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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시성 출신의 군벌로, 1925년 국민혁명군에 합류하여 국민당의 북벌, 중일전쟁, 국공내전에서 활약하였다. 1947년 헌법 제정 이후 초대 국방부장과 국민당의 여러 당직을 역임했으나, 장제스 측근들의 견제를 받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으며, 공산군과 치열한 포격전이 벌어지던 하이난에 좌천되었다. 그러나 1955년 하이난의 군권을 쥐고있던 [[쉐웨 (동남고행)|쉐웨]]가 부총통으로 콜업되어<ref>당시 하이난에서의 쉐웨는 항일과 반공의 영웅으로 막강한 지지를 얻고있었다. 하이난의 군벌화를 우려한 장제스는 공석이된 부총통직에 쉐웨를 지명하게 되면서 사실상 반강제로 타이베이로 가게 되었다.</ref> 타이베이로 떠나게 되자, 하이난의 군사들을 규합하여 자신만의 세력화에 성공한다. 1954년부터 1980년까지 26년간 경비총사령<ref>한국의 계엄사령관에 대응한다.</ref>의 지위로 [[하이난성 (동남고행)|하이난성]]을 지배한 하이난의 실력자로 군림하면서도, 장제스에게 저자세로 처신했다. 장제스에 대해 공개적인 충성맹세를 하는가 하면, 하이난 내 반장운동을 철저히 지레밟으며 타이베이 총통부에 아부했다. 하지만 장제스 사후 민주화로 선회하고자 했던 [[장징궈 (동남고행)|장징궈]]와 충돌하면서 19XX년 [[하이난 정숙작전 (동남고행)|하이난 정숙작전]]을 통해 사실상 숙청되면서 총사령에서 자진 사임한다.<ref>장징궈의 숙청으로 인해, 본인은 중앙 정부로부터 자진사임을 촉구받았을 뿐 아니라, 자신의 부하들은 반역 혐의로 사형언도를 받고 장기간 복역하는 등의 오명을 썼다.</ref> | 광시성 출신의 군벌로, 1925년 국민혁명군에 합류하여 국민당의 북벌, 중일전쟁, 국공내전에서 활약하였다. 1947년 헌법 제정 이후 초대 국방부장과 국민당의 여러 당직을 역임했으나, 장제스 측근들의 견제를 받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으며, 공산군과 치열한 포격전이 벌어지던 하이난에 좌천되었다. 그러나 1955년 하이난의 군권을 쥐고있던 [[쉐웨 (동남고행)|쉐웨]]가 부총통으로 콜업되어<ref>당시 하이난에서의 쉐웨는 항일과 반공의 영웅으로 막강한 지지를 얻고있었다. 하이난의 군벌화를 우려한 장제스는 공석이된 부총통직에 쉐웨를 지명하게 되면서 사실상 반강제로 타이베이로 가게 되었다.</ref> 타이베이로 떠나게 되자, 하이난의 군사들을 규합하여 자신만의 세력화에 성공한다. 1954년부터 1980년까지 26년간 경비총사령<ref>한국의 계엄사령관에 대응한다.</ref>의 지위로 [[하이난성 (동남고행)|하이난성]]을 지배한 하이난의 실력자로 군림하면서도, 장제스에게 저자세로 처신했다. 장제스에 대해 공개적인 충성맹세를 하는가 하면, 하이난 내 반장운동을 철저히 지레밟으며 타이베이 총통부에 아부했다. 하지만 장제스 사후 민주화로 선회하고자 했던 [[장징궈 (동남고행)|장징궈]]와 충돌하면서 19XX년 [[하이난 정숙작전 (동남고행)|하이난 정숙작전]]을 통해 사실상 숙청되면서 총사령에서 자진 사임한다.<ref>장징궈의 숙청으로 인해, 본인은 중앙 정부로부터 자진사임을 촉구받았을 뿐 아니라, 자신의 부하들은 반역 혐의로 사형언도를 받고 장기간 복역하는 등의 오명을 썼다.</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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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4일 (수) 22:05 판
| 중화민국 초대 하이난 경비총사령 바이충시 白崇禧(백숭희) | Bai Chongxi | |
|---|---|
| 출생 | 1893년 3월 18일 |
| 청나라 광시성 구이린시 린구이현 (現 중화인민공화국 광시성 구이린시 린구이구) | |
| 사망 | 1985년 10월 3일 (향년 92세) |
| 중화민국 하이난성 하이커우시 슈잉구 (現 중화민국 하이커우시 슈잉구) | |
| 재임 기간 | 초대 국방부장 |
| 1946년 5월 23일 - 1948년 6월 2일 | |
| 초대 하이난 경비총사령 | |
| 1954년 5월 20일 ~ 1980년 1월 20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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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하이난의 왕 - 1995년 '바이충시 사망 10주년' 중국시보 |
중화민국의 군인.
광시성 출신의 군벌로, 1925년 국민혁명군에 합류하여 국민당의 북벌, 중일전쟁, 국공내전에서 활약하였다. 1947년 헌법 제정 이후 초대 국방부장과 국민당의 여러 당직을 역임했으나, 장제스 측근들의 견제를 받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으며, 공산군과 치열한 포격전이 벌어지던 하이난에 좌천되었다. 그러나 1955년 하이난의 군권을 쥐고있던 쉐웨가 부총통으로 콜업되어[1] 타이베이로 떠나게 되자, 하이난의 군사들을 규합하여 자신만의 세력화에 성공한다. 1954년부터 1980년까지 26년간 경비총사령[2]의 지위로 하이난성을 지배한 하이난의 실력자로 군림하면서도, 장제스에게 저자세로 처신했다. 장제스에 대해 공개적인 충성맹세를 하는가 하면, 하이난 내 반장운동을 철저히 지레밟으며 타이베이 총통부에 아부했다. 하지만 장제스 사후 민주화로 선회하고자 했던 장징궈와 충돌하면서 19XX년 하이난 정숙작전을 통해 사실상 숙청되면서 총사령에서 자진 사임한다.[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