowiki> Taegeuk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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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span="4" | <div style="margin: -4px -9px">[[파일:태극기.png]]</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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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span="1" style="font-size: 10pt; background:#0047A0; color:#fff;" | '''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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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span="3" style="text-align:left; font-size: 10pt; color: #000;" | '''대한민국의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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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span="1" style="font-size: 10pt; background:#0047A0; color:#fff;" | '''채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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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span="3" style="text-align:left; font-size: 10pt; color: #000;" | [[1883년]] [[3월 24일]]<ref name=a>구 태극기</ref><br>[[1895년]] [[12월 31일]]<ref name=b>현 태극기</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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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span="1" style="font-size: 10pt; background:#0047A0; color:#fff;" | '''설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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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span="3" style="text-align:left; font-size: 10pt; color: #000;" | [[이응준(1832) (개화)|이응준]]<ref name=a>구 태극기</ref><br>[[박영효 (개화)|박영효]]<ref name=b>현 태극기</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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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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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span="1" style="font-size: 10pt; background:#0047A0; color:#fff;" | '''근거법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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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span="3" style="text-align:left; font-size: 10pt; color: #000;" | 대한국 국제<ref name=a>구 태극기</ref><br>대한민국 헌법<ref name=b>현 태극기</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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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span="1" style="font-size: 10pt; background:#0047A0; color:#fff;" | '''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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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span="3" style="text-align:left; font-size: 10pt; color: #000;" |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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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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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극기'''는 대한민국의 국기로, 대한민국 헌법을 통해 그 지위를 보장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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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82년 한국 최초의 근대적 조약인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을 앞두고 미국 측이 조약체결을 위해 조선 측도 국기가 필요하다고 요구하자 이에 당시 협상 실무진에 속한 외교관이었던 [[이응준(1832) (개화)|이응준]]이 태극기를 만들었다. 이후 약간의 수정을 거쳐 1883년 태극기는 정식으로 국기로 선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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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1895년 입헌군주제를 명시한 대한국 국제(헌법)로 인해 권력이 크게 제약당한 고종이 전제군주제를 복원하기 위해 [[아관파천 (개화)|아관파천]] 사태를 일으키자 대한국 중추원은 공화국을 선포하였고 이와 함께 태극기를 수정하여 현재와 같은 형태의 태극기가 완성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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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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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 center; margin-left: auto; margin-right: auto; max-width:450px; border:2px solid #e0e0e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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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span="4" style="font-size: 10pt; background:#fff; color:#fff;" | '''<big>{{글씨 색|#0047A0|대한민국 국장}}</big><br>{{글씨 색|#CD2E3A|大韓民國國章 <nowiki>|</nowiki> National Emblem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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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span="4" | [[파일:대한민국 국장 (개화).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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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span="1" style="font-size: 10pt; background:#0047A0; color:#fff;" | '''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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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span="3" style="text-align:left; font-size: 10pt; color: #000;" | '''대한민국의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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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span="1" style="font-size: 10pt; background:#0047A0; color:#fff;" | '''채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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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span="3" style="text-align:left; font-size: 10pt; color: #000;" | [[1918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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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span="1" style="font-size: 10pt; background:#0047A0; color:#fff;" | '''설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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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span="3" style="text-align:left; font-size: 10pt; color: #000;" | [[최재형(1860)|최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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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span="1" style="font-size: 10pt; background:#0047A0; color:#fff;" | '''근거법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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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span="3" style="text-align:left; font-size: 10pt; color: #000;" | 대한민국 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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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국장'''은 대한민국의 국장이다. <s>동어반복</s> <s>[[고이즈미 신지로|경기가 좋아지면 반드시 불경기에서 탈출할 수 있다]]</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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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8년 당시 법무부장관이었던 [[최재형 (개화)|최재형]]이 설계하였으며 태극문양을 둘러싼 무궁화를 다시 청색의 리본이 둥글게 둘러싸고 있는 형태이다. 현재의 국장을 채택하기 전까지는 태극기의 태극문양을 똑 떼어 그대로 국장으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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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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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무궁화 삼천리 (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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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 center; margin-left: auto; margin-right: auto; width: 100%; max-width:450px; border:2px solid #e0e0e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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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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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span="4" style="font-size: 10pt; background:#fff; color:#fff;" | '''<big>{{글씨 색|#0047A0|무궁화 삼천리}}</big><br>{{글씨 색|#CD2E3A|대한민국 애국가}}<br>{{글씨 색|#CD2E3A|無窮花三千里 <nowiki>|</nowiki> Long Way of Sharon Ro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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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span="4" | <div style="margin: -4px -9px">{{youtube|_fhRBvbTXDI}}</div><div style="margin: -11.6px 0px"></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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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span="1" style="font-size: 10pt; background:#0047A0; color:#fff;" | '''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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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span="3" style="text-align:left; font-size: 10pt; color: #000;" | '''대한민국의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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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span="1" style="font-size: 10pt; background:#0047A0; color:#fff;" | '''채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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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span="3" style="text-align:left; font-size: 10pt; color: #000;" | [[1896년]] [[5월 15일]]<ref>구 국가</ref><br>[[1937년]] [[6월 9일]]<ref>현 국가</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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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span="1" style="font-size: 10pt; background:#0047A0; color:#fff;" | '''작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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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span="3" style="text-align:left; font-size: 10pt; color: #000;" | [[윤치호 (개화)|윤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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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span="1" style="font-size: 10pt; background:#0047A0; color:#fff;" | '''작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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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span="3" style="text-align:left; font-size: 10pt; color: #000;" | [[안익태 (개화)|안익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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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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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span="1" style="font-size: 10pt; background:#0047A0; color:#fff;" | '''근거법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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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span="3" style="text-align:left; font-size: 10pt; color: #000;" | 대한민국 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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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궁화 삼천리'''는 대한민국의 국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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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국 (개화)|대한국]] 시절에는 국가의 안녕과 [[고종 (개화)|황제]]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대한국 애국가'''를 국가로 사용했으나 공화제 전환 이후 국가를 '''대한민국 애국가'''로 변경하였다. 영국 스코틀랜드의 민요인 올드 랭 사인의 곡조에 애국지사 [[윤치호 (개화)|윤치호]]가 만든 가사를 붙인 대한민국 애국가는 1896년부터 1937년까지 약 40여 년 간 사용되었다. 하지만 외국 민요를 국가의 곡조로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이에 1937년 당시 총리였던 [[안창호 (개화)|안창호]]의 요청으로 민족주의 음악가 [[안익태 (개화)|안익태]]가 자신이 작곡한 '''한국환상곡'''의 곡조 일부에 윤치호가 만든 기존의 가사를 붙여 '''[[무궁화 삼천리 (개화)|무궁화 삼천리]]'''라는 이름의 새 국가를 만들었고, 이를 중추원이 헌법 개정을 통해 국가로 채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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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는 대한민국 정부이다. 기존의 저작권자였던 안익태가 국가 채택과 함께 저작권을 정부에 이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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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lass="wikitable" style="margin-left:auto; margin-right:auto; max-max-width:330px; min-width: 50%; text-align:center; border:2px solid #e0e0e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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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span="2"; style="color: #CD2E3A;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20deg, #CD2E3A 10%, #fff 10%, #fff 90%, #0047A0 90%)" | '''{{글씨 색|#0047A0|무궁화 삼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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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span="2"; style="color: #CD2E3A; background:#fff" |<div class="mw-customtoggle-Socialiste">'''[ 가사 펼치기 · 접기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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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 id="mw-customcollapsible-Socialiste" class="mw-collapsible mw-collap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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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 class="mw-collapsible-content" style="background: none; margin: 0px -10px 0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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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tyle="margin: 4px 0px -6px 0px; width: 100%; text-align: center; background: #FFF; color:#000; font-size: 10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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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idth=25% style="background: #CD2E3A; color: #fff" |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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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tyle="color:#0047A0"|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br>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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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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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idth=25% style="background: #CD2E3A; color: #fff" | 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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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tyle="color:#0047A0"|'''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br>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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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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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idth=25% style="background: #CD2E3A; color: #fff" | 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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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tyle="color:#0047A0"|'''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br>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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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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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idth=25% style="background: #CD2E3A; color: #fff" |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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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tyle="color:#0047A0"|'''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br>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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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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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idth=25% style="background: #CD2E3A; color: #fff" | 후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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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tyle="color:#0047A0"|'''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br>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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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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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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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갑신혁명 (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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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 center; margin-left: auto; margin-right: auto; max-width:350px; border:2px solid #e0e0e0; float:le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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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span="4" | <div style="margin: -5px -9px">[[파일:경성 거리.png]]</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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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span="4" style="font-size: 10pt; background:#fff; color:#fff;" | '''{{글씨 색|#0047A0|경성 거리 (1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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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70년대, 서구 세계의 발전에 충격받은 조선은 [[고종 (개화)|고종]]과 [[온건개화파 (개화)|온건개화파]]의 주도 하에 개화정책을 실시하였다. 서구와의 통상수교를 거부하며 쇄국 정책으로 일관한 흥선대원군의 정책에 비교하면 진일보한 방향을 잡은 것이었지만, 수구적 [[온건개화파 (개화)|온건개화파]]의 주도로 실시된 개화정책은 적극적이지 못했고 정치적 개혁이 수반되지도 않았다. 이에 지식인 계층과 신흥 상공인을 중심으로 더 급진적은 개혁을 요구하는 목서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1884년, 더욱 급진적인 개혁개방을 원하던 [[급진개화파 (개화)|급진개화파]]는 [[김옥균 (개화)|김옥균]]을 리더로 하여 [[갑신혁명 (개화)|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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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변을 통해 [[고종 (개화)|고종]]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집권한 급진개화파는 [[개화당 (개화)|개화당]]을 창당하고선 본격적인 개혁 드라이브에 시동을 건다. 개화당의 개혁정책은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모든 것을 서구식으로!"였다. 개화당 정부는 조선의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제도를 유럽식으로 바꾸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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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교적으로 이전의 전통적인 사대교린 정책을 폐기하고 서구 국가들과 적극적으로 수교하였으며 또한 만국박람회에도 참가하였다.<ref>만국박람회에서 Korea라는 표기가 확립되었다.</ref> 또 여전히 상하이 조차지에 대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던 영국에게 [[제주특별자치도 (개화)|제주도]]를 조차지로 제공하는 대가로 경제적, 군사적 지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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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 경제적으로 천지개벽할 만한 변혁이 나타났다. 근대적인 인구조사와 토지조사가 실시되었고 서양식 교육제도와 의료기술이 전면 도입되었고 서구 국가들로 대규모 국비유학생이 파견되었다. 미국 기업과의 합작을 통해 [[한성 (개화)|경성]]과 [[인천 (개화)|제물포]]를 연결하는 경인선 철도가 개통되었고 정부 주도의 대규모 상공업 투자가 이루어졌다. 이 시기에는 머리를 단정하게 다듬는 일명 단발령이 내려졌는데, 정부 요인이었던 [[유길준 (개화)|유길준]]이 직접 고종의 머리를 밀어버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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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사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생겨났다. 근대적 인구조사를 바탕으로 국민개병제가 계획되었으며 조병창의 건설로 신식 소총이 생산, 도입되었다. 또 영국과 독일로부터 후장식 대포를 대량으로 도입하였으며 제대의 편제와 훈련도 서양식으로 바뀌었다. 영국으로부터 여러 척의 구식 구축함과 경순양함을 값싸게 매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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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팽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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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제1차 극동전쟁 (개화)|제2차 극동전쟁 (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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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 center; margin-left: auto; margin-right: auto; max-width:270px; border:2px solid #e0e0e0; float: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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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span="4" | <div style="margin: -5px -9px">[[파일:대한제국군.jpg]]</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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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span="4" style="font-size: 10pt; background:#fff; color:#fff;" | '''{{글씨 색|#0047A0|대한제국군 (1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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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극적인 팽창을 시도한 조선은 청과의 간도 분쟁이 벌어지자 1894년 국명을 [[대한제국 (개화)|대한제국]]으로 고치고 일본과 손을 잡고 청을 [[제1차 극동전쟁 (개화)| 공격하였다.]] 한일 동맹군은 퉁화 전투와 서해 해전에서 각각 청나라 북양군과 청나라 북양함대를 격파하였고, 영국의 중재로 [[제주특별자치도 (개화)|영국령 제주]]에서 제주조약을 맺어 강화하였다. 전쟁으로 한국은 간도를, 일본은 대만을 병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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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5년, 입헌군주였던 고종이 실권을 되찾기 위해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아관파천 (개화)|친위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실패했고, 분노한 [[대한민국 중추원 (개화)|중추원]]은 고종을 폐위시키고 공화정을 채택, 대한민국의 성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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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화단의 난 당시 러시아 제국은 의화단 진압을 명목으로 대규모 군대를 파병했고, 난이 진압된 이후에도 그대로 만주에 주둔시켰다. 안 그래도 아관파천으로 인해 러시아를 고깝게 보던 한국은 러시아의 시베리아 철도가 완공되자 않았음을 눈치채고 러시아의 확장을 막으려는 미국과 영국의 지원을 받아 1904년 일본과 함께 러시아에 [[제2차 극동전쟁 (개화)|선전포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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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는 약 10만명의 병력만이 극동 지역에 배치되어있었기에 불리한 처지에 있었다. 거기에다 육군 대장 [[이용익 (개화)|이용익]]이 지휘하는 한일동맹군이 여순과 봉천에서 러시아 육군을 격파하면서 전세가 기울어졌고, 대한해협에서 도고 제독의 일본연합함대가 러시아 발트함대를 수몰시키면서 러시아는 굴욕적인 평화협정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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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중재로 체결된 포츠머스 조약으로, 한국은 만주에 대한 러시아의 모든 이권을 양도받았고, 일본은 사할린섬과 쿠릴 열도를 할양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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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 세계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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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차 세계대전 (개화)|1차 세계대전]] 초기 한국은 중립을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우방국이었던 영국으로부터 계속해서 참전 압박이 들어왔고 [[이승만 (개화)|이승만]] 외무성장관을 중심으로 참전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된다는 의견이 내각 내에서도 다수를 점하면서, 1914년 말 협상국의 편으로 전쟁에 참전하였다. 한국은 독일 제국 등 동맹국 국가들에 선전포고하였고 한국군이 독일령 교주만을 공격, 점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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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한국은 직접적인 참전보다는 다른 방법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일본, 스페인과 같이 협상국에 엄청난 양의 군수물자를 수출하여 엄청난 호황을 누린 것이었다. 훗날 총리를 역임하는 [[안창호 (개화)|안창호]]는 이 때를 "거리마다 부와 행복이 흘러넘치던 시대"라고 회상했다. 당시 힌국 정부는 전쟁을 통해 얻은 부를 재투자, 재분배하도록 장려했고, 덕분에 이어진 대공황에서 일본에 비해 비교적 적은 피해를 입었다.<ref>한국도 큰 피해를 입었으나 일본 등 타 국가에 비해서는 피해가 적었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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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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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 center; margin-left: auto; margin-right: auto; max-width:350px; border:2px solid #e0e0e0; float: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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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span="4" | <div style="margin: -5px -9px">[[파일:한성 거리.jpg]]</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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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span="4" style="font-size: 10pt; background:#fff; color:#fff;" | '''{{글씨 색|#0047A0|한성 거리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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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 세계대전 종전 후 한국은 [[시베리아 전쟁 (개화)|북방 출병]]을 통해 연해주와 만주 북부로 진출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군은 소련 노농적군, 몽골 인민군과 전투를 벌였다. 이후 [[하바로우스크 조약 (개화)|하바로우스크 조약]]을 통해 소련의 만주 진출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연해주와 그 이북지방에 친한 성향의 [[녹우크라이나 제1공화국(개화)|녹우크라이나 제1공화국]]을 건국하여 완충지대를 확보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소련의 시베리아 병합을 묵인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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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주의 친한 군벌들을 지원하던 한국은 소련의 위협이 커지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더 견고한 완충지대를 만들고자 하였다. 논의 끝에 괴뢰국보다는 친한 성향의 동맹국이 완충지대로서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 [[만주국 국무원 (개화)|만주국 정부]]와 1927년 [[심양조약 (개화)|심양조약]]을 체결하여 [[만주 국무원 (개화)|만주국]]을 만주의 유일한 정부를 만주 유일한 국가로 인정하고 지원하는 대신 남만주를 할양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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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대, 세계대공황이 몰아닥치자 한국은 혼란에 빠졌다. 한성 주식시장은 붕괴했고 실업률은 두 자릿수를 넘보았다. 이런 상황에서 공산주의와 결속주의, 무정부주의 등 극단파가 득세하였으며 이런 상황에서 출범한 사회주의 성향의 [[한인사회당 (개화)|사회당]] [[양기탁 내각 (개화)|양기탁 내각]]은 강력한 복지정책과 군비 축소로 경제위기에 대응하였다. 양기탁 내각의 군비 축소와 대외 정책에 불만을 품은 급진파 장교들이 [[12.5 반란사건 (개화)|12.5 반란사건]]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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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대 중반이 되면서 경제상황이 조금씩 호전되고 시작했고 [[대한민주당 (개화)|민주당]]-[[대한국민회 (개화)|국민회]] 연립내각이 수립되었다. 새 내각은 [[대한공산당 (개화)|대한공산당]]과 [[민족단결연맹 (개화)|민족단결연맹]]을 "민주주의의 적"으로 선포, 헌법위원회 위헌정당심판을 통해 해산시켰다. 파시즘 운동은 정부의 민족주의 정책의 당근과 탄압책의 채찍으로 세력이 크게 줄어들었지만 공산주의 운동은 지하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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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세계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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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제3차 극동전쟁 (개화)|태평양전쟁 (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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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 center; margin-left: auto; margin-right: auto; max-width:350px; border:2px solid #e0e0e0; float:le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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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span="4" | <div style="margin: -5px -9px">[[파일:3차 극동전 한국군 보병.jpg]]</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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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span="4" style="font-size: 10pt; background:#fff; color:#fff;" | '''{{글씨 색|#0047A0|3차 극동전쟁 당시 한국 국군<ref>[[춘천 전투 (개화)|춘천 전투]] 당시 숲 속에 매복해 일본군을 기다리고 있는 6사단 장병들이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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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0년, [[치올코우스키 전투 (개화)|치올코우스키]]의 설욕을 이루고자 하는 소련과 한반도와 만주의 각종 자원을 얻으려 하는 일본이 손을 잡고 한국에 선전포고하였다. 설상가상으로 [[박헌영 (개화)|박헌영]]이 이끄는 [[대한공산당 (개화)|공산당]]은 소련의 지원을 받아 [[연길부 (개화)|연길]]에서 [[박헌영 정권 (개화)|공산주의 정권]]의 수립을 선포했다. [[제3차 극동전쟁 (개화)|제3차 극동전쟁]]의 발발이았다. 이전 내각들의 지나친 군축으로 전력이 크게 약해져있었던 [[대한민국 국군 (개화)|국군]]은 패전을 거듭했고, 남쪽으로는 한강, 북쪽으로는 압록강까지 전선이 후퇴하여 남부에는 일본의 괴뢰국인 [[동래 정권 (개화)|동래 정권]]이, 북부에는 친소 공산주의 정권인 [[박헌영 정권 (개화)|박헌영 정권]]이 넓은 땅을 차지하는 상황까지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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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랜드리스로 간간히 버티고 있던 와중에, [[춘천 전투 (개화)|춘천 전투]]와 [[마천령 전투 (개화)|마천령 전투]]에서 한국군이 일본군과 소련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며 적의 공세가 돈좌되었다. 마침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면서 소련은 한국과의 평화조약을 모색하였고 미국의 중재로 한국과 소련 사이의 [[앵커리지 평화조약 (개화)|앵커리지 평화조약]]이 체결되었다. 이로써 한국은 일본과 그 괴뢰정부인 [[동래 정권 (개화)|동래정권]]과의 맞대결에 들어갔다.<ref>학자들은 소련과의 평화조약 체결 시점을 3차 극동전의 끝이라고 보며 이후의 한일간의 전쟁은 보통 태평양 전쟁의 일부로 간주한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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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2년, 동래를 수복하고 [[동래 정권 (개화)|동래 정권]]을 멸망시키며 한반도에서 일본군을 완전히 몰아낸 한국은 미 항공대에게 비행장을 제공해 일본을 불바다로 만들어버리는 데에 일조하였다. 또 1944년에는 미군, 영국군과 공동으로 [[제주도 상륙작전 (개화)|제주도 상륙작전]]을 싱시해 영국의 조차지얐던 제주를 일본으로부터 수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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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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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전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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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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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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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lass="wikitable" style="margin-left:auto; margin-right:auto; width:300px; border:2px solid #e0e0e0; color:#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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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span="2" style="background:#CD2E3A; color:#FFF;" | 대한민국의 기본 정치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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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tyle="background:#0047A0 ;color:#FFF;" | 세계자유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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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점'''<nowiki> | </nowiki>'''{{글씨 색|#3BAC86|자유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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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tyle="background:#0047A0 ;color:#FFF;" | 언론자유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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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39점'''<nowiki> | </nowiki>'''{{글씨 색|#8EB0D5|만족스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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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tyle="background:#0047A0; color:#FFF;" | 민주주의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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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2점''' <nowiki>|</nowiki> '''{{color|#199750|완전한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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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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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대한민국 대통령 (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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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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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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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대한민국 중추원 (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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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중추원의 원내 구성 (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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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중추원 (개화)|대한민국 중추원]]은 대한민국의 입법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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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추원은 대한민국 헌법과 법률을 제정, 개정, 폐지할 수 있다. 법률안의 경우 중추원 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 인원 과반수 동의가 필요하며 헌법의 경우 중추원 의원의 2/3 이상의 동의가 팔요하다. 또 중추원은 국무총리를 선출하거나 불신임할 수 있으며 국무원에 대한 국정조사, 국정감사를 실시할 수 있다. 또 대통령과 도부평의회의 거부권을 재적 의원의 과반 출석과 출석 의원의 2/3, 이상의 출석으로 무효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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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원의 임기는 4년이지만 의회 해산이 종종 있으므로 평균 임기는 이보다 짧다. 국무총리에게 중추원 해산권이 있으나 중추원이 재적 의원의 과반 찬성을 통해 자체적으로 해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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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추원 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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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대한민국 중추원 의정 (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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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대한민국 중추원 의정 (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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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김진표 프로필.png|230px|썸네일|오른쪽|제NN대 대한민국 중추원 의정 [[김진표 (개화)|김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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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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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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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무원은 대한민국의 행정부이다. 국무원의 정책 결정기구는 내각이며 내각의 장은 국무총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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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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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국무원의 내각 구성 (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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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국무원 내각은 국무원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이다. 국무총리, 부총리, 국무장관, 특임장관, 내각사무처장, 기타 국정운영에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자<ref>국무총리가 최대 8인까지 지명.</ref>가 내각 각료가 된다. 정책 통과를 위해서는 각료 과반의 찬성이 필요하다. 각료는 전원 국무총리에 의해 임명되며 언제든지 해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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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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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대한민국 국무총리 (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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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대한민국 국무총리 (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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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유승민 프로필.png|230px|썸네일|오른쪽|제32대 대한민국 국무총리 [[유승민 (개화)|유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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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용문1|'''① 국무총리는 중추원에서 의원 투표로 선출한다.<br>② 국무총리는 내각을 대표하며 행정에 관하여 국무원 행정각부를 통할한다.<br>③ 군인은 현역을 면한 후가 아니면 국무총리에 취임할 수 없다.'''|대한민국 헌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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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무총리는 대한민국 행정부인 국무원의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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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무총리는 행정각부를 통할하고 부총리, 국무장관, 특임장관, 내각사무처장, 기타 각료, 헌법재판관 등을 임명, 면직할 수 있으며<ref>헌법재판관은 임명만 가능하고 면직은 불가능하다.</ref> 중추원을 해산할 수 있으나 중추원이 통과시킨 법률안을 거부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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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무총리는 새 총선이 있을 때마다 총선 직후 중추원에서의 투표로 선출되며,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없을 경우 1위 득표자와 2위 득표자 간의 결선투표를 실시한다. 중추원 의원의 과반수의 찬상으로 불신임될 수 있으며, 이 경우 총리는 총리직에서 사퇴하거나, 중추원을 해산하고 새 총선을 치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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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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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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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의 광역자치단체 (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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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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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한국의 중추원 의원 선거 (개화)|한국의 지방 선거 (개화)|한국의 대통령 선거 (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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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주요 선거 (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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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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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수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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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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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업 ·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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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통 · 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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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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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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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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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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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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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한국군 (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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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한국의 전쟁·전투 (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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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정구역 및 지역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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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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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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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일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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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중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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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러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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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만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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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만관계 (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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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오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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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오관계 (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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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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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주 구룬= | | =만주 구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