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공화당 분당 (제5공화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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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류파 중심 민주공화당 ====
==== 잔류파 중심 민주공화당 ====
친박정희계 세력을 제외한 대부분이 탈당하자, 잔류 친박정희계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한 민주공화당은 1980년 4월, 박준규 국회의원을 당 의장으로 선출했다.
친박정희계 세력을 제외한 대부분이 탈당하자, 잔류 친박정희계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한 민주공화당은 1980년 4월, 이효상 전 국회의장을 당의장으로 선출했다.


이후 5월 항쟁에서 본격적으로 신군부 편에 서며 한나라당, 신민당, 개혁신당, 민주통일당 등 민주화 세력과 극한의 대립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신군부 세력이 몰락하며 민주화가 이루어지자 민주공화당은 신군부와 같이 내란 세력으로 엮이게 되며, 유력 대선 후보인 김종필, 김영삼은 헌법재판소에 의한 정당 해산을 시사하는 등 존립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후 5월 항쟁에서 본격적으로 신군부 편에 서며 한나라당, 신민당, 개혁신당, 민주통일당 등 민주화 세력과 극한의 대립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신군부 세력이 몰락하며 민주화가 이루어지자 민주공화당은 신군부와 같이 내란 세력으로 엮이게 되며, 유력 대선 후보인 김종필, 김영삼은 헌법재판소에 의한 정당 해산을 시사하는 등 존립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2025년 8월 15일 (금) 19:19 판

개요

1980년 초에 이루어진 민주공화당 분당이다. 이 분당은 보수정당 역사상 최대의 분당으로 꼽힌다.

발단

1979년, 10.26 사건 이후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전당대회를 통해 당 의장으로 당선되었으나, 김종필을 비롯한 김종필계(청구동계)가 당을 운영하는 상황을 못마땅하게 여긴 친박정희계를 중심으로 김종필을 서서히 견제하고 있었고 12.12 군사반란으로 신군부가 사실상 군권을 장악하자 전두환과 고향이 인접한 TK를 지역구로 둔 국회의원을 필두로 신당 창당 설이 퍼지기도 했다.

또한, 박찬종, 오유방, 남재희, 이태섭 등 소장파를 중심으로 유신체제를 지지하고 옹호한 과거를 반성하자는 취지에서 일명 '정풍운동'을 일으켰으나, 정풍운동의 대상으로 지목된 이후락, 김진만 등이 김종필 지도부에 사사건건 발목을 잡고 있었다.

이렇듯 민주공화당이 10.2 항명 파동 이후 최대 분열 위기 속에서 김종필을 비롯한 김종필 지도부가 당을 제대로 운영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만섭, 남재희, 이태섭 등 일부 의원들은 김종필에게 신당을 창당할 것을 조언했지만, 김종필은 그렇게 쉬운 결정이 아니라며 사실상 고사했다.

그러나 1980년 3월, 이효상 전 국회의장, 이후락, 김진만 등 친박정희계 민주공화당, 유신정우회 국회의원들이 단합하여 김종필 지도부를 붕괴시킨 후 전두환 혹은 노태우를 차기 민주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추대할 것이라는 녹취록이 발견되자[1] 김종필계는 친박정희계와의 관계가 더욱 급속도로 관계가 험악해져 김종필 의장이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더불어 박찬종, 오유방 등 김종필, 친박정희계 둘 다 반대하는 일부 소장파도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전개

세력분화

민주공화당
민주공화당
한나라당
개혁신당
신민당[2]

잔류파 중심 민주공화당

친박정희계 세력을 제외한 대부분이 탈당하자, 잔류 친박정희계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한 민주공화당은 1980년 4월, 이효상 전 국회의장을 당의장으로 선출했다.

이후 5월 항쟁에서 본격적으로 신군부 편에 서며 한나라당, 신민당, 개혁신당, 민주통일당 등 민주화 세력과 극한의 대립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신군부 세력이 몰락하며 민주화가 이루어지자 민주공화당은 신군부와 같이 내란 세력으로 엮이게 되며, 유력 대선 후보인 김종필, 김영삼은 헌법재판소에 의한 정당 해산을 시사하는 등 존립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김종필 신당 '한나라당'

김종필 전 민주공화당 의장을 비롯해 김종필계와 일부 소장파, 이만섭 등 비주류 계파를 중심으로 창당한 신당이다.

1980년 4월, 창당대회에서 당명을 한나라당으로 결정하고 8개의 강령과 55개의 기본정책을 채택한 뒤 김종필 전 민주공화당 의장을 차기 대선 후보로, 김종필계 소속인 이병희 국회의원을 당대표로 선출했다.

박찬종 신당 '개혁신당'

박찬종, 오유방 등 김종필, 친박정희계 둘 다 반대하는 일부 소장파를 중심으로 창당한 신당이다. 당명은 개혁신당으로 결정했다.

1980년 4월, 창당대회에서 박찬종 국회의원이 당대표 겸 차기 대선 후보로 추대되었다.

박찬종 대표는 창당대회에서 차기 대선에서 독자 완주를 통해 정당의 기본 목적 중 하나인 '자체 후보에 의한 집권 가능성'을 보여주겠다고 선언했다.


  1. 당시 언론 검열로 해당 사건이 신문으로 보도하기 어려워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2. 이인근, 박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