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모 카츠히로 (설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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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설국)|일본]]의 만화가이자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미야기현 (설국)|미야기현]] 출신이다.
[[일본 (설국)|일본]]의 만화가이자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미야기현 (설국)|미야기현]] 출신이다.


현재까지도 북일본의 '문화계 3대 거장'으로 회자되며, 일본의 대표적인 문화계 거물이다. 특히 199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가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던 시기에, 그는 미야자키 하야오와 함께 애니메이션계에서 '해와 달'로 불리며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다. 두 사람의 국적만큼이나 화제를 모았던 것은 그들 작품의 '''방향성'''이었다. 미야자키의 작품은 '마녀 배달부 키키'나 '이웃집 토토로'와 같은 밝고 명랑한 분위기로 '해(日)'에 비유됐다. 반면 세기말적 분위기를 내뿜으며, SF장르를 구사하던 카즈히로는 '달(月)'에 비유됐다. '제1세계 진영 국가 출신의 감독 vs 사회주의 국가 출신의 감독', '대중성 vs 작품성', '소년만화 vs 청년만화' 등 두 사람의 라이벌리는 미야자키의 은퇴 이전까지 큰 화제를 모으며, 일본 영화계 흥행에 오랜 기간 활력이 되었다.
현재까지도 북일본의 '문화계 3대 거장'으로 회자되며, 일본의 대표적인 문화계 거물이다. 특히 199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가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던 시기에, 그는 미야자키 하야오와 함께 애니메이션계에서 '해와 달'로 불리며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다. 두 사람의 국적만큼이나 화제를 모았던 것은 그들 작품의 '''방향성'''이었다. 미야자키의 작품은 '마녀 배달부 키키'나 '이웃집 토토로'와 같은 밝고 명랑한 분위기로 '해(日)'에 비유됐다. 반면 세기말적 분위기를 내뿜으며, SF장르를 구사하던 카즈히로는 '달(月)'에 비유됐다. '제1세계 진영의 국가 출신 vs 사회주의 국가 출신', '대중성 vs 작품성', '소년만화 vs 청년만화' 등 두 사람의 라이벌리는 미야자키의 은퇴 이전까지 큰 화제를 모으며, 일본 영화계 흥행에 오랜 기간 활력이 되었다.

2024년 7월 14일 (일) 21:3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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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모 카츠히로
大友克洋 | Katsuhiro Otomo
출생 1954년 4월 14일
북일본 미야기현 토메시
국적 일본 (2003 ~ 現)[1]
직업 만화가, 애니메이션 감독, 영화 감독
수훈 북일본 레닌-문예영예훈장 (1990년)
자수포장 (2013년)
프랑스 문예공로훈장 오피시에 (2014년)
서명
SNS

개요

일본의 만화가이자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미야기현 출신이다.

현재까지도 북일본의 '문화계 3대 거장'으로 회자되며, 일본의 대표적인 문화계 거물이다. 특히 199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가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던 시기에, 그는 미야자키 하야오와 함께 애니메이션계에서 '해와 달'로 불리며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다. 두 사람의 국적만큼이나 화제를 모았던 것은 그들 작품의 방향성이었다. 미야자키의 작품은 '마녀 배달부 키키'나 '이웃집 토토로'와 같은 밝고 명랑한 분위기로 '해(日)'에 비유됐다. 반면 세기말적 분위기를 내뿜으며, SF장르를 구사하던 카즈히로는 '달(月)'에 비유됐다. '제1세계 진영의 국가 출신 vs 사회주의 국가 출신', '대중성 vs 작품성', '소년만화 vs 청년만화' 등 두 사람의 라이벌리는 미야자키의 은퇴 이전까지 큰 화제를 모으며, 일본 영화계 흥행에 오랜 기간 활력이 되었다.

  1. 북일본 (1954 ~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