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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과 정치 스타일== | ==정책과 정치 스타일== | ||
===경제 정책: 성역없는 구조개혁=== | ===경제 정책: 성역없는 구조개혁=== | ||
성역 없는 구조개혁은 고준일의 트레이드마크이며, 그의 정책노선을 집약하는 표어이기도 하다. | |||
한국 경제가 [[1997년 외환위기]]라는 참사를 맞이한 것의 근본적인 원인이 재벌의 차입경영과 정경유착, 관치금융의 부작용이라는 것은 대부분의 전문가와 정치인들이 동의하는 바였고, 이것을 개혁해야 한다는 점에도 이해가 일치했다. 실제로 고준일 취임 이전에도 김대중 정부와 김종필 총리가 금융·기업 구조조정을 진행한 바 있었고, 이것이 고준일식 개혁의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은행권 부실채권비율은 1999년 말 12.9%에서 2000년 말 8.0%, 2001년 6월 5.7%까지 내려와 있었으나 아직 안심할 수준은 아니었고, 한계기업과 공기업 개혁도 미완이었다. 2001년 12월 10일 김종필 총리의 사임으로 취임한 고준일은 이처럼 절반쯤 진행된 개혁을 넘겨받은 셈이다. | |||
그러나 고준일의 개혁이 이전과 달랐던 점은 노선 그 자체보다는 개혁을 추진하는 방식과 언사에 있었다. 그는 개혁에 앞서 정치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가 사용한 '구조개혁'이라는 단어는 '''원래 진보 진영에서 주로 사용되는 단어'''였는데,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라는 큰 틀은 그대로 두고 그 안의 내용물을 완전히 갈아치운다는 사회민주주의의 사상을 표현하는 키워드였다. 그런데 고준일은 그 단어를 전유한 후 거기서 진보 색채만 빼고 '''기존의 체제 구조를 완전히 갈아치운다'''는 뜻으로 구조개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특히 여기서 말하는 '기존의 구조'가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고준일은 정경유착과 관치의 구조를 의미한다고 담담하게 대답하였다. 다만 과격한 대립 구도보다는 연립정부 내 조율과 설득을 중시했던 만큼, 언사는 온건했으되 개혁의 방향만큼은 분명했다. | |||
아무튼, 고준일은 이런 단어의 전유와 세련된 언변을 통해 신중하고 점진적으로 개혁을 추진하던 이전 정부들과 달리 개혁 그 자체를 국민들에게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사실 [[한국통신]] 지분 매각 같은 작업은 이미 1987년부터 거론되어 온 일이라 객관적인 새로움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도 이를 임기 안에 끝내 마무리함으로써 고준일이 추진하는 구조개혁이 올바른 것이자 정의로 인식하게 만들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 |||
본론으로 돌아와서, 고준일이 추진한 구조개혁은 '''민영화, 지방분권, 재정건전성'''이라는 세 키워드로 집약할 수 있다. 첫 번째 민영화와 관련해 상술한 바와 같이 2002년 5월 정부가 보유한 [[한국통신]] 지분 28.4%를 전량 매각하고 같은 해 8월 주주총회로 민영화를 마무리하였다. [[한국중공업]]의 [[두산중공업 ]] 이전과 [[한국전력]] 발전부문의 6개 자회사 분할은 [[김종필 내각 (경성지춘)|김종필 내각]]의 성과였으나, 고준일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남동발전]]을 1차 매각 대상으로 삼아 발전 자회사 민영화를 추진하였다. 국민은행도 2003년 12월 정부 지분 매각으로 완전 민영화하였다. 또한 책임운영기관 확대와 공공시설 관리 민간위탁 허용 등을 시행하였다. 외환위기가 정부가 지나치게 관치금융을 돌려서 벌어진 것이라는 반성에 근거해 정책금융기관을 통폐합하고, 정부 지분이 남은 은행은 민영화를 서둘렀다. 각종 특별법인과 산하기관은 폐지·통폐합하거나 경영평가를 강화하였다. 이를 통해 2001년 약 88만 명이던 공무원 현원(교원·경찰 제외 기준으로 정원 동결과 현업·기능직 감축)과 공기업·산하기관 인력을 임기 중 줄였다. | |||
두 번째로 지방분권을 통해 고준일은 지방정부의 재정 자율성을 강화하는 한편 중앙정부의 국고 지출 구조를 정비하려 했다. 2000년부터 내국세의 15%로 묶여 있던 지방교부세 법정률을 인상하고, 지방양여금을 폐지하여 교부세로 전환하였으며, 국고보조사업 가운데 지방이 맡을 수 있는 사업을 지방으로 이양하고 그 재원은 분권교부세로 대체하는 국고보조금 정비방안을 2004년 발표하였다. 이에 [[기획예산처]]와 [[행정자치부]]가 강경하게 반발하고 연립정부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왔지만 고준일은 하술할 정치개혁을 통해 확보한 정당성으로 이를 돌파하고 개혁을 시행했다. 다만 지방 이양 사업의 재원이 부족하다는 비판은 이후에도 계속 제기되었다. | |||
세 번째로 재정건전성에 대해 살펴보자. 이는 외환위기에 따른 부실채권을 마저 처리하고 재정지출을 억제하여 작은 정부를 만들기 위한 목적에서 추진되었다. 큰 틀은 고준일 취임 이전에 이미 갖춰져 있었다. 2001년 [[금융감독원]]이 연말 은행권 부실채권비율 목표를 5% 이하로 설정했고, 같은 해 9월에는 기업구조조정특별법이 제정되어 채권단 중심의 구조조정이 법에 따라 진행되었으며, 11월에는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이 합병해[[ 통합 국민은행]]이 출범했다. 고준일 내각은 이 체제를 이어받아 자산건전성 분류의 엄격한 적용과 은행별 부실채권 정리 결과 공개를 유지하고, 마무리 단계의 대형화를 밀어붙였다. | |||
그 결과 2002년 12월 [[하나은행]]이 [[서울은행]]을 합병했으며, 정부 주도로 묶인 [[우리금융지주]]가 이에 맞서는 구도가 되면서 [[신한]]·[[우리]]·[[국민]]·[[하나]]의 4대 금융그룹 체제의 틀이 잡혔다. 한편 [[대우그룹]] 해체 이후 남은 계열과 같은 이른바 좀비 기업들은 채권단 관리하에 매각과 계열 분리를 거쳐 재활하도록 했다. | |||
이를 통해 2000년 말 8.0%에 달했던 은행권 부실채권비율은 2001년 말 3.4%, 2002년 말 2.3%로 하락하고 2004년에는 1.9%를 기록하였다. 다만 2003년 3월 SK글로벌 분식회계 사태를 계기로 카드채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LG카드 등 카드사의 부실이 불거졌고, 정부는 카드채 만기 연장과 카드사 자본확충(8개 전업카드사 약 4조 6천억 원)으로 진화에 나서야 했다. 이는 고준일 내각의 가장 큰 오점으로 꼽힌다. | |||
한편 사회복지제도에 따른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의료개혁에 착수하였다. 의약분업 이후 [[건강보험]] 재정은 2001년 당기 적자 2조 4천억 원 이상을 기록하며 누적적립금이 바닥난 상태였다. 유소득 피부양자에 대한 보험료 부과와 지역가입자 재정에 대한 국고지원 확대(40%) 등 2001년 7~9월의 재정안정 대책은 [[김종필 내각]]의 것이었고, 고준일 내각은 이를 이어받아 보험료율을 단계적으로 인상(2002~2006년)하는 한편 허위·부정청구 단속과 급여기준 합리화를 강화하였다. 국민연금도 2003년 제1차 재정계산 결과 현행 소득대체율 60%·보험료율 9%로는 2036년 적자로 전환한다는 전망이 나오자, 소득대체율을 50%로 낮추고 보험료율을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15.9%까지 올리는 개혁을 단행하였다. | |||
이 기간 동안 실업률은 취임 직전 2001년 4.0%에서 2002년 3.3%로 하락하고, 성장률은 2002년 7%대를 기록하는 등 경기가 회복 국면을 이어갔지만, 이것이 고준일발 구조개혁의 효과인지 아니면 [[외환위기]] 이후의 기저효과와 세계 경기에 따른 것인지는 신중한 평가가 필요하다. 2003년에는 카드 사태로 내수가 위축되어 성장률이 3%대로 떨어지고 실업률도 3.6%로 다시 올랐다. 임기가 2004년까지 3년에 불과했던 만큼 개혁의 상당수는 후임 정부에서 완결되었고, 학자들 사이에서도 구조개혁이 한국 경제에 미친 영향에 대해 제대로 된 합의가 없으며 학자마다 평가가 제각각이다. | |||
===정치개혁: 21세기 데모크라시=== | ===정치개혁: 21세기 데모크라시=== | ||
==평가== | ==평가== | ||
2026년 10월 7일 (수) 21:14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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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무총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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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제32대 국무총리 고준일 高俊逸 | Ko Joon-Il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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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 1942년 1월 8일 | ||||||||||||||||||||
| 평안남도 진남포부 (現 남포광역시) | |||||||||||||||||||||
| 거주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선릉로112길 49 | ||||||||||||||||||||
| 본관 | 제주 고씨 | ||||||||||||||||||||
| 현직 | 희망의 당 상임고문 | ||||||||||||||||||||
| 재임기간 | 제32대 국무총리 | ||||||||||||||||||||
| 2001년 12월 10일 ~ 2004년 4월 16일 | |||||||||||||||||||||
| 링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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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 제34대 국무총리를 지냈다.
생애
정책과 정치 스타일
경제 정책: 성역없는 구조개혁
성역 없는 구조개혁은 고준일의 트레이드마크이며, 그의 정책노선을 집약하는 표어이기도 하다.
한국 경제가 1997년 외환위기라는 참사를 맞이한 것의 근본적인 원인이 재벌의 차입경영과 정경유착, 관치금융의 부작용이라는 것은 대부분의 전문가와 정치인들이 동의하는 바였고, 이것을 개혁해야 한다는 점에도 이해가 일치했다. 실제로 고준일 취임 이전에도 김대중 정부와 김종필 총리가 금융·기업 구조조정을 진행한 바 있었고, 이것이 고준일식 개혁의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은행권 부실채권비율은 1999년 말 12.9%에서 2000년 말 8.0%, 2001년 6월 5.7%까지 내려와 있었으나 아직 안심할 수준은 아니었고, 한계기업과 공기업 개혁도 미완이었다. 2001년 12월 10일 김종필 총리의 사임으로 취임한 고준일은 이처럼 절반쯤 진행된 개혁을 넘겨받은 셈이다.
그러나 고준일의 개혁이 이전과 달랐던 점은 노선 그 자체보다는 개혁을 추진하는 방식과 언사에 있었다. 그는 개혁에 앞서 정치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가 사용한 '구조개혁'이라는 단어는 원래 진보 진영에서 주로 사용되는 단어였는데,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라는 큰 틀은 그대로 두고 그 안의 내용물을 완전히 갈아치운다는 사회민주주의의 사상을 표현하는 키워드였다. 그런데 고준일은 그 단어를 전유한 후 거기서 진보 색채만 빼고 기존의 체제 구조를 완전히 갈아치운다는 뜻으로 구조개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특히 여기서 말하는 '기존의 구조'가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고준일은 정경유착과 관치의 구조를 의미한다고 담담하게 대답하였다. 다만 과격한 대립 구도보다는 연립정부 내 조율과 설득을 중시했던 만큼, 언사는 온건했으되 개혁의 방향만큼은 분명했다.
아무튼, 고준일은 이런 단어의 전유와 세련된 언변을 통해 신중하고 점진적으로 개혁을 추진하던 이전 정부들과 달리 개혁 그 자체를 국민들에게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사실 한국통신 지분 매각 같은 작업은 이미 1987년부터 거론되어 온 일이라 객관적인 새로움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도 이를 임기 안에 끝내 마무리함으로써 고준일이 추진하는 구조개혁이 올바른 것이자 정의로 인식하게 만들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고준일이 추진한 구조개혁은 민영화, 지방분권, 재정건전성이라는 세 키워드로 집약할 수 있다. 첫 번째 민영화와 관련해 상술한 바와 같이 2002년 5월 정부가 보유한 한국통신 지분 28.4%를 전량 매각하고 같은 해 8월 주주총회로 민영화를 마무리하였다. 한국중공업의 두산중공업 이전과 한국전력 발전부문의 6개 자회사 분할은 김종필 내각의 성과였으나, 고준일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남동발전을 1차 매각 대상으로 삼아 발전 자회사 민영화를 추진하였다. 국민은행도 2003년 12월 정부 지분 매각으로 완전 민영화하였다. 또한 책임운영기관 확대와 공공시설 관리 민간위탁 허용 등을 시행하였다. 외환위기가 정부가 지나치게 관치금융을 돌려서 벌어진 것이라는 반성에 근거해 정책금융기관을 통폐합하고, 정부 지분이 남은 은행은 민영화를 서둘렀다. 각종 특별법인과 산하기관은 폐지·통폐합하거나 경영평가를 강화하였다. 이를 통해 2001년 약 88만 명이던 공무원 현원(교원·경찰 제외 기준으로 정원 동결과 현업·기능직 감축)과 공기업·산하기관 인력을 임기 중 줄였다.
두 번째로 지방분권을 통해 고준일은 지방정부의 재정 자율성을 강화하는 한편 중앙정부의 국고 지출 구조를 정비하려 했다. 2000년부터 내국세의 15%로 묶여 있던 지방교부세 법정률을 인상하고, 지방양여금을 폐지하여 교부세로 전환하였으며, 국고보조사업 가운데 지방이 맡을 수 있는 사업을 지방으로 이양하고 그 재원은 분권교부세로 대체하는 국고보조금 정비방안을 2004년 발표하였다. 이에 기획예산처와 행정자치부가 강경하게 반발하고 연립정부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왔지만 고준일은 하술할 정치개혁을 통해 확보한 정당성으로 이를 돌파하고 개혁을 시행했다. 다만 지방 이양 사업의 재원이 부족하다는 비판은 이후에도 계속 제기되었다.
세 번째로 재정건전성에 대해 살펴보자. 이는 외환위기에 따른 부실채권을 마저 처리하고 재정지출을 억제하여 작은 정부를 만들기 위한 목적에서 추진되었다. 큰 틀은 고준일 취임 이전에 이미 갖춰져 있었다. 2001년 금융감독원이 연말 은행권 부실채권비율 목표를 5% 이하로 설정했고, 같은 해 9월에는 기업구조조정특별법이 제정되어 채권단 중심의 구조조정이 법에 따라 진행되었으며, 11월에는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이 합병해통합 국민은행이 출범했다. 고준일 내각은 이 체제를 이어받아 자산건전성 분류의 엄격한 적용과 은행별 부실채권 정리 결과 공개를 유지하고, 마무리 단계의 대형화를 밀어붙였다.
그 결과 2002년 12월 하나은행이 서울은행을 합병했으며, 정부 주도로 묶인 우리금융지주가 이에 맞서는 구도가 되면서 신한·우리·국민·하나의 4대 금융그룹 체제의 틀이 잡혔다. 한편 대우그룹 해체 이후 남은 계열과 같은 이른바 좀비 기업들은 채권단 관리하에 매각과 계열 분리를 거쳐 재활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2000년 말 8.0%에 달했던 은행권 부실채권비율은 2001년 말 3.4%, 2002년 말 2.3%로 하락하고 2004년에는 1.9%를 기록하였다. 다만 2003년 3월 SK글로벌 분식회계 사태를 계기로 카드채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LG카드 등 카드사의 부실이 불거졌고, 정부는 카드채 만기 연장과 카드사 자본확충(8개 전업카드사 약 4조 6천억 원)으로 진화에 나서야 했다. 이는 고준일 내각의 가장 큰 오점으로 꼽힌다.
한편 사회복지제도에 따른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의료개혁에 착수하였다. 의약분업 이후 건강보험 재정은 2001년 당기 적자 2조 4천억 원 이상을 기록하며 누적적립금이 바닥난 상태였다. 유소득 피부양자에 대한 보험료 부과와 지역가입자 재정에 대한 국고지원 확대(40%) 등 2001년 7~9월의 재정안정 대책은 김종필 내각의 것이었고, 고준일 내각은 이를 이어받아 보험료율을 단계적으로 인상(2002~2006년)하는 한편 허위·부정청구 단속과 급여기준 합리화를 강화하였다. 국민연금도 2003년 제1차 재정계산 결과 현행 소득대체율 60%·보험료율 9%로는 2036년 적자로 전환한다는 전망이 나오자, 소득대체율을 50%로 낮추고 보험료율을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15.9%까지 올리는 개혁을 단행하였다.
이 기간 동안 실업률은 취임 직전 2001년 4.0%에서 2002년 3.3%로 하락하고, 성장률은 2002년 7%대를 기록하는 등 경기가 회복 국면을 이어갔지만, 이것이 고준일발 구조개혁의 효과인지 아니면 외환위기 이후의 기저효과와 세계 경기에 따른 것인지는 신중한 평가가 필요하다. 2003년에는 카드 사태로 내수가 위축되어 성장률이 3%대로 떨어지고 실업률도 3.6%로 다시 올랐다. 임기가 2004년까지 3년에 불과했던 만큼 개혁의 상당수는 후임 정부에서 완결되었고, 학자들 사이에서도 구조개혁이 한국 경제에 미친 영향에 대해 제대로 된 합의가 없으며 학자마다 평가가 제각각이다.
정치개혁: 21세기 데모크라시
평가
소속 정당
| 소속 | 기간 | 비고 |
|---|---|---|
| 무소속 | 1971 - 1973 | 정계 입문 |
| 신민당 | 1973 - 1980 | 입당 |
| 무소속 | 1980 - 1985 | 정당 해산 |
| 신한민주당 | 1985 - 1987 | 창당 |
| 무소속 | 1987 - 1988 | 탈당 |
| 한겨레민주당 | 1988 - 1990 | 창당 |
| 무소속 | 1990 | 탈당 |
| 민주자유당 | 1990 - 1995 | 입당 |
| 신한국당 | 1995 - 1997 | 당명 변경 |
| 한나라당 | 1997 - 2000 | 합당 |
| 무소속 | 2000 | 탈당 |
| 신생당 | 2000 - 2004 | 창당 |
| 무소속 | 2004 - 2025 | 정계 은퇴 |
| 희망의 당 | 2025 - 현재 | 창당 |
선거 이력
여담
- ↑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다.
