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공화국/역사: 두 판 사이의 차이

메기2호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메기2호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38번째 줄: 38번째 줄:


12월민정이양운동은1979 이슬람혁명이후 부패한 군대와 시대개혁을 위한 민중의 자발적인 행동이었다는점에서 의의가 있다.허나 이과정에서 1022명이 희생되었으며  2만3403명이 체포되었으며 총 6550만달러이상의 피해금액이 발생하게되었다.
12월민정이양운동은1979 이슬람혁명이후 부패한 군대와 시대개혁을 위한 민중의 자발적인 행동이었다는점에서 의의가 있다.허나 이과정에서 1022명이 희생되었으며  2만3403명이 체포되었으며 총 6550만달러이상의 피해금액이 발생하게되었다.
=== 1월 헌법 공개~제1대대통령선거까지 ===

2026년 2월 16일 (월) 00:37 판

이란공화국/역사

1990~1992

1979년 이슬람혁명이후 11년이 흐른 1991년에 신연방조약으로인한 소비에트 주권공화국연맹건국은 당시 만연한 이슬람혁명수비대의 경제적 군림으로 인한 사회불평등은 당시 혁명주도 세력이었던 상인들조차도 불만을 품을정도로 극심하였다. 그리하여 1991년 9월 3일 람사르에서 "이란민중의 민주화 요구결의안"을 발표하는것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중소형시위가 만연히 일었다.허나 이란정부의 강력한 대응아래 사그라들게 된다.그리고 1992년 4월3일 호라산지역 전역에서 현 이란 좌파의 근간이되는 이란동지회를 필두로한 봉기가 대대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이에 당시 생존자 증언에 따르면 사람을 절구로 빻아죽이는 비인륜적행위가 팽배하였다고 증언한다.

1993~12월 민정이양운동 이전

악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의 이란정부는 강력히 이란내의 민주화세력을 탄압하기위해서 이란자체의 인트라넷 "E채널"을 구축하여 외부 정보통신을 차단하는등의 폐쇄적인 정책을 진행하였다. 허나 당시 이란 전체노동자의 34%가 총파업에 참가하는등의 반정부 기조는 확대되었고 1994년 2월과 5월에 마슈하드에서 2차례에 걸친 민주화 시위로 이어지게되었다. 또한 테헤란민주언론인연합(TVT)가 창립되었으며 "이란학생투쟁그룹"을 비롯한 이란의 운동권세력이 적극적으로 나타나면서 1994~1995년까지 정치범으로 수용된인원이 3400명을 넘겼다고 추정될 만큼 강력히 단속하였다.그러나 1년뒤 1995년 11월 22일 TVT자유의소리에서 4월사건당시 피해자명단을 방송사건으로 12월 민정이양운동발생하게 되었다.

12월 민정이양운동

1995년 12월 3일 마슈하드에서 4월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운동본부를 필두로한 시위대가 마슈하드에서 첫시위를 일으켰다.

1995년 12월 4일 이스파한을 비롯한 4개도시에서 연달아 마슈하드 시위소식이 전달되며 22만명의 인파가 시위에 참여하였다.

1995년 12월 6일 테헤란에서 시위모의를 하려던 본부단원 4명이 공개처형당했다. 또한 이란 혁명수비대의 진압작전으로 최소 39명이 숨지고 450명이 체포되었다.

1995년 12월 7일 "쿠르디스탄 자치운동"이 시위대에게 공식적인 지지성명을 발표하였다, 이윽고 모술과 아스만에서 소규모 시위가 발생하였다.

1995년 12월 8일 이란이슬람공화국 국가지도자회의와 헌법수호위원회가 현사태를 공식적으로 언급하며, 이윽고 "시위 가담자를 엄중처벌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TVT는 이란의 민주화운동을 지지해달라고 호소하였다.

1995년 12월 10일 타브리즈와 라슈트를 비롯한 15개 도시에서 지속적인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였다. 이윽고 국가지도자회의와 최고지도자 대리실은 긴급성명을 발표하며 통행금지령 선포및 부분계엄검토를 강조하였다.

1995년 12월 11일 시위대 숫자기 55만명을 돌파하며 총 630명이 숨지고 1450명이 체포되었다.

1995년 12월 12일 이란정부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마슈하드,타브리즈,이스파한 외곽도로를 차단하였다.

1995년 12월 13일 이스파한에서 첫 실탄 발포가 이루어졌으면 총 29명이 숨졌다.

1995년 12월 14일 반다르아비스를 비롯한 쉬나즈,자헤단에서 첫시위가 발생하였다. 시위대 숫자가 100만명을 기록하였다.

1995년 12월 15일 이란군과 혁명수비대가 폭동분자 한정 실탄 사용을 허가하였으며 총 660명이상의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1995년 12월 17일 테헤란에서 첫시위가 일어났다. 또한 정부는 "4월사건 진상규명위원회"구성을 약속하는 대가로 자진해산을 청구하였으나 묵살되었다.

1995년 12월 18일 마슈하드시위대가 시청을 점거하였으며 H24/ICB 방송공사에 점거시도가 있었다.

1995년 12월 20일 이란 최고지도자 공식성명으로써, 1월 개헌과 민정이양을 약속한 "12.20 민정이양선언"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여 공식적으로 12월민정이양운동이 마무리된다.

12월민정이양운동은1979 이슬람혁명이후 부패한 군대와 시대개혁을 위한 민중의 자발적인 행동이었다는점에서 의의가 있다.허나 이과정에서 1022명이 희생되었으며 2만3403명이 체포되었으며 총 6550만달러이상의 피해금액이 발생하게되었다.

1월 헌법 공개~제1대대통령선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