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종파사건 (당신들의 조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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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공산당 제20차 전당대회에서 흐루쇼프가 스탈린 격하 정책을 실시한 것에 대해 김일성이 마오쩌둥과 함께 흐루쇼프를 비난하였단 점에서 8월 종파사건이 실패했다면 조선과 소련의 관계를 파국으로 치달았을 것이며 극도의 친중 정책을 펼쳤을 것이다. 만일 이렇게 된다면 국공내전 당시 중국에서 항일활동을 하던 [[연안파 (당신들의 조선)|연안파]]의 위상도 더불어 상승했을 것이며 [[김두봉 (당신들의 조선)|김두봉]], [[김무정 (당신들의 조선)|김무정]]과 같은 이들도 여러 중책을 맡았을 것이다. 이들은 8월 종파사건에 참여하긴 했지만 이들은 박헌영, 허가이의 이러한 행동에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면서 김일성 축출에 소극적으로 움직였기에 이들이 중책을 맡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숙청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소련 공산당 제20차 전당대회에서 흐루쇼프가 스탈린 격하 정책을 실시한 것에 대해 김일성이 마오쩌둥과 함께 흐루쇼프를 비난하였단 점에서 8월 종파사건이 실패했다면 조선과 소련의 관계를 파국으로 치달았을 것이며 극도의 친중 정책을 펼쳤을 것이다. 만일 이렇게 된다면 국공내전 당시 중국에서 항일활동을 하던 [[연안파 (당신들의 조선)|연안파]]의 위상도 더불어 상승했을 것이며 [[김두봉 (당신들의 조선)|김두봉]], [[김무정 (당신들의 조선)|김무정]]과 같은 이들도 여러 중책을 맡았을 것이다. 이들은 8월 종파사건에 참여하긴 했지만 이들은 박헌영, 허가이의 이러한 행동에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면서 김일성 축출에 소극적으로 움직였기에 이들이 중책을 맡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숙청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일부 극단적인 역사학자의 경우는 조선로동당 제3차대회 당시 김일성이 개인숭배 관련한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았음을 고려하여 만일 8월 종파사건이 실패로 돌아갔다면 김일성 자신의 개인숭배가 더욱 심화되어 현재 조선이 박헌영을 숭배하는 것보다 더한 개인숭배가 이루어져 공산주의 국가 역사상 유례가 없는 '''세습 독재까지 이뤄졌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만일 세습 독재가 이뤄졌다면 그 대상은 김일성의 장남이었던 [[유리 킴 (당신들의 조선)|유리 킴]](김정일)이 되었을 것이다. 만일 유리 킴이 진짜로 김일성의 뒤를 이어 조선의 최고지도자로 등극했다면 조선은 공산주의 국가 중에서 유일무이한 부자 세습 국가로 남았을 것이다.
일부 극단적인 역사학자의 경우는 조선로동당 제3차대회 당시 김일성이 개인숭배와 관련한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았음을 고려하여 만일 8월 종파사건이 실패로 돌아갔다면 김일성 자신의 개인숭배가 더욱 심화되어 현재 조선이 박헌영을 숭배하는 것보다 더한 개인숭배가 이루어져 공산주의 국가 역사상 유례가 없는 '''세습 독재까지 이뤄졌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만일 세습 독재가 이뤄졌다면 그 대상은 김일성의 장남이었던 [[유리 킴 (당신들의 조선)|유리 킴]](김정일)이 되었을 것이다. 만일 유리 킴이 진짜로 김일성의 뒤를 이어 조선의 최고지도자로 등극했다면 조선은 공산주의 국가 중에서 유일무이한 부자 세습 국가로 남았을 것이다.


유리 킴은 영화감독 시절에도 <선군>을 비롯한 각종 작품에서 유독 군대의 역할을 강조하는 면을 보여왔으며 영화감독에서 은퇴한 이후 정계에 입문하면서 국방비 증액, 극단적인 반미 등을 주장하여 그가 속한 통합 러시아 내에서조차 전쟁광이라고 배척당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면을 고려하여 만일 유리 킴이 김일성의 뒤를 이어 정권을 승계했다면 조선은 현재의 모습과는 달리 극단적인 반미 국가, 군국주의 국가로 변했을지도 모른다.
유리 킴은 영화감독 시절에도 <선군>을 비롯한 각종 작품에서 유독 군대의 역할을 강조하는 면을 보여왔으며 영화감독에서 은퇴한 이후 정계에 입문하면서 국방비 증액, 극단적인 반미 등을 주장하여 그가 속한 통합 러시아 내에서조차 전쟁광이라고 배척당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면을 고려하여 만일 유리 킴이 김일성의 뒤를 이어 정권을 승계했다면 조선은 현재의 모습과는 달리 극단적인 반미 국가, 군국주의 국가로 변했을지도 모른다.

2024년 9월 9일 (월) 01:5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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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관련 문서
8월 종파사건
八月宗派事件 | August Faction Incident
1956년 8월 종파사건 직전 소련에 방문한 김일성
발생일 1956년 8월 2일
원인 • 스탈린 사망과 스탈린 격하 운동
• 김일성 개인 우상화에 대한 반발
• 경제 개발 노선의 방향성 차이
결과 • 「김일성, 박금철, 김광협, 남일 등 동무들의 종파적 음모에 대하여」 결정서 채택
• 만주파, 갑산파 숙청 및 와해
영향 • 남로당파 우위의 집단지도체제 확립
당사
세력
주도 남로당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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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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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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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파, 갑산파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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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 만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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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산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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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1956년 8월 2일에 발생한 박헌영남로당파, 허가이소련파, 김두봉연안파 등이 주도한 만주파갑산파의 숙청 및 축출 사건.

배경

8월 종파사건 당시 주요 정치 파벌

제1차 거제 상륙작전의 대실패

흐루쇼프의 스탈린 격하 운동

전후 복구 과정에서의 이견

과정

조선로동당 제3차대회

김일성의 동구권 순방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3기 제2차 전원회의

김일성의 최후의 발악

승리의 조선로동당 제4차대회

결과

[ 8월 종파사건 이전 ]
서열순
1위
김일성
(위원장)
2위 3위 4위
박헌영
(부위원장)
김책
(부수상 겸 산업상)
허가이
(부위원장)
5위 6위 7위
리승엽
(제1비서)
최창익
(부수상 겸 재정상)
박금철
(조직지도부장)
8위 9위 10위
최용건
(민족보위상)
김두봉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남일
(최고인민회의 상무위원)
[ 8월 종파사건 이후 ]
서열순
1위
박헌영
(위원장)
2위 3위 4위
허가이
(부위원장 겸 제1비서)
김책
(부수상 겸 산업상)
리승엽
(부위원장 겸 제2비서)
5위 6위 7위
김영주
(조직지도부장)
박창옥
(부수상 겸 국가계획위원장)
최창익
(부수상 겸 재정상)
8위 9위 10위
최용건
(민족보위상)
김두봉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리효순
(검열위원장)
←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위원 (제2기)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위원 (제4기) →

영향

8월 종파사건이 실패했다면?

8월 종파사건은 조선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개선장군이었던 김일성을 축출한다는 점에서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었다. 그 당시의 김일성이 제1차 거제 상륙작전에서 실패하고 경제 정책을 말아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반도를 통일했다는 것에서 김일성의 명망은 매우 높았으며 이러한 점에서 김책, 최용건과 같이 김일성과 친밀했지만 그의 정책에 의문을 품었던 이들도 김일성을 축출한다는 것에 대해선 상당한 우려를 표했을 정도이다.

만일 김일성이 8월 종파사건에서 축출되지 않았다면 오히려 그 여파로 김일성의 축출을 주도했던 박헌영, 허가이와 같은 비(非)김일성 계파들이 이들의 반격으로 역으로 축출당했을지도 모른다. 이들과 더불어 김책, 최용건 최현, 강건, 김영주와 같이 김일성 계파에서 전향한 이들도 함께 축출당했을 것이며 이와 반대로 김광협, 박금철과 같이 김일성과 매우 친밀하고, 8월 종파사건 당시에 김일성을 적극적으로 변호하고 반격에 나섰던 이들의 위상은 역으로 상승하여 조선은 만주파와 갑산파 양강이 주도하는 스탈린주의 과두정 국가로 남았을 것이다.

소련 공산당 제20차 전당대회에서 흐루쇼프가 스탈린 격하 정책을 실시한 것에 대해 김일성이 마오쩌둥과 함께 흐루쇼프를 비난하였단 점에서 8월 종파사건이 실패했다면 조선과 소련의 관계를 파국으로 치달았을 것이며 극도의 친중 정책을 펼쳤을 것이다. 만일 이렇게 된다면 국공내전 당시 중국에서 항일활동을 하던 연안파의 위상도 더불어 상승했을 것이며 김두봉, 김무정과 같은 이들도 여러 중책을 맡았을 것이다. 이들은 8월 종파사건에 참여하긴 했지만 이들은 박헌영, 허가이의 이러한 행동에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면서 김일성 축출에 소극적으로 움직였기에 이들이 중책을 맡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숙청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일부 극단적인 역사학자의 경우는 조선로동당 제3차대회 당시 김일성이 개인숭배와 관련한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았음을 고려하여 만일 8월 종파사건이 실패로 돌아갔다면 김일성 자신의 개인숭배가 더욱 심화되어 현재 조선이 박헌영을 숭배하는 것보다 더한 개인숭배가 이루어져 공산주의 국가 역사상 유례가 없는 세습 독재까지 이뤄졌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만일 세습 독재가 이뤄졌다면 그 대상은 김일성의 장남이었던 유리 킴(김정일)이 되었을 것이다. 만일 유리 킴이 진짜로 김일성의 뒤를 이어 조선의 최고지도자로 등극했다면 조선은 공산주의 국가 중에서 유일무이한 부자 세습 국가로 남았을 것이다.

유리 킴은 영화감독 시절에도 <선군>을 비롯한 각종 작품에서 유독 군대의 역할을 강조하는 면을 보여왔으며 영화감독에서 은퇴한 이후 정계에 입문하면서 국방비 증액, 극단적인 반미 등을 주장하여 그가 속한 통합 러시아 내에서조차 전쟁광이라고 배척당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면을 고려하여 만일 유리 킴이 김일성의 뒤를 이어 정권을 승계했다면 조선은 현재의 모습과는 달리 극단적인 반미 국가, 군국주의 국가로 변했을지도 모른다.

일본의 동인 서클 RO[1]에 속한 재일 조선인 작가 리노이에 이시모토(李家石基)가 집필한 장편 소설인 백두혈통(白頭血統)에선 8월 종파사건이 결국 실패로 돌아가 박헌영과 허가이가 역으로 종파주의자로 몰려 숙청당하고 김일성은 연안파, 갑산파까지 차례대로 숙청, 일인독재 체제를 구축한 이후 1995년까지 조선을 통치하는 것으로 나온다. 해당 작품은 김일성 사후 그의 아들인 김정일과 그의 아들[2]이 차례대로 정권을 물려받은 2020년의 조선을 다루고 있다.

기타

각종 매체에서

영화

소설

게임

방송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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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영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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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evolutionary Organization. 지하혁명조직(地下革命組織)이란 이름으로도 불리고 있다. 냉전과 관련된 대체역사 창작물을 주로 제작하는 동인 서클이다.
  2. 작중에선 김정운(金正雲)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유리 킴이 김일성의 장남이었던 것과 달리 작중에서 김정운은 삼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