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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연호 결정을 위해 소집된 임시 각료 회의는 비공개로 진행되었으나 이 날 언론에서 공식적으로 보도한 자료에 의하면, 연호 결정 과정에서 ???에서 따온 '''1(1)''', ???에서 따온 '''2(2)''', ???에서 따온 '''성화(成和)''', ???에서 따온 '''4(4)'''까지, 총 4개 안이 최종 후보로 올랐으나, 최종적으로는 ???에서 따온 성화가 연호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 당시 연호 결정을 위해 소집된 임시 각료 회의는 비공개로 진행되었으나 이 날 언론에서 공식적으로 보도한 자료에 의하면, 연호 결정 과정에서 ???에서 따온 '''1(1)''', ???에서 따온 '''2(2)''', ???에서 따온 '''성화(成和)''', ???에서 따온 '''4(4)'''까지, 총 4개 안이 최종 후보로 올랐으나, 최종적으로는 ???에서 따온 성화가 연호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 ||
[[노무현 (한나라)|노무현]] [[대한제국 내각총리대신 (한나라)|내각총리대신]]은 연호 발표 직후 진행된 담화에서, "[[이명박 (한나라)|누구나 열심히 땀 흘리면 성공할 수 있는 시대, 국민성공시대를 개막하고]], [[정대성|대한제국 모두가 한 발짝 뒤로 양보하며 어우러지는]], 조화로운 대한제국을 개막하는 염원을 연호에 담았다"고 밝혔다. | [[노무현 (한나라)|노무현]] [[대한제국 내각총리대신 (한나라)|내각총리대신]]은 연호 발표 직후 진행된 담화에서, "[[이명박 (한나라)|누구나 열심히 땀 흘리면 성공할 수 있는 시대, 국민성공시대를 개막하고]], [[정대성|대한제국 모두가 한 발짝 뒤로 양보하며 어우러지는]], 조화로운 대한제국을 개막하는 염원을 연호에 담았다"고 연호 선정 이유를 밝혔다. | ||
본래 선임 황제가 붕어하면 새로운 황제를 받든다는 의미로, [[제5대 민의원 의원 총선거 (한나라)|국회를 해산하고]] [[제20대 민의원 의원 총선거 (한나라)|총선을 진행했지만]]<ref>[[한창수 내각 (한나라)|한창수 내각]] 시절 때부터 행해진 유서 깊은 관례다.</ref>, [[노무현 내각 (한나라)|노무현 내각]]에는 국회 해산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 (한나라)|한나라당]]이 당시 노무현 내각을 '새로운 황제 폐하를 낡아빠진 내각으로 보필하려는 것이냐'며 국회 해산 및 총선 실시를 촉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ref>당시 노무현 내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이들이 53%나 되었기 때문에, 이런 와중에 국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실시하면 [[열린우리당 (한나라)|열린우리당]]이 폭망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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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12일 (월) 06:12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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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연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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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화 시대 成和時代 | |
|---|---|
| 개막 | 2005년 7월 17일 ~ 현재(18년) |
| 황제 | 성화제 |
| 이전 | 명정(明定) |
개요
| 서기 2023년은 성화 18년이다. |
성화제가 대한제국의 제5대 황제로 즉위한 2005년 7월 17일 0시 00분 00초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대한제국의 연호이자 시대 구분. 한국상 역사상 25번째로 사용된 연호이자, 대한제국 역사상 5번째로 사용된 연호.
출전(出典)
연호 발표
| 새로운 연호를 발표하는 기자회견 장면.[1] 4:3 아날로그 화면이 인상적이다. |
| 새로운 연호는 '성화'입니다. 문재인 당시 내각관방장관의 새 연호 발표 |
선대 황제인 명정제의 붕어 직후인 2005년(헤이세이 31년) 7월 17일 오후 12시 10분에 을지로 1번가에서 열린 임시 각료 회의를 통해 성화를 새로운 연호로 결정했으며, 같은 날 오후 3시 11분경 당시 내각관방장관이었던 문재인이 을지로 1번가에서 기자회담을 통해 새로운 연호를 정식으로 발표하였다.
당시 연호 결정을 위해 소집된 임시 각료 회의는 비공개로 진행되었으나 이 날 언론에서 공식적으로 보도한 자료에 의하면, 연호 결정 과정에서 ???에서 따온 1(1), ???에서 따온 2(2), ???에서 따온 성화(成和), ???에서 따온 4(4)까지, 총 4개 안이 최종 후보로 올랐으나, 최종적으로는 ???에서 따온 성화가 연호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노무현 내각총리대신은 연호 발표 직후 진행된 담화에서, "누구나 열심히 땀 흘리면 성공할 수 있는 시대, 국민성공시대를 개막하고, 대한제국 모두가 한 발짝 뒤로 양보하며 어우러지는, 조화로운 대한제국을 개막하는 염원을 연호에 담았다"고 연호 선정 이유를 밝혔다.
본래 선임 황제가 붕어하면 새로운 황제를 받든다는 의미로, 국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진행했지만[2], 노무현 내각에는 국회 해산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 당시 노무현 내각을 '새로운 황제 폐하를 낡아빠진 내각으로 보필하려는 것이냐'며 국회 해산 및 총선 실시를 촉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