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룩셈부르크주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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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 개요 ==
[[파울 요제프 괴벨스]]가 정립한 사상으로, [[라트 연방]]의 공식적 통치 이념이다.
[[파울 요제프 괴벨스]]가 정립한 사상으로, [[라트 연방]]의 공식적 통치 이념이다.
== 역사 ==
[[카를 마르크스]]의 사후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한차례 정리한 [[변증법적 유물론]]은 시대를 거치며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카를 카우츠키]]의 정통 마르크스주의, [[오토 바우어]]의 [[외스터라이히 마르크스주의]], [[블라디미르 레닌]]의 전위당론, [[아마데오 보르디가]]의 이탈리아 좌파공산주의, [[안톤 판네쿡]]의 네덜란드/독일 좌파공산주의, [[레프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 [[로자 룩셈부르크]]의 룩셈부르크주의, [[안토니오 그람시]]의 그람시주의 등 1940년대에는 여러 사상이 난립하고 있었고, 특히 "룩셈부르크 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사회민주당 내부에서도 합의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특히 민족주의의 성격과 당의 역할에 대해 193-40년대 당 내에서 심한 논쟁이 있었으며, 이는 사회민주당의 일치단결된 투쟁을 불가능하게 했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의 제2차 세계대전과 이후 1946년-1949년 사이 슈트라서 서기장의 강압적인 통치는 논쟁을 일시적으로 중단시켰으나, 논쟁이 완전히 종료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1950년대 들어서 [[오토 바우어]], [[로자 룩셈부르크]], [[이오시프 스탈린]], [[안토니오 그람시]] 등 사회민주당의 주요한 이론가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격렬한 논쟁을 벌일 주체 자체가 줄어들었고, 전후 경제성장기와 세계 혁명 수출기를 맞이하여 이론을 정립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룩셈부르크가 사망한 후, 독일의 최고지도자의 자리에 올라선 [[파울 요제프 괴벨스]]가 룩셈부르크의 일부 저작과 슈트라서의 통치철학을 바탕으로 사회민주당의 이념적 노선을 정립하고자 하여 창시된 사상이 마르크스-룩셈부르크주의이다.


== 내용 ==
== 내용 ==

2024년 9월 5일 (목) 20:32 판

개요

파울 요제프 괴벨스가 정립한 사상으로, 라트 연방의 공식적 통치 이념이다.

역사

카를 마르크스의 사후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한차례 정리한 변증법적 유물론은 시대를 거치며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카를 카우츠키의 정통 마르크스주의, 오토 바우어외스터라이히 마르크스주의, 블라디미르 레닌의 전위당론, 아마데오 보르디가의 이탈리아 좌파공산주의, 안톤 판네쿡의 네덜란드/독일 좌파공산주의, 레프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 로자 룩셈부르크의 룩셈부르크주의, 안토니오 그람시의 그람시주의 등 1940년대에는 여러 사상이 난립하고 있었고, 특히 "룩셈부르크 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사회민주당 내부에서도 합의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특히 민족주의의 성격과 당의 역할에 대해 193-40년대 당 내에서 심한 논쟁이 있었으며, 이는 사회민주당의 일치단결된 투쟁을 불가능하게 했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의 제2차 세계대전과 이후 1946년-1949년 사이 슈트라서 서기장의 강압적인 통치는 논쟁을 일시적으로 중단시켰으나, 논쟁이 완전히 종료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1950년대 들어서 오토 바우어, 로자 룩셈부르크, 이오시프 스탈린, 안토니오 그람시 등 사회민주당의 주요한 이론가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격렬한 논쟁을 벌일 주체 자체가 줄어들었고, 전후 경제성장기와 세계 혁명 수출기를 맞이하여 이론을 정립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룩셈부르크가 사망한 후, 독일의 최고지도자의 자리에 올라선 파울 요제프 괴벨스가 룩셈부르크의 일부 저작과 슈트라서의 통치철학을 바탕으로 사회민주당의 이념적 노선을 정립하고자 하여 창시된 사상이 마르크스-룩셈부르크주의이다.

내용

일반 원리

대립물의 통일, 양질전화, 부정의 부정

정치 이념

관련 저작

  • 『룩셈부르크주의의 기초』 - 그레고어 슈트라서 (1947년)
  •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 - 파울 요제프 괴벨스 (195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